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 함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 함민복,『우울氏의 一日』
첫댓글 제목을 보면서 마음이 찡했는데
글속에 묻어있는 우리네 들의 가난햇던 그 시절
잘 읽고갑니다
그 시절 가난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리들 마음의 추억 창고죠. ㅜㅜ
배도 슬픔도 모두 부른 옛날의 슬픈이야기에 맘이 찡하네요~~
알아주는 가난시의 대가가 함민복 시인입니다.
누선을 자극하는 시들이 많죠. ^^
베니어판으로 만든 농짝~~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립습니다 ㆍ
정이 넘치고 가슴시린일들이 즐비하던 그시절~~
손수레 이건 맛이 없고
니아까에 이삿짐 싣고
비 오는 날 울며 떠난 적이 있습니다.
참 서러운 날에 비까지 ㅜㅜ
@고메(창원)
물로 배 부르고, 자장면으로 배 부르고 , 슬픔으로 배 부르고.......
그 시절 정에 배 부르고~~ ^^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하는 형님네가 대단합니다
그러게요.
형제간 우애가 참 보기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