75. 기가(氣瘕)
가(瘕)는 거짓(:假)이다.
소위 거짓(:假)이란 그 형(形)이 비록 징(癥)과 같긴 하지만 원래 근과(根窠)가 없으므로 징(癥)이나 비(痞)와 같이 견완(堅頑)하거나 형(形)이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유형(有形)이란 혈적(血積)으로 인하거나 식적(食積)으로 인하여 적(積)에 정형(定形)이 있고 쉽게 이(移)할 수 없는 것이다.
무형(無形)이란 병(病)이 기분(氣分)에 있어 기(氣)가 역(逆)하면 심(甚)하여지고 기(氣)가 산(散)하면 완(緩)하여지니 취산(聚散)에 무근(無根)한 것이다. 오직 무근(無根)하므로 대(大)할 수도 있고 소(小)할 수도 있으며, 좌(左)에 있거나 우(右)에 있다.
협늑(脇肋)에 근(近)하여 비(臂)와 같거나 지(指)와 같으면 현벽(痃癖)이라 하고, 제복(臍腹)으로 하(下)하여 창(脹)하고 급(急)하면 산가(疝瘕)라 말한다.
난경([難經])에 이르기를 "병(病)에 적취(積聚)가 있는데 어떻게 구별(:別)하는가?" 하니, 이르기를 "적(積)이란 음기(陰氣)이니, 음(陰)은 침(沈)하면서 복(伏)한다. 취(聚)는 양기(陽氣)이니, 양(陽)은 부(浮)하면서 동(動)한다. 따라서 적(積)은 오장(五臟)에서 생(生)하고 취(聚)는 육부(六腑)에서 성(成)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징(癥)은 적(積)으로 말미암으니, 적(積)이 음분(陰分)에 있고 연수(淵藪)가 있는 것 같으므로 공(攻)하기가 쉽지 않다. 가(瘕)는 취(聚)로 말미암으니 취(聚)가 양분(陽分)에 있고 오합(烏合)하는 것 같으므로 산(散)하는데 어렵지 않다.
징가(癥瘕)의 변(辨)은 이와 같으니라.
오직 산(散)하는 법(法)은 통(通)이나 색(塞)으로 하는 묘(妙)한 활용(用)이 있으니, 사람들이 대부분 알지 못한다.
一. 병(病)이 기분(氣分)에 있어 정축(停蓄)이나 형적(形積)이 없으면 모두 하(下)하면 안 된다. 하(下)를 사용하면 유형(有形)은 제(除)할 수 있지만, 무형(無形)은 제(除)할 수 없다.
만약 기(氣)가 형(形)으로 인하여 체(滯)하면 그 적(積)을 거(去)하면 기(氣)도 순(順)하게 되니, 안 될 수가 없다.
만약 전적(:全)으로 무형(無形)의 기분(氣分)에 있으면 곧 하(下)하여도 불거(不去)하고 정기(正氣)를 패(敗)하기에는 적절(:適足)하니, 마땅히 반드시 알아야 한다.
一. 산기(散氣)하는 법(法)
단지 행기(行氣)하는데 있으니, 기(氣)가 행(行)하면 산(散)한다. 단지 행기(行氣)하는 법(法)은 큰 변통(:權宜)이 있다.
기(氣)가 실(實)하면 옹체(壅滯)하니 마땅히 파(破)하여 행(行)하게 하여야 한다.
기(氣)가 폐(閉)하면 유축(留蓄)하니 마땅히 이(利)하여 행(行)하게 하여야 한다.
기(氣)가 열(熱)하면 건후(乾涸)하니 마땅히 한(寒)하여 행(行)하게 하여야 한다.
기(氣)가 한(寒)하면 응결(凝結)하니 마땅히 온(溫)하여 행(行)하게 하여야 한다.
이는 산기(散氣)하여 가(瘕)를 치(治)하는 대법(大法)이다.
그러나 가취(瘕聚)의 증(證)에서 만약 기(氣)가 강(强)하고 힘(:力)이 건(健)하면 그 유행(流行)이 불식(不息)하게 되니 또 어찌 가취(瘕聚)가 있겠는가? 오직 정기(正氣)가 불행(不行)하면 사기(邪氣)가 취(聚)하게 된다.
경(經)에 이르기를 "사기(邪)가 주(湊)하는 곳은 그 기(氣)가 반드시 허(虛)하다." 하였다. 따라서 이 병(病)이 되는 것은 반드시 기허(氣虛)한 경우에 많다. 허(虛)에 보(補)하는 것을 모르면 정기(正氣)가 불행(不行)하고, 정기(正氣)가 불행(不行)하면 사기(邪氣)가 불산(不散)하니, 어찌 낫기를 바라겠는가?
