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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신자의 죄 (롬 1:18~23)
하용조 목사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 인간은 죄인이다.
로마서 3장 23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성경이 끝까지 선포하는 것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적당히 죄를 지은 죄인이 아니라 철저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 안에는 구원이 없다 선한 것이 없다" 한 구석이라도 인간은 구원받을 만한 구석이 없다. 말합니다
로마서 3장 11절에서 18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주변과 자신과 역사를 깊이 묵상해 보면 죄인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렇습니다. 도덕적으로 좀 선하고 덜 선한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 죄는 용서받아야 합니다.
죄인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는 불신자의 죄입니다(요 16:9).
두 번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신자의 죄입니다. 다 도피할 수 없는 죄입니다.
죄 역시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죄가 있고 사람에게 대한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에게 지은 죄는 사람에게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구분 못하면 사람에게 죄를 짓고 하나님께 용서를 빕니다. 세상에서 죄를 지으면 세상 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게 사람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지은 죄를 가지고 사람에게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해결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 로마서 1장 18절을 보면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1장 18절에서 32절까지는 모든 자연인이 죄인인 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2장으로 넘어가면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신자들도 역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던지 안 믿던지 똑같이 도망갈 수 없는 죄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가 왜 이토록 철저하게 인간을 죄인이라고 하는가? 하는 이유는 인간이 죄인이 아니면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절망이 없이 소망이 없으며 복음이 없이 부활이 없습니다. 철저한 자기 부정이 없이 주님을 따르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왜 희미합니까? 우리의 구원이 왜 감격이 없습니까?
왜 능력이 없습니까? 간단합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죄를 철저하게 규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태양 앞에 촛불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기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감격스럽지가 않고 소중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철저한 자기 죄에 대한 죄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하나님의 진노는 쌓인다.
사도 바울은 모두를 이제 1장 18절로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쫓아나타나나니”
이것은 하나의 서론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장 서론의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라는 것입니다. 16,17절에 그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죄 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는 것이 대칭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 진노 중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진노와 우리들은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사람은 진노 아래 있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습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차 있습니다. 죄는 용서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숨겨도 안 되고 세월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란 쌓여지는 것입니다. 삼풍백화점이 어떤 무게까지는 버티다가도 무게가 넘치면 그 순간에 확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죄는 없어지지 않고 쌓아져갑니다. 잊어버린 것 같아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죄를 씻지 않는 한 그 죄는 그대로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는 날 그것이 터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다음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 라고 하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복음으로 그 죄가 용서함 받아야 합니다.
이 민족의 수많은 죄가 있습니다. 억울하게 소리 지르고 피 흘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쌓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방에서 한 말이 그 날에는 지붕에서 나팔부는 것과 같이 들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빨리 없애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없애야만 진노가 쌓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세무서에 여러분에 관한 정보가 쌓아지듯이 우리들의 과거의 죄에 대한 목록들이 다 쌓아지는 것입니다. 역사의 죄들도 씻김 받고 용서받지 않고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이 진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경건치 않음과 모든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임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대환란의 많은 일들입니다.
아담 이후 홍수.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 사건들을 보십시오. 모든 역사의 대 문명들 앗시리아 - 바벨론 - 페르시아 - 헬라 - 로마 중세를 거치면서 인간의 모든 죄악들 소련 등 공산주의가 저지른 많은 죄악들 자본주의가 저지른 많은 죄악들 여러 가지 선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이 저지른 많은 죄악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없어집니까? 다 쌓여 있습니다.
이것이 대 환란이요 심판입니다. 심판이 없다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 아닙니다. 심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의로운 자들이 순교자들이 하소연 할 곳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국가와 인류가 저지른 죄악들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 쌓입니다. 이 심판을 막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분 안에서 모든 죄악과 저주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9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진노 중에 지나가나이다"
하나님이 공의롭고 거룩하신 분이라면 사람들을 보시면서 하루도 분노를 안 터뜨린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편 7편 1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며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세례 요한은 도끼가 나무뿌리에 닿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안에 가득 찼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진노들이 하나씩 터지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하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성경은 그 사람에 대해 두 가지로 말을 합니다.
