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는 세계 최초의 신문을 발행한 출판과 인쇄의 도시이자, 바흐와 멘델스존이 오랫동안 활동한 음악 도시다. 멘델스존은 이곳에서 백 년 전 선배인 바흐의 음악을 발굴하고 재해석하여 대중에게 각인시킨 인물로도 유명하며 그가 지휘자로 재직했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유럽 음악 명가로 만들었다. 이렇게 문화예술 유산이 풍부한 이 도시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비 내리는 라이프치히역에 내려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시내 어딘가에서 내려 우리는 점심식사할 곳을 찾아갔다. 구글은 근처 맛집으로 '알파 레스토랑'을 알려주었는데 그리스식 요리를 하는 곳이라고 해서 뭔가 지중해식이니 괜찮을 듯하다 싶어 새로운 요리 체험을 해보자 했다.
우리가 시킨 요리 하나는 감자조각, 구운가지를 곁들인 채식요리라고 되어있었고 하나는 돼지갈비로 만든 스프인데 밥이 함께 나와서 천만다행이었다. 맛은 있는데 너무 짜서 밥과 함께 먹으니 훌륭한 요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배도 고팠지만 밥이 오랜만인데다 안남미로 만든 밥이 너무 맛나서 "공기밥 하나 추가요"를 외치며 스프를 다 먹었다. 식사가 끝났는데 뭔가 후식인 듯 청량한 음료가 나와서 한 모금 마셨더니 완전 독한 술이었다! 한국에 와서 그리스요리를 검색해보니 아마도 그들이 소주처럼 마신다는 술 '우조(ouzo)'가 아닌가 싶었다. 비싼 술을 서비스로 줄 리는 없으니 말이다.
라이프치히 시내를 돌아다니다 시청사에 들어가보게 되었다. 건물이 멋져서 혹시나 하고 들어갔는데 아무런 제지 없이 1,2층을 구경할 수 있었다. 1층은 로비여서 누구나 입장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2층부터는 사무실인 것 같은데 이곳엣 라이프치히를 소개하는 거대 목판이 책 형태로 벽에 부착되어 있어서 근사했다.
로비 벽에 부착되어 있는 이 목판 책은 여러 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첫 장엔 라이프치히 귀족 가문들의 문장인 듯한 표식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뒤로 넘기면 라이프치히 시의 역사,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습들이 설명되어 있었다(고 이해했다). 나도 숲속작은책방에 이렇게 멋진 책을 만들어두고 싶었다.
성토마스교회는 라이프치히 주요 관광지인데 이곳은 바흐가 1723년부터 1750년까지 오르가니스트 및 합창단 지휘자로 근무했던 곳이다. 당시 이곳의 음악감독이 된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었는데 시의 직원과 마찬가지여서 바흐는 이곳을 마음대로 떠날 수 없었고 고용된 자로서 수많은 교회음악과 칸타타 등을 작곡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어떻게 보면 자유롭지 못한 '월급쟁이'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교회 건물은 12세기에 처음 세워졌는데 최근의 모습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며, 바흐 무덤도 애초엔 다른 곳에 있었으나 1950년 바흐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여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교회 2층에는 바흐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바흐 시대의 것은 아니고 후에 새로 설치된 것이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이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바흐와 멘델스존 얼굴이 새겨져있다. 바흐는 당연한 것이고, 멘델스존은 바흐를 새롭게 발굴해낸 장본인이라는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마스교회에서는 매주 금토요일 오후에 파이프오르간에 맞춘 합창 공연이 열린다고 해서 일부러 금요일에 라이프치히에 도착하는 일정을 짰고 그에 맞춰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리는 공연 하나도 예매해두었었다. 비는 내리고 몸은 피곤했지만 호텔에 체크인한 뒤 걸어서 20분 가량 걸리는 토마스교회에 공연을 보러 갔다.
합창공연은 간단한 미사 형식으로 진행돼 중간중간 신부님의 기도와 말씀 순서가 있었지만 한 시간을 꽉 채운 합창 공연이어서 은혜롭고 좋았다. 교회는 사람으로 가득찼고, 300년 전 바흐가 서있던, 바흐가 연주했던, 바흐가 음악을 만들고 학생들과 공연했던 바로 그 자리에 300년 뒤 내가 앉아 그 후손들이 연주하는 바흐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오래전 천재의 영혼이 아주 조금이나마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나를 어루만지는 듯한 판타지에 눈을 감고 가만히 공간과 소리를 느껴보았다.
