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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증거, 법도, 율례, 계명, 판단, 규례, 길, 주의 도(증거의 도), 말씀
이 열 개의 단어가 176절 안에 번갈아가면서 자꾸 사용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각각 완전히 다른 법을 의미하는 것인지 오늘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성경 다른 곳에서 이와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된 단어로는 '율법', '법률', '법령', '말' 등이 있습니다. 이 네 단어는 성경 다른 책에는 존재하지만 정작 시편 119편 우리말 번역에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시편 119편에 등장하는 열 개의 단어와 이 네 단어를 합치면 총 14개의 단어들이 도출됩니다. 이 14개의 어휘들은 모두 '율법'이라는 동일한 구속사적 개념을 가리키지만, 각 단어가 지닌 원래의 어원적 의미가 있으므로 율법이 가진 다채로운 측면과 기능들을 풍부하게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단어들을 완전히 서로 다른 종류의 법으로 쪼개어 보기는 어렵고, 하나의 법이 지닌 다양한 차원과 측면을 강조하는 유의어들로 보아야 합니다.
이제 이 14개 단어들의 구체적인 원어와 의미를 하나씩 고루고루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율법의 기본적 동의어들과 원어의 의미
첫째, 가장 흔히 쓰이는 단어인 '율법(Law)'입니다.
율법은 히브리어로 '토라(Torah)'이고, 헬라어로는 '노모스(Nomos)'입니다. 구약성경 원문에 토라라는 단어는 총 220회 사용되었습니다. 대단히 높은 빈도로 사용되죠. 이 토라라는 단어가 가진 어원적 본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딱딱한 법조문이라기보다는 '지시', '교훈', '가르침'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토라(Torah)는 '지시하다', '가르치다', '과녁을 겨누어 화살을 쏘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동사 '야라(Yarah)'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사 야라에 명사형 접두어가 붙어 토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토라의 일차적인 어원적 뜻은 '지시된 사항', '가르쳐진 교훈'입니다. 이 지시와 가르침이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와 백성에게 선포되었기에, 하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을 살려 율법 혹은 법률로 번역하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 토라를 기원전 3세기경 헬라어로 번역된 고대 성경인 70인역(LXX) 번역자들은 헬라어 '노모스(Nomos)'로 번역했습니다. 노모스는 법률을 뜻하는 헬라어입니다. 70인역 번역자들이 토라를 하나님이 지시하신 절대 규칙으로 보아 노모스로 일관되게 번역하면서, 그때부터 토라의 의미가 '법(Law)'이라는 개념으로 강하게 고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사용된 문맥에 따라 율법이라는 딱딱한 말 대신 본래의 의미를 살려 "하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지시 사항"으로 이해하면 성경 문장의 본뜻이 훨씬 더 깊고 부드럽게 잘 이해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의 첫 다섯 책인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자체를 통틀어 '토라'라고 부릅니다. 헬라어 노모스 개념을 대입하면 법률서(법서)가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모든 기록이 다 지켜야 할 법조문으로만 짜인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는 천지창조의 웅장한 기사가 나오고 그 외에도 아브라함과 요셉의 위대한 역사 이야기가 흐르는데, 그것이 법조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모세오경을 토라라고 부를 때의 본질은, 이 다섯 책이 단순한 법률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풀어주신 '위대한 구원의 가르침이자 지서'라는 뜻입니다. 원어 야라의 의미를 살려 그렇게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마땅합니다.
둘째, '법률(Statute)'이라는 단어입니다.
