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흠벅 대지를 적셔 주었다. 목말라 하던 초목이 싱싱하다. 살구 꽃은 지고 흰수선화가 피어나고 벗꽃이 활작 피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1999.12.26. 김준호 선생
하나님의 어린양.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다음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한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이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한분 계신데 그분은 사실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분을 두고 한 말이었다. 나도 이분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러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푼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전하였다. 나는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이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분이 누구신지 몰랐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성령이 내려와서 어떤 사람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인 것을 알라고 알려주셨다. 과연 나는 그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분이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지금 쪽지 가지고 계신 분은 제가 다시 보겠습니다. 여기 29절 요절입니다. 다음날 요한은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외쳤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십니다. 한번 세 번 따라 읽어주십시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십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십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요한 복을 1장 29절. 편안히 앉으십시오.
우리는 어제 예수 믿지 않았다고 새벽에 참회를 했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참 전능하셔서 하루 밤 사이에 서른 살 자셨어요. 30세 하루 동안에 예수님은 30세를 자셨기 때문에 지금 걸어가신 세례자 요한이 하신 말씀이지요. 와, 하루 밤 사이에 어떻게 30살을 자셨을까? 서른한 살 자셨는데 ‘보시오. 요한은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외쳤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십니다.’
저는 이 시간에 회상을 했습니다. 이름이 동광원이지요. 지금은 귀일원, 민들레집, 이렇게 이름이 많지만 동광원이 누구 이름이냐하면 그 고아들 부모 없이 육이오 동란이 끝나고 길거리 헤매 던 어린아이들, 병든 아이들, 세 살 다섯 살 여덟, 아홉, 열 열 한 살, 열두 살, 그런 소년 소녀들이 같이 모여서 살 때 이름이 동광원입니다. 그때 원장님이 정 인세 원장님이시고, 그런데 어떻게 그 수가 불어났던지 육백 명이 되어버렸어요. 한 집에 살수 없고 광주 시내 있는 일본사람이 지어놓고 간 큰 건물이지요. 큰 건물이 있으면 전부 도청에서 빌려줬어요. ‘이것 쓰라.’ 일본시대 필요한 것이라고 전염병 환자 수용원, 그런 것을 다 줬어요. 건물이 굵직굵직해. 큰 건물이 그래도 이 평지에 누울 데가 없으면 2층 만들어 재우고. 그런데 천년만년 살 것 같던 식구가 육백 명인데 하루 밤 사이에 이 당국 정부 도청 시청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던지 밤중에 트럭을 많이 가지고와서 아이들을 전부 실었어요.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다 보내버렸어요. 하룻밤 사이에 되어버렸어요. 지금도 몰라요. 왜 그랬는지. 하나님의 뜻이 있지요. 천년만년 살 것 같던 아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해가 뜨기 전에 전부 흩어진 거예요.
전라남도 각 군 각 읍 모든 고아원에 분산되어 버렸어요. 그때 원장님이나 그때 이 선생님이 살아계시니까 광주 안 계셨던가 보지요. 그런데 그 어른들은 무언이야. 아무 말도 없어요. 말이 쉽지. 얼마나 앞이 캄캄했겠어요? 얼마나 눈물 흘렸겠어요? 그런데 한 달 두 달 석 달 동안에 거기 가서 수용되어 있던 소년소녀들 가운데 밤중에 도망오기 시작해요. 다른 군청 다른 군이니까 전라남도 각 군소재지에 흩어져 있던 소년 소녀들이 그 도망 올 때 얼마나 굶고 왔겠어요? 걸어오고 굶고 그야 말로 피투성이가 되어서 찾아온 아이도 있었어요.
그다음엔 소문이 나가지고 통제를 하는 거예요. 이 아이들은 밤중에도 지켜야지 도망간다. 전부 지령이 내려가지고 통제한담에는 못 와요. 그사이에 지키지 않은 사이에 돌아온 사람들이 모여 산거지요. 얼마나 서러운 일이에요.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어요? 그러니까 여기 모아서 저쪽 감나무동산 저쪽 밤나무동산 이거 남의 땅이에요. 부자 집 땅을 빌려가지고 세를 얻어가지고 산거에요. 그러니까 인제 보모님들이야 수십 명 있었으니까 그대로 남아있지요. 아이들만 다 흩어져 버렸으니까. 돌아온 아이들이 한 30명 되었지요. 땅을 파고 살았지요. 어떻게 땅이 박하던지 보리도 안 되었어요. 황토 땅이고 그러니까 새벽 4시가 되면 사이렌 울리니까 소달구지 똥통 모두 그걸 밀고 광주 시내로 들어가요. 그래서 집집마다 똥을 퍼가지고 모아와요. 그래 감나무 동산에 뿌리고, 파고 심고 한 삼년동안 그렇게 똥을 줘싸니까 곡식이 되더라고요. 가을이 되었는데 지금도 감이 빨개. 옛날에는 감이 열리지 않았어요. 땅이 박하니까 똥을 열렬히 주니까 감나무가 살이 쪄 가지고 감이 열려요. 빨개요. 동산이.
