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뜻의 산물(産物)임이 분명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마치 우연(偶然)한 것들처럼 여겨진다. 이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질서, 논리, 목적, 필연성 그 대부분이 하나님의 계획(計劃)에 감추어져 있고 사람의 억견(臆見)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확실한 경륜(經綸)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정해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우연(偶然)하게 보인다.
이는
운명이 세계와 사람들을 지배하여
만물을 위로 아래로 굴러가게 한다고 우리가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우둔함을 마음에서 멀리해야 한다.
오히려
이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질서, 논리, 목적, 필연성
그 대부분이 하나님의 계획(計劃)에 감추어져 있고
사람의 억견(臆見)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의 산물(産物)임이 분명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마치 우연(偶然)한 것들처럼 여겨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 사건들은 각각(各各)의 본성(本性)이 고려(考慮)될 때든지
아니면 우리의 지식과 증거에 따라 헤아려질 때든지
그것들이 취하는 모습 자체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상인이 충실한 동료들과 무리를 지어 숲으로 들어갔다가
부주의해서 그들로부터 멀어진 후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강도들의 소굴에 빠져 그들과 맞닥뜨려 목이 잘려 죽었다고 상상해 보자.
이 경우 하나님은 그 상인의 죽음을
친히 자기의 눈으로 선견(先見)하셨을 뿐만 아니라
작정(作定)을 세우셔서 그렇게 되게 하셨다.
이는
그가 각자의 삶이 얼마나 연장(延長)될 것인지를
단지 선견(先見)하셨음이 아니라
그 끝을 정(定)하시고 변동(變動)없이 하셔서
아무도 이를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욥 1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한,
그 안의 모든 것은 우연한 것들로 드러난다.
위의 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지각(知覺)하게 될 것인가?
과연 그는 이런 종류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이든
그것은 그 자체의 본성상 우연한 일이라고 간주할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攝理)가 운명(運命)을 다스려
그 목적에 이르는 길을 지도(指導)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 존 칼빈의 섭리론(攝理論)(기독교 강요 제1권 16장 9,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문병호 옮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