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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회개냐? 심판이냐? (시 7:12)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사람이 죄를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칼을 갈으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칼을 가지고 계셔서 부정한 것을 들어 인간을 벌하십니다. 이 사악한 세대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정의의 칼을 빼앗아 버리려고 무던히 애를 써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지 결코 "불의와 범법"은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스스로 애써 입증하려 하고 있습니다. 2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설교단은 하나의 두려움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시내산과 같아 여기에서 하나님의 두려운 분노의 뇌성벽력이 발하였고 박스터(Baxter)나 번연(Bunyan)의 입으로부터 사람들은 앞으로 올 심판에 대하여 공포에 찬 설교를 듣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아마 어떤 청교도의 조상들은 이와 같이 그들의 선교활동에서 지나치게 주님의 존재를 두렵게 인식시켰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대는 이러한 두려움을 한결같이 잊으려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신다고 말하면 이는 마치 이들에게 겁을 주어 종교로 귀의케 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되고, 또한 죄의 삯은 파멸을 초래할 뿐이라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우리가 저들을 을러서 선을 행하도록 한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조롱하여 말하더라도 우리는 개의치 않으려 합니다. 인간들이 범죄하면 이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고 일러주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느끼고 있을 뿐이며 세상이 죄를 포기치 않는 한 우리의 경고를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외침은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사랑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엄위하시고 굴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그가 공의로우신 분이 아니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롭지 않으시다면 자비로울 수가 없습니다. 악한 자의 처벌은 기타 인류에 대한 가장 큰 자비에 의해서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이제 읽어드리고자 하는 그의 말씀은 진실한 것이므로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시9:17).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심이며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을 화전이로다"(시7:12,13).
그렇습니다.
이 세대는 사악하여서 지옥이 없다고 합니다. 위선적이기 때문에 형벌을 망각하려 합니다. 이러한 사상이 너무 만연하였기 때문에 형벌을 망각하려 합니다. 이러한 사상이 너무 만연하였기 때문에 심지어 복음의 사역자들조차 진노의 날을 주장하는 자신들의 사명을 주춤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엄숙히 말해 줄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하심에 따라 의무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전파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악한 자의 말로를 전파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만을 전파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만일 "사람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칼을 갈으신다"고 경고하지 않는 한 우리가 어떻게 우리 전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여러곳에서 장차 형벌에 관한 이론이 버림을 받고 하나의 공상으로서 조소를 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이 말씀이 실현될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아합은 미가야가 다시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말할 때 그를 비웃었습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도 이 세상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 어리석은 늙은이(그들의 판단에 의하면)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무 꼭대기로 오르고 홍수가 그들의 뒤를 따라 차 오를 때 노아의 예언이 거짓이었다고 말하였겠습니까? 화살이 아합의 가슴을 꿰뚫었을 때에 그는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를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그는 선지자 미가야가 자기에게 거짓말을 한 줄로 생각하였겠습니까? 지금도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다가 올 심판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증거하면 여러분은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과오가 스스로 드러나고 멸망이 여러분을 휩쓸 적에 우리가 거짓말쟁이였다고 말하겠습니까? 돌아 서서 우리를 향하여 조롱하며 우리가 거짓말을 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충실하게 증거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영예의 보상이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가끔, 지금 내가 여러분 앞에 서서 선교사업에 종사하지만 만일 내가 죽은 후 여러분의 영혼에 불충실하였음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의 영적 세계의 장면이 얼마나 슬픈 것이 될까 하는 두려움에 잠김니다. 앞으로 올 세계에서 여러분이 나에게 "선생이여, 당신은 우리의 비위만 맞추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영원한 의식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 대하여 정당하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정도 우리를 두려워하여 무기력하게 증거하였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영원한 고통에 대하여는 듣지 않으려 하는 줄을 알고 이에 관하여는 덮어두고 언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이와 같은 것이 나의 태도라면 여러분께서는 아마도 영원히 나를 쳐다보며 저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노니 이와 같은 일이 없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내가 죽을 때 누가 무어라고 말하든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사람들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 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있는 한 이 진리를 전하는데 진력할 것이며, 나에게 어떠한 오명이나 악평이 이전보다 10배나 더 주어질지라도 이 불안정한 세대에 충성을 다하게 되고 하나님과 나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게 된다면 이를 기꺼이 감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엄숙하며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부드러웁게 여러분 중 회개치 아니한 사람들에게 미래의 운명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첫째, 대지에서는 회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알아보고, 둘째 대지에서는 인간이 회개해야 되며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벌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숙고해 보고, 세번째로는 인간이 회개하는 방법과 그들의 연약하고 취약한 성격이 하나님의 성스러운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한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Ⅰ.