왜 그때는 감을 팔아도 사가는 사람이 없어요. 왜 세월이 어수선하고 누가 감을 사먹을 사람이 없는 시대에요. 그때는 그러니까 그냥 그대로 빨가니 따도 않고 있더라고요. 그때 지도하신 분이 그때 어른들 정 인세 원장님 이 현필 선생님이지요. 지금 왜 이 말씀 할까요? 예수님이 30이 되었는데 걸어가시는데 요한이 보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다. 그럼 죽을 사람이다 그 뜻이에요.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줄라면 양을 잡아서 피 흘려서 죽여 버려요. 양피를 받아가지고 제단에 올리거든요. 제사를 지내거든요. 제물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이로다. 저 사람이 다 컸으니까 30살 먹었으니까 잡아가지고 피흘려가지고 인류의 죄 때문에 제사 제물이다. 그 말이에요. 어찌되었든지 예수님 말씀도 우리가 보여준 바와 같이 이 동광원에 선택된 종들 어머님들 보모님들 예수운동을 같이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첫째로 그렇게 사셨지요. 30이 되시고 33세에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지요. 사랑을 완성하시는 것인데 세상 죄를 없애주시기 위해서 대신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어른들도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서 같은 길을 가기위해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때 이름이 동광원 이니까 할 수 없어요.
이 동산에 부름 받았던 예수님 다음에 제자들도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하신 예수님의 제자니까 예수님 하늘나라 가신 다음에 땅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과 같은 제물이 되고 싶어서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뽑으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성경말씀 다시 보겠는데요. 황소와 염소피로는 실제로 죄를 제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양 잡아죽여봐야 뭔 죄가 없어지겠어요?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 하나님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흡족해 하실 수 없는 당신은 당신의 제단에 희생 제물로 삼으시려고 저를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말씀이에요. 아까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했는데 예수는 어린양이 아니지요. 사람이지요. 어린양을 죽여서 피 흘릴 제물을 염소는 안 되니까 어린양은 안 되니까 제가 어린양 대신 당신의 제단에 희생 제물로 삼으시려고 예수 자기지요. 저를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고백이에요.
옛날에는 어린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거 아니야. 어린양은 괜히 피만 흘리고 죽는 것이고 실제는 나를 잡아서 바치기 위해서 내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어린양 대신 나를 잡아서 바치라고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 고백을 하세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저를 희생 제물로 삼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기록이 성경에 있다는 거 그러면 우리들을 지도하시던 어머니들 합해서 스승님 선생님들 어머니들 다 돌아가셨습니다. 다 돌아가셨는데 그 어른들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희생되기 위해서 여기 오셔서 살다 가셨어요. 이렇게 말하지요. ‘아 선생님은 못 입으시고 못 잡수시고 굶으시고 그렇게 우리 때문에 사랑하시고 가셨다.’ 그런 말 하는데 그렇게 희생 하시고 가셨어요. 우리 어른들이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서 보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제가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목숨을 버리기 위해 왔습니다. 하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보면 여기도 그래요. 귀일원 요양소, 진달래집이니 하지만 이것이 제단이에요. 제단. 사람들이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만 우리가 보면 하나님의 제단이에요. 이 제단에 예수 뒤를 따라가는 제자들이 자기 생명을 바치기 위해서 차려 놓은 제단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선택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대신 용서해 주기 위해서는 네 몸을 바쳐라. 그런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그런데 성경에 기록한대로 제가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목숨을 버리기 위해서 여기에 와서 삽니다. 이런 팔자를 가진 분이었어요. 그래서 이 공동체를 창설하시고 사신 어른들은 둘째 예수님이 되어가지고 자기 생명을 바치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지금도 물어본답니다. 도대체 귀일원이 뭐하는 곳입니까? 누가 살아요? 사랑을 하기 위해서 모여든 사람들이 삽니다. 그렇게 증언해요. 아 귀일원에 사랑이 있어요. 사랑 사랑이 있어요. 그런데 그 영성 그 정신을 본받아 가지고 서울 아니 경기도 어디에 어느 목사님이 살고 있었어요. 우리가 가보고 왔는데 나이가 십대 이십대 어찌되었든지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 죄를 짓고 감옥에 가요. 그러면 일 년 이년 형무소에 살고 나옵니다. 나와 봐도 갈 곳이 없어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퇴소, 감옥에서 나온 청소년들 데리고 살더라고요. 그런데 거기 표어가 있어요. ‘돈 받지 않고 가르치는 선생님과 돈 내지 않고 배우는 학생이 모인 학교다.’ 그 학교 이름이 그래요. 돈 받지 않고 가르치는 선생님 돈 내지 않고 배우는 학생이 모인 학교다.
