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관천(坐井觀天) 이 말은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는 뜻으로, 사람의 견문(見聞)이 매우 좁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번폭설로 눈이 많이 내린 가운데 신난 아이들은 눈으로 이글루를 만들었다.
그 안에서 바라본 하늘 모습이다.
과연 하늘은 이 모습이 다 일까?
우물에서 나오면 드넓은 하늘을 다 볼 수 있듯 우리의 삶을 우물 밖으로 내보내면 어떨까 싶다.
각박하다고만 느끼는 이 답답한 우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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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래: 중국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는 원도(原道)라는 글에서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따라야 할 가르침은 요임금 순임금에서 공자 맹자로 전해 내려오던 유가의 도라는 점을 강조하고, 노자의 도교와 부처의 불교를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노자가 인과 의를 하찮게 여긴 것은 인과 의를 헐뜯은 것이 아니라 그가 아는 것이 좁은 까닭이다.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하늘이 작다고 하는 것은 하늘이 작아서가 아니다. 그는 작은 은혜를 인(仁)으로 여기고 작은 지조를 의(義)라고 여겼으니 인과 의를 작게 여긴 것이 당연하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 생각거리: 장자에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사는 곳만 알기 때문이며, 여름벌레가 얼음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여름밖에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정저지와(井底之蛙)’ 고사도 있습니다. ‘1만 권의 책을 읽고 여행을 많이 다녀라’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식견을 넓혀 ‘정저지와’의 신세를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좁은 시야 안에 갇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견문을 넓히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