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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유럽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문예의 부흥 운동이에요. 아드 폰테스 근원으로 돌아가라. 그들이 추구했던 근원은 그리스 로마의 문화입니다.
다음 세기에 또 하나의 운동이 일어났어요. 종교 개혁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원으로 돌아가라. 본질로 돌아가라. 교회의 본질은 초대교회에 있었습니다. 르네상스가 그리스 로마 문화로 돌아가서 그것을 새롭게 발전시킨 것처럼 기독교의 종교개혁은 그동안 중세교회가 잃어버렸던 교회의 본질, 초대교회가 우리에게 전해준 그 교회의 본질을 다시 되찾는 운동이었습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부흥이라고도 해요. 회복이라고도 해요.
부흥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만 부흥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본질을 되찾는 거예요. 그러면 교회는 생명을 얻게 되고 생명을 얻은 교회는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는 겁니다. 그래서 양적 부흥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초대교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2023년을 시작하면서 우리 교회가 이 초대교회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묵상하고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아드폰테스 하는 그런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교회였어요. 42절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이게 대단히 중요한 초대교회의 특징입니다. 사도들은 가르쳤고 성도들은 배웠어요. 가르치고 배우고 공부하는 교회 이것을 디다케라고도 합니다. 그들이 배운 내용은 사이 사도들의 가르침입니다. 사도들로부터 말씀의 정통성을 배웠어요. 그냥 여기저기서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직접 말씀을 듣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경험했던 사람들로부터 복음을 받는 거예요. 그래야 가장 정확한 것입니다. 그래야 엇나가지 않는 거예요.
초대교회가 배운 말씀의 내용 콘텐츠는 사도들이 전해준 메시지입니다. 그것을 교회의 사도성이라고도 해요. 여러분 미신은 열심을 다하지만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경전이 있습니까? 또는 그 사람들이 무슨 교리 공부를 합니까? 그런 게 없어요. 물 떠놓고 새벽부터 열심히 하는 거예요. 공부는 안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 공부 안 하고 열심만 내다가는 미신 행위가 되는 거예요. 배워야 합니다. 고등 종교라는 게 있어요. 고등종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교 이런 고등 종교의 특징은 경전이 있어요. 모든 고등 종교는 경전이 있고 가르침이 있고 그것을 부지런히 배운다는 거예요. 그 경전으로부터 교리가 나옵니다. 경전을 배우고 교리를 배우는 것이 고등 종교예요.
모든 고등 종교에는 이단이 있어요. 기독교만 이단이 있는 게 아니에요. 다른 종교에도 이단이 있어요. 그 이단은 뭐냐 하면 그 경전을 가지고 배우는데 약간 삐딱하게 배우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성경 이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이 복음을 담은 성경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거든요. 해석을 사도들의 시각으로 해석하지 않고 어떤 잘못된 안경을 쓰고 해석하면 그게 바로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정통을 벗어난 가르침.
여러분 신앙생활 잘하시려면 성경을 배우고 신앙을 배우고 교리를 배워야 돼요. 공부 안 하고 열심만 내면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연초가 되면 교회에서 여러 가지 신앙 강좌를 개설을 하고 여러분들을 참여시키는 겁니다.
우리 신앙이 미신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1년에 최소한 하나씩은 참여해서 여러분들이 공부를 하셔야 돼요. 공부를 하되 제대로 배운 사람한테 다시 말하면 정통성 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한테 배워야 합니다. 성경이라는 건 자칫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돼요. 똑같은 말씀을 가지고 오늘 전 세계에서 이 성경 가지고 수많은 설교자들이 설교를 하는데 설교가 다 다르잖아요. 설교가 다 달라도 그 가운데는 정통이 있고 이단이 있습니다.
정통은 어떤 사도적 메시지의 방향을 같이 하는 거예요. 이단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거예요. 그래서 똑같이 성경을 읽고 배워도 자칫하면 이단에 빠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정통교회에서 정통 신학을 한 목사, 목회자 사역자들한테 신학자들한테 성경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단이나 사이비들의 가르침은 굉장히 혹합니다. 막 너무 잘 드러맞는 것 같고 막 감동도 오고 막 너무 기가 막혀 야 어떻게 성경을 이렇게 푸나 하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는 거예요. 조금 딱딱하고 어렵고 그럴지라도 정통에게 배워야 신앙이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한 거예요.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데 그중에는 독도 있어요. 그 맛있는 음식 미식가들이 맛있는 음식 찾아내다가 건강을 해칩니다.