그러니 이 정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희생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모여 살더라고요.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은 희생이 되어야해요. 말로 안 되어요. 그러니까 흉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마음이 더러워진 아이들이 있어요. 돈이 있으면 갖고 내빼버려요. 사무실에 재치가 있고 지혜가 있던지 사무실에 어디에 가면 돈이 있는 걸 알고 딱 가지고 가버려요. 수십 명이 먹고 살 살림할 재산인데 갖고 내빼버려. 그러면 돈을 갖고 내뺐다고 서러워하지 않아요. 오늘밤 어디 가서 어디가 자나 걱정을 하세요. 곧 또 잡히거든 그럼 또 감옥에 들어가요. 그럼 또 쫒아가서 다시 데려와요. 또 내빼고 또 데려오고 돈 갖고 내빼고 또 데려오고 그게 사랑이에요. 절대 잘못했다고 하지 않아요. 왜 돈을 사랑하느냐 그렇게 말 안 해요. 무조건이에요. 무조건 그 목사님은 그 소년소녀들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여기 감화를 받았다는 거예요. 동광원 정신을 감화 받았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한집 식구라고, 몸은 밖에 있지만 정신은 같아. 희생 제물이 되어서 몸을 바친 예수님을 본받아서 끝없이 희생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더라고요.
이번에 장로님 모시고 가서 같이 모였거든요. 전라북도에서, 그런 분들이에요. 우리는 이렇게, 이렇게 삽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삽니다. 그거 어디서 배웠어요? 그러면 아 이거 동광원 정신이에요. 아무 돈 받지 않고 가르친 다는 거예요. 아무 보수도 받지 않고 가르친 다고 와서 배우고 살아라. 그런 곳이 있더라고요. 정신은 희생정신인데. 제물정신이에요. 이 몸을 제물로 바칩니다. 그렇게 바친 어른들이 여기저기 생겨요. 이 동광원의 정신이 씨가 되어 심어져 그래 목격하고 왔던 걸 말씀드리면서 보셨지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제가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목숨을 버리기 위해 왔습니다. 그대로 사신거지요. 그대로 살아요. 그러면 여기 저 혼자 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어 받아야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자신이 받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려고 몸소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자리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우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제가 갔다가 온 것이에요.
요 이야기는 동경서 일어난 일인데 일본 동경 한 70년 전에 생긴 일입니다. 다리 밑에 거지들이 모여 있어요. 어느 신학교 학생이 거기를 가보고 온 거예요. 다리 밑에 불쌍한 거지들을 돌아보고 왔는데 그때는 70년 전이니까 부자가 자가용이 있지요. 어느 자가용이 탁 멈춰요. 타세요, 타세요. 그래 탔어요. 그 청년이 탔어요. 어디 갔다 오십니까? 그러니까 아 저는 앞으로 신부가 될 사람인데 거지 굴에 다녀옵니다. 처음 들었어요. 운전하는 학생이 여자인데 거지가 뭐에요? 그렇게 귀한 부자 집 딸이기 때문에 걸인이 무엇인지 몰라요. 걸인이라는 건 이렇게, 이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내가 한번 가보면 어때요? 가볼 수 없어요. 아, 가볼 수 있다고 다음 주일오후에 가보자고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 거기 가봤어요. 애기 때부터 부자 집 딸로 커가지고 세상을 몰라. 다리 밑에 사람이 사는 것을 전혀 몰랐 던 가 봐요. 그걸 보고 우는 거예요. 불쌍한 사람이 있는 걸 처음 봤어. 이 처녀가 막 울어요. 아니 같은 사람인데 왜 그 사람은 거지냐 이거에요. 나는 부자 집 딸이고 그렇게 사귀었던 이야기가 있고, 그 다음에 이 사람은 한국 청년이니까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고 그 처녀는 일본 처녀니까 대학교 졸업하고 의사가 될 참이에요. 의과대학 졸업반이에요. 그러면 나를 지도해 주시라고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래 이 청년이 이렇게 이야기해요. 신부될 사람이 아니 예수님이 다시 와서 죽어야겠다 이거에요. 저렇게 죄인이 많고 거지가 많은데 속수무책이야. 내버려둘 수 없으니까. 예수님이 다시 와서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할 텐데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못 오시니까 예수 대리자로서 피를 흘리고 죽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거예요. 순진한 그 처녀가 그 말을 듣고 감격해가지고 나는 될 수 없어요? 예수님 할 일을 내가 대신할 수 없냐고 가능하다는 거예요. 능히 가능하다 예수님 하신 일을 대신 할 수 있다. 그래요. 그렇게 해서 거룩한 제물이 되겠다는 성수를 받았다는 사명을 나도 이 사랑의 제단에 내 한 몸을 바치겠다는 거룩한 사명을 받아요. 그렇게 해서 그 씨가 심어진거에요. 씨가 심어져 가지고 결국에는 수녀가 되어가지고 지금은 돌아가셨을 거예요. 그 신부도 죽었고 수녀도 죽었고 희생의 제물 예수님의 희생의 제물이 될 텐데 예수님 아닌 사람이 예수님 역할을 대로 한다. 대신 희생이 되겠다. 사명을 받고 살다 가신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대체로 이 동광원의 사명은 사도직이에요.
