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주원류고와 만주어
1. 글머리에
역사에 문외한이었던 필자가 청나라 건륭제의 지시로 쓰여진 《흠정만주원류고》의 역주를 낸 뒤 국내 굴지의 메이져 신문의 하나인 조선일보 북카페에 신간 소개가 있은 후 교보문고에 등으로부터 매일 수십 권씩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가끔 지상이나 매체를 통해 문제 있는 책이라고들 하면서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번역서가 없어 말로만 듣던 그 책 속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지 무척이나 알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가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끔 부탁치는 문제는 이 책의 편자들이 이 책에 나오는 인명 · 관제 · 풍속 ·언어 등에 관한 어원을 만주어 몽골말로 고증한 부분이었는데 만주말의 이해 없이는 도저히 풀어나갈 수 없어 만주어 공부를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2. 만주어의 공부
필자의 집안에 오랜 동안 보존되어 오던 태조 4년에 태조 이성계가 저의 선대에게 내려 준 《태조원종공신록권(太朝原從功臣錄卷》이 필자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된 뒤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어서 녹권 안에 들어 있는 이두문자를 이해하기 위해 이두관련 서적을 읽고 《태조원종공신록권종합연구》라는 논문을 써 본 일이 있다. 제법 그럴듯한 논문 제목도 붙이고 한 글이었는데 지금 읽어 보니 아주 형편이 없다.
만주어를 공부하려고 무슨 좋은 텍스트가 없나 인터넷에서 웹서핑을 통해 예전에 내무부 차관도 하셨고 해외개발공사사장도 역임하셨으며 지금은 동방사회복지회이사장으로 계시는 김득황 박사님께서 만주어사전을 내셨다는 기사를 접하고 거기로 전화를 해서 김득황 박사님으로부터 포겟판 《기초만한사전》과 《만주족의 언어》라는 책을 기증받았다.
그와 관련된 경위에 대해서는 본란에 쓴 필자의 《김득황 박사님으로부터 격려를 받다》라는 제목의 글에 쓰여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만주에 관심이 많아 여진어 등을 연구해서 그 방면에 관한 책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고서점을 들릴 때마다 혹시 만주어 관련 사전이 있나 찾아보았더니 그런 책은 눈에 띄지 않고 소택중남(小澤重男)이 편찬한 《現代モンゴル語辭典》이 있어 한 권을 사두었던 일이 있었는데 이 책은 별도로 구입한 《한몽사전(漢蒙詞典)》과 더불어 《만주원류고》에 나오는 공골어 어원을 밝히는 데 아주 유용했다.
만주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필자는 김 박사님께서 주신 만주족의 언어를 통해 만주어에 대한 기초를 익히며서 국내외 만주어 관련 책자를 구입하였는 바, 만주족 출신이라는 애신각라영생(愛新覺羅瀛生)이란 분이 쓰신 《속성자학만어기초강의(速成自學滿語基礎講議)》란 자료도 중국 국학이라는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구했고, 그분이 쓴 무려 1천여 쪽에 달하는 《만어잡식(滿語雜識)》이란 만주어와 관련된 결정판을 구해서 정독하는 한편, 혹시 국내에 만주어 관련 책자가 없나 국내 인터넷웹서핑을 통해 조선조 말에 사역원(司譯院)에서 《한청문감(漢淸文鑑)》이라는 만주어사전을 펴낸 일이 있는데 그 책은 연세대 전신인 연희대 학교 동박학연구소에서 《한한청문감(韓漢淸文鑑)》으로 개제하여 영인 출판되었다고 하여 고서적 전문 사이트인 고고북을 통해 어렵사리 이 책을 구해 보았더니 이 책에는 약 2만여 개에 달하는 만주어를 우리말, 한어, 만주말 등 3개 국어로 풀이한 책으로 만주어를 연구하는 데는 더 없이 훌륭한 자료였다. 그리고 현대판 만한사전을 구하기 위해 중국 사이트를 다 뒤져 안쌍성(安雙成)이 쓴 《만한대사전(滿漢大辭典)》과 호증익(胡增益) 등이 쓴 《신만한대사전(新滿漢大詞典)》및 상홍규(商鴻逵) 등이 편찬한 《청사만어사전(淸史滿語詞典)》과 유문걸(劉文杰)이 쓴 《역사문서용어사전(歷史文書用語辭典)》등의 관련 책자를도 모두 중국 사이트에서 웹서핑을 통해 다운 받아 양면인쇄를 하여 하드카바로 제본을 하니 이제 훌륭한 나의 만주어관련 자료로서 사용하는 데는 원서와 전혀 손색이 없다.