첫째 대지로 회개의 성격에 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칼을 갈으심이여"(시7:12). 이곳에서 의미하는 회개는 실질적인 것으로서 어떠한 약속이나 맹세와 더불어 끝나는 허구적인 것이 아니요 실질적인 삶의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 어떤사람은 오늘 아침에 "주여,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겠나이다. 이제부터 죄를 짓지 아니하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겠나이다. 타락한 행위를 버리며 나의 범죄함을 바람에 흩날려 버리고 마음을 굳게 하여 하나님을 따르겠나이다."라고 말하고는 내일이면 이를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만 내일쯤이면 그 눈물은 말라붙고 심지어 교회에 나아갔다고 하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거울을 통해 자기의 얼굴을 보되 돌아서면 곧장 그 모양을 잊어버리는 그러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러한 태도는 여러분들을 구원할 수 있는 회개의 약속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맹세가 아니며 또한 엄숙한 선언이 아닙니다.
아침 햇살에 말라버리는 이슬방울 보다도 더욱 쉽게 말라 버리는 것이 진정 흘려야 할 눈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는 순간적인 마음의 감동이 아닙니다. 참으로 죄를 버리고 일상 생활에 있어서 의로운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참회개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머리를 숙이고 "주여, 나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나이다"하고서는 얼마 후에 다시금 죄를 짓는다면 여러분의 회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며 여러분의 파멸은 이전보다 더욱 확실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창조주에게 맹세를 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범하는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란 진정 우리의 외부에 나타나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회개라야 합니다.
다음으로 참된 회개는 순수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 저는 이 죄와 저 죄만큼은 버리겠습니다만 어떤 것만큼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오,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거니와 참된 회개는 한가지의 죄를 버린다거나 50가지의 죄를 버린다고 하는 따위의 것은 아닙니다. 모든 죄를 엄숙하게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이 저주받을 죄를 한가지 만이라도 마음 가운데 숨기신다면 여러분의 회개는 단지 부끄러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가지의 죄만을 지속하면서 다른 모든 죄악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한가지 죄악은 마치 배의 어느 부분에 구멍이 뚫린 것과 같아서 여러분의 영혼을 침수시키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의 외양적인 부도덕을 버린다 해서 만족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생활의 부패된 죄를 다소 버렸다 해서 흡족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전부냐 아니면 전무냐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가 회개하라고 말씀하심은 여러분의 모든 죄를 회개하는 것을 의미하시며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회개를 진실되고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참된 고해자는 죄 그 자체를 미워하고 죄를 범한 인간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오, 죄여, 네가 아무리 아름답게 변장을 하여도 나는 너를 멸시하노라. 네가 기쁨으로 위장을 하고 청색 비늘로 둘러싸인 뱀과 같이 눈부시게 보일지라도 나는 너의 독아(毒牙)를 알고 있기 때문에 증오하며 모양 좋은 옷을 입고 나에게 접근할지라도 나는 너로부터 달아나겠노라"라고 말합니다. 모든 죄는 버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소유하지 못합니다. 모든 범죄가 근절되지 않으면 여러분을 향해 하늘의 문은 굳게 닫혀 집니다. 그러므로 진실된 회개란 완전한 회개라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말씀에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라고 하는 것은 즉시 회개하라고 하시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혹 이 세상에서 이 생명이 다하고 내세라고 하는 암흑의 국경을 넘을 무렵에 태도를 바꾸어야겠다고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랫 동안의 범죄생활을 한 후 그 곳에서 헤어나온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검둥이가 그의 살갗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표범의 그 반점이 변할 수 있습니까? 변할 수 없을 때 죄에 물들려는 사람은 현명하게 처신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임종의 자리에서 회개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에 믿음을 덧붙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중에 회개치 않으면 건강을 잃은 후에도 결코 회개치 못할 것이라고 하는 한가지 사실에 수천가지 논쟁이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적당한 시기를 골라 죄를 고백하겠노라고 다짐을 합니다만 그러한 휴식의 시간을 찾은 사람은 거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길에 쓰러져 죽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도 죽고 작업을 하다가 숨을 거두기도 합니다. 죽음이 서서히 오는 것이라면 여유가 있겠으나 회개에 적합한 시기는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과 같은 사람들이 임종의 자리에서, "오, 내가 지금 하나님을 찾고 자비를 구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임종의 고통만으로 회개의 고통 없이 족하지 않은가? 후회로써 영혼의 아픔을 당함이 없이 이 육체적인 고통으로 충분한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죄인이여!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오늘날 그의 음성 듣기를 원하거든 너의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듯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경이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시면 결코 지체하여서는 안됩니다. 죄를 회개할 또 다른 날은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말씀은 "곧장 회개하라"라고 하십니다. 유대교 선생들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죽기 하루 전에 회개토록 하라 내일 그가 죽을지 모르므로 오늘 악의 행위에서 벗어나도록 하게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바로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외에 여러분께서 회개해야 할 어떤 기간을 약속하신 바 없습니다.