사도직. 예수님이 하실 일을 예수님이 너무 바쁘시니까 신부하는 사람들 절대 사욕을 포기하고 자기 생명을 바치는 제물이 되는 거지요. 그런 정신적인 영성을 동광원이 받았다 이거에요. 사도직을 받은 공동체, 여기서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선택해서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어린양을 보라 하시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 그랬지요. 그런데 그 일을 조금씩 ,조금씩 맡아서 50년 100년 200년, 그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신 죽을 제물이 되어야겠다. 그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런 뜻은 억지소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리자가 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그 말이 나오지요. 사람이 만든 말이 아니에요. 갈라디아서 제가 혼자 보겠습니다. 2장 20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생각인데 자기는 죄인이니까 죽고 사형을 받고 죽고 없고 지금 내가 사는 것은 예수님이 내안에 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예수 역할을 대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냐는 겁니다. 죄인은 죽어 쓴즉 십자가에서 지금 살고 있는 것은 내 속에 하나님의 영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절 참 유명한 요절이지요. 요 요절은 한 40년 전에 먼저 오 장로님이 발견했어요. 공부시키실 때, 요 요절을 자꾸 우리한테 가르쳐요. 한번 따라 읽으십시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아까 말씀했어요. 같이 안사는 목사님이 이 사도직을, 사명을 받으시고 교회를 그만뒀어요. 예배당을 그만두시고 땅에서 버림받은 소년들 소녀들을 내가 대신 죽어야겠다. 사명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지금 한 30명 있어요. 그 서러움이 보통 서러움이 아니에요. 사모님이 같이 왔었다는데 목사님이 그 일을 시작해놨는데 실제 살림하는 사람은 사모님이거든. 부인이니까 양식팔고 살림하려고 돈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갖고 내빼버렸어. 앞이 캄캄하단 말이에요. 왜 목사님은 저런 일 하실까? 그게 이해가 안 되어 많이 울고, 울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친구하나가 돈을 가지고 내빼버렸으니까 다른 아이들 앞에서 막 그랬다는 거예요. 세상에 나는 죽겠다. 목사가 하는 일인데 내가 끌려 들어와 가지고 밥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오늘 어떻게 하냐? 나는 이 살림을 어떻게 하냐? 그랬더니 내일 새벽에 가보니까 돈뭉치가 일전도 안 쓰고 딱 있다는 거예요. 놀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목사님이 하는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가보다. 돈 갖고 내빼버렸는데 그 돈이 다시 와있어. 식당에 와보니까, 그 다음 부터는 직접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걸 믿게 되어요. 아 목사님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 살림을 하시는구나. 라고 그 사모님도 감화를 받아가지고 자기 천직으로 받아요. 자기 사명으로 받아가지고 목사님이 하든 말든 자기가 스스로 해. 처음에는 억지로 했지요. 목사님이 처음에는 혼자 하셨는데 사모님이 한 7-8년 후로 했어요. 이해가 안 돼. 이제는 자기 사명이야. 희생하고 사는 게 행복하다고 그래요. (끊김)
모든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릴 사람 나를 산 제물로 바칩니다. 선택이 되어요. 그건 사람 힘으로 안 되어요. 하나님께 드릴 사람들은 사랑 예수가 아닌데도 예수님 역할 능히 해요. 인류를 위해서는 못하지요. 전과자 애기를 한 30명 모아놓고 그 일해. 우리 같으면 이해가 안 되어요. 돈 갖고 내빼버렸어. 미워하지는 않아. 대신 울어요. 얼마나 고생할까? 돈 갖고 내뺀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괴로워할까? 그러고 다시 잡히면 형을 받지요. 형무소에서 나와 가지고 재판을 받게 된다고요. 재판 받으러가서 돈 갖고 내뺀 사람을 도와줘야 해요. 용서해 준다고요. 이 사람을 다시 내주신다면 내가 다시 데리고 살겠습니다. 내어 주십시오. 그 죄는 용서해 주십시오. 대신 빌어요. 실제로 그렇게 하신다는 거예요. 