미식가들이 장수하지 못해요. 누가 장수하냐? 건강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입니다. 좋은 재료와 균형 있는 영양소를 가진 음식 그 음식을 골고루 정확하게 먹으면 건강해집니다.
지난해에 우리 교회 여러 강사님들이 오셔서 특별히 미국에서 여자 두 분이 오시고 한국에서 또 두 분이 오셔서 우리 연구원에서 숙박을 하시면서 지냈는데 참 재밌는 걸 발견했어요. 제가 이분들 매일 식사 대접하기 어려우니까 음식을 사다 놓고 거기서 해 드시도록 하는데 이분들이 정말 재미있게 해 드셨습니다.
그런데 이 네 분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너무 맛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뭐 굶기거나 이렇게 해서 일부러 입맛을 돋은 건 아니에요. 어떻게 그 손님들을 그렇게 하겠어요? 근데 달걀을 제가 잘 음식을 모르니까 달걀 프라이를 해야 되는데 소금이 필요하더구만요. 소금을 안 사는 거야. 그런데 그 달걀을 프라이를 해서 이 분들이 드시면서 어쩌면 이렇게 프랑스 달걀은 맛있냐는 거예요. 너무 맛있다고 소금 없어도 맛있다고 돼지고기를 삶아 드시면서도 맛있다. 또 채소도 맛있다. 근데 맛있어 수밖에 없는 게 제가 바이오를 다 사다 놨어요. 바이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미국에서 오신 분들이 빵을 못 드시는 분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빵을 먹으면 알러지가 생기는 거예요. 막 온몸이 두드러기가 생기고 근데 제가 첫날 그래도 프랑스에 오신 분들은 빵을 대접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파리에서 블렁저리에 가가지고 첫 시간에 빵 나온 거 바게트, 크로아상, 뺑오쇼콜라 뭐 이런 걸 골고루 사가지고 정말 따끈따끈한 걸 갖다 대접을 했는데 안 먹을 수가 없잖아요. 그 새벽에 목사가 사가지고 왔는데 그래서 드시기 시작했는데 참 놀란 거 며칠 지난 다음에 이분들이 계속 빵을 먹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 빵을 그렇게 드시고 나중에 일주일 동안 드셨는데 몸이 괜찮은 거예요.
재료가 미국하고 다르구나. 미국에서 혹시 오신 분들 있으면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미국에도 좋은 것들이 있겠죠. 그런데 대체적으로 프랑스는 음식 재료가 좋습니다. 우리가 프랑스에 살면서 불편한 것도 많지만 누릴 수 있는 축복 중에 하나가 음식 재료가 좋다. 여기는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끝나는 거예요. 제일 나쁜 놈이에요.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게 그죠 그래서 어디든지 바이오라고 쓴 거 그 등급을 딱 맞게 사면 대체적으로 좋은 음식입니다. 맛은 다를 수 있어요. 맛있다고 꼭 건강한 건 아니더라 이거죠.
저도 그 월남 국수를 좋아해요. 가끔씩 가서 이 몸이 으슬으슬하거나 추울 때는 먹으면 죽게 낫는 것 같아요. 기분이. 그런데 자주 가지는 않는 게 옛날에는 참 자주 갔는데 이게 먹다 보면 먹고 나면 저는 예민해서 입에서 그 미원이 느껴져요. 설에는 뭐 이렇게 막 이렇게 삽으로 넣는다는 얘기도 있는데 뭐 그렇지는 않겠죠. 그렇게 이 맛이 좋다고 해서 꼭 건강에 좋은 건 아니더라고 웰빙 음식을 찾아야 돼요. 웰빙 음식들 하여튼 프랑스는 재료가 좋다. 여기 프랑스에 있는 한식들도 그래서 요즘 이렇게 웰빙과 좋은 재료가 어우러지면서 각광을 받는 것 같아요. 어쨌든 좋은 걸 먹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바이를 먹어야 되고 전문가가 잘 요리해 준 음식을 먹어야 돼요. 그냥 당장 입에 맞다고 막 먹기 시작하면 나중에 감염이 됩니다. 이단 사설에 감염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걸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까지는 공부하셔야 돼요. 많이 공부하고 나면 딱 압니다. 이게 이건 이건 들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거기에 혹 빠져버려요. 지금은 사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적 가르침은 존재하는 거예요. 그게 2천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의 논쟁을 통해서 뭘 지켜냈냐면 사도적 정통성을 지켜낸 거예요. 그러니까 어느 날 성경 은혜 받고 성경 읽고 계룡산에 가서 오늘 나 깨달았다. 그 사람 얘기 들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한국 사람들은 그 사람 얘기 듣기를 좋아해요. 왜냐하면 너무 신기하니까 그 사람 얘기가 너무 신기하잖아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해석을 해내잖아요. 그게 문제인 겁니다. 2천년 동안 정통으로 내려온 해석을 들어야 되는 거예요. 아멘
오늘날은 유튜브 시대 유튜브를 열기만 하면 전 세계에 수많은 가르침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중에는 얼마나 썰을 잘 푸는 사람들이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들어보면 막 너무 재미있고 혹하고 그런데 그중에는 이단적 요소가 많다 이거예요. 그거 많이 들어서 별로 좋을 게 없습니다. 제일 좋은 건 내가 속한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는 게 좋아요. 그리고 너무 이제 심심해서 할 일이 없을 때 가끔 그걸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듣는 거예요.