더욱이 절대적인 필요로서 이곳에 기술된 회개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이는 가공적인 눈물이 아닙니다. 이는 슬픔의 깃발을 내걸고 그 사이에서 여러분의 마음이 흥겨움을 지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며, 내부에 조명을 가지고 거짓 회개자에 의해서 모든 창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마음의 촛불을 꺼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참된 회개자의 영혼의 슬픔 입니다. 사람은 모든 외부적인 죄와 절연하면서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생활은 물론 마음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는 자기의 영혼을 주께 맡기고 영원히 그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생활의 범죄는 물론 마음의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아! 여러분, 우리들 중 누구도 거짓이나 허구적인 회개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회개를 한 것으로 착각하지 맙시다. 단지 가냘픈 인간성의 역사인 것을 성경의 역사인양 취급하지 맙시다. 아마도 우리 자신의 본연의 태도로 돌아오고 만 것을 마치 구원을 받은 양 회개하였다고 생각지 맙시다. 그리고 하나의 악에서 다른 악으로, 또는 악덕에서 미덕으로 전환하였다고 해서 만족한 것으로 여기지 맙시다. 영혼 전체가 변화 되어 옛사람이 그리스도 주 안에서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한 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회개는 영원한 것이라야 합니다. 오늘 내가 참된 회개를 했다 해서 하나님께 전향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무덤에서 잠들 때까지 나의 전 생애를 통하여 죄를 단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주일 동안 정직한 생활을 하는 것이 구원을 얻는 증거로 공상하여서는 안됩니다. 악을 영원히 증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변화란 덧없이 무상한 것도 아니요, 피상적인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잡초를 깎아 내는 것이 아니라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루의 먼지를 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불결하게 하는 원인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옛적에 부유하고 호화스럽게 군주들이 자기들의 고향에 오면 샘에서 술과 우유가 넘쳐 흐르게 합니다. 그러나 이 샘은 항상 술과 우유가 흐르지는 않습니다. 내일이면 이전처럼 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러분은 집에 가셔서 기도를 합니다. 오늘은 진지하고 내일은 정직하며 그 다음날은 경건한 것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다시금 이전의 상태로 돌아 간다면 성경에서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라고 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의 회개는 여러분 마음 가운데 성스러운 은혜의 증거가 되는 대신 여러분은 지옥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율법상의 회개와 복음적인 회개를 구별하기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구별되는 일정한 표시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심심치 않게 함으로써 한 두 가지를 주목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영혼에서 이들을 발견하도록 하나님께 기원합니다! 율법상 회개는 처벌을 두려워 하는 것이고 복음적 회개는 죄짓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율법상 회개는 하나님의 분노를 두렵게 여기지만 복음적 회개는 분노, 또는 죄의 과정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이 그의 안에서 역사하시는 회개의 은혜로 말미암아 회개할 때 죄의 대가인 처벌이 두려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죄 그 자체를 회개하게 되며, 그는 또한 비록 악인을 위하여 파놓은 무덤이나 구더기도 타지 않는 불이 없다 할지라도 그는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이러한 회개야말로 여러분 모두가 해야 할 회개이며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잃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죄는 증오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죽음에 이르러서 영원한 고뇌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을 회개로 생각지 마십시오. 모든 도적들은 형무소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를 놓아주면 내일 또 도적질을 할 것입니다. 