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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스크랩 천자문_10. 龍師火帝 鳥官人皇(용사화제 조관인황) 10. 전설 속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신화
강나루 추천 0 조회 72 14.12.27 22: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전설 속의 삼황(三皇)과 오제(五帝)

한정주 천자문

 

龍師火帝와 鳥官人皇이라.
(용사화제와 조관인황이라.)
태호 복희씨는 용, 염제 신농씨는 불로 벼슬의 이름을 정하였고, 소호 금천씨는 새로 벼슬 이름을 정하고 황제 헌원씨는 인간의 문화를 갖추었다.

 

龍(용 룡) 師(스승 사) 火(불 화)    帝(임금 제)
鳥(새 조) 官(벼슬 관) 人(사람 인) 皇(임금 황)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군왕검의 자손이라고 믿는 것처럼, 중국인들도 자신들의 시조(始祖)로 추앙하는 전설 속의 고대 제왕(帝王)이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그들을 삼황오제(三皇五帝)라고 부릅니다.

 

삼황오제(三皇五帝)를 분류하는 방법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삼황(三皇)은 태호(太?) 복희씨, 염제(炎帝) 신농씨, 황제(黃帝) 헌원씨이고,  오제(五帝)는 소호(小昊), 전욱(?頊), 제곡(帝?), 요(堯)임금, 순(舜)임금입니다.

이들은 중국 문명의 탄생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호 복희씨는 동양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팔괘(八卦)의 창조자이고, 염제 신농씨는 농사 기술과 경작 방법을 창조한 농업의 신이며, 황제는 중국 문명과 문화의 창조자입니다.

또 중국 신화 속에서, 이들은 신(神) 중에서도 최고신으로 섬겨지고 있습니다. 태호 복희씨는 동쪽을 다스리는 큰 신으로 봄을 주관하는 신인 구망(句芒)의 보좌를 받고 있습니다. 염제 신농씨는 남쪽을 다스리는 큰 신으로 여름을 주관하는 신인 축융(祝融)의 보좌를 받습니다. 소호 금천씨는 서쪽을 다스리는 큰 신으로 가을을 주관하는 신인 욕수(辱收)를 거느리고 있으며, 전욱은 북쪽을 다스리는 큰 신으로 겨울을 주관하는 신인 현명(玄冥)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황제는 신 중의 신으로 중앙을 다스리는 큰 신이며,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후토(后土)의 보좌를 받고 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태호 복희씨는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태호 복희씨의 아버지인 뇌신(雷神) 역시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 형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고대 중국인들은 태호 복희씨를 용의 화신(化神)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염제 신농씨는 '염(炎 : 불꽃)'이라는 한자가 뜻하는 대로, 불의 신입니다. 따라서 태호 복희씨는 용으로 또 염제 신농(神農)씨는 불로써 자신이 다스리는 곳의 벼슬 이름을 정했습니다. 소호 금천씨는 황제 헌원씨의 아들로, 그의 왕국은 동쪽 바다 밖 먼 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왕국의 신하와 관리들은 모두 새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제비, 까치, 봉황, 종달새, 비둘기, 수리, 뻐꾸기, 매 등 온갖 새들이 각각 나랏일을 맡아 다스렸습니다. 예를 들어 집비둘기는 교육을, 수리는 군사를, 뻐꾸기는 건축을, 매는 법률과 형벌을, 산비둘기는 언론을, 다섯 종류의 꿩은 목공·금속공·도공·피혁공·염색공을 맡았습니다.

 

龍師火帝 鳥官人皇에서 용(龍)은 상상의 동물로 동양과 서양에 다 존재합니다. 물론 그 상상하는 용모는 서로 조금 다르지만 인간에게 두려움의 존재라는 것은 같습니다. 동양의 용은 사슴과 같은 뿔에 귀신의 눈을 하고 있으며 귀는 소의 귀를 닮았다고 합니다. 몸체는 뱀과 같은데 네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발가락은 다섯인데 그림으로 표현할 때 황제가 사용하는 용은 발가락이 다섯이고, 왕이 사용하는 용은 발가락이 넷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양의 용은 자신의 기운을 이용하여 물속이나 하늘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양의 시각으로는 좀 달랐지요. 모든 짐승은 날개가 있어야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서양의 용은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조관(鳥官)은 새의 모습으로 벼슬을 했다는 의미인데 소호(少昊)씨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문화를 창조했다는 황제에 대해서는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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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이윤숙 천자문역해