좋은 정보도 있지만 요즘 유튜브는 사이비 찌라시 정보도 많더라. 저도 들어봐도 그런 게 많아요. 특별히 성경과 신앙에 대한 가짜들이 많아서 어느 날 그거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례돼가지고 이게 마약 같아가지고요. 그렇게 듣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면 나머지는 다 틀렸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보니까 내가 다니던 교회도 틀렸네. 목사는 저거 사기꾼이네. 자꾸 어느 극단적 메시지에 빠지게 되면 그 생각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그동안 다니던 교회가 적그리스도 같고 말이죠. 목사의 말씀은 다 거짓말 같고 나중에 보면 우리 교인 다른 동료들이 막 마귀 갖고 그런 거예요.
그렇게 보이는 거야 자꾸 세뇌가 되면 또 그렇게 가르쳐 이런 이런 유튜버들의 문제가 뭐냐 하면 팬덤을 이끌어내는 거예요. 그 팬덤은 어떻게 생기냐면 아주 자극적인 얘기를 하면 됩니다.저도 약간 내가 이 해까닥 해가지고 내가 유튜브 스타가 되겠다 스타가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유튜브를 하면 방법은 알아요. 완전 또라이 같은 소리를 계속하는 거야 막 그것만 하면 처음에는 안 듣다가 나중에 거기에 미치는 사람들이 나와요. 실제로 막 요한계시록만 한다든가 막 어떤 그 심판에 대한 얘기만 한다든가 어떤 부분을 계속 비판한다든가 그러면 거기에 만 명 2만 명 10만 명 이렇게 붙는 거라고 여기 많이 붙었네. 그거 괜찮은 것 같으네. 그러고 빠져들면 나중에 영적 생활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가르침을 들을 때는요. 자기 담당 목사님한테 문의를 하는 게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이게 해독이 잘 안 됩니다. 거기에 한 번 물들면 제 친구가 고등학교 때 신앙생활 잘하던 애가 어느 날 방학을 보내고 왔는데 이상해진 거예요. 얘기를 해보니까 이상해 똘똘한 친구예요. 지금도 어느 의대에서 선생님으로 교수로 가르치고 있어요. 근데 여호와의 증인하고 만난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을 벗어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잠깐 만난 그 만남이 그렇다는 거예요.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잘 배우셔야 돼요. 정말 여러분들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두 번째로 초대교회는 서로 교제했다.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42절 사귐이 있었다. 이거예요. 어떤 사귄이냐 아 꼬미니옹 프락테흐넬 사랑을 전제로 한 형제가 있는 사귐이 있었어요. 교회는 어떤 곳이냐 초대교회의 원형질은 뭐냐 이런 아름다운 사임이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이걸 코이노니아라고도 해요. 세상에 사귀면 빈부 격차를 나누죠끼리끼리 논다 이거예요. 귀족들이 귀족끼리 놀고 왕족들끼리 놀고 돈 있는 사람들끼리 놀고 왕따시키고 그게 세상의 사임이에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초대교회는 혁명적인 사임을 가져왔어요. 이 혁명입니다. 2천년 전에 우리가 우리가요 100년 전만 해도 양반과 상놈이 있었어요. 반상의 법도가 지엄한데 이런 말 많이 들었죠. 드라마에서 반상의 양반과 상민의 법도가 지엄에서 같이 앉아서 식탁도 같이 할 수 있어 결혼도 할 수 없는 남녀가 갈라져 있고 신분이 분명했어요. 우리 어렸을 때도요. 그런 게 있었어요. 집에 하인이 있는 집도 있고 머슴이라고 그러죠. 교회에서도 남녀가 같이 못 앉았어요. 여성을 하대 했어요. 그리고 같이 못 앉아가지고 제가 중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남자 여자가 섞여 왔는데 그것도 굉장히 교회에서 막 설렁설렁했어요. 어떻게 남자 여자가 같이 앉냐고 지금 다 같이 앉아 있잖아요.