법률은 율법과 글자 순서를 앞뒤로 바꾼 단어입니다. 우리말 개역한글판에는 6회, 개역개정판에는 5회 사용되었습니다. 성경 원문을 대조해 보면 이 중 두 번은 앞서 배운 '토라'를 법률로 번역한 것이고, 민수기와 신명기에 나오는 구절은 히브리어 '후카(Chuqqah)'를 법률로 옮긴 것입니다. 또한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서에 나오는 나머지 구절들은 페르시아어 및 아람어 어원인 '다트(Dath)'라는 단어를 법률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사실 우리말에서 법률이나 율법이나 글자 조합만 바꾼 쌍둥이 단어입니다. 우리말에는 이처럼 '내왕(來往)'과 '왕래(往來)'처럼 순서만 바꾸어 똑같은 뜻을 나타내는 표현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적 관습과 문화 속에서 성경의 법은 주로 '율법'이라 부르고, 일반 국가나 세상의 법은 주로 '법률'이라고 구별하여 사용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을 공부해 법관이 되기 위해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법학과'나 '법과대학'에 간다고 하지, '율법학과'에 간다고 하진 않으며 그들이 배우는 법을 법률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성경에 기록된 모세의 법은 거의 예외 없이 율법이라고 부릅니다. 언어적 관습이 그렇게 정착되어 있을 뿐이며, 영어 성경에서는 이 두 단어를 구별 없이 모두 'Law(로)'라는 한 단어로 번역합니다. 원어 역시 토라와 노모스이므로 본질적인 의미 차이는 없습니다.
셋째, 그냥 '법(Law)'이라는 한 글자 단어입니다.
율법과 법률에서 공통되는 핵심 글자 하나를 취해 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는 역시 '토라'이고 헬라어는 역시 '노모스'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법률, 법 세 단어는 신학적으로 전혀 구별할 수 없는 동일한 어휘입니다. 개역한글판 성경에 법이라는 단어는 총 116회 등장하는데,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에서만 이 법이라는 표현이 무려 75번이나 집중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이 변증을 수행할 때 문장을 간결하고 강력하게 전개하기 위하여 율법이라는 단어 대신 '법'이라는 축약 형태를 즐겨 사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법은 곧 율법을 뜻합니다.
넷째, '법도(Precepts)'라는 어휘입니다.
법도 역시 법의 한 형태를 나타내는 우리말입니다. 성경 원문에서 이 법도로 번역된 핵심 히브리어는 '미쉬파트(Mishpat)'이며, 시편 119편 등 일부 문맥에서는 '피쿠딤(Piqudim)'이라는 단어가 법도로 번역되었습니다.
특히 '미쉬파트'는 구약성경에 무려 424회나 사용된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 빈도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 번역가들이 이 미쉬파트라는 단어 하나를 문맥에 따라 법도, 공도, 공의, 율례, 판결, 규례, 재판, 공평, 심판, 판단 등 무려 열 가지가 넘는 서로 다른 단어로 다양하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한 단어가 이처럼 다채롭게 번역된 이유는, 번역가들이 그 문맥의 흐름 속에서 가장 적합하고 자연스럽다고 판단한 우리말 어휘들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미쉬파트가 가진 넓은 신학적 지평을 보여줍니다.
또한 '피쿠딤(Piqudim)'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오직 시편에만 명확하게 등장하는 특수 어휘입니다. 총 24회 사용되었는데, 그중 21번이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인 시편 119편 한 장에서만 집중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시편 119편 기자가 율법의 다채로움을 노래하기 위해 이 피쿠딤이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채택한 것입니다. 영어 성경 번역본들은 이 피쿠딤을 주로 'statutes(법령)', 'precepts(법칙/규칙)', 혹은 'commandments(교훈/훈시)'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원어 하나가 이렇듯 넓은 의미적 범위를 머금고 있기에 한 단어로만 정의 내리기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다섯째, '율례(Statutes)'라는 단어입니다.
율례 역시 법을 가리키는 고유한 성서적 표현입니다. 율례의 히브리어 원어는 '호크(Choq)' 혹은 여성형인 '후카'입니다. 구약성경에 총 129회 사용된 율례(호크) 역시 우리말 성경에서 문맥에 따라 율례 외에도 법, 법도, 규례, 명령 등으로 다채롭게 번역되었습니다.
심지어 구약 제사 제도 속에서 제사장 가문에게 법적으로 규정되어 배당된 몫의 음식을 가리키는 '응식(應食)' 혹은 '지정된 몫'을 뜻할 때도 이 호크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문장의 상황에 따라 가장 알맞게 뜻을 살려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살펴볼 '규례'와 이 '율례'는 원어상으로 거의 완벽한 동의어 관계이며, 성경 문맥 속에서 두 단어를 기계적이고 엄격하게 칼로 자르듯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다수의 영어 성경은 이 호크를 'statutes(법령/법칙)'라는 단어로 통일성 있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여섯째, '법령(Decree)'이라는 단어입니다.
