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의 산둥반도와 대련 사이를 지나 중국 대륙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서유럽과 달리 터키는 우리와 위도 차이가 별로 없는 곳이라 중국을 가로질러 바로 중앙아시아를 거치는 항로로 간다.
오전 10시 57분. 비행기가 계류장을 빠져나갔다. 모처럼 비항기가 제 시간에 이륙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제부터 11시간의 비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ㅡ
구름 가득한 날이었지만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오르자 이내 그 구름을 뚫고 푸른 하늘로 올라섰다. 기류가 차분해서 비행기의 흔들림도 없었다.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순간 내 마음도 함께 날아올랐다.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여행보다 더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 속에는 신비로움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진기함이 있다.
낯선 이들의 알아듣지 못하는 낯선 말들이 가득한 곳인데도 그 자체로 흥밋거리다. 가끔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물건을 흥정할 때의 기분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그런가 하면 그림으로만 보던 명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때의 감정은 특별하다.
낯선 곳에서 새로움을 접하고 낯선 이들을 마주하고 사진으로만 보던 곳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행복임이 분명하다.
이륙 후 50여 분이 지나진 비행기는 산둥반도 상공에 이르렀다. 그때쯤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로 보면 점심에 가까울 것이나 터키로 보면 이른 아침일 것이다. 터키와는 6시간의 시차가 난다. 그러므로 그저 아점이라고 하자.
한 시간 반이 조금 지나자 우리는 북경을 조금 지난 곳을 날고 있었다.
비행기는 중국대륙을 가로질러 7시간 정도가 지나자 마침내 거대한 호수위에 이르렀다. 비행기 모니터에서 그곳을 카스피해라고 알려주었다
그저 지도에서만 보았던 대륙 속의 바다ㅡ
러시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이란에 해안선이 접해 있는 곳이다. 이란을 제외하면 모두 과거 소련에 속해있던 나라들이라 내게는 다소 생소한 나라들이기도 했다. 지금 비행기는 그런 낯선 곳을 날고 있었다. 이제 카스피해를 건너면 바로 흑해다. 그리고 그 흑해의 남쪽이 터키이다. 한 때 흑해와 지중해를 둘러싼 거의 대부분의 땅을 차지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 후예들의 나라다.
별로 움직일 곳도 없는 기내에서 모니터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죽이다보니 저녁 식사가 나왔다. 비행기 좌석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앉은 채로 두 끼의 식사를 하는 중이다. 뱃속이 편할 까닭이 없다. 그래도 식사가 나오자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 그야말로 식성 하나는 최고다.
저녁식사를 마칠 즈음 비행기가 흑해로 들어섰다. 흑해에 들어섰다는 건 터키에 들어섰다는 말이다. 이제 흑해를 따라 그 끝자락에 이르면 긴 비행기 여정이 끝나게 된다. 그러자 내일부터 마주하게 될 낯선 풍경에 벌써부터 마음이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10시10분 도착.
현지시각 4시10분.
출국장 입구에는 많은 특종을 기다리는 언론사 기자들처럼 빙 둘러서서 모두들 하나씩 여행사 표지를 들고 서 있었다. 30여 년 전 이산가족 찾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생면부지의 일가를 애타게 찾는 그 장면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장면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이산가족이 아니라 여행사를 찾기 위해 출국장을 빠져나오며 빠르게 그들이 들고 있는 팻말을 훑어보았다.
내가 찾는 팻말은 뚱뚱하고 건장한 사람이 들고 서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자 한국 가이드에게로 안내해 주었다. 한국인 가이드는 여성이었는데 첫 인상은 매우 호감이 갔다.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잠깐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는 듯해서 남들이 좋다는 교사 생활을 접고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한다. 터키로 온지는 2년 정도.
공항 바깥으로 나오자 터키는 한국보다 더 건조했고 더웠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여행할 때 겪었던 날씨와 유사한 것 같았다. 잠시 틈만 나면 자꾸 그늘을 찾게 되는 그런 날씨다.
아직은 일몰이 한참이나 남았으므로 우리는 시내관광길에 나서기로 했다.
세상일이란 뜻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는 법이다. 상황이 순간순간 다르고 여건 또한 매번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