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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필창작아카데미 5차시 자료(2026년 3월 30일 월)
1. 달빛 아래 선 영웅 강 병장을 기리며 / 김창남 2
1. 군대 동기인 강 병장이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2. 작년 봄, 강 병장은 우리를 서울로 불러 크게 한턱내며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호기롭게 약속했었지만, 차일피일하다 보니 어느새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그날의 호탕한 웃음이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3. ‘의리 빼면 시체’라 불리던 친구였는데 떠나는 길은 너무도 허망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 그는 살집이 꽤 붙어, 턱선은 겹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와 있었다. 친구들이 건강을 걱정하자, 그는 병원에서 별 이상은 없다며 체중이나 좀 줄이고 술을 끊으라고 했다며 껄껄 웃었더랬다. 그랬던 그가 이토록 쉽게 세상을 떠나다니 믿기지 않았다.
4. 상가에 모인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 시절 그 사건으로 흘러갔다.
5. 전역을 몇 달 앞둔 어느 토요일 밤이었다. 동기 다섯 명이 소대 내무반에서 돌아가며 주번하사를 맞고 있던 시기였다.
내무반원을 모두 재워 놓고, 우리는 한구석에서 몰래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위병소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외박 나간 김 일병이 돌아와서 위병소 병사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전갈이었다.
6. 그날 당직사관은 전역을 앞둔 이 준위였다. 보급부대 특성상 비상시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탓인지, 그는 “어쩌지, 어쩌지” 하며 내무반 안에서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우리 동기 다섯이 나섰다. 한 명은 내무반에 남아 상황을 지켜보며 소대원들을 통제하게 하고, 넷은 소대원 중에서 고참 병사 열 명을 뽑아 함께 밖으로 나갔다.
7. 연병장은 보름달이 훤히 비치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그 공간에는 서늘한 정적만이 가득했다. 김 일병은 위병소 바깥 담장 위에 총을 걸쳐 놓은 채 안쪽을 겨누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총구는 차갑게 빛났고, 그의 일그러진 얼굴도 어렴풋이 보였다.
8. 동기 둘의 인솔 아래 다섯 명은 담장을 넘어 김 일병 뒤편 밭에 매복시켰다. 강 병장과 나는 남은 다섯 명을 데리고 연병장 둘레 오동나무 그늘을 따라 위병소 쪽으로 은밀히 접근했다. 위병소에서 열대여섯 걸음 떨어진 나무 아래 우리는 숨을 죽이고 몸을 숨겼다.
9. 김 일병은 행정반에서 보급품과 병기를 관리하던 강 병장 조수였다. 입대 전에 초등학교 교직 과정을 밟던 대학생답게, 하얀 얼굴에 선량한 기색이 가득한 모범 병사였다. 내무반에서도 잔심부름을 도맡아 고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그가 이런 일을 벌인 데에는 분명 남모를 사연이 있을 터였다.
10. 사수로서 책임감을 느낀 강 병장이 어둠 속에서 소리쳤다.
“야 김 일병, 이거 뭐 하는 짓이야? 나랑 이야기 좀 하자”
김 일병이 울분 섞인 목소리로 맞받았다.
“나 오늘 죽을 겁니다. 혼자는 안 갈래요. 누구 하나 데리고 같이 갈 겁니다”
11. 강 병장은 망설임 없이 나무 그늘을 벗어나 몸을 드러내며 말했다.
“야 무슨 일인지 말해 봐. 나하고 얘기 좀 하자니까”
“오지 마세요, 쏩니다.”
강 병장은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며, 한걸음 씩 나아갔다.
“야 너, 나 쏠 수 있어. 그럼 쏴 봐”
김 일병의 울먹이는 소리가 달빛에 흩어졌다.
“오지 마세요, 오지 말아요”
12. 우리들은 숨이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달빛을 등지고 당당히 걸어가는 강 병장의 뒷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그 순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13. 총구 앞까지 다가간 강 병장이 총신을 가볍게 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위병소 밖에 매복해 있던 병사들이 달려들어 김 일병을 제압했다. 상황은 허무하리만큼 순식간에 끝났다.
14. 오랏줄에 묶여 내무반으로 끌려온 김 일병의 사연은 기가 막혔다. 낮에 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 “자고 가라”고 소매를 붙잡더란다. 눈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얼어붙었다. 여자는 군에 오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이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그는 넋이 나간 채 거리를 헤매다 술을 들이켰다. 부도가 난 집안 형편 때문에 소식이 끊긴 연인을 그런 곳에서 재회한 자괴감이 그를 미치게 했다.