법과 명령이 결합한 한자어입니다. 이에 대응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헤케크(Cheqeq)'라는 단어입니다. 성경 사사기 문맥에서는 사색이나 결심으로 번역되기도 했으나, 선지서에서는 법령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말 개역한글판 성경 전체에서 이 법령이라는 단어는 오직 단 한 번, 이사야 10장 1절("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에만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일상 사회생활 속에서는 대통령의 법령이라든지 국회의 법령이라는 말을 대단히 자주 사용하지만, 성경 안에서는 이사야서에 딱 한 번만 등장하는 특수 어휘입니다.
일곱째,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친숙하게 접하는 '계명(Commandment)'이라는 단어입니다.
계명에 대응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미츠바(Mitzvah)'이고, 헬라어 원어는 '엔톨레(Entole)'입니다. 계명은 구약에 76개 구절, 신약에 52개 구절 등 성경 전반에 걸쳐 대단히 높은 빈도로 선포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미츠바'는 구약성경에 총 181회 사용되었는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계명 외에도 문맥에 따라 명령, 명, 금령(금지하는 명령)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권위자가 내린 칙령과 명령을 뜻합니다. 신약의 헬라어 '엔톨레' 역시 매우 보편적인 단어로서 신약성경 안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계명'이라는 단어로 통일되어 번역되었습니다. 영어로는 'commandment' 즉 하나님의 엄숙한 법적 명령 일체를 뜻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도덕법의 핵심인 십계명을 가리킬 때 영어로는 'The Ten Commandments'라고 하거나, 열 개의 말씀이라는 뜻의 헬라어 어원을 따라 '데칼로그(Decalogue)'라는 전문 신학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계명은 법의 명령적 속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어휘입니다.
여덟째, '길'을 뜻하는 '도(Way)' 혹은 '주의 도'라는 표현입니다.
길 도(道) 자를 쓰는 이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는 '데레크(Derek)'입니다. 데레크의 일차적인 본래 의미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실제 '길(Way)'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대부분 길로 번역되고 여행길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영적인 은유로 사용될 때는 인간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행동의 방향이나 영적인 규범을 뜻하는 '행위' 혹은 '도리'와 '도'로 깊게 번역됩니다. 우리가 동양 사상에서도 도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흙길이 아니라 인생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올바른 진리의 길을 뜻하듯이, 히브리어 데레크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의 법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야 할 '바른 행동 지침과 삶의 도리'를 가리키는 율법의 위대한 동의어입니다.
2. 시편 119편 속의 특수 동의어들
아홉째, '판단(Judgments)'이라는 어휘입니다.
시편 119편 기자가 율법을 드높이기 위해 사용한 또 하나의 단어입니다. 우리말 판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앞서 네 번째 단어에서 공부했던 '미쉬파트(Mishpat)'입니다. 시편 119편 7절("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 등에서 이 미쉬파트를 판단이라고 명시하여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판단이란 인간의 사소한 사견을 뜻하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르는 공의로운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법' 자체를 가리킵니다. 앞서 4번 법도 항목에서 보았듯이 미쉬파트는 구약에 424회나 쓰이며 공도, 공의, 판결, 재판, 규례 등 다양한 단어로 번역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판단입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 안에서 동일한 원어 미쉬파트를 어떤 절(7절)에서는 '판단'으로 번역해 놓고, 다른 절(13절, 20절 등)에서는 뒤이어 배울 '규례'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원어 단어가 완벽히 같음에도 불구하고 한 장 안에서 우리말 단어를 판단과 규례로 일관성 없이 섞어서 번역한 것은 일관성(통일성)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입니다. 특별히 신학적 의미 차이가 있어서 다르게 번역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어 성경들은 이 미쉬파트를 문맥에 따라 대개 'judgments(판결)' 혹은 'decrees(법령)'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본질적으로 법도와 판단은 원어가 미쉬파트로 똑같은 개념입니다.
열 번째, '규례(Ordinances)'라는 단어입니다.