 

 

제3절 聖人之道(성인 지도) / 人道(인도)와 大德 敦化(대덕돈화)

 

[10]~[18]로 9개 문장 72자로 이루어졌다. 제1절에서 보여준 하늘의 베풂과 제2장에서 드러낸 땅의 생성 작용을 잘 마름질하여 세상을 이롭게 한 성인(聖人)의 도를 나타내고 있다. "주역","서경","시경","사기"등에 나오는 역사적인 내용을 토대로 음양오행의 자연 이치를 잘 다스려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베푼 성인들의 선정(善政)을 나타내었다.

 

성인(聖人)이 실현한 人道이다. 성인의 위민(爲民)정치로 인한 덕화(德化)는 초목동식(草木動植)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침을 설명하였다. "맹자"의 왕도(王道)정치, "중용"의 ‘大德敦化(큰 덕은 세상을 두텁게 교화시킨다)’, "주역"의 ‘信及豚魚(신급돈어:믿음이 돼지와 물고기까지 미친다)’를 말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용사와 화제, 조관과 인황, 요임금과 순임금, 무왕과 탕왕 등이다. 

 

이렇듯 "천자문"은 도입부인 [1]~[18]의 문장까지는 동양철학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주역"과 "서경" 홍범의 핵심 사상인 음양오행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을 담아냈다.

 

10.龍師火帝鳥官人皇이라

    용의 스승과 불의 임금이요, 새의 관직과 사람의 임금이라

    (용용,스승사,불화,임금제,새조,벼슬관,사람인,임금황)

 

11,始制文字하고 乃服衣裳이라

    비로소 문자를 만들고, 이에 의상을 입음이다.

    (비로소시,지을제,글월문,글자자,이에내,입을복,옷의,치마상)

 

12.推位讓國有虞陶唐이라

    자리를 미루어 나라를 사양함은 유우와 도당이다.

    (밀추,자리위,사양할양,나라국,있을유,나라우,질그릇도,나라당)

 

13,弔民伐罪周發殷湯이라

   백성을 위로하고 죄를 침은 주나라 발과 은나라 탕이다.

   (조문할조,백성민,칠벌,허물죄,나라주,필발,나라은,끊을탕)

 

14.坐朝問道하고 垂拱平章이라

   조정에 않아 도을 묻고, 팔짱을 끼고도 편안하여 밝으니라.)

   (앉을좌,조정조,물을문,길도,드리울수,팔짱낄공,고를평,빛날장)

 

15,愛育黎首하고 臣伏戎羌이라

   백성을 사랑하여 기르니, 융과 강이 신하로 따른다.

   (사랑애,기를육,검을려,머리수,신하신,엎드릴복,오랑캐융,오랑캐강)

 

16.遐邇壹體하여 率賓歸王이라

   멀고 가까운 곳이 한몸이 되고, 거느리고,손님이 되어 왕에게 돌아가느니라.

   (멀하,가까울이,한일,몸체,거느릴솔,손빈,돌아갈귀,임금왕)

 

17,鳴鳳在樹하고 白駒食場이라

   우는 봉황이 나무에 있고, 흰 망아지는 마당에서 먹느리라.

   (울명,봉새봉,있을재,나무수,흰백,망아지구,먹을식,마당장)

 

18.化被草木하고 賴及萬方이라

   덕화가 초목에 입혀지고,힘입음이 만방에 미치느니라.

   (될화,입을피,풀초,나무목,힘입을뢰,미칠급,일만만,모방)

 

 

 

신화와 전설

모든 민족은 나름대로 그들 민족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중국을 비롯한 인도, 그리스, 이집트 등 몇몇 고대 문명 국가들은 매우 풍부한 옛 신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도, 그리스 등의 신화는 완벽하게 보존되어 전해 오고 있는 반면에 중국의 신화는 체계 없이 산만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중국 신화는 『산해경(山海經)』, 『회남자(淮南子)』, 『초사(楚辭)』 등에 가장 많이 실려 있고, 그 외에 『목천자전(穆天子傳)』, 『장자(莊子)』, 『국어(國語)』, 『좌전(左傳)』 등에 단편적으로 실려 있을 뿐이다.