15. 부대로 돌아와 보니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 무기고에서 소총을 꺼내 들고 나왔다고 했다. 횡설수설이지만 대강의 사정은 짐작이 갔다.
16. 부대장에게 전화로 보고하자 내일 아침까지 함구하고 잘 지키고 있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다음날 당직사관 이 준위의 보고를 거치며 사건은 엉뚱하게 변질되었다. 총기 사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우리가 술을 마시다 부대원 관리를 소홀히 해서 벌어진 소동으로 정리되고 말았다.
17. 진급을 앞둔 부대장에게 총기 사건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헌병대에는 탈영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해 군기 교육대로 이송했다. 이 준위는 책임에서 벗어났다. 대신 주번 하사인 강 병장은 근무 태만이라는 이유로 ‘빳다’ 스무 대를 맞았다. 우리 동기들도 함께 술을 마셨다는 죄로 열대씩 맞았다.
18. 목숨을 걸고 대형 사고를 막아낸 공로로 훈장을 받아야 마땅할 강 병장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매질 뿐이었다. 훗날 들으니 이 준위는 무사히 제대했고, 부대장은 이듬해 진급했다고 들었다. 1970년대 군대의 씁쓸한 자화상이었다.
19. 그날 이후 강 병장은 우리 소대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늘 “별거 아냐 걔가 날 못 쏠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이라며 덤덤하게 말하곤 했다. 평소 김 일병을 누구보다 잘 아는 믿음이었다. 그 의리와 배포가 사회생활에서도 빛을 발했는지 크게 성공했다.
20. 이 세상에서 조금 더 머물며 그 따뜻한 의리를 나누다 갔으면 좋았을 친구.
우리는 조용히 잔을 들어 올렸다.
“강 병장의 영혼을 위하여, 부디 그곳에선 평안하길”
이미 먼 길을 떠난 영웅의 영혼을 향해 우리는 천천히 잔을 비웠다.
* 빳다: 배트의 일본어로, 군대에서 팔 짚고 엎드린 자세인 부하에게 배트로 엉덩이를 때리는 기합의 일종
2. 세월과 사람/임미림 2
1 새해 일월에, 두 분의 어른이 세상을 떠났다. 한 분은 자식들이 찾아가면 "바쁜데 왜 왔느냐, 얼른 가"라고 하셨다던 사장 어른 이시다. 사장 어른 얘기는 손녀인 며느리에게 전해 들었다. 한 분은 언제나 쾌활하던 큰 동서이다. 두 사람 모두 집 안의 어른으로 살아온 분이었다.
2 형님은 육 년 전에 폐암 진단을 받았다. 평소 백 살까지 살고 싶다고 말했던 터라 마음이 더 아릿했다. 세월이 사람을 데려가는 이치를 모르겠다. 이제 형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3 나보다 아홉 살이 많은 형님은 팔 남매의 맏며느리이고 친정에서도 육 남매의 장녀였다. 그러나 대부분 객지에 살거나 직장에 다녀서 나와 교류가 많았다. 투병 중에 고통스럽고 후회되는 점을 많이 듣게 되었다. 옆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미미했다. 아픔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었다. 가야 할 때를 알고 있는 인생 선배의 아쉬운 마무리를 볼 수 있었다.
4 입관할 때도 금방 일어나 앉을 듯 생생한 모습이었다. 지금도 카랑한 목소리로 전화가 올 것 같다. 빈소에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간간히 웃기도 하며 삼 일을 지냈다.
5 누군가 없어져도 새로운 일이 생기고 여전히 바람은 불어온다. 거대한 자연체계가 무섭다. 그 안에 무력한 존재로 살아 있다는 것도. 제한된 시간이기에 노력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별하는 순간은 매번 힘들다.
6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상상하는 죽음의 끝은, 아득하고 먼 밑바닥으로 소용돌이치며 내려가 한 점이 되어 소멸되는 것이다. 죽음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그날이 천천히 오길 바랄 뿐이다.
7 어느 순간 말이 없어지고 멍해진다. 길을 걷다가도 고개가 떨궈지고
'후~' 시름이 뱉어진다. 가슴과 눈이 축축해지고 주저앉고 싶다.