앞서 율례와 규례는 서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쌍둥이 동의어라고 말씀드렸죠. 우리말 성경에서 규례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호크(율례)'이기도 하고, 방금 배운 '미쉬파트(판단)'이기도 합니다. 미쉬파트라는 단어 하나가 열 가지 다른 단어로 옮겨질 때 그중 핵심 단어가 바로 규례였습니다.
개역한글판 성경에 규례라는 단어는 총 197회나 등장하는데 그 원어는 문맥마다 복합적입니다. 신명기 등에 나오는 대부분의 규례는 '호크'의 번역이지만, 시편 119편(13절, 20절, 30절, 39절 등)에 나오는 모든 규례는 놀랍게도 전부 '미쉬파트'입니다. 똑같은 미쉬파트라는 원어를 7절에서는 판단으로 번역하고 13절에서는 규례로 번역해 놓았으니, 원어의 일관성을 추적하기는 참 난감한 일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대개 'ordinances(규례)' 혹은 'judgments'로 옮겼습니다. 결론적으로 율례와 규례는 하나님의 법을 총칭하는 융합된 표현입니다.
열한 번째, '증거(Testimonies)'라는 단어입니다.
증거에 대응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에두트( 'Eduth)' 혹은 '에다'입니다. 에두트의 일반적인 본래 의미는 법정 등에서 사실을 확증하는 '증거(Testimony)'나 '증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 문맥에 사용될 때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과 뜻을 인류 앞에 공식적으로 선포하여 입증해 놓은 '법적 증거물'이라는 뜻이 되어 법도, 율법, 전례, 혹은 나를 타이르시는 '경계의 말씀' 등으로 깊게 번역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분의 통치 기준을 확실하게 입증해 주는 거룩한 법적 증거물이 곧 율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열두 번째, '증거의 도(The way of testimonies)'라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앞서 배운 '증거(에두트)'와 '도(데레크 / 길)'라는 두 단어를 한데 묶어 결합한 표현입니다. 시편 119편 14절("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에 단 한 번 등장하는 특수한 수사적 표현입니다. 영어로는 'the way of thy testimonies' 즉 하나님의 법적 증거들이 지시하는 진리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법의 증거적 속성과 길의 실천적 속성을 이중으로 결합하여 율법의 위대함을 한층 더 강력하게 강조하여 찬양한 시적 동의어입니다.
열세 번째, '말씀(Word)'이라는 단어입니다.
말씀에 대응하는 가장 보편적인 히브리어는 '다바르(Dabar)'이고, 시편 119편 11절("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나이다") 등에서는 '이므라(Imrah)'라는 단어가 말씀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다바르'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단어(Word)나 사건을 뜻하는 가장 널리 쓰이는 일반 명사입니다. 인간이 사소하게 내뱉는 말도 다바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평범한 단어인 다바르의 주어가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 되실 때에는 그 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시는 입의 말씀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피조물이 엄숙히 순종해야 할 '법적 구속력을 지닌 최고의 율법이자 명령'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권자가 법을 공포할 때 말로 공포하듯이, 하나님의 말씀(다바르)은 곧 성도가 지켜야 할 가장 엄위한 규칙이자 법도이며 율법 그 자체입니다. 평범한 단어가 하나님의 권위와 만날 때 최고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열네 번째, 그냥 '말(Word)'이라는 단어입니다.
말씀의 낮춤말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 자체를 가리키는 대변적 표현입니다. 말씀 이외에 우리말 성경에서 '말'로 번역된 대표적인 히브리어는 목소리나 소리(Voice)를 뜻하는 '콜(Qol)'입니다. 영어로는 'Voice'에 해당합니다.
이 단어가 법의 개념으로 장엄하게 모여 쓰인 구절이 바로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던 창세기 26장 5절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콜)에 아브라함이 철저히 순종했다는 선언입니다. 이 구절에서 '내 말'이라는 포괄적인 표현 뒤에 곧바로 하나님의 구체적인 법적 조항들인 명령, 계명, 율례, 법도가 군대처럼 장엄하게 열거됩니다. 즉, 이 문맥에서 '내 말(여호와의 목소리)'은 뒤이어 나오는 모든 구체적인 계명과 규칙들을 하나로 웅장하게 아우르고 포괄하는 대표 칭호로서 사용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음성이 곧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엄위한 법적 지침이 됩니다.