살인을 범한 사람들은 교수대를 바라보고는 벌벌 떱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 남을 수 있다면 그들은 또 살인을 하게 됩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처벌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그 자체를 증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회개를 하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무서운 말씀이 여러분에게 다시금 전해져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여기에 또 한가지 암시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혼을 구원할 참되고 복음적인 회개를 하고 있다면 죄 그 자체에 대하여 미워할 뿐만 아니라 그 죄를 극단으로 미워한 나머지 자기 자신의 회개가 이 죄를 씻어낼 수 없고 다만 탁월하신 주님의 은혜의 활동만이 자기의 죄를 씻어 없게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만일 여러분 중 누가 죄를 회개하되 거룩한 생활의 과정에 의해서 죄를 지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미래에 있어서 올바른 생활을 함으로써 과거의 죄를 지워버릴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여러분은 참된 회개를 한 바가 되지 않습니다. 참된 회개란 인간으로 하여금
"너희가 죄를 뉘우치기 위하여 영원히 수고하고
눈물을 흘려도 죄를 사함 받지 못하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너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느니라."
라고 느끼게 하며 또한 죄가 여러분 마음 가운데서 부패하고 지겨운 것으로 혐오를 받아 죽임을 받고 여러분 눈 밖에서 묻어버리고자 하나 그리스도께서 무덤을 파 주시지 않으면 결코 묻어버릴 수 없다고 느끼면 여러분은 죄를 회개한 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마땅한 것을 겸허하게 고백하고 우리를 자신의 어떠한 행위로서도 이를 피하지 못함을 알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공로만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회개하지 못하였다면 다윗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겠습니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Ⅱ. 두번째 대지를 살펴 봅시다. 이는 숙고해 보기에 더욱 두려운 것이어서 내 기분 같아서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전도자의 사명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다루는 의사보다도 우리의 기분에 좌우되어서는 안될 줄 압니다. 우리는 때때로 탈저(脫疽)를 잘라내야 하는 곳에 칼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가끔 인간의 양심에 채찍을 가하여 거룩한 성령이 인간의 양심을 깨우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일 인간이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칼을 갈아 인간을 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열성가인 박스터(Baxter)는 "죄인이여!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이다. 네가 회개하든 심판을 받든 그것은 너에게 달려 있다"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왜 회개를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되는가 하는 것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를 묵인하시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지혜에 심취하여 하나님께서는 공의롭지 못하다고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려 깊은 이성을 지니고 있고 생각이 건전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공의롭지 못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공의롭지 못한 왕을 훌륭하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의가 존재하지 않는 정부를 훌륭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즉 온 땅의 재판장이시요 왕이신 하나님께서 공의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를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믿되 공의롭지는 못하다고 한다면 이는 그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그를 하나님으로 생각지 않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속에 공의롭지 않으시다면 이 세상을 통치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는 만일 하나님께서 계신디면 그는 공의로우실 것이라고 하는 자연적인 지각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믿으시되 반드시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이심도 아울러 믿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높은 보좌에 앉아 계셔서 죄인들을 굽어 보실 때 착한 사람들이나 악한 사람들을 동일하게 굽어보시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똑같은 상을 내리실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하나님을 가리켜 말할 때는 그가 곧 공의로우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 죄에 대한 처벌이 없을 거라는 것과 회개함이 없이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거역하는 일입니다.