신들의 사랑, 음모, 투쟁이 신화의 중심적인 주제이며, 은밀한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 즉 한 문제에 대한 올바른 답을 얻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삶의 투쟁인 것이다. 신화야말로 생명을 지배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신화는 옛 사람들의 사상은 물론 생활의 관념 등을 터득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신화가 당시 사람들의 자연 현상에 대한 해석, 투쟁, 극복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통하여 얻어진 경험적 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유치한 듯한 모티브를 지니고 있지만, 더없는 매력과 친근감을 준다. 친근감이란 현실적인 고통, 역경, 공포 등을 이겨낸 결과에서 오는 애틋한 맛이다. 로고스는 '맛', '신성함', '초월성'을 담을 장소가 없지만, 신화는 이러한 것들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초월적 감각의 발로가 신화 문학의 연원이며, 그 문학에 대한 연구는 '항상 현재성'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신을 자신의 영혼 속의 힘이라고 한다면, 중국 신화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 사람들의 심연의 원시적 사유, 문학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여와와 복희

여와와 복희

그렇다면 천지, 인류 창조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은 반고(盤古)와 여와(女?)의 신화를 통하여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반고는 거대한 달걀과 같은 암흑과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태어났는데, 1만8천 년 동안 천지가 개벽하였다. 양(陽)의 맑음(淸)은 하늘이 되고, 음(陰)의 혼탁함(濁)은 땅이 되었다. 하늘과 땅이 매일 일장(一丈)씩 높아지고 두터워졌으며, 반고 역시 일장씩 키가 자랐다. 이렇게 1만8천 년이 지나니 하늘과 땅이 지극히 높아지고 깊어졌으며, 반고의 키도 엄청나게 커졌다. 하늘은 땅에서 9만 리나 떨어지게 되었다.

반고는 죽음에 임박하여 몸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입김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는 천둥이 되었다. 왼쪽 눈은 태양이,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으며, 몸은 울퉁불퉁한 산과 구릉이 되었고, 머리털은 초목 등이 되어 세상이 아름답게 변화하였다. 그런데 하늘과 땅이 열린 후 황량한 대지를 거닐고 있던 여와는 고독을 견딜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생기가 돌 것 같아 황토를 한 움큼 파서 물과 반죽을 해서 어떤 형체를 만들어 땅에 내려놓았다. 살아서 움직였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이것이 곧 '사람'으로 신이 직접 창조했기 때문에 새나 짐승과는 달리 신의 모습을 닮았다. 여와는 계속하여 '남자'와 '여자'를 빚어 냈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여와를 둘러싸고 춤을 추며 노래하였다. 여와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지만, 그 지혜로운 창조물을 세상에 가득하게 만들어 놓고 싶었다. 만들기를 계속하다 지친 여와가 새끼줄을 진흙탕 속에 넣고 휘젓다가 꺼내어 한 바퀴 휘두르자 흙탕물이 땅에 뚝뚝 떨어졌다. 그것들은 곧 환희에 겨워 춤을 추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사람들 가운데 귀하고 어진 자는 여와가 직접 황토로 빚어 만든 사람(黃土人)이며, 천하고 가난한 자는 새끼줄을 휘둘러 만든 사람들(引?人)이라고 했다. 이렇게 인류는 생존하기 시작하였으나 아직도 해결 못한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생존을 오래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를 결합시켜 주었다. 그들 스스로 자손을 생육함으로 인류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며, 그 수가 늘어나 번창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신화를 바탕으로 전설은 발전하여 왔다. 곧 신화 가운데 신(神)은 차츰 사람으로 변하였으며, 그 사람의 발자취를 서술한 것이 전설이 되었다. 「우(禹)의 홍수를 다스림」, 「황제(黃帝)와 치우(蚩尤)의 전쟁」, 「후예(后凌)가 활로 태양을 쏘다」 등의 전설이 대표적이다.

즉 상제의 어명을 받은 천신이 칼(吳刀)로 곤의 배를 가르자 두 뿔이 달린 용이 튀어 나왔다. 그가 바로 우였다. 우는 곧 용트림을 하면서 승천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곤의 뜻을 받들어 치수의 위업을 하나하나 이루어 갔다. 이에 상제는 인류의 결연한 의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홍수의 벌을 뉘우치게 되었으며, 우를 지상으로 내려보내 홍수를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그것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물의 신인 공공(共工)의 권위를 자극함으로써, 분노한 그가 온 천지를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우는 설득보다는 무력으로 공공을 몰아냄으로써 본격적으로 치수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는 거대한 거북이에게 식양(息壤 = 생장을 멈추지 않는 토양)을 지고 뒤따르게 함으로써 홍수를 막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꼬리로 금을 그으니 강이 되어 동쪽의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그것이 지금의 양자강과 황하가 되었다고 한다.

