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려면 / 이훈
많은 행복 지침들은 ‘마음 안’에서 행복 승부를 내라고 한다. 가령,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일화는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메시지의 대명사다. 그러나 이 일화에 대한 나의 해석은 다르다. 이 동굴 사건은 마음 먹기의 중요성이 아니라 조명의 중요성을 보여 주고 있다. 어젯밤은 해골을 볼 때 생기는 강렬한 정서(역겨움)가 어둠에 차단됐을 뿐이다. 진정한 마음 먹기의 예시는 낮에 해골 물을 보며 달게 마시는 것이다. 도인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 대부분은 도인이 아니다.
행복이나 감정은 신비한 정신적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보다 과학적인 시각은 감정의 출발지인 외부 변화에 두는 것이다. 즉,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행복을 유발하는 구체적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만들고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10주년 기념 개정판)>, 21세기북스, 2024.
이 책 재밌다. 전에 종이책으로 읽었는데 ‘밀리의 서재’에 개정판이 올라와서 다시 만나도 여전한 독후감을 남긴다. 다들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일 텐데 거기에 잘 이르자면 진화심리학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행복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 책을 안내자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자기 계발을 다루면서 흔히들 ‘마음’을 강조한다. 그 예로 원효 대사의 해골 물 얘기가 등장한다. 한마디로, 세상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거다(검색해 보니 그런 사실을 기록한 문헌이 없다는 글도 보인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2311046316027?did=ZU&dtype=&dtypecode=&prnewsid=). 나도 서은국의 저 책을 읽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골 물을 보고 ‘이거 단물이야’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바뀌고 잘 마실 수 있다는 걸까? “도인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아마 그런 사람에게마저도 어려울 것이다. 사막에서 물을 찾아 헤매다 죽게 되면 사정은 달라질 테지만. 이런 끔찍한 상상에서도 행복에는 마음보다도 객관적인 조건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외부의 환경이 마음을 바꾼다고 해야 잘 들어맞는다.
물질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우리 한국인을 고무하는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것 같지만 “부유해질수록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바로 그 상황에 적응해 버려서 만족의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꿈을 꿀 때가 더 행복한 것도 이런 사정에서 나온다. 고등학교 때까지 고생하고 대학교 가서 마음대로 즐기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거짓말이다. 남들이 못 가는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도 합격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의 행복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희생되고 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한 방에 거창한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소하게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드는 것이 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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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커다란 기쁨 한 번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유학 시절, 지도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기쁨이 중요하다.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은 성취하는 순간 기쁨이 있어도, 그 후 소소한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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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행복의 목록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몇 가지 두루 통하는 성질이 없지는 않다. 친구, 자유, 호기심, 일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일 찾기(예를 들어, 외국어나 춤을 배우는 것은 <<건강의 뇌과학>>(제임스 굿윈, 박세연 옮김, 현대지성, 2022.)에서도 추천하듯이 뇌 건강에도 좋다), 개인주의(“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of others).” 알베르 카뮈의 말이란다.) 특히 마지막의 개인주의는, 좀 과장하면, 남의 눈치 보려고 사는 것 같은 우리에게는 명심해야 할 항목이다. 남에게 잘 보일 필요 없다. 내가 좋고 즐거운 게 삶의 으뜸 조건이어야 한다. 물론, 이걸 이루려고 다른 사람의 자유나 행복을 해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