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밧#성전산#성전
성전산(Temple Mount) 이란?
예루살렘의 유서 깊은 구시가지 동쪽에 위치한 성전산은 한때 두 성전이 있던 곳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수천 년 동안 유대인들은 산의 서쪽 측면을 지탱하는 벽("서쪽 벽")에 모여 기도해 왔습니다.
성전산은 입구입니다. 지상과 하늘을 구분하는 베일이 가장 반투명한 곳입니다. 우리의 현자들은 그것이 모든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문이라고 말합니다. (창 28:17)
성전산의 기원
성전산의 거룩함은 인류의 창조와 함께 시작됩니다. 전통에 따르면,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흙으로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창 2:7) 따라서 이곳의 신성함은 존재의 첫 번째 주부터 흙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2천 년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곳으로 보내어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내가 네게 말하는 그 산"에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산은 어떤 산이었습니까? 성전산이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에서는 그곳을 모리아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창 22:2)
성전산의 위엄을 진정으로 표현한 첫 번째 사람은 야아콥 이었습니다. 그는 하란으로 가는 여정에서 모리아 산에 하룻밤을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천사들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사다리를 꿈꿨습니다. 그는 깨어났을 때 자신이 어디에서 잤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곳은 하늘로 가는 관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창 28:17)
다뷛 왕과 성전산
그리고 700년 후, 다뷛 왕 때 성전산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습니다.
다빋 왕은 6년 동안 헤브론에 기반을 둔 유다 왕국만을 통치했습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나머지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6년간의 경쟁 끝에 이스보셋을 지지하던 아브넬은 편을 바꿔 다뷛이 온 땅을 통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의 소원은 곧 이스보셋이 죽은 후 다뷛 왕이 왕국을 재통일하면서 실현되었습니다.
분열된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다뷛은 그의 궁전을 더 중심적인 도시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유다 와 베냐민 지역의 경계에 있는 예루살렘을 선택했습니다.
전염병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다뷛 왕은 미래의 성전산이라 불릴, 예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천사를 만났습니다. (역대상 21:15)
천사는 그에게 그 장소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했습니다.
다윗 왕은 오르난에서 금 600셰켈을 주고 타작마당을 샀습니다. (역대상 21:25)
그는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고, 곧이어 재앙이 그쳤습니다. (사무엘하 24)
다윗은 그 제단의 위치를 미래의 성전 위치로 지정했습니다. (역대상 22:1)
성전들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이 첫 번째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 후 410년 동안 성전산을 장식했습니다. 이 산은 이스라엘의 영적, 정치적, 사회적 삶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순례자들이 매년 세 번씩 모이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속죄와 감사를 위해 제물을 바치고, 절기를 축하하기 위해 그곳에 모였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최고 법원이 백성에게 토라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410년 후, 바빌로니아인들이 와서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70년 동안 성전산은 폐허로 남았습니다. 에즈라가 이끄는 귀향자들이 바빌로니아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때까지 황폐한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에즈라가 이끄는 가난한 무리는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성전을 아름다운 건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성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수 세기에 걸쳐 성전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갔습니다. (에스라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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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헤롯이 성전과 성전산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헤롯은 당시 세기 최대의 건설 프로젝트 중 하나로 엄청난 양의 흙을 운반하고 옹벽을 쌓고 성전산을 완전히 개조했습니다. 그는 원래 자연산이었던 성전산의 면적을 두 배로 늘려 500세제곱미터의 거대한 광장으로 만들었습니다. (Josephus Wars of the Jews 1:21. /Middot 2:1.)
재건된 성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로마 제국의 손에 의해 제2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거의 100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가장 크고 웅장했습니다. 거대한 광장을 지탱하고 있는 옹벽의 한 부분은 성전이 파괴된 후에도 남아 나중에 서쪽 벽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름들
나중에 성전이 들어설 성전산은 원래 모리아 산이라고 불렸습니다. 토라에 나오는 모든 이름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미래를 가리켰습니다. 모리아는 유대인 고등법원인 산헤드린이 성전산에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호라'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Genesis Rabbah 55:7) 한편 일부 현자는 모리아는 성전에서 매일 바치는 향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몰약(모르)에서 유래했다고 말합니다. (Rashi to Genesis 22:2.)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은 후, 이 산의 이름을 "하느님이 보일 것이다"라는 뜻의 ’아도나이 이르에‘로 바꾸었는데, 이는 장차 하나님이 그곳에서 그분의 신성한 임재를 쉬게 하실 것임을 암시합니다. (창 22:16)
조상의 전통을 이어받아 야아콥도 환상을 체험한 후 그 장소의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가 지은 이름인 벹엘, 즉 "하나님의 집", 미래의 성전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습니다. (창 28:19)
신성함
다윗이 이 산을 미래의 성전 부지로 지정한 순간, 이 산은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 거룩함은 성전이 더 이상 서 있지 않은 지금도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Maimonides, Hilchot Beit Habechirah 6:14; Mishnah Berurah 561:5.)
그 거룩함에는 특정한 예절이 요구됩니다. 지팡이, 돈주머니, 먼지가 뭍은 발로 성전산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전산을 지름길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침을 뱉어서도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불결한 상태에서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붉은 암소가 없으므로 우리는 모두 불결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우리를 위해 붉은 암소를 준비해 주실 마쉬아흐가 오실 때까지 우리는 모두 성전산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Mishnah, Berachot 9:5.)
자료: Rabbi Mendel Adelman / Chabad.org
그림: Sefra Lightstone
글: <월간샤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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