8 내가 없어지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흥, 누가 기억이나 할까. 꽃은 그저 그 자리에 피었다 진다. 나도 내 자리에서 나답게 피었다 지면 된다. 꽃을 보러 간다. 도서관에 간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5분이건 10분이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9 병간호로 많이 지치셨을 아주버님도 걱정이 되었다. 형님은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아주버님이 불만이었다. 혼자가 되었을 때를 많이 걱정했다. 혼자라도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10 점심을 준비하다가 아주버님이 서투르게 식사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모습은 곧 남편 모습으로
바뀌어졌다. 누구보다 주방일을 싫어하는 남편이다. 나는 죽을 때도 밥 해 놓고 죽어야 하는 팔자라고 말해 왔다.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11 구정 때 간 큰 집에는 도배가 되어있었고 많이 썰렁했다. 살림이 삼분의 일 정도로 줄어 단촐해 보였다. 집안에 형님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주버님은 그동안 적적하셨는지 말을 많이 하셨다. 제상에는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이 올랐다. 한 달여 만에 모인 우리들은, 웃다가도 의기소침해지고 말이 줄어들었다. 나와 같이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12 돌아와서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회용품을 버리고 주방기구도 간단하게 남겼다. 물려받은 그릇들도 없애고 오래된 물건도 과감히 처분했다. 내 손을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많이 줄였다. 뜻있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억이나 마음의 정리도 필요했다. 멀게 느꼈던 남은 날이 확 당겨졌다. "우리 곧 죽는 대이"라던 동창의 말에 웃었지만 "길어야 십 년이다"라는 말이 정답이다. 영원히 가야 할 때를 향해 세월이 흐르고 있다.
2026. 3. 3
3. ‘ㅅ’을 새기고 떠난 그녀 / 심묘락 1.
여름 해가 길어서인지 오후 4시 퇴근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 근처는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응급실에 남겨두고 온 환자들을 떠올리며 횡단보도의 파란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건너가는 사람, 건너 오는 사람들이 뒤섞였다. 나는 주춤거리며 한쪽으로 밀려나 겨우 건넜다. 인도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누군가 내 손목을 낚아채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신호 대기 중인 자동차에 부딪칠 뻔했다. 그리고 곧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잠시 머뭇거리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Y라고 했다. 어떻게 나를 알아봤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녀와 헤어진 지 50년이 훌쩍 지났기 때문이다.
그녀와 나는 고향에서 앞뒷집에 살며 자매처럼 지냈다. 초등학교 입학도 같이했다. 온갖 재미있는 놀이로 어린 시절을 함께보내다가 부모님들의 사정으로 우리는 대구로, 그녀의 가족들은 부산으로 떠났다. 그 후로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바쁜 듯 보였는데 갑자기 나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들어가더니 구두점 앞에서 흰색 밑창에 검은색 가죽으로 된 요즘 유행하는 스니커즈를 내밀며 신어보라고 했다. 그녀가 서두르는 바람에 발에 맞는 것을 신어보게 되었다. 서둘러 결제를 하고 구두를 받아든 그녀는 기어이 식당으로 가자고 나를 또 끌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여전히 별말 없이 웃기만 했다. 궁금한 것이 참 많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눈으로 열심히 묻고 있었다. 그녀 또한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와서 생활비며 살림살이를 얻어 가셨던 일, 오빠가 내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비를 내지 않고 사라졌던 일, 그리고 몰래 나를 보증인으로 세워 곤란하게 했던 그 모든 미안한 기억들을.
샤브샤브 요리가 맛있게 보글보글 끓어 오르고 있었지만 정작 음식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더니, 말아 올린 머리에서 작은 핀을 하나 빼더니 불에 달군 핀을 새로 산 구두 뒤꿈치에다 대니 희미한 고무 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후후하고 몇 번 불고 나서 구두를 다시 쇼핑백에 넣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구두 뒤꿈치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ㅅ’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기차를 탈 시간이 되어서 역으로 가야 한다며 서둘러 일어섰다. 우리는 둘 다 한술도 뜨지 못했다. 백화점 문을 나서는 그녀의 걸음마다 그때의 기억이 사뿐사뿐 따라나섰다.
