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우수치성 태을도인 도훈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두 죽음에 대하여"
2017년 2월 18일 (음력 1월 22일)
얼마전 케이블 티비에서 방영한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고려시대, 왕에게 충성을 다하던 무신(武臣)이 역적으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후 신(神)에 의해 불멸의 도깨비가 되고, 왕과 왕비가 된 무신의 여동생과 왕을 업고 권력을 휘두르려던 간신이 저승사자와 환생과 이생을 배회하는 망자의 인연으로 현세에서 얽히는데, 도깨비의 불멸을 끝내게 해줄 도깨비신부까지 등장해 이야기가 꽤나 흥미진진했습니다. 도깨비라는 드라마 소재도 발상이 신선했지만, 삶과 죽음, 윤회 같은 우리가 생각해볼 것들이 드라마에 제법 많이 들어가 있어 보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저승사자, 삼신할머니, 신(神, 모든 상황을 관장하는 주재자), 이생을 배회하는 귀신들에 대한 작가의 해석도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중 제가 오늘 도훈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저승사자와 여주인공인 도깨비신부가 선택한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저승사자에 관한 얘기입니다. 드라마 상에서 저승사자라는 직업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벌로 주어집니다. 그 죄는 다름 아닌 ‘자살’이고요,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은 것에 대한 벌로 주어진 것이 저승사자 역할인 겁니다. 고려의 왕이었던 왕여의 경우(참고로 이 드라마에 나오는 저승사자는 설정상 자신의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저 전생에 큰 죄를 지어 저승사자가 되었다는 것만 알지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벌로 지옥에서 육백 년간 보내고 나서 저승사자가 되어 삼백 년째 일해오는 중입니다. 그런데 드라마에 나오는 저승사자는 인간과 똑같이 먹고 입고 집을 구해서 살아야 합니다. 드라마 후반부, 자신의 전생을 알게 된 왕여는 전생에 간신의 지시로 자신에게 독이 든 탕약을 바쳤고 자신의 자살 이후 이를 괴로워해 역시 자살을 선택했던 궁녀 출신의 후배 저승사자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전생을 알고 괴로워하고 있는 걸 눈치채고, 자신들이 그렇게 여느 인간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저승사자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생을 다시 살면서 사람들의 다양한 죽음을 지켜보며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라는 신의 뜻이니, 이미 자살의 죄값을 치르고서 저승사자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그 뜻을 깨달으면 되지, 전생의 일로 자신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다음, 여주인공인 도깨비신부의 죽음에 관한 건데요. 우여곡절 끝에 불멸의 생을 마감한 도깨비는 도깨비신부에 대한 사랑으로 무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기억이 깨끗이 지워진 도깨비신부가 자기를 소환해줄 기적을 기다리며 미지의 공간 황야를 헤맵니다. 9년의 시간이 흘러, 잊어버린 기억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가슴앓이로 힘들어하던 도깨비신부의 소환으로 도깨비는 이생에 돌아오게 되고 도깨비와의 기억을 다 잊었던 도깨비신부가 가까스로 잊었던 기억을 회복하면서 결국 둘은 결혼을 합니다. 결혼 다음날, 도깨비신부는 차를 몰고 퇴근하던 길 도중에 비탈진 도로 앞에서 우회전 신호를 기다리게 되는데, 도깨비신부 왼쪽의 비탈진 도로 윗길에 세워져있던 화물트럭이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내려오고, 비탈길의 중간지점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도깨비신부는 때마침 우회전신호를 받고 차를 전진시키다 화물트럭에 받혀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사고는 피할 수도 있었지요. 우회전신호를 기다리던 도깨비신부는 운전자 없는 화물트럭이 가속을 받아 내려오는 걸 보고, 상황을 순간적으로 파악했거든요. 하지만 우회전 방향에 아이들이 내리고 타는 승합차량이 있는 걸 보며 순간적으로 갈등을 합니다. 자기가 우회전을 하면 화물트럭이 자기차를 받을 것이고, 자기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화물트럭은 그대로 내달려 승합차를 덮치고 아이들이 죽을 것입니다.
저승사자 왕여는 아이들의 명부를 받아 근처에서 대기 중이다가, 차를 몰고 오던 도깨비신부가 저승사자를 발견하고 인사하며 지나간 직후 아이들 명부가 갑자기 취소되자, 사태를 예감합니다. 갈등의 순간이 찰나에 지나가고, 도깨비신부는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도 용감하게 차를 몰고 나가 가속이 붙어 질주해 내려오는 화물트럭을 자기차로 받아내고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기는 죽습니다. 도깨비신부도 저승사자인 왕여와 같은,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는 선택을 한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도깨비신부의 선택을 '자살'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희생’이란 말을 쓰지요. 이렇게 자기 생명을 던져서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우리는 ‘살신성인’이라 하고 생명사랑의 극치로 봅니다. 고귀한 선택인 것이지요. 똑같이 자기 생명을 끊는 거였는데, 하나는 자살 하나는 희생이라는 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고, 천지는 자살에 대해서는 지옥의 벌과 저승사자로서의 역할을 맡겨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희생에 대해서는 살신성인이라 하여, 가장 큰 생명사랑을 실천한 것으로 대우합니다. (드라마에서 도깨비신부는 다시 환생해서 이번에는 자기가 찾아갈 테니, 도깨비에게 기다려달라고 얘기합니다. 이 부탁을 신은 당연히 들어주었고요.)