근데 2천년 전에 초대교회가 처음 생길 때 얼마나 그런 계급이 분명한 사회였겠어요. 그런데 기독교 공동체는 사랑 사랑을 전제로 한 사귐이 있었다. 거기는 빈부가 없었어요. 부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 다 함께 형제자매가 되는 거 높은 사람 왕조 로열 패밀리와 그 당시에 노예도 교회 안에 들어오면 형제자매가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처음에 기독교가 카톨릭이 먼저 들어왔죠. 그 시락이 들어올 때 조정이 발칵 뒤집어진 이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아니 이 사람들이 서학이라는 걸 가지고 천주학을 가지고 모였는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양반하고 상놈하고 같이 모였고 남자 여자 같이 모여가지고 그것도 봐줄 수 없는데 서로 호칭을 부르는데 형제님 장모님 이러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반상의 법도 남녀가 분명하게 갈라져 있는데 어떻게 형제고 자매냐 그게 조선 사회를 뒤집어놓은 거예요.
기독교는 그래서 굉장히 처음부터 이런 혁명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요. 세상 세상의 법들을 훨씬 초월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되는 역사가 있었다. 그게 기독교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지체 높은 사람과 지체 낮은 사람이 없어요. 남녀가 따로 없어요. 이 안에서는 누구나 형제고 자매가 되는 거예요. 라코미니옹 프락테흐넬 이것을 우리가 성취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걸 보여주셨어요. 예수님은 진짜 로열 패밀리 아니에요. 하나님의 아들 그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하고 하나가 되셨어요. 심지어는 뭐라고 말씀하시냐 나는 너희들의 친구로 왔다. 너희들의 친구가 됐다. 요한복음 15장 13절 이하에 보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곧 나의 친구라. 친구로 대해주셔서 피조물을 이건요. 모든 계급을 다 깨뜨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육신이 돼서 오셨다는 자체가 우리 안에 계층이 없다는 거예요.
교회 안에 들어오면 세상에서 지체가 높은 사람은 그걸 스스로 내려놓고 겸손하게 또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임을 가지고 자긍심을 가져야 돼요. 그래서 여기서 누구나 서로 사랑하는 그런 공동체가 돼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실제로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어요. 제일 큰 사랑을 보여주신 겁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성도의 사임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떡을 뗐다 그들이 집에서 떡을 떼면 이걸 애찬이라 그래요. 옛날에는 특히 가난했을 때는 배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어요. 그래서 진정한 사귀에는 늘 나눔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눠야 돼. 초대교회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너무 많이 먹는 일이 있어가지고 나중에 그렇게 성경에 그게 이제 기록이 됩니다. 고린도서에 그러니까 남도 먹을 수 있도록 떡을 떼도 좀 골고루 다른 사람 배려하면서 사랑의 식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공동체 사임을 위해서는 이 식탁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예수님 가시는 곳마다 식탁 공동체를 하셨어요. 예배 끝나고 어디 삼삼오여 모여서 뭐라도 좀 나누고 커피라도 한잔하고 이 주일날은 주일날 예배 후에는 그 사임을 그렇게 가지시면 돼요. 어디 식당이라도 가서 오늘은 내가 좀 여유 있으니까 좀 이렇게 사서 주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이 사임을 이어갈 때 이게 예배의 연속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예배에 힘쓰는 공동체였어요. 46절과 4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지어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아멘 여기 나온 모든 명사들은 다 합치면 그게 예배입니다. 예배 안에 이게 다 있는 거예요. 초대교회는 예배에 힘썼어요. 예배가 일상이 되고 호흡이 됐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본질이에요. 그들은 예배를 너무 좋아했어요. 물론 위험이 뒤따랐어요. 그러다가 걸리면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감옥 가고 죽는 거예요. 그러나 그 예배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나중에는 카타콤에 들어가서라도 그들은 예배를 드렸어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의 본질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면 우리 마음속에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여러분 마음속에 그게 있어서 오늘 나오신 거 아니에요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혼자 예배도 있어요. 물론 개인 예배도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공동체가 모이는 거예요. 한 뜻을 나눈 한 피를 받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 된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모일 수 없을 때도 있어요. 전쟁이 일어났다든가 아니면 지금과 같은 팬데믹 또 누가 아주 심한 독감이나 코로나가 걸렸다든가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잠시 쉴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그것이 일상화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다시 그런 상황을 벗어나면 모이기를 힘써야 돼요.