황제릉

황제릉

황제와 치우의 전쟁에 대한 전설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용어하도(龍魚河圖)』에 의하면 치우의 형제는 모두 81명으로, 구리 머리, 쇠 이마, 짐승의 몸으로 사람의 말을 하였는데 그들의 무위가 천하에 떨쳤다고 한다.

전하는 바로는 치우는 고대 여족(黎族)의 우두머리였다. 당시 여족이 참으로 많아서 구려(九黎)라고 하였는데 '구(九)'는 대단히 많음을 의미한다. 치우는 강대한 부족 연맹의 대표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초인간적인 신력(神力)을 지니고 있었으며 권력욕이 강하여 황제의 보좌를 탈취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묘족(苗族)(황제의 후손)을 위협하여 탁록(?鹿 = 현 하북 탁록현 동남)에서 황제, 염제(炎帝)의 연합군과 대접전을 벌였다.

황제는 응룡(應龍)과 발(魃 = 황제의 딸로 늘 푸른 옷을 입음)의 도움을 받아서, 치우의 군대와 구려족을 섬멸하고 치우를 사로잡아 탁록에서 살해하였다. 뒤에 염제와 황제의 연맹이 결렬되어 판천(阪泉 = 현 산서성)에서 몇 차례 대전을 벌인 끝에 웅(雄), 비(俵), 비(被), 휴(頓), 추(針), 호(虎)의 합세로 결국 황제가 승리함으로써 황하 중하류의 부락 연맹의 수령이 되었다. 따라서 황제족은 황하 유역에서 최강의 부락 연맹이 되었고, 권력의 강화로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어 나갔다. 요(堯), 순(舜), 우(禹)의 등극과 함께 더욱 공고한 사회적인 안정을 기반으로 생산력은 물론 문화 예술도 상당히 발달하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

3황은 수인씨(燧人氏),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를 지칭한다. 수인씨는 불을, 복희씨는 그물을 만들어 고기 잡는 방법을, 신농씨는 쟁기를 발명하였다고 한다. 3황의 뒤를 이어 5제가 있었는데 황제(黃帝), 전욱(芮頊), 제곡(帝柰), 제요(帝堯), 제순(帝舜)을 일컫는다. 황제는 유웅씨(有熊氏)의 군주로, 염제(炎帝), 치우(蚩尤) 등을 물리치고 비로소 황하 중, 하류에 국가를 건설하였고,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로부터 지조로 칭해졌다.

예(凌)가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전설은 『산해경』과 『회남자(淮南子)』의 「본경훈(本經訓)」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요 때에 열 개의 태양이 떠올라 벼, 나무, 풀이 모두 타 죽게 되자 예는 10개 중 9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이와 같은 예의 인류를 위한 영웅적인 활약은 당연히 존경을 받게 되었고, 공덕을 칭송하는 노래가 드높았으나 오히려 상제의 분노를 샀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들인 10개의 태양 가운데 한꺼번에 9개를 쏘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상제는 그 죗값으로 예와 아내인 항아(姮娥)를 다시는 천상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신적(神籍)마저 박탈했다. 이로부터 예와 항아의 애정은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의 잘못으로 항아는 천국의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원망과 질책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던 예는 유랑하다가 우연히 낙수(洛水)의 여신인 복비(宓妃)를 만났다. 그녀는 여러 선녀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겨 하였는데, 수심에 겨운 듯한 모습이 오히려 아름답기가 그지없었다. 위(魏)의 조식(曺植, 192~232)은 「낙신부(洛神賦)」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엷은 구름에 가리운 달인 듯 하고,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흰 눈인 듯하네.
멀리서 바라보면,
태양이 아침 노을에 떠오르는 듯하고,
가까이 가서 보면,
연꽃이 푸른 물 위로 솟아 오른 듯하네.

??兮若輕雲之蔽月,
飄?兮若流風之回雪.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迫而察之, 灼若芙蓉出綠波.