3. 성경 역본들의 번역적 한계와 신학적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 문맥 속에서 율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 총 14개의 서로 다른 다채로운 어휘들을 원어의 구조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이 방대한 동의어들을 종리하면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최종 신학적 결론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명쾌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 원문에는 분명히 토라, 노모스, 미쉬파트, 호크, 미츠바 등 다양한 모양의 단어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의 성경 기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 단어들을 배치하여 기록할 때, 각 단어가 지닌 미세한 사전적 어원이나 일차적인 법적 차이점을 엄격하고 심각하게 따져 가면서 기계적으로 단어들을 선별해 사용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둘째, 특히 시편 119편에서 기자(시인)가 '율법'이라는 하나의 신앙적 대상을 두고 무려 열 개가 넘는 다채로운 유사 단어들을 교차 배치하여 지칭한 본질적인 이유는, 각 단어의 법적 성격을 신학적으로 날카롭게 부각하려 한 목적이 아닙니다. 시편 119편은 엄연한 거룩한 '시(Poem)'입니다. 문학적으로 한 편의 시 안에서 동일한 단어인 율법(토라)만을 수백 번 반복하여 사용하면 시의 운율이 깨지고 대단히 단조로우며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기자는 동일한 율법을 가리키되 언어의 다양성과 풍부한 유의어 배치를 통하여 시적 문장의 화려함과 문학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려 했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 단어들을 거대한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단순한 '시적 동의어'로 편안하게 사용했을 뿐, 단어 간의 엄청난 개념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배치한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셋째, 전 세계의 수많은 성경 역본(번역본)들이 이 히브리어 원어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관된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짚어보았듯이 우리말 개역성경 안에서도 '미쉬파트'라는 동일한 원어 단어 하나가 문맥에 따라 판단으로도 번역되고 규례로도 번역되는 등 심각한 번역의 혼선이 가득합니다. 한 역본 안에서도 원어와 우리말 단어가 일대일로 일관성 있게 매칭되지 않으며, 하물며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 성경 사이에서도 번역 단어가 서로 다르게 뒤바뀐 구절이 허다합니다.
따라서 번역본 성경에 나타난 우리말 단어들의 미묘한 글자 차이(예컨대 '법도'와 '규례'와 '율례'가 우리말로 어떻게 다른가)를 국어사전적으로 파악하여 단어 간의 차이점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신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도리어 본문을 오해하게 만드는 허망한 일입니다. 원어가 호크나 미쉬파트로 서로 뒤섞여 쓰였기 때문입니다. 역본들의 글자 차이를 억지로 쪼개어 분석하려는 노력은 성경적 본의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최종적인 결론을 맺겠습니다.
여기 서판에 정리된 14개의 모든 단어들(토라, 노모스, 후카, 다트, 미쉬파트, 피쿠딤, 호크, 헤케크, 미츠바, 엔톨레, 데레크, 에두트, 다바르, 콜)은, 각각 서로 다른 종류의 법(예컨대 도덕법이나 의식법이나 시민법 등)을 개별적으로 지칭하는 독립된 용어가 결코 아닙니다. 이 모든 다채로운 어휘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계시해 주신 '단 하나의 거룩한 법(율법)'이 가진 명령적 권위, 가르침의 속성, 삶의 이정표로서의 역할, 공의로운 기준 등 그 법이 지닌 '다채로운 기능과 풍성한 역할들을 입체적으로 함축하여 보여주는 유의어들의 총합'일 뿐입니다. 그 내용과 본질은 모두 하나님의 법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완벽히 통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께서는 앞으로 성경을 읽으실 때, 율례와 규례와 법도라는 단어들의 차이점을 인위적으로 구별하려고 애쓰며 지치기보다는, 이 수많은 단어들의 아름다운 의미를 거대한 하나님의 법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 넓게 묶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가르침이자 구원의 지침'으로 포괄적이고 유기적으로 이해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올바른 성경 통독의 태도입니다. 저의 확고한 신학적 결론이자 성경을 읽는 가장 명쾌한 열쇠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이 결론에 대충 기쁘게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상으로서 오늘 율법을 가리키는 14가지 다양한 동의어들의 원어 구조와 요점들을 명확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다양한 단어들을 대하실 때 단어의 벽에 갇히지 마시고, 나를 바른 길로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음성으로 들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여든네 번째 강의 시간에는 이 개념을 이어서 구체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율법의 종류와 그 기능'에 대하여 깊이 있게 연속해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강의를 여기서 모두 마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율법 동의어 연구의 성서적 배경:
성경(특히 창세기 26장 5절, 느헤미야 9장 13절 등)에는 하나의 구절 안에 율법을 뜻하는 유사 어휘들이 군대처럼 열거되어 나타남.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인 시편 119편(176절)은 율법의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 10가지 유사 단어(법, 증거, 법도, 율례, 계명, 판단, 규례, 길, 주의 도, 말씀)를 시 축을 따라 매우 촘촘하게 교대로 교차 배치하여 사용함.