중국은 사회주의체제의 국가이기 때문에 어떤 책을 찍으면 초판 그것으로 끝난다. 더욱이 만주 관련 책자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중국 책에는 거개가 다 전체 말수와 찍어낸 책의 발행부수가 맨 뒷 장에 기재가 된다. 중국에도 고문서를 취급하는 사이트(konfz.com)를 통해서 정말 많은 책을 구해서 읽었다. 이 사이트에서 필요한 서명을 검색하여 판매자와 일단 연락을 취한 뒤 대금을 미화로 환전해서 그들이 거래한다는 공상은행으로 송금을 하게 되는데 환전수수료가 만만치 않고 간혹 악덕 업자를 만나게 되면 이쪽에서 송금한 대금 중에서 자기들이 또 중국돈으로 환전하면서 발생한 수수료를 떼 버리고 부족한 돈을 추가로 송금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상거래 도의상 누가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들과 거래할 때는 그쪽에서 환전할 때 생긴 비용은 자기 계산으로 했는데 마지막 거래한 작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은 것 같아서 인터넷상으로 대판 싸우고 이제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 앞서 말씀드린 《만한대사전(滿漢大辭典)》 1권만은 꼭 가지고 싶어 그 대금을 물어 보았더니 헌책인데도 우리 돈으로 24만원 가량이나 되질 않는가. 그래서 전에 다운받아 복사하여 제본하여 둔 책으로 그런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결락된 페이지가 여러 장이요, 범례나 색인란이 누락되어 이용에 불편한 점이 있기는 하다.
필자가 이 책을 번역함에 있어 가장 어려운 일은 참고할 국내에 참고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번역의 실태는 우선 일본 사람들이 번역한 것을 다시 중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혹시 일본에서 번역한 것이 있나 아무리 일본 도서관련 사이트나 대학도서관 등에서 웹서핑을 해보았으나 아직까지 발견하지를 못했다.
그 가운데 가장 도움이 많았던 것은 앞서 소개한 《한한청문감》이라는 만주어사전임은 두말 것도 없다. 이 책은 원래 청나라 사람들이 만든 사전에 우리말로 하나 하나 토를 달고 원문에 나와 있는 만주어 용례를 우리말 발음 그대로 적어 놓았기 때문에 원문과 대조해 나간다면 훌륭한 만주어 교과서가 될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만주어 공부를 이 책을 통해서 한다고 들었다.
3. 한국어 중의 만주어 차용어 및 동원성분
필자는 《만주원류고》를 번역하면서 진한어(辰韓語)와 관련된 비교언어학자 강길운 교수의 학설을 소개한 바 있다.(졸저, 546쪽) 그분이 쓴 책에서 기억나는 것으로는 어떤 언어가 같은 말을 쓰는 어족이라는 징표는 신체어 · 기상어가 같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눈 · 코 · 귀 · 입 · 머리, 손 · 발, 동 · 서 · 남 북 등 방위, 하나 둘 셋 넷 할 때의 수사(數詞), 바람의 이름 등이 어느 정도 같아야 한다는데 필자가 언뜻 보기에는 만주말과 우리말은 거의 일치하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여지고 가장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는 처족을 이르는 사둔 · 등잔 정도요, 만주어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자어를 차용해서 쓰기 때문에 한문을 자기식으로 읽은 것, 예컨대 임금을 뜻하는 왕(王)을 그들도 왕(wang)으로 읽는다, 우리 나라를 일컫는 조선(朝鮮)을 초히엔(choohiyan)으로 비슷하게 읽어 우리와 매일반인 것 외에는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김득황 박사께서도 만주어는 우랄 알타이계의 퉁구스어에 속한다. S.M. Shirogoroff는 퉁구스족을 5가지로 대별하고 이것을 다시 언어형태에 의해 15개 방언으로 분류하였으나 일반적으로 퉁구스족을 말할 때 시베리아어계퉁구스, 만주어계퉁구스, 조선어계퉁구스, 일본어계퉁구스를 말한다고 하며 같은 퉁구스어에 속하는 만주어에는 교착성이라던가 음운조화라던가 또는 언어의 조직에 있어서 한국어와 일치하는 점이 있으나 한국어와 만주어의 어휘를 두고 볼 때 피차에 연락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였다.(김득황, 《만주족의 언어》, 대지문화사, 1995년, 3쪽 참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한국어 가운데 만주어의 차용어 및 말의 근원이 같은 점에 대해서는 사실 이 부분에 깊은 연구가 없어 중국의 이득춘(李得春) 교수가 쓴 《조선어중적만어차사여동원성분(朝鮮語中的滿語借詞與同源成分)》이란 논문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본란은 언어학 관련 논문이 아니므로 가능한 한 언어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발음기호 등은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며 원래 논자의 설명 대로 여기서 설명하는 만주어라틴어 자모 전사는 주로 《만화사전(滿和詞典)》(羽田亨 편)에 의한 것이요, 참고서적으로는 앞서 소개한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펴낸 《한한청문감색인(韓漢淸文鑑索引)》(박창해 · 유창순 편,1960)과 《한청문감(漢淸文鑑)》(1771년 조선 영조 47년 한만조대역본. 연희대학 1956년영인본)이라고 하니 이 점도 참고하시기 바란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조선을 개국하는데 있어서는 그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찬양한 노래로 우리가 흔히 어떤 절대권력자에게 아첨성 발언을 할 경우에는 용비어천가를 읊어댄다고 빗댄다. 지금도 고등학교 고문시간에 배웠던 "해동 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시니…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가 머리에 떠오른다.