도대체 성스러운 역사의 기록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까? 만일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지금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시지 않는다 해서 그가 이를 형벌하시지 아니할까요? 이를테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벌하여 이 행복한 곳에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절도를 했다 해서 우리의 조상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습니까? 그는 이 세상을 물로 채워 지구 내에서 그의 피조물을 홍수로써 침수시키지 아니하였습니까? 그런데도 그가 죄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소돔을 멸망시킨 유황불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보여줍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삼킨 땅의 벌려진 입이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아끼시지 않는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홍해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바로에게 보여주신 기적들이, 산헤립에게 행하신 기적적인 파괴들이 하나님은 공의로우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대에서 이와 동일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하여 말씀 드린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아니한다고 누가 단언하겠습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시는 감옥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실제로 죄를 복수하신 몇 가지 실례를 믿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건들이 다 심판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극장에서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관객이 죽음을 당한 것이 그들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유사한 일은 슬프게도 우리의 교회에서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심판은 다음 세계를 위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이 세상에서 벌하신다고 믿는다면 그의 섭리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45). 인간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들어 예로써 안식일에 뱃놀이에서 보트가 뒤집혔다면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죄의 심판이라고 말함으로써 종교를 불경케 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흥청거리며 지내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라고 확실히 믿는 바이나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심판을 미래에 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처벌을 받은 몇 가지 실례가 있었음은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기 거북한 한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비참한 인간을 내 자신이 목격했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저주를 자기의 머리에서 내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흥분과 분노 속에서 그는 그의 머리가 돌아버리고 눈이 빠지고 턱이 달라붙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후 그가 그의 말을 심하게 다루는 채찍의 끝이 그의 눈에 들어가 처음엔 눈에 염증이 생기더니 턱이 잠기고 내가 보니 이는 그가 빈 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즉 그의 머리가 돌아 버리고 그의 시력이 사라지고 악물린 이빨을 통한 말 외에는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비슷한 실례로 데비제스(Devizes)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즉 한 여인이 그의 손아귀에 한 포대 양식 값을 쥐고서도 이 값을 지불했다고 하자 그 장소에서 그만 쓰러져 죽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실례들은 어쩌면 기이한 일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일들이 우연히 발생했다고 생각할 만큼 그렇게 쉽사리 믿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내포되었다고 믿습니다. 이들 사건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고 하는 일면의 암시라고 믿으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소나기같이 사람들에게 퍼붓지 않더라도 언젠가 이 세상을 불의로 말미암아 징벌할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한 두 가지씩 그의 노여움을 발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3. 여러분에게 이 문제를 놓고 더 이상 이러쿵 저러쿵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양심이 하나님께서는 죄를 응징하실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비웃으며 말씀하시기를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러한 양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양심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인간이 그들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욱 인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존 번연이 말한 바와 같이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큰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양심이 볼 수 없는 캄캄한 방에 자신을 감추지만 그럴 때마다 양심이 밖에서 더욱 힘있게 소리치기 때문에 지식은 그의 집에서 양심의 소리를 통해서 동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은 "나는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리라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러분은 그가 벌하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의 은밀한 두려움을 고백하기를 꺼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종종 여러분이 강력하게 주장해 온 바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께서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여러분 자신의 말을 믿었다면 여러분은 말을 할 때 그처럼 자만스럽게 행동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나는 여러분께서 병에 걸리면 곧 자비를 구하는 줄을 압니다. 나는 여러분이 죽을 때 지옥을 믿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양심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며 우리가 부인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죄를 벌하신다고 하는 것을 믿게 합니다.
이야기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전에도 소개했지만 인간이 비록 이전에 하나님을 부인했을지라도 어려운 시기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 하는 인상 깊은 이야기입니다. 캐나다의 어느 개척지에 한 훌륭한 성직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그는 이삭이 그러했듯이 사색하기 위하여 들에 나아갔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그는 숲 속의 경계선까지 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풀 속의 발자국을 따라 계속하여 사색하면서 걷다가 마침내 황혼의 그림자가 그의 주변을 엄습하게 되자 숲 속에서 밤을 지낼 일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나무에 올라가 가냘픈 나뭇잎으로 덮개를 삼고 지낼 일을 생각하니 두려웠습니다. 그러자 순간 그는 나무 사이로 저 건너편에 한줄기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곳에 가면 호의적인 은신처를 발견할 수 있을 시골집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빛이라 생각하면서 급히 서둘러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곳에서 그는 깨끗이 청소된 장소와 연단을 만들어 놓은 나무들과 그 위에서 군중들에게 말하고 있는 연설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내심 어두운 숲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려고 모인 집회이며 몇 사람의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하여 이 저녁 늦게 설교하려고 모인 집회를 내가 우연히 만났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까이 이르자 놀랍고 두렵게도 그는 하나님을 비난하는 한 젊은 사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최악의 나쁜 일을 해볼테면 해보라고 감히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높으신 이의 공의에 대해서 분노 속에서 두려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세에 대한 그의 신념에 대해서 가장 뻔뻔스럽고 두려운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전연 기묘한 장면이었습니다. 주위는 짙은 어두움이 가득 차 있었지만 이 곳은 솔방울 불로 인해서 이곳 저곳이 불빛으로 비취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연설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가 자리에 앉자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으며 사람마다 그의 칭찬에 앞장을 섰습니다. '이대로 버려두어서는 안되겠다. 일어나서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하나님의 명예와 그의 복음이 이를 요구하고 있다'라고 이 성직자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웠습니다. 갑자기 이곳에 왔기 때문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마침내 모험을 할뻔하였습니다.