또 될 수 있으면 빨리 형을 마치고 데려오기를 바라요. 또 데리고 와. 그럼 또 돈 갖고 내빼버려. 또 그럼 미워하지 않아요? 대신 걱정하고 눈물 흘려요. 아이고, 우리 아들이 어디가 고생 하지 않나? 우리 아들이 오늘밤 어디 가서 자나? 초월해버려. 금전 가지고 갔다. 내뺐다. 죄가 없어. 그렇게 되니까 그 예수 역할이란 말이에요. 희생제물, 그렇게 사신 분을 우리 눈으로 보고 왔는데 우리가 터무니없이 황송한 것은 우리들이 그렇게 한 것이 없는데 그 목사님은 동광원에서 배웠다. 그러거든 놀랍지 않아요? 동광원 어른들이 사시는 것을 보고 배웠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우리가 관계없어요. 성령이 이렇게 하신거지요. 그래서 여기 적힌 거 또 읽어보겠어요.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양식은 양식이에요. 쌀팔아 먹는 양식인데 예수님은 그 양식이 아니에요.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 밥은 밥인데 예수님의 양식을 달라요. 너희는 썩어 없어진 양식을 위해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양식을 얻기 위해 애쓰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나를 보내셨다. 이것은 영원한 사랑 절대의 사랑 무상의 사랑 돈 내지 않고 받는 사랑 영원히 썩지 않아요. 이 사랑은, 이건 체험이고 설명이 안 되어요. 땅에서 밥을 먹으면 썩어버린데 요 양식을 먹으면 썩지 않아요. 이 사랑은 영원히 썩지 않아요. 영원히 하늘나라 가서 먹어요. 이게 참 사랑이란 말이에요. 깨끗한 사랑 절대의 사랑,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는 배우지요. 과거 전과가 있는 여자 막달라 여자인데 예수 만난다음에는 죄가 없어요. 왜 참 양식이야, 썩지 않을 양식을 먹었기 때문에 그 여자는 너무나 영원히 행복하고 영원히 죄가 없어. 성녀에요.
성녀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이 주시는 양식을 먹으면 죄도 없어지고 또 썩지 않아요. 절대로, 눈에 보이는 양식이 아니라는 것인데 정신적인 사랑이라는 거지요. 영적인 사랑 영적인 사랑은 죄가 없어요. 왜 대신 죽으니까 대신 피를 흘리니까 속죄의 사랑 그런 말씀을 같이 보려고 제가 접었기 때문에 읽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 예수님은 예수님인데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두 분이 함께 계세요. 우리까지 합해가지고 우리하고 예수님하고 하나님이 한 덩어리에요. 서로 속에 있단 말이에요. 서로 속에 있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도 너희가 내안에 예수님 안에 또 예수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 했어요. 목사님 있지요. 아까 목사님 이야기 했습니다. 목사님은 어디에서 배웠냐하면 이 현필 선생님 정 인세원장님 그분들 사고방식을 배웠다는 거예요. 뭐 돈 받지 않고 가르쳤어. 돈 받지 않고 봉사했단 말이지요. 돈 내지 않고 배워. 돈 내지 않고 사랑을, 사랑을 먹어. 사랑을, 참 사랑은 그런 것이란 말이에요. 준 것도 받은 것도 다 무상이야. 절대 부담이 없어.
참 사랑은 참사랑은 너 나가 없어요. 나다 너다 가없어요. 그렇게 해서 여기 적힌 것 다 읽어보겠어요.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성경에 보면 적혀있어요. 끔찍해요. 어떻게 예수 살을 먹습니까? 피를 마시고 그런 경지란 말이에요. 예수 피 예수 살을 내가 먹었다. 그러면 내 피가 되어버리지요? 내 살이 되어버리고 그 경지, 너 나가 없어져버려. 이 사랑을 하다보면 그래 옛날 사람들은 혈식군자라. 하나님의 아들딸들은 자기 피를 나누어 먹는 거다. 남의 피가 아니고 의인은 자기의 피를 먹는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랑은 네 살 내 살이 없어요. 네 것 내 것이 없어요. 참 사랑은 그 사명을 하나님이 예수님한테 주셨고 예수님은 사도한테 주었는데 또 사도 성경말씀은 동광원에 있는 어른들한테 줬단 말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이 하셨지요. 사람이 하겠어요? 그 영성이에요. 동광원 영성은 무상의 사랑이라 그거에요. 무상, 동광원 사랑이 섬기는 무슨 사랑이냐? 돈 받지 않고 하는 사랑이다. 무상사랑 깨끗한 사랑 절대의 사랑을 하라고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처음에 시작한 공동체다. 이거에요. 그렇게 못할지언정 그걸 본받고 살아요. 그것을 그게 특색이야. 세상에 특별한 일이에요.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나의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 그랬지요.
