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청소년이 선도하는 학교 분위기는 '붕 떠있지요'
" 애들이 붕~~~ 떠있어요. 휩쓸려서 그런 거 같아요. 학기초에 잡아줘야지, 중간에 잡는 것도 그렇고, (......) 화장실이나 도서관에서 연기가 자욱한게 심각한 거예요. 1학년들이 담배피우다 벌써 2건이나 적발되었어요. 벌써. 학교 분위기가 장난 아니거든요. "
<송명숙 .권효숙 현장교사의 흡연청소년 지도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뇌교육연구, 2017. 9. Vol 20. >
그래서 어떻게 하면 차분한 학교 분위기로 구성할 수있을까에 눈을 띄게된 계기는, 흡연청소년들이 무리지어 구성해내는 붕 뜬 반학습, 반학교문화에 대한 대항으로서 무리지어 다니는 아이들의 습속을 '동료성'으로 전환하면 차분해지는 구나 알게 되었지요. 흡연청소년들도 속마음 깊숙이 상처과 상심으로 얼룩져있지만, 공부하고 싶어하지요. 이 사회의 긍정적인 기제를 왜 마다하지 않겠는지요. 그 아이들도 공식적인 체제가 인정하는 문화에 소속되는 것을 간절하게 원하지요.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는 살아낸 계층적 분위가나 문화는 '책상에 앉아서 다소곳이 멈춤할 수있는 동작이나, 조용조용 자기를 표현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채' 낯설고 이질적인 풍속과 개념으로, 이러한 현상들은 중학교에만 와도 불량소년, 양아치, 노답으로 불려지며, 본인들도 체화 . 합리화하고 그런 과정에서 '나쁜 사람'으로 개념화지어지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흡연청소년을 공교육으로 흡수, 승화할 수있는 기회를 줄 수있나하는 관점에서 보게 되었어요. 학교의 분위기, 문화가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은데다, 이제는 기존 질서를 뒤엎고, 해체하기에 바빠 신좌파의 선도 .전진해가는 문화가 오히려 공교육의 기본 체제마저 마구 뒤흔들린다싶은거지요. 오늘날의 생활지도가 아이들의 화장, 귀걸이, 머리길이 센치미터, 교복의 치마의 길이, 가디건을 걸치냐 마냐, 귀걸이의 종류는 어디까지 허용하느냐? 이러한 외모중심의 단속을 의논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전혀 용모가꾸기나 외모지상주의에 눈을 띄지 않는 남학생들과 여학생들까지 민주주의 가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모두를 자본주의의 담론으로 학교 현장이 매몰되어버리는 아이러니라니요. !! 타오르고 있는 자본주의에 기름을 붓는다고나 할까요? 공공성의 시민의식 교육은 단군이래로 잠시 군사정권에서 관제용어로 붙박힌 채 아직도 민주주의 실천현장에서 현장교사들이 생성해내는 담론과는 눈뜨지도 못한 채로 말이지요. 오늘 아침 글을 안쓰고 이 부분 관련 책을 읽으려다, 아침에 도착한 교육전문가들의 이야기 현장을 끌어와서 톺아보는 것으로 아침공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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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공부 1 (정은균 교사의 페이스북에서 발췌)
<정은균>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교에서 과하는 교육과정을 완전히 이수하는 데 있지 않고 삶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것을 얻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의 습관을 얻게 하고 그저 부지런히 일하는 습관을 형성하는 데 있지 않고, 독립인으로서의 행위를 하게 준비시키는데 있습니다.
<페스탈로치,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양서원 115~116쪽
<최...>
네... 지금 우리의 교육과정이 강요하는 목적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의 능력을 개척해 나갈 수있도록 조력하고... 규범에 순종보다 모두의 인권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아이로 자라도록 조력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깨닫는 데는 수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교육의 주체는 학교가 아니라 부모였음을...
<정은균>
레스탈로치가 쓴 글들을 읽으며 부모와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든 부모의식과 태도의 변화가 교육개혁의 성패를 좌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네요
<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부모에게 아무런 교육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역시 아이를 낳고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수많은 공부를 다시 해야 했어요... 또한 공교육도 교육목표이수와 맹목적 순종, 부지런히 일하는 습관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 교육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공교육의 이런 병폐를 간파하고 당연히 거부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무지한 부모와 권위적인 교육자들의 부산물이 아닐까 합니다....
<성..>
저도 어제 저녁 제 담벼락에 이런 말을 썼어요. 그래서 ‘찌찌뽕!’하고 싶은... “학교에 일임하여 강제성 없는 학부모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적으로, 체계적으로 부모교육을 해야합니다. 초등 1학년에 입학하는 만 6세 이전에 대부분의 성향이 형성되는 데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선천적, 후천적 영향력은 학교 교육에 비해 더 절대적이다. 이는 내가 20년 가차이 담임하면서 느낀 바이고 또 내 딸을 봐도 그렇다.”
<강..>
삶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것을 얻을 수있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교육의 최종 목표!!