단지 실(實)하면 근거(據)가 있으므로 나타나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허(虛)는 매번 실(實)과 비슷하므로 은(隱)하면서 알기 어려우니라.
따라서 당연히 그 진(眞)을 변(辨)하여야 한다.
一. 파기(破氣) 행기(行氣)하는 제(劑)
기실(氣實) 기옹(氣壅)이 심(甚)하여 창(脹)하고 통(痛)하면 마땅히 배기음(排氣飮) 목향순기산(木香順氣散) 목향조기산(木香調氣散) 사마탕(四磨湯) 제칠기탕(諸七氣湯)의 종류(類)로 주(主)하여야 한다.
만약 혈(血) 중의 기(氣)가 체(滯)하여 어(瘀)가 되고 통(痛)이 되면 마땅히 실소산(失笑散) 통어전(通瘀煎) 조경음(調經飮)으로 하여야 하고 심(甚)하면 양방탈명단([良方]奪命丹)으로 하여야 한다.
산가(疝瘕) 기취(氣聚)에는 여향산(荔香散)으로 하여야 하고 심(甚)하면 천태오약산(天台烏藥散)으로 하여야 한다.
기(氣)가 방광(膀胱)에 결(結)하여 소수(小水)가 불리(不利)하면 소분청음(小分淸飮) 사령산(四苓散) 오령산(五苓散)으로 하여야 한다.
기(氣)가 대장(大腸)에 결(結)하여 건비(乾秘)하고 불행(不行)하면 수풍순기환(搜風順氣丸) 마인환(麻仁丸)으로 하여야 한다.
수휴(水虧) 혈허(血虛)하면서 비체(秘滯)하면 제천전(濟川煎)으로 하여야 한다.
간기(肝氣)가 역(逆)하여 취(聚)하면 해간전(解肝煎)으로 하여야 하고 화(火)를 겸하면 화간전(化肝煎)으로 하여야 한다.
기취(氣聚)하고 열(熱)을 겸하여 화울(火鬱)하고 불행(不行)하면 추신음(抽薪飮) 대분청음(大分淸飮)으로 하여야 한다.
한체(寒滯)로 불행(不行)하여 기결(氣結) 창취(脹聚)하면 억부전(抑扶煎) 화위음(和胃飮) 정향복령탕(丁香茯苓湯)으로 하여야 한다.
삼초(三焦)가 옹체(壅滯)하여 기도(氣道)가 불청(不淸)하면서 중만(中滿) 종창(腫脹)하면 곽청음(廓淸飮)으로 하여야 한다.
담음(痰飮) 수기(水氣)가 흉협(胸脇)에 정축(停蓄)하여 탄산(呑酸) 구역(嘔逆)하면 영출이진전(苓朮二陳煎) 육안전(六安煎) 화위음(和胃飮) 괄담환(括痰丸)의 종류(類)로 주(主)하여야 한다.
이상의 제법(諸法)은 오직 기실(氣實)한 가취(瘕聚)에 마땅하니, 원기(元氣)가 부족(不足)하면 모두 쓸 수 없다.
一. 보기(補氣) 행기(行氣)하는 제(劑)
성유탕(聖愈湯) 삼귀탕(蔘歸湯) 칠복음(七福飮)은 모두 심기(心氣)의 허체(虛滯)를 조(調)할 수 있다.
오미이공산(五味異功散) 삼출탕(蔘朮湯)은 심비(心脾)의 기허(氣虛)로 불행(不行)하는 것을 이(理)할 수 있다.
독삼탕(獨蔘湯) 삼부탕(蔘附湯)은 폐(肺)를 조(助)하여 오장(五臟)의 치절(治節)을 행(行)할 수 있다.
비위(脾胃)가 기허(氣虛)하면서 체(滯)하면 오직 육군자탕(六君子湯) 귀비탕(歸脾湯)이 마땅하다.
비위(脾胃)가 허한(虛寒)하면서 체(滯)하면 반드시 온위음(溫胃飮) 이중탕(理中湯) 오군자전(五君子煎)이 가장 좋으니라.
만약 허(虛)가 비신(脾腎)의 음분(陰分)에 있어 기(氣)가 불행(不行)하므로 담음(痰飮)이 되거나 창만(脹滿)이 되거나 구토(嘔吐) 복통(腹痛) 등의 증(證)이 되면 이음전(理陰煎)이 아니면 안 된다.