아주 예전에 읽어서 제목은 잊어버렸는데, 에리히 케스트너의 소설로 기억합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남자는 길을 가다 다리밑 강물에 빠진 소년을 발견합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허우적거리는 소년을 보고 이 남자주인공은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켓을 벗고 다리 밑으로 뛰어내립니다. 그런데 이 남자주인공은 정작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을 구해보지도 못하고 물에 빠져 죽습니다. 그 소년은 강가로 헤엄쳐 나와 무사히 목숨을 구합니다. 소설을 읽던 당시 저는 그 소설의 결말이 너무도 허망하다, 참 무의미한 죽음이다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그 주인공의 선택의 의미를 더 챙겨야 되는 거구나 하는 것을 도깨비신부의 죽음을 보며 새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도 "시장이나 집회중에 갈 지라도 '저 사람들이 나를 믿으면 살고 잘되련만' 하는 생각을 두면, 그 사람들은 모를 지라도 덕은 너희들에게 있으리라." (대순전경 p314)고 말씀하셨고요. 마음을 내는 게 중요하고 행동에 옮기는 게 중요한 것이지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사랑을 합니다. 생명보존을 위해서 참으로 힘겹게들 노력합니다.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 속에서 펭귄의 천국이라고 하는 어떤 섬에 터잡고 사는 거대한 펭귄 집단의 생활을 방영해주는 걸 후반부쯤에서 우연히 봤는데, 새끼를 키우기 위해 엄마와 아빠 펭귄이 서로 번갈아가며 거센 파도가 치는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어 며칠씩 걸려 먹이를 구해와 새끼를 먹이며 키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다로 나가는 통로인 해안가 바위들은 펭귄들에게 절벽에 가까운데다가 파도가 어찌나 거세게 부딪치던지, 보기만 해도 섬찟할 정도로 내려가기도 오르기도 험난해보여서, 저 펭귄들이 무사히 바다로 갔다 무사히 뭍으로 올라올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는데, 그 거센 파도를 무릅쓰고 내려갔다 먹이를 구해서는 다시 올라오더라고요.
이렇듯 식물도 동물도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지극정성을 다하지만, 내 생명의 이어짐과 상관이 없는 존재, 즉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지는 않습니다. 유일하게 사람만이 자기와 직접 상관이 없는 존재를 위해서 희생을 선택하지요. 그래서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고, 다른 존재들과 구분되는 신성(神性)을 가진다고 얘기합니다.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이 신성은, 사람을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의타적 사랑을 행하게 합니다.
저희 태을도에서는 사람의 신성이 ‘시천 태을’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태을과 시천에서 생명사랑이 나오고 양심이라고 하는 보편적 이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태을에서 비롯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태을도에서 원래 인간은 시천주 봉태을의 태을도인이었다고 얘기하는 것이지요.
지금은 선천 상극말이자 후천상생의 시작점인 후천개벽기입니다. 분열 투쟁의 극치이며, 또한 진리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나려고 준비하는 때입니다. 선천 오만 년 동안 인류가 찾고 그리워해온 진리의 실체가 ‘태을’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 증산이 인간으로 오셔서 그 진리의 실체인 태을을 드러내고 진리의 세상인 후천으로 넘어갈 수 있는 법방 태을주와 그리고 대인, 즉 후천인간인 태을도인이 되는 공부방법을 일러주셧습니다.
그 증산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천하의 독도 천하의 선도 다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이라면 선만 가지고 계셔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독도 가지고 계신 걸까요? 이 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통섭하는 분이기에 그러합니다. 독도 내시고, 선도 내시는 거지요. 선천 상극지리도 진리이고, 후천 상생지리도 진리입니다. 선천 상극지리는 후천 상생지리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꼭 필요한 것이지요. 선천 상극지리도 통섭하시고 후천 상생지리도 통섭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은 천하의 가장 극명한 독으로부터 가장 극명한 선까지 다 아울러 가지고서 섭리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과 같은 신성을 부여받은 인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천하의 극악한 독도 선택할 수 있고, 천하의 가장 극선인 살신성인의 생명사랑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선도 악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우리가 이타적인 생명사랑을 선택했을 때, 그 사랑은 진정한 진리의 사랑으로 꽃피울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오로지 나의 선한 의지로 이루어낸 생명사랑이 가장 완벽한 생명사랑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진정한 생명사랑을 통해 완전한 인간으로 결실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지요.
증산이 이렇게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태을의 존재를 알려주시고 태을주를 주셨습니다. 지금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선천 상극말이면서 후천상생의 시작인 후천개벽기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할 일은 태을도를 만나 태을주를 읽어서 태을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태을은 인류의 생명과 영혼이 비롯된 곳이면서, 지금의 내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태을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닦아서 태을과 연결된 통로를 열어야 합니다. 고수부님이 말씀하신 ‘심심지문’인 것이지요. 이 마음문을 열어서 천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는데, 민심이 천심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독기와 살기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심은 오직 생명사랑, 용서로 가득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천지부모님이 온 인류의 영혼의 고향인 태을궁에서 저희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태을도를 만나 마음 닦고 태을주를 읽어서 시천주 봉태을의 태을도인이 되어, 지심대도술의 진리세상인 후천 태을세상을 함께 열어가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이상으로 우수치성 태을도인 도훈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