<정은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
<성..>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
<켈리송>
제 견해는 페스탈로찌나 서양철학자의 정치적 •, 사상의 토대, 절대이성과 신성을 추구하고 지향하는 그들의 토대를 톺아보아야 한다는, 그들이 말하는 순종 vs 독립의 가치를 동양적 가치관의 현재적 시점으로 우회한 적용이 필요하다 문제제기를 합니다. 부모가 공동선 가치 교육을 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가진 소수 계층이외에는 서양의 독립, 평등, 자유 등의 가치관은 우리에게 자유주의적 개인주의화와 소비주의 시장 경제로 속도 빠르게 가치 전도화를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공부 2. 풀씨기언님의 2017. 11. 21의 교육공동체 벗에서 옮긴 글
채효정, <공공의 재구성 > 10강중에서 --
얼마전 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동영상이 있어요. 획일화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과거의 잘못된 권위주의 교육, 군대식 교육을 벗어나 개인맞춤형 교육으로 학교를 혁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인데, 굉장히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느껴지죠. 실제로 이 영상을 번역한 분도 대안교육운동에 오랜 기간 헌신한 분이고, 영상을 좋아하고 공유한 사람들도 대부분 진보적인 교사, 학부모들이었어요.
예전같은 교육이 안 좋다는 건 이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요. 학생들에게 일률적인 시험을 보게 해서 점수 매기고 등급나누는 줄 세우는 교육방식을 모두 비판하잖아요. 하지만 그래서 혁신의 방향은 개별화여야 한다?
사실 이건 공교육의 체계를 흔들기예요. 개개인 맞춤형 교육이라는 건 공교육의 이념으로서 성립할 수 없는 거거든요. 공교육은 개별자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보통의 평균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편교육, 일반교육, 시민교육이라는 이념을 담고 있어요. 때문에 이런 방향의 혁신 주체는 시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 맞춤 교육을 하기 위한 ‘혁신’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따져보면 알 수있죠. 이 혁신을 위해 개인별 태블릿 PC나 개인별 커리큘럼이 제공돼야 하고, 학교 교사들이 다 감당할 수 없으니 외부로부터 외주화된 교사 인력과 교육 프로그램들이 계속해서 도입돼야 할 거예요. 사실상 교육 민영화, 시장화죠
그런데도 이런 메시지에는 정치적 자유, 인권, 공공성, 협동, 공생 같은 이념도 들어 있는 것 같으니까 더 헤갈려요. 이렇게 개념은 우리들에게 혼란스럽게 옵니다. 이걸 조심해야 해요. 멈춰 서서 이게 정말 좋은 것가, 한 번 더 물어봐야합니다.
이렇게 개념이 뒤섞이는 사례들이 무수히 생기는 건 신보수주의와 신좌파의 공모 때문이에요. 신보수주의와 신좌파가 공모하고 있는 개념들은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대표적인 게 ‘개혁’, ’‘혁신‘이에요. 과거 유럽의 좌파 정부에서 공적 부문이 비효율적이라는 명목으로 시작한 공공정책론, 공공혁신, 공공투자도 두 세력이 공모해 이루어 낸 공공 부문 민영화예요. 한국사회에서 주요한 신자유주의적 개혁, 혁신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됐어요. 아마 이 정부에서도 추진하려 할 거예요.
사실 개념의 공유는 입장의 공유이기도 하죠. 신보수주의와 신좌파가 공유하고 있는 입장은 ‘시장은 지켜야 한다’입니다. 이 시장 체제는 거부할 수 없다는 거예요. 신보수주의가 ‘시장이 전부야’라고 얘기한다면 신좌파는 ‘아니야, 시장은 불완전하니까 보완해야 해’라고 얘기하는 것이고, 신보수주의가 ‘자본주의 만세’라고 말한다면 신좌파는 ‘그렇지 않아, 나쁜 자본주의와 착한 자본주의가 있어. 착한 자본주의를 해야 해’라고 얘기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죠. 그리고 ‘착한 자본주의’에 대한 요청이 우리한테 진보, 또는 좌파의 목소리로 둔갑해 정말 착한 자본주의가 가능할 것 같은 환상을 가지게 만들어요.
착한 자본주의는 가능할까요?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아요. 웰빙, 미니멀라이프, 다운사이징, 셰어링, 코하우징, 협동조합, 공유경제,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기본소득......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이런 개념과 운동들이 하나같이 시장 안으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가는 건, 반자본주의의 관점에 서서 자본주의 사회의 균열을 내는 저항운동이기를 포기하고 전부 ‘자본주의도 조금 좋아질 수있어’, ‘조금 더 평등해질 수 있겠어’라는 데 머물렀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착한 자본주의를 포기해야 히요. 착한 자본주의가 아닌 철저한 반자본주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낫게 바꾸는 운동을 또는 실천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투철하지 않고 어물어물하는 순간 자본주의로, 시장으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다른 사회는 가능하고 또 반드시 와요. 그 믿음이 계속해서 이 입장에 서도록 스스로를 견인할 수 있습니다.
켈리송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쏙쏙 잘해주셔서 감사해요. 교육을 선도하는 분들이, 담론이 이렇게 기울어져, ‘자유’, ‘인권’, ‘혁신’의 서양주의적 철학에서 탄생한 정치 • 사상적 토대를 이해하지 않고 마구 수입해 들여와서, 손쉽게 자본주의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오늘의 우리네 교육의 심각함을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거든요. 철학과 사상 관련 책 몇 권도 읽어보지 않고, 고민해보지 않고, 그저 현상에 드러난, 전통과 권위와 관료주의에 반대의 기치를 들이대며 적용하니, 그런 분들이 오늘날 좌파의 기수에서 서서 만드는 담론에 의구심을 가지고 해체와 파괴가 필요하다는 현장교사의 재구성된 언어생성이 시급하다는 데에 조바심을 내고 있지요>
2017.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