허(虛)가 혈(血) 중의 기(氣)에 있어 체(滯)가 되고 통(痛)이 되면 미(微)한 경우 사물탕(四物湯)으로 하여야 하고 심(甚)한 경우 오물전(五物煎) 결진전(決津煎) 대영전(大營煎)으로 하여야 비로소 된다.
만약 간신(肝腎)의 한체(寒滯)로 소복(小腹)에 기역(氣逆)하면서 통(痛)하면 반드시 난간전(煖肝煎)으로 온(溫)하게 하여야 한다.
만약 비신(脾腎)의 기허(氣虛)로 문호(門戶)가 불요(不要)하여 체(滯)하고 통(痛)하면 반드시 위관전(胃關煎)으로 고(固)하게 하여야 한다.
만약 원기(元氣)가 하함(下陷)하여 체(滯)하면서 불승(不升)하면 마땅히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거원전(擧元煎)으로 거(擧)하여야 한다.
만약 원기(元氣)가 대허(大虛)하여 기화(氣化)가 불행(不行)하면서 체(滯)하면 반드시 오복음(五福飮)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 대보원전(大補元煎)으로 하여야 하거나 육미회양음(六味回陽飮)으로 배보(培補)하여야 한다.
이상은 모두 보기(補氣) 행기(行氣)하는 법(法)이고, 또한 그 전제(筌蹄: 방편)로 말한 것에 불과(不過)할 뿐이니, 이 속의 쓰임은 진실로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런데 상인(常人)의 정(情)으로는 기(氣)가 체(滯)하면 오직 파(破)하고 산(散)하는 것을 마땅히 여기는데, 도리어 이를 보(補)한다고 말하면 반드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는 객(客)이 강(强)한 것은 주(主)가 약(弱)하기 때문이고, 사기(邪)가 승(勝)한 것은 오직 정기(正)가 허(虛)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병(病)은 허(虛)한 것이 가장 많으나, 보(補)를 활용(用)하는 자는 매우 적으니라. 치(治)와 병(病)이 서로 어긋나니(:違), 약(藥)으로 사람을 제(濟)하는 경우 또한 드무니라.
곧 내가 '허(虛)가 많고 실(實)은 적다.'고 간곡(:諄諄)하게 말하여도 사람들은 또한 이를 믿지 않으니, 잠시 인사(人事)에 비유(:喩)하면 깨달을(:曉然) 수 있을까?
사람의 허실(虛實)은 또한 사람의 빈부(貧富)와 같으니, 기실(氣實)은 부옹(富翁)과 같고 기허(氣虛)는 빈사(貧士)와 같으니라. 요즘 사람들 100명이나 1000명 중에서 부유한(:富) 자가 얼마인가? 부(富)한 자를 제외하면 모두 가난한(:貧) 사람들이다. 그 다소(多少)가 곧 이와 유사(類)한다.
또 그 모양(:貌)은 화려(:華)하여도 그 집안(:室)은 빈곤한(:罄) 경우가 있으니, 사람들이 대부분 헤아리기 어려운 경우가 또한 이러한 종류(類)이다. 단지 가난한(:貧) 사람의 정(情)은 보익(益)하여야 하지 손상(損)시키면 안 된다. 일분(一分)을 증(增)하여도 족(足)하지 못하는데, 일분(一分)을 삭(削)하면 그 군박(窘)함을 어찌 감당(堪)하겠는가?
은밀히 소(消)하고 암암리에 박(剝)하는 기술(:術)을 빈한(貧寒)하고 군핍(窘乏)한 사(士)에 가한다면 암암리에 사람을 복(:祚)에서 이동(移)시켜도 사람이 알지 못하니, 이 또한 심(甚)히 매우 안타까우니라(:憐).
이 도(道)는 인(仁)으로 그 술(術)로 삼으니, 이러한 심(心)으로 하지 않으면 되겠는가?
아아! 사람의 생(生)은 기(氣)를 위주로 하니, 기(氣)를 득(得)하면 생(生)하고 기(氣)를 실(失)하면 사(死)한다.
지(知)한 자는 인(人)의 명(命)을 알고, 지(知)하지 못하는 자는 인(人)의 병(病)만을 아느니라.
만약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안다고 하면서 쓸데없이 변급(便給: 유창한 말과 빠른 행동)만을 믿고(:資) 사람의 명(命)을 시험(:試嘗)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일개(:槪)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