50년이 더 지난 그해 여름도 이토록 해가 길었을까. 그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그날도 전날 비가 와서 동네 앞 개울에 물이 넘쳤다. 여름방학이니 동네 아이들은 너나없이 나와서 개울에 뛰어들어 놀았다. 남자아이들은 물풀을 발로 치대며 미꾸라지를 몰아 잡고, 여자아이들은 둑에서 모래 장난을 하거나 물에 풍덩 뛰어들어 미꾸라지를 몰아 주는 일에 합세하여 노는 일이 전부였지만 재미있는 일이었다.
개울가 둑에는 아이들이 벗어 놓은 검정 고무신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살던 산골에서는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흰 고무신이 귀했고 대도시에 나가야 살 수 있었다. 조부님께서 도회지 출입을 하셨던 덕분에 우리 자매들은 흰 고무신을 신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새로산 흰 고무신을 자랑할 생각에 신이 났다. 나비 문양이 새겨진 흰 고무신을 보란 듯이 개울 둑에다 가지런히 벗어두었다. 동네 친구들과 마음껏 놀다가 저녁 무렵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집으로 가려는데 신발이 없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친구들에게 물어도 보았으나 아무도 그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개울물에 떠내려갔다면 찾을 길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맨발로 집으로 갔다. 야단맞을 일만 남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내가 흰 고무신을 잃어버린 일은 금방 동네에 소문이 났다. 엄마는 누가 급해서 신고 갔으면 몇 일 지나면 돌려줄 것이고, 큰 물에 떠내려 갔으면 찾을 수 없지 않겠느냐고만 하셨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다. 그녀가 나비 문양이 새겨진 흰 고무신을 신고 왔다. 아버지가 시장에서 사다 주셨다고 자랑을 했다. 아이들 몇몇이 모여 구경을 하며 만져보고 부러워했다. 나는 그 흰 고무신이 내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흰 고무신 뒤꿈치에 있는 ‘ㅅ’표시를 보았다. 왜냐면 나는 네 자매 중 셋째로 늘 내 것에 표시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그 신에도 머리핀을 불에 달궈 보일 듯 말 듯 표시를 해두었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그 신이 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녀의 체면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새 운동화를 신고 있었기도 했다.
그녀의 걸음마다 따라 나서던 기억이 여기까지 왔다. 긴 세월 간직해온, 어린 시절의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던 비밀을 이제야 말없이 털어놓고 떠나는 그녀의 발걸음이 부디 가벼워지기를 바랐다. 흰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을 신던 그 시절의 그녀와 나는 기적 같은 화해를 했다.
4. 축의금 증발사건/ 박인규1
1.작년 9월, 미국에서 딸아이의 결혼식을 치렀다. 태평양 건너 먼 곳에서 하는 잔치에 친구들을 부르는 게 미안해, 절친 군대 동기 모임에는 일찌감치 못을 박아두었다. "거리 문제로 피로연을 제공하지 못하는 결혼이니 축의금은 절대 사절이다. 마음만 받으마." 그렇게 일단락된 줄 알았다.
2.그런데 지난 주말, 예고도 없이 대구에 불쑥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모임의 총무 녀석과 동기 하나가 서울에서 내려온 것이다. 얼싸 반가운 마음에 동대구역으로 달려가 노릇노릇한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옛 군대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일어서려는데, 총무 녀석이 슬그머니 하얀 봉투 하나를 내민다.
3."이거, 동기들이 정성으로 모은 거다. 딸내미 축하 선물이라 생각하고 군말 말고 받아라." 한사코 손사래를 쳤지만, "동기들은 축의금을 전달하라 하고, 혼주는 안 받는다 하고 가운데서 나도 골치가 아프다..." 는 총무의 성화에 결국 지고 말았다. 봉투를 마지못해 주머니에 넣으며 부담스럽기도 하고 함빡 웃을 딸아이의 얼굴이 잠깐 스치기도 했다.
4.부조금이야 받아봤자 품앗이 이고 어차피 오늘 못 온 동기들 한데 모아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야지 하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주머니 속 봉투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총무 녀석의 눈빛이 묘하게 번뜩이기 시작했다.
5."야, 근데 대구까지 내려왔는데 시원한 회한접시는 비쌀 테고 저렴하게 막창이나 먹는 게 어때?“ 두 놈이 나의 입만 삐끗 바라보았다. 순간 이 정도는 눈치를 알아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금 돈 봉투도 받았는데 비싸야 얼마나 비싸랴. 이럴 기회도 자주 없으니 먹고 싶은 거 먹어보자며 호기롭게 승낙을 해주었다.