모이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만 잘 드려도 교회는 부흥합니다. 모든 부흥의 시대에는 예배의 부흥이 있었어요. 막 찍었던 사람들이 다시 예배로 모이기 시작해요. 그게 세기마다 있었어요. 그 부흥의 시대 그러면 예배의 부흥이 일어나면 마음속에 또 부흥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면 그 사회가 또 새로워져 세상도 바뀌어 이게 부흥의 역사인 것입니다.
예배는 종합비타민과 같아요. 우리가 나이가 들면 종합 영양제를 좀 먹어줘야 된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저도 이제 요즘 조금씩 먹고 있습니다. 이 음식으로만 다 섭취할 수 없는 영양제 영양이 있는 거예요. 종합 영양제 여러분도 좀 드셔보시기 바라요. 내가 어느 제품 이런 거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 종합 영양제를 먹듯이 예배를 드리면 우리에게 영적 생활에 필요한 또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그 하나님의 그 공급하심이 골고루 우리에게 흘러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따질 거 없어 이게 비타민 a냐 d냐 뭐냐 따질 거 없어요. 그냥 먹어 그러면 되는 것처럼 예배를 드려요. 꾸준하게 예배를 규칙적으로 들여다 보면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함을 얻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삶에 흘러넘치는 그래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기적을 체험하는 거예요.
예배를 통해서 영혼도 힘을 얻고 마음도 힘을 얻고 우리 육체도 변화됩니다. 건강해지고 또 예배를 잘 드리고 은혜만 받고 나도 얼굴이 달라져요. 막 들어올 때는 온 세상에 짐을 다 근심을 다 짊어진 사람처럼 갈매기 몇 개. 그리고 왔던 사람도요. 예배 잘 드리고 가면 쫙 펴지면서 해같이 빛나는 인생이 된다 이거예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그래도 나는 그런 게 있냐 그러고 예배 자꾸 빼먹으면 좋을 게 없어요.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프로 프로슈케 기도한다라는 말과 기도처라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기도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모이는 장소는 다 기도의 초소가 됐습니다. 초대교회는 기도를 생명처럼 여겼어요. 그리고 그들이 기도할 때 어려운 상황이 변화됐어요. 감옥 문도 열렸어요. 절대로 변화될 것 같지 않은 사람도 변화되는 거예요. 사울도 변화돼서 바울이 되고, 저 거대한 로마도, 박해자 로마도 변화돼서 기독교 국가가 돼버렸어요.
기도의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기도로 장벽을 돌파하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기도는 초대교회의 원형질이에요. 초대교회의 정체성이 뭐냐? 기도하는 공동체 예수님께서도 말씀하기를 마태복음 21장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귀녀를 만드는 도다.
성전이 예루살렘 성전이 어떤 곳이냐 기도하는 곳이라는 거예요. 예수님의 몸인 교회 이 거룩한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의 정체성이 뭐냐 기도하는 곳입니다. 다른 거 다 있지만 기도가 빠지면 안 되는 거예요. 플로 신학교의 신학자였던 피터 와그너 박사는 한국교회를 연구하고 내린 결론, 한국 교회가 어떻게 지금도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교회고, 우리 한국 교회는요. 지금 한국교회가 어떻다 저떻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교회가 해야 될 일이 있고 한국교회에 굉장한 희망이 있어요.
한국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지금 너무나도 많아요. 근데 한국교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그 비결을 이 사람은 기도로 봤어요. 다른 세계 교회에 없는 특징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한국교회는 기도의 파워가 있다. 이 사람들은 모이면 기도한다. 언제부터 새벽부터 까물어칠 일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우리 시골에서는요. 4시에 일어나서 초종 치고 그다음에 일어나라고 종 쳐 그러고 이제 시작 좀 또 쳐요. 재종 치고 그래서 보통 4시 반 예배가 있어요. 또 2부 5시 반 예배 있고 그리고 나서 일하러 나갔어요. 그리고 나가서 일하고 와서 아침 드시고 또 이제 오전 일 나가고 그래가지고 이걸 선교사님들이 아프리카 가지고 적용을 하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이 정말 환장할 일입니다.