모두가 백인 유럽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아시아 여성 둘이 등장해서일까, 공연이 끝나고 교회를 구경하고 있는데 신부님이 다가와서 오늘 공연은 어땠는지, 또 오고 싶은지 등을 물어서 완전 좋았다고 대답해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왔더니 길은 어둑한데 비는 더 많이 내리고, 우산을 갖고 오지 않은 우리는 그냥 길가에 서있는 택시를 잡아 탔다. 걸어서 20분 걸리는 거리를 택시 역시 비슷한 시간이 걸려서 숙소까지 왔고 그 짧은 시간 동안 20유로의 비싼 교통비를 지불한 우리....독일에서 기차, 버스, 트램, 지하철, 유람선에 이어 벤츠 택시까지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은 다 타보았으니 좋은 체험이었다면 애써 쓰린 속을 달랜다.
게반트하우스와 나란히 있는 라이프치히대학교는 그 파격적인 건축형태에 놀랐다. 독일에서 다섯번째로 오래된 유서깊은 대학인데 전쟁으로 대학 건물의 60% 이상이 파괴되고 도서관 장서 70%이상이 손실되었다고 한다. 동독 시절, 유서깊은 캠퍼스 교회인 파울리교회를 파괴하고 칼 마르크스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통일 후 다시 라이프치히대학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때 공산주의에 의해 파괴된 옛 파울리 교회의 모습을 재현한 현대식 건축으로 설계가 이루어졌고 2017년 완공한 건물이다. 이 건축물 이름을 파울리눔(Paulinum)이라고 한다. 시선을 압도하는 건축물이었고 바로 옆에 있는 게반트하우스와 더불어 이 거리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게반트하우스는 1781년 라이프치히 양복조합 소속 상인들이 300년된 무기고를 사들여 만든 콘서트홀이다. 16명의 악사를 고용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공연장 규모가 좁아지자 계속 확장을 거듭했고 1943년에 연합군 공습으로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게반트하우스는 1981년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대공연장은 베를린필을 본때 빈야드식으로(카라얀이 제안한 것으로 포도알 형태의 모양을 하고 있는 공연장인데 우리나라 롯데콘서트홀이 이 방식으로 지어졌다)지어졌다고 한다. 파이프오르간을 비롯해 공연장 자체가 매우 아름답고 손꼽히는 음향으로 유명한데 우리가 방문할 주말에는 공연이 없어서 이곳에서 공연을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작년에도 이곳에서 협연했던 조성진은 올 가을에도 공연 일정이 예정되어 있는 걸 프로그램북을 보고 알게 되었다. 얼마나 멋진 광경일까....다시 와서 그 공연에 함께하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인다(한국에서도 티켓팅이 불가한데 말이다).
내가 예매한 공연은 500석 규모의 소공연장인 멘델스존홀. 이곳에선 실내악과 합창 공연은 물론 시낭송회, 심포지엄 지역주민을 위한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린다. 여기서 실내악단의 공연을 보았다. 좌석은 가득찼는데 90% 이상이 머리 하얀 장노년층 지역 주민들. 특이하게도 '해설이 있는 음악회'였는데 아마도 19세기 살롱문화에 대한 내용이었을지(알 수 없지만) 스크린을 통해 당시 그림과 사진, 신문기사 등을 보며 당시 사회 문화 풍속도 이야기를 곁들이며 관련된 곡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웃을 때 진심 같이 웃고 싶었던 독일어 문맹자의 슬픔.....
인터미션 시간에 모두가 나와 로비에서 와인 한 잔씩 마시고 오랜만에 만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들. 한편으론 이렇게 고급한 지역문화를 일상으로 누리는 그들이 부러웠고, 이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모두 장노년층인 걸 보며 유럽의 클래식 관객은 늙어가고 있다는 연주자들의 말을 실감했고(상대적으로 한국의 클래식 관객은 젊다고 한다), 어쩜 한결같이 유색인종을 찾아볼 수 없는 백인들만의 현장인 것에 조금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음향이 어찌나 좋은지 우리나라의 공연장 현실을 다시 생각해본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무조건 문화예술센터를 거대한 규모로 짓기만 할 뿐, 정작 음향의 질은 형편없고, 공연이 없어 늘 비워놓기 일쑤로 운영할 게 아니라 이렇게 섬세하게 음향에 공들인 소규모 공연장들을 많이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지방의 그런 공연장에 거장들이 자주 공연하러 와주면 참 좋겠다 싶었다.
라이프치히에서의 문화예술 여행, 아주 그 잠깐을 맛보기로 경험한 후 저녁 기차를 타고 나는 바이마르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