예수님의 양식이 뭐에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라. 그거에요.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무상의 사랑, 돈 받지 않고 하는 사랑, 그 예수의 사랑이에요. 그게 예수의 양식이라는 거예요. 그 전통을 이어받은 곳이 공동체 동광원공동체.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뜻을 모르는 사람은 아까 부인은 서러워요. 뜻을 아는 목사님은 기뻐. 한 7년 일하다보니까 사모도 목사님의 영을 받았어. 배웠다는 거지요. 이제는 아깝지 않아요. 애기들이 돈을 갖고 내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서러울까? 얼마나 괴로울까? 불쌍히 봐지지. 미웁지 않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억지로 했어. 억지로 했지만 살다보니 그렇게 되더라는 겁니다. 배워왔으니까 우리들도 실제로는 억지로 했어요. 우리들 어머니는 그렇게 살다가 갔지만 우리들은 억지로 와서 살았거든. 살다보니 그렇게 되어요. 야, 그래야 되겠구나. 그렇게 돼요. 그래서 예수님의 양식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속죄 희생 제물이 되는 그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음을 완성하는 것이 뜻이요, 일이요, 천명이요. 그 사명이고 예수님은 자기사명 완성이 참 양식이었습니다. 곧 사랑 완성입니다.
우리들 가는 길도 세상은 거꾸로 에요. 세상은 돈 받아요. 돈 안 받아야 거꾸로 가는 길이야. 돈 안 받고 가는 길 우리들 가는 길은 역류의 길입니다. 살기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에게 자기 살을 주는 길입니다. 생각해봐요. 돈을 받아야 내가 먹고 살지. 돈을 안 받고 살라니 얼마나 가난해요? 그러니까 내 피를 내가 먹어야 내 살을 내가 먹어야해. 고되고 되요. 세상 얼굴을 보면 핏기가 없어요. 영양부족이야. 그런데 그것이 사랑이야. 영원한 사랑, 어차피 땅에서는 오래 못살아.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삶인데 그렇게 영적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이 없어요. 이 몸이 녹아나 버려도 아무런 손해가 없는 그런 경우에요. 그래서 수도자는 자기 영혼에게 자기 살을 양식으로 바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누가 했냐하면 한 35년 전에 엄 목사님 오셔가지고 처음 강의를 했어요. 처음 예배 봤어요. 뒤에 뜯어 놓은 예배당 이지요. 나무로 만든 집이 있었어요. 거기 강당이 삐그덕, 삐그덕 해요. 걸어가면 곰팡이 냄새가 나지요. 아주 오래된 집인데 거기 오셔서 그 이야기 했어요. 동광원 여러분 당신들은 역류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거꾸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 살을 먹고 가는 길입니다. 자기 영을 위해서 자기 몸을 양식으로 내어준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를 했어요.
야, 저 목사님은 동광원을 참으로 이해하시는 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때는 이 현필 선생님의 이야기니까 요 동광원 영성은 사랑의 길인데 자기 몸을 주어서 영을 살리는 길이라는 거예요. 자기 육체를 먹고 영혼을 살리는 삶 자기 영혼을 위해서 자기 몸을 주는 삶, 그렇게 해명했어요. 옳은 말 이었어요. 그래서 첫째는 자기에게 자기 영혼을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자기 영혼의 평화를 위해서 자기를 포기해요. 자기주장을 포기해. 자기 뜻이 있지 않아요? 자기 의지를 포기해.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해야 쓰겠다. 그걸 죽여 버려야 해요. 그걸 죽이려면 피가 나. 아주 아파요. 몸이 죽는 것은 잠깐인데 의지를 죽이는 것은 참말로 아픈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걸 죽이는 거니까 그걸 매장을 시켜 그래야 자기 영혼이 살지요. 그래서 첫째는 자기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쳐야지요. 예수님 같이. 둘째는 타인에게, 타인에게 옆 사람한테 옆에 불쌍한 사람에게 자기 생명을 주는 것이 참된 영의 양식입니다. 그러면 인제 밝아졌어요. 성경말씀이 밝아졌는데 야고보 1장 27절이에요. 요것이 동광원 정신이야. 동광원 공동체 정신이거든. 자 보십시오. 여기 적혀있어요.
내가 읽을게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들입니다.’요 요절을 이 선생님이 육이오 동란이 일어나기 전 해방 후에 정 원장님을 철둑 가에서 만났다고 합디다. 철둑 있지요? 거기서 만나가지고 그때 이 선생님 바지가 찢어져서 허벅다리 살이 나와요. 허벅다리 옷이 삭아가지고 허벅다리 살이 보이는 찢어진 옷을 한 손으로 추켜들고 그때는 소피아 여고 교감선생님 일 좀 하십시다. 아, 나는 처자가 있어 어떻게 합니까? 앞으로 피가 흘러요. 우리 여기서 앞으로 피가 흐를 성 싶어요. 참 일이 많아요. 일 좀 하십시오. 아 나는 일 못합니다. 야고보 1장 27절 말씀 성경말씀대로 사십시오. 그 정 원장님이 그때는 원장님 아니시니까 아주 처자가 있으니 고민 했어요. 나는 처자를 먹여 살려야 할 텐데 내가 어떻게 돈 안 받고 사느냐? 내 몸을 바치느냐? 그거에요. 나는 처자가 있어요. 그래도 이 선생님이 끝끝내 앞으로 동족이 피를 흘려요. 앞으로 동족이 피가 많이 납니다. 많은 고아와 과부가 생길 텐데요. 일 하십시다. 그걸 떨치지 못하고 끌려 들어오셨어요.
