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아마존은 소비자가 구매를 결심하기 전에 미리 배송하는 이른바 '예측 배송'을 추진하고 있다. 어떤 고객이 3일 내내 밤마다 아마존에서 시계 하나를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아마존은 그 시계를 드론에 태워서 고객에게 보낸다. 안에는 시계와 함께 안내문이 있다. '원치 않으면 반품하세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하라스는 단골 입장객에 대해 '고통 곡선(pain curve)'을 확보하고 있다. 가로축은 고객이 1회 방문 시 잃은 돈, 세로축은 재방문할 확률이다. 재방문 확률 값은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어느 지점을 지나면 급격히 감소한다. 너무 많이 잃으면 열 받아서 발을 장기간 끊는 그 금액 규모를 표시한 게 고통 곡선이다. 이 카지노는 단골이 돈을 걸 때 잃은 금액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그런 다음 과거 자료를 토대로 재방문 확률이 급격히 감소된다고 파악되는 결정적 액수 지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잃지 못하게 슬며시 방해한다. 직원을 시켜 음료수를 건네거나 디너쇼 입장권을 경품이라고 주면서 흥분한 그 고객 심기를 정돈해준다. 더 이상 잃지 않도록 평정심을 되찾아 주는 셈이다. 좀 더 잃으면 재방문 확률이 급감하는 그 시점 이전에 판을 정리한 그 고객은 얼마 후 다시 카지노를 찾는다.
빅데이터 목표는 사업가치 만들기
빅데이터가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빅데이터 분석 최종 목표는 인사이트가 아니다. 가치 만들기다. 눈앞에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무작정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끌어내고 이를 의사결정자에게 던져주면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온다. 마치 요리사가 더운 여름에 땀 흘리면서 찾아온 사람에게 자기가 잘 만드는 꼬리곰탕을 만들어서 들이미는 것과 같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은 요리사에게 출연자가 실제 집에서 사용하는 냉장고 속 재료로 음식을 만들게 하는 내용이다. 냉장고를 여는 순간 요리사는 당황한다. 요리를 만들 재료가 다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갈비탕을 만들자니 육수가 없고, 닭강정을 만들자니 물엿이 없는 식이다. 그래서 그냥 있는 재료로 족보에 없는 요리를 만들고 그걸 품평한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특정한 가치를 생각한다. 더워서 시원한 물냉면이 먹고 싶어 갔더니 온면이 나온다면 그건 원하는 가치가 아니다. 그래서 반드시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선 어떤 인사이트가 요구되며 그 인사이트를 찾기 위해선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역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과정이 기획이다. 빅데이터 분석 이전에 기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획 없는 실행을 보여주는 게 '냉장고를 부탁해'이다.
기획→분석→확인→실행
데이터-인사이트-가치라는 프레임워크에서 데이터가 인사이트로 바뀌는 단계가 분석이고, 인사이트가 가치로 바뀌는 단계가 실행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과정보다 먼저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기획이다. 가치에서 출발하여 인사이트는 무엇인지, 필요한 데이터는 무엇인지 알아내는 단계다. 그리고 인사이트를 가치로 만드는 실행을 하기 직전에 도출된 인사이트에 대한 기본적인 확인 단계가 필요하다. 정리해보면 빅데이터 가치를 만드는 과정은 기획(plan), 분석(do), 확인(check), 실행(act)의 총 4단계로 이루어진다. 기획은 가치→인사이트→데이터 순으로 계획을 만드는 단계, 분석은 데이터로 인사이트를 만드는 단계, 확인은 인사이트의 의미를 검증하는 단계, 끝으로 실행은 인사이트를 비즈니스 가치로 만드는 단계다. 실행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기획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됨으로써 4단계는 반복된다.
기획에서 중요한 요소는 우선 비즈니스적으로 의미가 큰 가치를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어떤 데이터가
필요하며 이를 제대로 확보할 순 있는지 조사하는 작업이다. 그런 다음, 원하는 인사이트를 얻으려면 어떤 분석 기법을 활용해야 효율적인지 판단해야 한다. 조직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데이터 개방성 확대해야 산업 발전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 선결 과제가 있다. 데이터 개방성 문제다. 신용카드사 데이터에는 막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그걸 얻고 싶은 기업은 많은데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막혀 있다. 통신사 고객 사용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사방에 데이터가 넘쳐난다고 해도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가치를 만들려는 주체가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는 자기가 확보한 데이터 말고는 없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빅데이터가 존재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스몰데이터일 뿐이다.
공공기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부 부처만 해도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사이에는 데이터 교류가 전혀 없다. 법으로도 막혀 있다. 부처 내 부서 간에도 데이터 교류는 거의 없다. 데이터를 교류해서 활용하면 행정 효율이 훨씬 높아질 텐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인지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합의다. 우리 개인정보보호법은 주로 유럽 법률을 참조해 만들었다. 유럽은 개인정보를 인권으로 바라보고 기본적으로 공개를 금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 규제 강도는 세계에서 둘째로 강하다.
원래는 일본이 더 심했는데 최근 3~4년 사이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 아마 지금은 한국이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법률의 광범위함과 강도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 국가가 됐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개인정보보호법 말고도 정보통신망법이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을 했을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지만,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곧바로 구속이다. 오프라인에서 사업을 하다가 개인정보를 수집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 데 그치지만, 온라인 사업자가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면 정보통신망법에 저촉돼 형사처벌을 받는다.
미국은 개인정보를 대하는 태도에서 유럽과 완전히 상반된 태도다. 이를 인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미국은 1970년대 개인정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치열하게 거친 후 기본적으로 활용을 허용하되 대신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만 처벌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우리나라처럼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만 있으면 처벌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이후 미국은 개인정보를 적극적으로 산업에 활용하는 걸 권장하고 있다. 데이터를 구매하고 가공하고 판매하는 걸 모두 허용한다. 데이터 가공업과 데이터 산업이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출처] WEEKLY BIZ
[원문보기] weekly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26/20190926019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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