첫째는 모든 경건치 않음입니다.
둘째는 불의한 것입니다.
경건치 않은 것은 18절부터 23, 24절까지 나타나 있으며 불의에 대해서는 28절에서 32절까지 두개로 나누어서 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본질적인 죄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진리보다는 거짓을 좋아합니다. 진리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는 것을 보면 마음은 진리를 원하지만 악을 선택합니다. 자꾸 부정적이 됩니다. 비판하고 싶고 독점하고 싶고 지배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습니까? 아무도 아닙니다. 원래부터 그런 죄에 대한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합니까? 악합니까? 악합니다.
죄에 대한 깊은 상처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며 하나님 찾기를 거부하며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부정적이 됩니다.
첫 번째 부류는 불경건한 사람입니다. 불경건 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시 14:1)' 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며 (godless) .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과 내 인생이 관계를 맺기를 거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경건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존경하고, 거룩하게 생각하고, 경외하는 마음이라면 불경건은 그와 반대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죄이며 본질적인 죄이고 원죄 입니다.
두 번째로 불의가 있습니다. 불의는 어디서부터 옵니까? 하나님을 모시지 않거나 경건하게 생활하지 않으면 불의가 옵니다. 도덕적 윤리적 타락이 옵니다.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자신이 부패해 집니다. 그 상태가 불의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
불경건은 첫 번째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분명히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하나님을 느끼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들은 다 거짓말쟁이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의 이성과 양심이 다 알게 해 주었는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무신론 역시 하나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주장이요, 사상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요, 거부요, 도전입니다. 하나님과 전쟁하겠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속에 들어오는 것을 자꾸 거부합니다.
이것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있다 라고 말씀합니다. 언제 이것을 알게 됩니까?
병들고 죽을 때가 되면 이것을 압니다. 권력 있고 돈 있고 얼굴이 좋고 기운이 있을 때는 잘 모릅니다. 병들어 죽음 앞에 서서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야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주었다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찌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보이지 아니하는 능력과 신성을 모든 자연 만물에 심어두었다라고 하십니다.
창조자가 무엇을 만들 때 그 만든 것과 그 자신은 당연히 상관이 있습니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 속에는 그 화가가 그림 안에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 그 작가의 인격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우주만물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가 만드신 것에는 만드신 자의 호흡과 인격이 들어있습니다. 들에 핀 한 송이의 꽃을 보아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흐르는 공기를 보아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인간의 몸은 어떻습니까? 이것이 어찌 우연일 수 있겠습니까? 진화가 되었고 우연히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창조자가 없이는 이것이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깨끗한 양심과 이성으로 판단한다면 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오만하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도전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죄 의지입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 뒤에는 사단의 세력이 웅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핑계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이시며 거룩하시며 인간의 죄에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정리하십시오. 끌고 다니지 마십시오.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이 구원이고 축복입니다.
▶ 하나님을 거부하는데서 생기는 결과
이제 하나님을 마음속에 두기 싫어하는 것의 결과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이 없으면 감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이 허망하고 미련해지며 어두워집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곰팡이가 생기고 썩고 지저분해지고 부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제와 통제가 안 됩니다. 남의 물건도 막 가져옵니다. 기준이 없습니다. 인격을 잃어버립니다.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썩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이 없으면 썩어질 인간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썩어질 동물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없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다 미쳐버립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인간을 가져다 놓습니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국가적 집단적 우상입니다. 로마 황제는 다 신입니다. 개인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으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망령되이 욕합니다. 자기 자신이 신 입니다. 자신의 정욕과 야망대로 삽니다.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피해를 줍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짐승과 버러지의 우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것을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복음(福音)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용서가 있습니다. 진노가 사라지고 심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환란이 와도 그것이 그 사람을 피해가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인간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새로 옷 입고 그 앞에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