교감선생님이 그래 나중에 동광원 원장님이 되셨는데. 따라 읽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 말씀.’ 요 성경말씀이 이 공동체가 되어버린 거예요. 수백 명의 공동체가 되어버린 거예요. 정신이 모아져서,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했어요. 자기 수도를 하는 거. 자기 일을 지키는 훈련, 자기 부정을 훈련하는 그다음에는 타인 인류 동포 공동체 그담에는 식구들을 위해서 자기를 내어줘요. 우리가 알아요. 서울에서 하시는 분은 그 말을 알아들었어. 아 다른 말이 아니다. 돈 받지 않고 봉사하는 것이다. 무상의 봉사. 그럼 사업하려면 돈이 필요해. 돈이 없이 내가 어떻게 살림을 하라는 겁니까? 목사님도 뜻도 없다고 오해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어디에서 양식이 오는지 모르겠거든요. 식구가 40명이상인데 돈 안 받는데 어디서 뭔 양식을 먹고 사느냐 이거에요. 참 신기하다 그래요.
그 사모님생각이 자기 생각에는 오해했는데 월급 받아야 먹고 살 텐데 월급을 포기해버려. 예배당을 포기해버려. 그리고 소위 말하면 출소자 전과자를 데리고 살아. 그래도 먹고 산다 이거에요. 아이들을 가르치니까 선생님들이 처음에 와계시거든. 전부 취직했으면 백만 원 이상 받을 선생님들이에요. 그러나 월급 안 받아요. 그렇게 뛰어들어. 다른 선생님들이 나도 돈 안 받고 가르치겠습니다. 그렇게 자원자가 나와요. 자원자가, 그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상식으로는 모르겠다는 거예요. 사람의 상식으로는 아니 돈 안 받으면 굶어 죽을 줄 알았는데 월급을 포기하고 살아보니까 너무 풍성하다는 거예요. 생활이, 그것은 신비하고 성령의 일하심이니까 그것은 놀랄 것뿐이지요.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요. 이번에 딱 모아가지고는 이 씨는 동광원에서 가져왔다 이거에요. 이목사의 말이 동광원의 영성대로 살아보니까 되더라. 또 그런 곳이 또 생겨. 다른 공동체 돈 받지 않는 공동체를 한다는 거예요. 목사들이 왔습디다. 나는 실감이 납디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우리는 찬미할 것뿐이지요. 그러면 오늘 쭉 이야기 하던 끝에 요절이 나왔어요.
야고보거 2장 27절이 우리 동광원의 정신이다. 귀일원의 정신이라 그 말이에요. 그럼 여기 종사하는 보모들은 한분 한분이 성인이 되는 거예요. 성자가 되는 거예요. 성인이 아니고는 그렇게 못살아요. 되고 싶던지 되기 싫던지 그것은 상관없어. 자기를 포기해 버리면 성인이라. 하나님의 식구라고, 하나님의 식구니까 그래서 이 말씀이 완성 되었단 말이에요. 따라 읽으십시오. ‘그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20절.’ 쪽지에는 21절 잘못되었고 20절이에요. 이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나면 성경 말씀이 그대로 되어버려요. 여기가 예수님의 집이 되어요. 우리 집이 아니야. 우리 집인데 예수님 집이야. 같이 사니까 한데 예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집이야. 이상해요. 어제 밤에 발견했어요. 어딘지 아시지요? 마태복음 10장 몇 절? 40절이에요. 그대로 되어버린다고요. 그대로 봅시다. 마태복음 10장 40절. 성경말씀 읽더니 성경말씀이 우리 앞에 우리식구 앞에 되어버렸어. 몸으로 들어와 버렸어. 몸속으로 들어와 살아. 공동번역이니까 그대로 알고 따라 읽으세요. ‘너희를 맞아들인 사람은 나를 맞아들인 사람이며 나를 맞아들인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인 사람이다. 마태복음 10장 40절.’
