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73)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 정거장//
서울 가는 십이 열차에
기대앉은 젊은 나그네/
시름없이 내다보는
창밖의 등불이 존다/
쓰라린 피난살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끊지 못할 순정 때문에/
기적도 목이 메어
소리 높이 우는구나/
이별의 부산 정거장//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 정거장/
이별의 부산 정거장"
부산역 광장에 서면, 비록 지금은 거대한 유리 돔 아래 고속열차가 쉼 없이 드나드는 현대적 공간이 되었을지라도, 공기 중에 섞인 야릇한 바닷내음과 함께 묘한 향수가 밀려든다.
한국 가요사의 지형도에서 부산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곡을 꼽으라면 단연코 1954년에 발표된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다. 이 노래는 단순한 대중가요의 범주를 넘어,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관통했던 우리 민족의 집단적 무의식과 슬픔의 원형을 품고 있다.
이 노래는 단순한 대중가요의 범주를 넘어, 한국전쟁의 비극을 관통했던 우리 민족의 집단적 슬픔을 품고 있는 ‘음악적 사료’이자, 그 시대의 '생생한 초상화'라 할 수 있다.
1954년은 휴전 직후의 혼돈과 상실감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다. 전 국민의 절반이 이산의 아픔을 겪었고, 임시 수도였던 부산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용광로였다. 작사가 유호와 작곡가 박시춘, 그리고 가수 남인수가 빚어낸 이 걸작은 당대 피란민들에게 일종의 ‘감정적 해방구’였다.
노래의 서사는 지극히 정적이고도 처연하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이라는 첫 문장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수채화이자, 당시 부산이 지녔던 축축한 고독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여기서 ‘보슬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떠나가는 이의 눈물이며 남겨진 이의 시린 마음을 대변하는 은유다. 전쟁이 강제한 이별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그 슬픔은 더욱 무력하고 그래서 더 깊었다.
1954년, 기적 소리는 곧 시대의 비명이었다
이 노래가 당대 5만 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노래가 단순히 연인의 이별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환도(還都)’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근대적 상실감’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부산에서의 인연은 임시적이었고,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는 일상으로의 회복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회복의 과정에서 누군가는 버려졌고, 누군가는 지워져야 했다. 2절의 “서울 가는 십이 열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이며, 개인의 서사를 집어삼키는 냉혹한 운명의 상징이다. 창밖의 등불이 졸고 있는 새벽, 기적 소리에 실려 떠나가는 연인의 뒷모습을 보며 느끼는 그 절망감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라도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할 만큼 보편적인 애환을 담고 있다.
이 노래의 백미이자 가슴을 가장 아리게 파고드는 구절은 단연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라는 대목이다. 흔히들 이별 노래라고 하면 막연한 남녀의 정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가사는 1954년 당시 부산이라는 공간이 지닌 특수성과 피란지 특유의 서사를 완벽하게 직조해 낸다.
여기서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는 누구인가. 그녀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떠밀려 내려온 피란민들 사이에서 만난, 낯설지만 애틋했던 연인이다. 부산의 좁은 판잣집과 자갈치 시장의 비릿한 바닷바람 속에서 맺은 인연은,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환도(還都)’의 기적 소리 앞에서 서늘한 현실을 마주한다.
그녀의 사투리는 단순한 지역적 특색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혀 내려온 이들이 부산이라는 낯선 타향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쌓아 올린, 그들만의 서툴고도 진한 ‘생존의 언어’였다. 떠나는 나그네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그저 투박한 사투리로 “잘 가라”고 외쳤을 그녀의 모습은, 노래를 듣는 모든 이들의 심장에 박힌 시대의 가시였다.
1954년, 기적 소리는 곧 시대의 비명이었다
박시춘의 작곡 기법은 이 곡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는 기차의 리듬을 음악에 담아내면서도, 그 리듬 속에 사람의 심장박동과 같은 인간적인 온기를 심어 놓았다. 단조의 선율이 주는 처연함과, 그 뒤를 잇는 멜로디의 전개는 당시 사람들에게 ‘애도’의 시간을 제공했다.
여기에 진주가 고향인 남인수라는 가수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후에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과의 스캔들로 한번 더 유명세를 탄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면서도 굴곡진 삶의 궤적을 투영하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대신해 비명을 지르고 탄식했다. 남인수의 창법은 기교를 넘어선 진심이었으며, 그 진심이 당대 피란민들의 메마른 가슴에 단비가 되어 내렸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노래를 들으며 무엇을 느끼는가. 누군가는 과거의 향수를 말하겠지만, 문학적 관점에서 이 곡은 ‘이별의 미학’을 극대화한 문화적 자산이다. 유리창에 그려보는 마음, 봄 소식을 전해달라는 간절한 당부. 이 가사들은 이별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서 마지막까지 상대방을 존중하고 기억하려 했던 우리네 선조들의 고결한 심성을 보여준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이제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감내해야 했던 가장 아픈 시절의 기록이자, 그 고통조차 예술로 승화시켜 삶을 견뎌냈던 우리네 선조들의 의지이다. 부산역을 지날 때마다 들려오는 기적 소리 속에, 여전히 이 노래의 전주가 겹쳐 들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역사는 사라져도 노래는 남는다. 우리가 이 노래를 기억하는 한, 1954년 부산 정거장에서 흘렸던 그 눈물은 헛되지 않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애틋함’과 ‘사람에 대한 예의’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시대를 넘어서는 '기적(奇蹟)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1961년에 최무령ㆍ김지미ㆍ조미령ㆍ문정숙ㆍ이예춘 등을 출연진으로 하여 제작된 '이별의 부산정거장' 영화 역시 그 시절의 아련한 향수로 남아 있다.
비록 이별의 노래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의 깊이는 지금 세대보다 훨씬 더 뜨겁고 진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적 소리는 끊임없이 어디론가 향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오늘도 각자의 기억이라는 정거장에 머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있는 그 ‘부산 정거장’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지요?
"와카노?"
"그런걸 와 묻노?"
"니는 뭐가 떠오르노?"
(아참, 요즘은 사투리 쓰는 것도 조심해야 된다는데...)
#시조
<이별의 부산 정거장>
거대한 비극이다 한국전쟁 그 자체가/
혼돈과 상실감이 절정였던 1954/
이 노랜 감정적 해방구 그 자체로 명곡임//
그 시대의 비명였다 기적소리 그 자체는/
누군간 버려지고 누군간 지워졌던/
전쟁이 강제한 이별 두번 다시 없어야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남인수南仁樹 이별의 부산정거장
https://youtube.com/watch?v=55Wt0HUD6MU&si=FuZzrZvGHIf4HtOm
**다음카페
서기조의 무반주 연주입니다.
멋집니다
한번 들어보시길^^^
[다음카페] 이별의 부산정거장 https://m.cafe.daum.net/luluna0/dBXZ/552?svc=cafeapp
***
다음카페
[다음카페] ♡이별의 부산 정거장♡김일남 연주 https://m.cafe.daum.net/luluna0/dBXZ/1187?svc=cafeapp
첫댓글 극복하고 일어선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