항아(상아)

항아(상아)

복비의 남편인 하백(河伯)은 황하의 신이다. 그런데 굴원이 「구가(九歌) 하백(河伯)」에서 "그대와 함께 구하에 노니는데, 세찬 바람에 굽이치는 큰 물결!(與女遊兮九河, 衝風起兮橫波!)"이라고 한 것을 보면 하백이 얼마나 방탕했는가를 알 수가 있다. 따라서 하백과 복비(宓妃 = 낙빈(?嬪)) 사이에 갈등과 고통이 있었으나 예와의 애정은 깊어만 갔다. 예와 하백이 낙빈을 두고 처절한 싸움을 벌이자 아내인 항아는 질투와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불사약을 훔쳐 먹고 달로 달아났으나 두꺼비로 변하였다. 예는 그 이후 실망과 비애를 절감하고 세상살이의 무상함을 터득하여 갔다. 그러나 끝내 전법(箭法)을 전수해 준 봉몽(逢蒙)에게 살해되었다. 봉몽이 스승을 제치고 일인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중국의 신화와 전설은 질박하고 솔직하며 생동감이 있는 삶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여와가 황토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은 황토 고원의 토기 제작 문화와 여성의 활동 상황을, "예가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수렵 생활을, "우왕이 치수를 했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농업과 관개의 중요성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남·북으로 갈라 놓고 볼 때, 북방은 유교 문화권의 문자 문학으로서의 올바른 수용을 이루지 못하여 아름다운 정서의 문학 창작의 길을 열지 못하였다. 그러나 남방은 북방과 사정이 좀 달라서 비교적 온전하게 신화 전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으며, 굴원은 비로소 이들 신화를 소재로 삼아 「이소(離騷)」, 「천문(天問)」, 「구가(九歌)」, 「초혼(招魂)」 등을 창작하였다. 그리하여 북방의 사실주의 문학에 상반하는 새로운 낭만주의의 길을 개척하였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가의(賈誼)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그의 시정신을 본받아 글을 지음으로써 부(賦) 문학의 전성 시대를 이루었는가 하면 그 이후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잡가, 가무, 희곡, 소설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 따라 배우는 중국문학사]  저자 - 이수웅. 중에서 펌

 

 

 

10. 삼황오제(三皇五帝)

 

 

龍師火帝 鳥官人皇

 

龍(용 용), 師(스승 사), 火(불 화), 帝(임금 제)

 

龍(용)은 상형문자(象形文字)입니다.

용은 상상의 동물로 동양과 서양에 다 존재합니다. 물론 그 상상하는 용모는 서로 조금 다르지만 인간에게 두려움의 존재라는 것은 같습니다. 동양의 용은 사슴과 같은 뿔에 귀신의 눈을 하고 있으며 귀는 소의 귀를 닮았다고 합니다. 몸체는 뱀과 같은데 네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발가락은 다섯인데 그림으로 표현할 때 황제가 사용하는 용은 발가락이 다섯이고, 왕이 사용하는 용은 발가락이 넷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양의 용은 자신의 기운을 이용하여 물속이나 하늘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양의 시각으로는 좀 달랐지요. 모든 짐승은 날개가 있어야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서양의 용은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옛날에는 龍(용) 왼쪽의 立+月 대신에 帝(제)를 넣기도 했습니다.

 

     

 

 

師(사)는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글자 왼편의 형태는 언덕 부(阜)에서 아래의 十이 빠진 형태로 높이 솟은 땅이나 언덕을 의미합니다. 또 언덕이나 높은 땅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사람이 많다'는 의미도 됩니다.

글자 오른편의 형태는 골고루 돈다는 뜻으로 골고루 남에게 미치거나 대중을 통솔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師(사)라는 글자는 언덕이나 높은 곳에 올라 여러 대중을 통솔한다는 의미라 원래는 '군대' 혹은 군대의 지휘자인 '군사(軍師)'의 의미였으나 여러 사람에게 군사적인 명령이나 다른 지식(知識) 따위로 영향을 끼침으로 해서 그것이 나중에는 '스승'이란 뜻으로 변했습니다.

 

火(화)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象形文字)입니다. 혹은 화산이 불을 내뿜는 장면이란 말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불꽃을 형상화시켰습니다.