이득춘 교수는 논문의 첫머리에 만주말이 《용비어천가》에 나온다고 의아해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어떤 명사에 대한 당시의 주석을 가만히 살펴보니 만주말이 아닌가.
조선조가 일어났던 소위 용흥지지(龍興之地)인 고려시대 함흥 일대는 고려의 영역이 아니었고 원나라의 영토였으며 대대로 여진족들이 살아왔던 곳이기도 하였다. 태조 이성계의 선대들은 대대로 원나라의 벼슬을 하였으며 《실록》에 의하면 여진식 이름도 다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알타이문화연구》란 책을 쓰신 박 모교수는 태조 이성계는 여진족 출신이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하여튼 만주말이 《용비어천가》에 들어 있다고 하니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이득춘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용비어천가》 제53장에 나오는 ① " 이란두만, 移蘭豆漫, 삼성(三城)은 그들 습속으로 이를 일컬어 이란두만(移蘭豆萬)이라고 하는데 삼만호(三萬戶)와 같은 말이다."(三城其俗謂之移蘭豆滿, 猶言三萬戶也) ② "위허, 斡石. 땅이름으로, 직금 함경부 남쪽 120리에 있으며, 그 지역에 둥그런 돌이 우뚝 솟아 있고, 높이가 대략 200여 장이나 되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흔히 돌을 알석이라 하고 그로 인해서 그 지역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③ "탕고, 唐括. 백호(百戶)와 같은 말이다.
두번째로 《둥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단천군조(端川郡條)에 의하면, "마천령은 군 동쪽 66리에 있다. 예전에는 이판령(伊板嶺)으로 불렸는데 여진 사람들은 소를 이판(伊板)이라고 한다. 세속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옛날 어떤 사람이 산 아래로 송아지를 팔러 나섰는데 그 어미 소가 송아지를 찾아서 마천령을 넘어 주인의 발자욱을 따라 이르게 되어 이로 인해서 길이 생겼다고 하며 그런 연유로 그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같은 책 길성현조(吉城縣條)에는 "현 남쪽 1백 5리 바닷 가운데 그 형상이 무지게 처럼 생긴 기암이 우뚝 서 있는데, 이름은 찬조(찬조)라 하며, 작은 배들이 그 속으로 들고 나가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여진 사람들은 구멍을 쌍개(雙介)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쌍개원(雙介院)이란 이름을 붙였다."라고 하였다.