율법을 가리키는 14대 어휘의 원어적 특성:
율법·법률·법 (토라/노모스): 구약에 220회 쓰인 '토라(Torah)'의 어원은 '지시하다·가르치다'의 야라(Yarah) 동사이며, 본래 뜻은 딱딱한 법조문 이전에 '하나님의 가르침과 지시·교훈'임. 70인역이 이를 헬라어 '노모스(Nomos/법)'로 번역하며 법 개념으로 고착됨. (페르시아기 아람어 어원인 '다트'도 법률로 번역됨)
법도·판단·규례 (미쉬파트/피쿠딤): 구약에 424회나 쓰인 '미쉬파트(Mishpat)'는 우리말 성경에서 법도, 규례, 판단 등 10여 가지 단어로 다양하게 번역됨. 판단은 인간의 사견이 아닌 공의의 기준이 되는 법 자체를 가리킴. '피쿠딤'은 오직 시편에만 24회 등장하는 특수 어휘임.
율례·규례 (호크/후카): 구약에 129회 사용된 '호크(Choq)'는 제사장의 지정된 음식 몫인 '응식'을 뜻하기도 하며, 규례와 율례는 원어상 구별이 불가능한 완벽한 동의어 관계임. '헤케크'에서 유래한 '법령'은 개역한글 성경 전체에서 오직 이사야 10장 1절에 딱 한 번 등장함.
계명 (미츠바/엔톨레): 권위자가 내린 칙령과 명령적 속성을 대변하며 신약의 '엔톨레'는 거의 계명으로 통일됨. 영어로는 십계명을 'The Ten Commandments' 혹은 '데칼로그'라 함.
길·주의 도 (데레크/에두트): '데레크'는 실제 길(Way)의 뜻이나 영적으로는 인간이 걸어야 할 실천적 '행위의 도리'를 뜻하며, '에두트'는 하나님의 성품을 확증하는 거룩한 법적 '증거물'을 뜻함. 두 단어가 묶인 '증거의 도'는 시편 119편 14절에 단 한 번 나옴.
말씀·말 (다바르/콜): 평범한 단어인 '다바르(말/Word)'나 목소리를 뜻하는 '콜(Voice)'의 주어가 창조주 하나님이 될 때, 그 음성은 피조물이 지켜야 할 엄위한 법적 구속력을 지닌 최고 권위의 법(율법) 그 자체가 됨.
번역적 한계 고찰과 신학적 최종 결론:
성경 기자들이 단어 간의 미세한 사전적 차이를 기계적으로 엄격히 구별해 쓴 것이 아니며, 특히 시편 119편은 '시(Poem)'라는 문학적 특성상 동일 단어의 단조로운 반복을 피하고 문장의 유려함과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유의어를 배치한 것임.
우리말 성경 번역본(개역성경 등) 내에서도 하나의 원어 '미쉬파트'가 판단과 규례로 혼용되는 등 단어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번역된 우리말 글자의 자구적 차이를 국어사전적으로 쪼개어 분석하는 것은 무익함.
결론적으로 14개의 모든 어휘는 서로 다른 종류의 법을 개별 분리하는 단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법(율법)이 지닌 다채로운 기능과 풍성한 역할들을 입체적으로 대변하는 유의어들의 총합임. 따라서 성경 통독 시 단어 간의 차이점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이 단어들을 하나님의 법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크게 묶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가르침이자 위대한 구원의 청사진'으로 포괄적·유기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신학적 도달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