6.군대 생활은 항상 뒤 처지던 총무는 전광석화처럼 택시를 부르고 수성구의 어느 일본식 오마카세로 안내를 했다. 기념일에만 간다는 북해도에서 공수한 원물그대로의 덴푸라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하루에 딱 열 팀만 받는다는 바에서....나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좌불안석으로 애써 웃으며 연실 건배를 해댔다. 빨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7.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셋이서 이렇게 큰 금액이 나올 수 없다며 내역을 몇 번이나 확인해 봤다. 이곳은 와인이 잔으로 계산이 된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8.남의 속도 모르는 척 총무는 신이 났다. 평소 기타와 노래에 소질이 있는 총무 아닌가. “ 대구하면 김광석 거리 노래 소리가 예사롭지 않을 텐데. 여기까지 와서 노래 한 곡 안 하고 가면 섭섭하지 않겠냐?" 나는 돈 봉투 받은 죄로 그저 끌려 갈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번뜩이는 도심의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마이크를 놓지 않는 총무 덕에 맥주 캔은 쌓여가고 연실 과일안주들이 줄을 대고 들어왔다.
9.노래방 비용보다 안주 값이 더 나왔다. 얼핏 계산해도 부조금 반은 쓴 느낌이다. 이제 더 이상은 안된다. 적당히 구실을 대고 숙소로 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노래방에서 목을 빼고 노래를 부르는데, 내 머릿속엔 자꾸 주머니 속 봉투 생각뿐이었다. 봉투를 열 때마다 손끝에 닿는 종이 뭉치가 눈에 띄게 얇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 얄팍해지는 두께만큼 내 속도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10.다음 날 아침은 더 가관이었다. 해장이나 하고 보내려 했더니, 갑자기 한 녀석이 기지개를 크게 켜며 창밖을 본다. "야, 오늘 날씨가 딱 포항 물 회 날씨네. 여기까지 와서 바다 냄새도 안 맡고 가면 서울 가서 병나지 않겠어?“
11.결국 포항까지 운전대를 잡았다. 물 회를 사 먹이고 나니 이제는 가관 중의 가관, 결정타가 날아왔다. 차에 시동을 걸던 총무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툭 던진다. “아, 근데 올라가는 길에 기름이 좀 애매하네. 서울 올라가다 길에서 서면 어떡하냐?”
12.나는 못들은 척 했다. 차는 본인들의 문제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화려한 외출 아니었던가. 이제는 빨리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녀석들을 실은 차가 멀어지는 걸 보며 나는 헛웃음이 터졌다. 분명 축의금을 받았는데, 내 손엔 빈 봉투만 남은 꼴이다. 다른 동기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밥이라도 사야 할 텐데.
13.건성건성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웬지 마음이 편치 안았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 왔다. 바쁜 일정 속에 여기까지 와 준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함께한 이 순간, 이 스토리는 지나온 36년 이상 계속될 것이다.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차비를 보태줄 걸 그랬다.
밤늦게 전화가 왔다.
“서울 잘 도착했어, 돈 많이 썼지? 덕분에 잘 놀았어. 조만간 다른 동기들과 서울서 보자...” 이게 바로 '웬수' 같은 우정의 맛인가 보다.
5. 어느날 새가 물었다. /박선우1
1 -새가 죽는 것을 본 적 있다. 가을이 저물어가던 어느 오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예고도 없이 내 발밑으로 추락하는걸 본 적 있다. 방금까지 바람을 타며 생의 정점에 있던 존재가 찰나의 순간에 멈춰버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날개가 없었던 것처럼 수직으로 내팽개쳐진 새는 낯선 땅에서 돌멩이처럼 굳어갔다. 정갈하게 결을 이루던 깃털이 이지러지고 창공을 움켜쥐었을 가느다란 발톱은 힘이 빠진 채 굽어있었다. 어디에도 찬란하게 하늘을 유영했던 자취는 없었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추락이라니. 문득 무서워졌다.
2-숨이 멈춘 새를 땅에 묻고 낙엽을 긁어모아 덮어주곤 자리를 떴다.
3- 불행은 얼굴을 가리고 느닷없이 일상에 끼어든다. 지난달 모임에서 남편이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어느 날 머리를 감다가 목이 아팠다고 한다. 그러려니 넘긴 며칠 후엔 허리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고 대수롭지 않게 이런저런 검사를 받은 결과 난데없이 암 선고를 듣고 말았다.