선교사님이 새벽 기도를 나오라고 하니까 자야 되는데 그 더운 데서 근데 놀라운 것은 아프리카를 가보면요. 새벽 기도를 하는 현지인 교회들이 생겨요. 근데 그 사람들은 영원히 살아나요 영원히 살아나고 정신이 살아나니까 그 인생이 바뀌고 세상을 바꾸는 부흥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그게 한국교회에서부터 가는 거예요. 한국교회는 모이면 기도했습니다. 부흥해 했습니다. 산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산기도가 별로 없는데 제가 신학생 때만 해도 우리 장신대 뒤에 아차산 그 아차산은 무슨 장군이 거 온달 장군의 그 산성입니다. 온달 바보 온달이라고 했는데 바보가 아니더라고요. 우리 거기 가서 금요일 저녁이면 전 서울에 있는 교회들도 올라오고 신학생들이 올라가서 기도 소리가 바글바글바글 했어요. 그게 듣기 싫으니까 밑에 있던 어느 절에서는 막 이제 화가 나가고 나중에는 불경을 틀어가지고 우리가 기도하면 이분들이 막 불경을 틀어가지고 대적하고 그랬는데 어쨌든 그 절도 부흥했을 거예요.
불교 나름대로 막 이렇게 하니까 하여튼 안 자고 그런 한국교회가 그랬어요. 우리 어렸을 때도 보면 그 모든 환경이 어려웠지만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그 거룩한 모습 굉장히 나는 그걸 보면서 어른들이 모여서 막 기도하고 부흥하고 은혜받으려고 하는 걸 보면 얼마나 그 거룩한 감동을 느꼈는지 지금은 그런 기도 소리가 점점 식어간다는 게 문제예요.
우리 교회는 작년에 이어서 금년에 기도 대행진으로 세웠어요. 개인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개인적으로 그리고 우리 열렬기도회라고 있잖아요. 카톡으로 들어와서 요즘은 거기 들어와서 거기서 읽고 기도하는 거 한 번 읽기만 해도 기도해요. 또 나는 어디 기도할 장소가 소리 내면 옆집에서 자꾸 두드린다 그러면 글로 써 글도 기도입니다. 일기 쓰듯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아멘
우리가 작년에 그 기도 제목을 놓고 오늘 그 있으니까 예배 끝난 다음에 여러분 작년 찾아가서 찾아가서 한번 보세요. 내가 글로 써 올린 기도가 얼마나 응답됐는지 세미한 음성에도 귀기울이신 하나님이셔요. 우리가 글로 남기는 것도 하나님이 들으신다. 이거 어떤 방법을 통해서 우리 기도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구역에 모여서도 기도하고 세레 모여서도 기도하고 저와 여러분이 이 험한 세상을 이기는 길은 오직 기도인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기도를 회복할 때 교회는 아드 폰테스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이제 수요 기도회는 여기 교회 사정 때문에 2월달로 연기됐지만 화요 중보기도회가 교육관에서 이번 주부터 있습니다. 많이 참여하셔서 혼자 기도가 안 되면 같이 모이면요. 거기서 기도에 불이 붙어요. 일단 붙여야 돼. 그리고 기도가 탁 터져야 돼요. 그래야 개인 기도도 할 수 있어요. 시편 118편에 보면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할까?
여러분 한 해 동안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믿고 살아가겠어요? 하나님을 믿으셔야 됩니다. 무슨 일을 만날지 몰라요.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 편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가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사람이 다윗이 수많은 어려움을 만났지만 그 어려움을 도파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이 올 때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다 이거예요. 기도했다 이거예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의 편이 돼주셨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펴봤어요. 교회에 원형질이 있습니다. 네 가지 말씀과 교재와 예배와 기도 요 4 가지의 바퀴가 잘 돌아갈 때 교회는 이 사륜 구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게 돌아가면요. 요즘 전쟁터에서 보면 탱크 장갑차들이 거침없이 달리잖아요. 조금 뭐 웅덩이 있다고 해서 그거 다 통과해서 갑니다. 이 사륜 구동 네 바퀴가 같이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 차는 보통 전륜 구동에 두 개가 끌어가잖아요.
그런데 막 네 바퀴가 돌아가면 천하무적입니다. 교회가 이 4개의 바퀴가 돌아가야 되고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이 4개의 바퀴 어려울 거 없어요. 말씀과 교재와 거룩한 교재와 그리고 예배와 기도 요것만 잘하면 놀라운 일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