 

帝(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에 음식을 올려놓은 모습을 형상화한 상형문자(象形文字)입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그 대상은 누구겠습니까. 바로 천신(天神)입니다. 그 천신이 바로 천황(天皇)이고 황제(皇帝)입니다. 나중에 진시황(秦始皇)이 자신을 천신이라고 해서 황제라 처음 자칭(自稱)한 것이지요. 원래 그 이전에는 천자의 명칭이 왕(王)이었습니다. 요순(堯舜)우탕(禹湯)문무(文武) 모두 왕이었고 그 아래의 제후들은 모두 공후백자남(公候白子男)의 제후들이었지요. 그러다가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와 제후들이 너도나도 자신들을 왕이라 참칭(僭稱)하게 되었습니다. 천자인 주나라 왕이 힘을 잃어버린 탓이지요. 그러다가 진나라가 통일을 하자 진나라 왕이 자신은 다른 왕보다 높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황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높였지요.

 

鳥(새 조), 官(벼슬 관), 人(사람 인), 皇(임금 황)

 

鳥(조)는 닭과 같은 새의 모습을 형상화한 상형문자(象形文字)입니다. ?(추)도 새를 나타내는 글자인데 일반적으로 鳥(조)는 꼬리가 긴 새를, ?(추)는 꼬리가 짧은 새를 표현한다고 합니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두 글자 모두 그냥 새를 표현한 글자가 되었습니다.

 

여하간 鳥(조)는 여러 종류의 새를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官(관)은 갓머리 아래에 언덕 혹은 사람이 많다는 뜻인 阜(부)에 十이 없는 글자가 합쳐져서 된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즉, 글자의 형태를 보면 지붕 아래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형태입니다. 지붕 아래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관청(官廳)입니다. 관청이 나중에 관청에서 일을 하는 관리(官吏)가 되어 벼슬이란 뜻으로 변했습니다.

 

人(인)은 사람의 형상을 본 뜬 象形文字(상형문자)입니다.

 

皇(황)은 象形文字(상형문자)로 왕의 상징인 커다란 왕관이 받침대 위에 올려놓은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龍師火帝 鳥官人皇은 고대 전설상 임금들의 행적을 적은 문구입니다.

龍師火帝(용사화제)는 글자 그대로 용 스승과 불 임금입니다.

옛날 복희(伏羲)씨는 뱀의 몸뚱이에 머리는 사람의 형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용의 형상이었지요. 복희씨는 세상에 나타나 음양오행과 천문 및 점술 등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식을 전수한 신입니다. 그러니까 용 스승은 복희씨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또 三皇(삼황) 중의 하나인 신농(神農)씨는 농사짓는 법과 불을 사용하는 법을 인간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불 임금이라면 신농씨를 지칭합니다.

 

鳥官(조관)은 새의 모습으로 벼슬을 했다는 의미인데 소호(少昊)를 지칭한다고 합니다만 중국 고대의 신화는 여러 가지 설정이 있으므로 다 알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얘기할 때도 그 명칭이 다 다릅니다. 어떤 곳에는 삼황(三皇)이 복희(伏羲), 여와(女蝸), 신농(神農)이라고도 하고, 어떤 곳에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이라고도 하며, 또 복희, 신농, 수인이라고도 하고 또 복희, 신농, 황제(黃帝)라고도 합니다. 오제(五帝)를 말할 때도 소호(少昊) 대신 황제(黃帝)를 넣기도 하네요.

인황(人皇)은 天皇(천황), 地皇(지황), 人皇(인황)이라 할 때의 그 인황(人皇)이라고 보면 쉽겠습니다. 또 황제(黃帝)가 인간적인 면모를 갖췄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龍師火帝 鳥官人皇

용 스승(복희씨)과 불 임금(신농씨)과 조관(鳥官)인 소호씨, 인황(人皇)인 황제(黃帝)께서 이 땅에 계셨다.

 

 

 

오제[ 五帝 ] 

①천상(天上)에 있어서, 동?남?중?서?북의 오방(五方)을 주재(主宰)하는 신(神), 곧 청제(靑帝)?적제(赤帝)?황제(黃帝)?백제(白帝) ?흑제(黑帝)를 지칭하는 말. ②상고 시대 중국의 다섯 임금. 곧 황제(皇帝)?전욱(?頊)?제곡(帝?)?요(堯)?순(舜)을 말함. 또 다른 이설(異說)에 따르면, 오제는 소호(少昊)?전욱(?頊)?제곡(帝?)?요(堯)?순(舜)이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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