4- 평온한 오후에 하늘을 비상하던 작은 새 한 마리가 그저 툭 소리를 내며 사라진 것처럼 일상의 평온함이 순간에 무너져버렸다.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오늘을 무사히 보내야 한다는 간절함만이 가득했고 행여나 감당하지 못할 소식을 듣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늘 속을 채웠다.
5 - 그래도 다행히 방사선 치료 후에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조금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 주에 조혈모세포 이식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6 - “암 선고 직후엔 시도 때도 없이 암에 대한 정보를 찾았어. 생각에 치어서 뒤척거리는 밤에도 핸드폰을 들고 검색하다가 잠이 들었고, 한밤중에 눈이 떠졌을 때도 버릇처럼 그 병에 대해 정신없이 검색하고. 머릿속은 다른 생각들이 들어설 틈이 없었던 것 같아.
7- 어느 날 남편과 마주 앉아 얼굴을 보는데 젊었던 그의 얼굴이 그려지며 한없이 가여워지더라. 당신이 왜!! 왜 하필 당신에게 이런 게 찾아왔을까!!. 나는 절망적인 이 상황이 너무 원망스러워. 남편이 옛날처럼 건강해져서 함께 늙어갔으면 좋겠어. ”
8- 두렵다. 내 발밑으로 떨어진 새를 보던 날 당혹감과 함께 형체 없는 무서움이 얼핏 들었던 것은 불행은 언제든 일상을 깨고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날마다 눈을 뜨고 가을 하늘을 날았던 작은 새가 어이없게도 오늘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형태인가!
9-견고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에서 생각지 못한 질병과 단절이, 또는 다른 형태의 불행들이 순서 없이 끼어들어 삶의 균형을 깨버리곤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내일의 약속들이 안개처럼 흩어지고 일상의 모든 풍경은 다른 무게로 다가와 심장을 쪼그라들 게 만드는 것이다.
10- 무례하기 짝이 없게 불쑥 끼어든 불행 앞에 내 지인은 그래도 주어진 일상을 평온이 이어가고 있다. 그 속이야 어떻든 멀리서 바라보는 그들의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소박하고 평범하다.
11- 남편이 암 진단을 받던 날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쌀을 씻었다고 한다. 자꾸만 속이 비워지는 것 같아서 밥 한술 크게 떠먹으면 살 것 같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밥을 지어서 볼이 미어지게 먹었다며 쓰게 웃었다.
12- 허 한 속을 부여잡고 슥슥 소리를 내는 하얀 쌀의 마찰음을 듣는 그녀를 생각한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물의 감촉을 느끼고 손가락에 힘을 주며 뽀얗게 씻겨나오는 쌀을 보았을 테지. 그녀에게 쌀을 씻는다는 건 한순간 무너져내릴 것 같은 세상의 한 귀퉁이를 필사적으로 잡고있는 행위는 아니었을까.
13- 어쩌면 불행을 이겨내는 첫 번째 모습은 평범한 일상을 반복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밥을 지어 먹고 먼지를 털면서 어제와 같은 속도로 걷는 것, 그 아무렇지 않은 평범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마음이 가장 의연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인 것 같다.
14- 어느 날 내 앞으로 떨어진 새의 죽음과 느닷없는 암 선고에 절망했던 지인의 이야기는 내게 평범한 하루가 주는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변함없는 일상이 가끔은 지루하다고 내뱉었던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내 생활을 얼마나 단단하고 안전하게 붙잡고 있었는지 문득 감사함이 느껴진다. 안부를 주고받는 전화와, 가족들의 밥공기에 수북이 밥을 퍼 주는 일, 봄 햇살이 눈 부시다고 느끼며 내일의 약속을 계획하는 것처럼, 내 모든 평범한 것들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며 다시 한번 세밀하게 매만져본다.
15- 그날 춤을 추듯 하늘을 날던 작은 새가 지상으로 추락하며 내게 물었다.
‘당연하다고 믿는 당신의 오늘은 무탈하신가,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후회 없이 마음껏 불러보고 있는가.’
나는 대답한다. 소중한 나의 오늘이 무탈함에 감사함을 느끼며 나와 연결된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보듬어 삶을 조각해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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