나는 라디오로 들었어요. 한 10년 전에 들으니까 정초 연말이면 모두 위문오지 않아요? 위문 오는 사람이 왔어요. 원장이 신부데요. 그분 돌아가셨어요. 고맙습니다. 예수님을 보러 갑시다. 하고 데려가시데요. 오신 손님들을, 나병원 이니까 눈이 빠지고 코가 빠지고 손이 빠지고 송장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누워있는 곳이에요. 거기까지 데리고 갔어요. 병실로, 그러니까 앞에 가신 하나님의 종이지요. 그 어른이 그러더라고, 이분이 내 주님이십니다. 하고 절을 해요. 이 신부가 그래 놀래버려. 처음으로 서울에서 오신 손님들 이니까 가보십시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가서 이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라고 그러더라고요. 이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억지소리 같지요? 이분이 어떻게 병균을 옮겠느냐고 다 싫어하거든요.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매를 맞고 돌아가셨는데 고 이일을 대행한다는 거예요. 이 환자가 예수님이 매 맞고 죽을 일을 이 환자가 대신하고 있다는 거예요. 몸이 썩어 내려앉았는데 예수님 모시고 살아. 믿음이 좋아. 그 환자가 그래서 이분이 내 예수님 이십니다. 그렇게 소개하시더라고. 라디오 소리 들어보니까 야, 그런 뜻이 있을까 싶데요. 여기서 발견 했어. 성경의 뜻이야.
그러니까 그 신부님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나환자를 데리고 왔어. 그 병원으로, 그런데 신부님이 알기로는 나환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분이 예수라는 거예요. 왜? 실은 내가 이렇게 병들어 죽을 몸이었는데 나를 용서하시려고 누군지 모르는 이 아저씨를 데려다가 병에 걸려가지고 내 대신 죽게 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보기에는 그러니까 문둥이가 자기라는 거예요. 예수 아니고는 당하겠냐는 거예요. 사람이 어떻게 이 슬픈 과정을 담당하겠냐고 이 사람이 예수가 되어가지고 내 죄를 대신 이렇게 앓고 있습니다. 그렇게 설명하시더라고. 라디오 들었을 때는 참 이상했어요.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어요. 살아보면 그렇게 되어요. 나는 어저께 보성어머니에게서 그 말을 들었어요. 어저께 오후에 어느 방에 같이 눈도 수술하고 치료받고 그랬는데 알고 보니까 애기가 그 처녀가 죽어버리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튼 날 모두 자기 식구가 와서 치상하더라고, 그 꿈만 같지요. 며칠 사이에 한방에서 같이 잤어. 밤새 죽어 그렇게 하늘나라에 갔어. 그런 사건을 맞이했어요.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이 예수가 아니에요. 할머니를 살려주시려고 그 처녀가 대신 죽어 깨닫게 하셔. 거기가 앉았으면 몰라. 나만 살았으면 모른다고.
그러니까 대리로 죽는다. 예수님 대리로 죽는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십니다. 그럼 이번에 돌아가신 그 자매도 하나님의 어린양 이지요? 우리 죄 짐을 지고 대신 죽어. 그러니까 원장님 죽을 시간이에요. 원장님 살려 두시려고 그 양을 대신 죽게 해. 그걸 깨달을 때가 있어요? 아 그분, 내가 죽을 시간에 대신 죽었구나. 깨닫기 전에는 남의 이야기에요. 깨달은 다음에는 자기 이야기에요. 자기 이야기 깨달은 사람은 하시더라고요. 성경은 성경인데 뭔 상관있어? 성경 말씀을 내가 살면 내 성경이거든. 우리가 본 성경은 요새 성경이지요? 현대어 성경이니까 다시 한 번 보겠어요. 이걸로 받아들여야 해요. 아무 때든 받아들여야 내 성경이 되지, 마태복음 10장 40절인데요. 자 따라 읽으십시오. ‘너희를 환영하는 사람은 나를 환영하는 사람이고 나를 환영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너희를 환영하는 사람은 나를 환영하는 사람이고 나를 환영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0장 40절.’
이 말을 받아들이면 말씀이 살아버려요. 실제 사건이 일어나버려. 한방에서 사는 사람이 예수가 되요. 그 말씀을 믿으니까 안 믿으면 아니에요. 거짓말이에요. 믿으면 나에요. 그 사람이 나에요. 그래서 서로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새해 2000년 오 장로님 떠나버려도 말씀이 하나 남아요. 이 동광원에, ‘성경 말씀을 하는 사람은 예수가 하는 말이다. 성경을 듣는 대중은 예수가 되어야 한다. 말씀을 듣는 사람은 예수고 말씀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말씀이 살아난다.’ 말씀이 인격화 돼. 그렇게 말 안하면 이건 그냥 글이야. 그냥 기사야. 오 장로님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오 장로님 말씀 말씀을 하는 사람은 예수의 말이 되어야 하고 듣는 사람은 듣는 말씀이 예수의 말로 들려야 한다. ‘듣는 분도 예수요. 말하는 사람도 예수가 되었을 때 말씀은 완성이 되는 것이다.’ 오 장로님이 깨달은 것이지요. 다시 한 번 요절 읽고 이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
여러분들이 찬송가 찾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