마침 그때 어느 정정하고 강인하게 생긴 중년의 한 사나이가 일어서서 그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면서 말하기를 "여러분, 오늘 밤 여러분에게 한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저 연설자 이야기에 대해서 논박하고자 하는 바는 아닙니다. 나는 또한 그의 이야기를 비평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가 발언한 것에 대해서 내가 불경하다고 믿는 것에 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단지 하나의 사실을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 난 연후에 결론은 여러분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어저께 나는 저 건너편 강둑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홍수 속에서 한 젊은 사람이 보트를 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보트는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급류를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는 노를 저을 수 없게 되었고 도저히 강가로 보트를 끌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청년은 불안해 떨면서 두 손을 맞잡고 있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이 청년은 살려고 하는 시도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오 하나님! 나의 영혼을 구하여 주소서!라고 진지하게 외쳤습니다. 이어서 나는 그날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만일 그의 목숨이 살아나면 결코 다시는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늘의 자비를 애원하고 진지하게 그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겠노라고 탄원하는 소리를 듣고 나의 이 두 손이 그를 구원하였습니다. 내가 그 강물로 뛰어들어 보트를 강가로 끌어내어 그의 목숨을 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연설을 하고 그의 창조주를 저주하였습니다. 여러 선생님들 이를 어떻게 말씀 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은 말을 끝맺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때 이 젊은 사람의 심정이 어떠하였으리라 짐작하실 것이며 순간 청중들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을 것인가, 그리고 이들이 결국 두려움이 저 멀리에 있는 이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여 교만스럽고 허황되게 욕할 수 있지만 반면 무덤의 가장자리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을 욕되게 생각하는 것이 그리 장엄한 일이 아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는 죄를 벌하신다고 납득시키는 충분한 양심을 소유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고로 오늘 본문 말씀은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서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라고 메아리 치고 있을 것을 믿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를 벌하신다고 증거하는 이 두려운 일에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몇 가지 그의 성스러운 말씀의 선언을 소개하여 드리고 회개라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 선생들이여! 여러분들은 아마 지옥의 불이 하나의 가공적인 것이며 지옥 밑바닥의 불이 단지 천주교인들의 꿈으로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일 여러분들이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주인께서는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막9:48)라고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이는 은유적인 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는 영혼과 육체를 지옥에 던질 수 있느리라"(마10:28)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악마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무서운 고통이 마련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우리의 주께서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 가리라"(마25:46).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옥이 있다고 믿는 것은 철학적인 것이 아니며 이론과도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여러분은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곳에 없다 손 치더라도 마치 지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한때 가난하고 경건한 사람이 "선생님,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취하고 싶습니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당신과 같이 잘되어 갈 것이고 만일 지옥이 있다면 당신에게는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왜 "만일?"이란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옥이 있는 줄을 압니다. 어떤 사람도 이 땅에 태어나서 교육을 받고 그의 양심이 진리를 알도록 깨우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분의 진지한 사고에 이러한 사상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늘나라에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을 변화시켜 여러분을 새롭게 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여러분께서 새로워지지 아니하면 내세의 고통에 있어서 두려워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필연코 여러분의 것이 된다고 하는 생각을 지니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이러한 생각을 지니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이러한 생각을 여러분 자신의 양심에 적용시키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생각을 기회 삼아 여러분을 회개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Ⅲ. 이제 회개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홀로 복음적인 회개를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렇다면 회개의 필요성을 증거하면서 설교하는 나의 노력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 문제의 결론을 위해 하나님 아래서 어떤 목적의 설교를 하겠습니다. 