위와 같은 기록에 근거하여 이란[iran] · 위허[uihe] · 탕고[tangko] · 이반[ipan](伊板) · 쌍개[sangkai](雙介) 등의 근원이 여진어에 있으며, 이는 만주어 ilan(三) · wehe(石) · tanggu(百) · ihan(牛) · sangga(窟令)과도 음이 같고 뜻이 같음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밖에 이득춘 교수가 지적한 것으로는 홍양호(洪良浩: 조선조 말에 우리의 유명한 정치가요 문필가로 청나라 학자와 교유가 많았다고 함)라는 사람의 《북색기략(北塞記略) · 공주풍토기(孔州風土記)》(1690년)에는 당시 조선북부인 함북지구의 특유한 어휘 등을 적지 않게 수록하고 있다고 한다. 공주(孔州)는 지금의 북한 경흥지방으로 중국의 혼춘현과 땅을 접하고 있다고 하며 그 글 가운데 "여름에 수어(秀魚: 숭어)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그보다 좀 작은 물고기가 있는데 속칭 "야래(夜來)"라고 하며, 높은 언덕을 "덕(德)"이라 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기록된 "야래(夜來)는 [조선의 한자음으로 iarai]"는 만주말 yaru(鳟魚: 송어)를 가리키고, "덕(德)[조선한자음으로는 tek"은 여진어인 dege(高阜) 혹은 만주어인 den(高)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야래(夜來)"는 현재 함북 방언에서는 [iari] · [iary] · [iare] 등이 된다고 한다. (이 논문은 언어학 관련 논문이라 발음기호를 적어 주어야 하는데 이 편집기는 지원이 안되어 자못 이상한 인용문이 되었음을 양지하시라)
4. 그 밖의 만주어 동원
《용비어천가》 제4장에 "두만강(圖門江)에 대해 이르기를, "여진의 속어로 1만을 두만(豆漫)이라고 하는데 이는 여러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합해져서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라고 하였고, 《동국여지승람》 권50 경원도호부조에, "나단산(羅端山)은 부의 남쪽 34리에 있는데 산 위에는 7개의 돌이 차례로 서 있어 이를 일컬어 칠보석(七寶石)이라고 한다. 호어(胡語: 만주말을 가리킴)로 일곱(七)을 나단(羅端)이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그 밖에도 우리 고대사에서 만주어와 관련이 있는 대목을 많이 열거하였는데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이 방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한편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5. 만주어와의 동원 관계가 추단되는 우리말 모음
만주말 한국어
만주어 | 한국어 | 만주어 | 한국어 |
寡婦 (anggasi)[kasi] | 新娘 · 妻子 | 伙伴(gaksi)[kaksi] | 新娘 · 妻子 |
地方(ba)[pa] | 所 · 場所 | 河(bira) [paral] | 海 |
紫燕(cibin) [tsepi] | 燕 | 母(eme) [əmi] | 母 |
蹄, 掌[fatha] [patak] | 底面· 鞋底 | 手(gala) [karak] | 手指 |
鋤頭(homin)[homi] | 호미 | 帽(kamtu) [kamtu] | 紗帽 |
鐵錘 (selei mala)[soimoro] | 쇠모루 | 親家(sadun) [satun] [saton] | 親家 |
小育袋(sunta) [sunte] | 순대 | 車夫 (tergeci) [talkutsi] | 달구지 |
頭(uju) [utumeri] | 우두머리 |
그 외에도 많은데 쉽사리 우리말과 동원관게를 납득하기 어려워 이상의 것만 추려 보았다.
6. 결어
《만주원류고》에는 우리 고대사에 나오는 인명 · 지명 · 관명 · 언어 · 습속에 관한 용어에 대해 만주어나 몽골어를 가지고 그 어원을 규명해 보려고 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 당시로는 우리가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선각자인 신채호 선생이나 정인보 선생은 우리의 이두를 통해서 같은 방법을 시도했다.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는 참신한 접근 방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여겨졌다.
여기에는 소개된 바 없지만 《위지(魏志) ·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삼한에는 78개에 달하는 나라 이름이 마한 · 진한 · 변한 순으로 죽 나열되어 있는데의 나라 끝에 무슨 비리(卑離)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만주원류고》의 편자들은 만주어 패륵(貝勒)에서 그 어원을 구하고 있는데 우리의 생각과는 너무 동떨어져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한편 신라의 화백(和白) 제도에 관해 화백은 만주말 hebe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허버는 상의하다, 토의하다는 뜻으로 근리하다.
우리는 이득춘 교수의 논문을 통해 우리 말에 만주말에 근원한 차용어가 있고 같은 근원에서 온 말도 있음을 확인했다. 앞으로 《만주원류고》를 연구하는 데 일조가 되리라 확신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PS. 이 논문은 《민족어문(民族語文)》 1984년 제1기 집에 실렸던 것으로 필자가 참고하기 위해 다운 받아 놓았던 것임을 밝혀 둔다)
첫댓글
모두 거꾸로 이해하고 있네.
특히 진한.변진 24 개 국명에 쓰인 비리가 만주어 패륵에서 유래되었다는 구절에서는 구역질이 날 정도다.
비리는 아무리 늦어도 3 세기 용어이고 패륵은 아무리 빨라도 15 세기 용어다.
대체 어디다가 뭘 붙쳐 이해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