죄인아! 너는 너무도 죄가 많아서 너 혼자 그 죄를 회개할 수 있는지 나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러나 갈보리에서 죽으신 이가 죄의 회개와 용서를 주시려고 높임을 받으셨다. 오늘 아침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이 죄인이라고 느끼십니까? 그러시다면 주님께 회개함을 달라고 간청하십시오. 비록 여러분께서 스스로 회개하지 못할지라도 그는 여러분 마음 속에 성령을 통하여 회개의 역사를 이룩하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철과 같습니까? 주님께서는 그의 사랑의 용광로 속에 철과 같은 마음을 넣어 이를 녹이십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냉혹하십니까?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을 태양 앞에 얼음이 녹듯이 녹이십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회개치 못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회개의 필요를 느끼신다면 거듭 여러분에게 "회개하라"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회개의 지각을 앞서는 어떤 행동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 집에 돌아 가셔서 만일 여러분이 죄를 지으신 것을 느끼시면서도 이를 충분히 회개치 못함을 한(恨)하신다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자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원하신 대로 죄를 회개치 못함을 하나님께 말씀 드리시며 여러분의 마음이 강퍅함을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얼음과 같이 차가움을 말씀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구원의 필요를 느끼게 하셨다면 여러분은 그와 같은 고백을 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이와 같은 일이 회개를 하고자 하는 여러분의 마음에 짐이 된다면 최선의 방법을 찾도록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한 시간 가량 여러분의 죄를 더듬는데 노력해 보십시오. 죄에 대한 확신이 섰다면 또 한 시간을 소비하십시오. 어디서냐고요? 갈보리에서 보내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죽으신 주님의 역사와 신비가 포함된 기록을 읽어보십시오. 손에서 피가 떨어지고 발에서 선혈이 용솟음치고 있는 이 영광스러운 인자를 보고 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성령의 도움으로도 여러분께서 회개하지 못한다면 나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옛 말씀에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고 느끼면 사랑한다고 느낄 때까지 그를 사랑하라. 너희가 믿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믿는다고 느끼게 될 때까지 믿어라"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지로 죄를 회개하면서도 회개치 못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러한 회개를 여러분이 죄를 회개하였다고 느낄 때까지 간직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의 허물을 인정하시고 죄를 고백하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멸하신다면 그가 공정하신 분이라고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엄숙히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십시오.
"귀하신 어린양 머리 위에
내 믿음의 손을 얹고
지은 죄를 뉘우치고 서서
당신 앞에 회개하나이다."
오! 여러분 가운데 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집에 돌아가서 회개한다면 나는 그에게 무엇이든지 주고 싶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영혼 가운데 하나를 살만한 재물을 소유하고 있다면 여러분 하나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하여 기꺼이 이 재물을 바치고 싶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처음으로 나에게 임하던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그 장소는 지금 이 자리와는 매우 다르며 어느 특이한 종파 사이의 조그마한 부속 예배당이었습니다. 그 곳에 죄의식을 가지고 나는 갔었습니다. 그때 설교자께서 강단에 올라가셔서 성경책을 펴고 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그리고는 내가 생각하니 그의 눈이 나를 응시하면서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젊은이여! 보라! 보라! 너는 이 세상 사람 중의 하나다. 너는 네가 이 세상 사람 중의 한 사람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너는 구세주의 필요를 알고 있다. 구세주께서 너를 구원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떨고 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나를 보라고 말씀하신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 그때 얼마나 나의 영혼이 떨고 있었는지요! 도대체 이 사람이 나를,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나는 믿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헤엄을 치든지 가라앉든지 이 강을 건너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내가 죄로 인하여 우울하고 낙담하며 이렇게 사는 것보단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었으나 이 순간 나는 하나님을 따를 것을 희망했습니다. 그러자 나의 양심 가운데 희망찬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같이 보였었습니다.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집에 돌아 왔습니다. 나의 변화한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내가 왜 그토록 즐거워하는가를 물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주님을 믿게 되었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성경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오! 오늘 아침 이곳에 이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또한 죄인의 우두머리이며 악하고 악한 죄인이 여기에는 없습니까? 여러분 중 아마 이 20여 년 간을 하나님의 집에 나와보지 아니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가장 어둡고 악한 죄를 지니고 이곳에 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과 그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는 바는 곧,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