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생기다 / 조미숙
내 직업은 유아 숲 지도사다. 산림 교육 전문가라고도 한다. 숲 해설가를 비롯해서 산림 교육에 적을 둔 지 어느덧 8년가량 되었다. 숲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정작 주로 일하는 곳은 공원이나 숲 언저리다. 숲 깊숙이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나마 도시 가까운 산들은 죄다 공원으로 탈바꿈 중이어서 안타깝다. 시민들이 깨끗하게 정돈된 산을 좋아한다고 잡목을 베어버려 숲이 휑하다. 굳이 있는 나무는 베어내고 누구의 입맛인지 모를 기준에 맞춰 새로운 묘목을 심는 이유도 모르겠다. 곳곳에 둘레길을 내고 주변에 원예종 꽃들을 심는 것도 못마땅하다. 지금쯤이면 지천으로 피는 봄꽃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진 길은 먼지만 풀풀 날린다. 깨끗한 산길은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변해가는 내 일터가 아쉽기는 하지만 아이들 웃음 소리로 한 해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시청 공공근로 형태로 일을 시작했다. 상반기, 하반기 각각 4개월씩 매번 응모를 해서 일해야 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뒤에는 1년 단위로 공원녹지과에서 직접 고용했다. 해마다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일에 늘 불안했다. 그나마 오후에 개인 일을 할 수 있어서 부족한 수입은 메꿀 수 있었다. 국가 자격증까지 갖추고도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열악한 환경이 싫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숲에서 뛰어노는 일은 즐거웠다.
몇 년 전부터 산림청에서는 산림 복지 전문업이라는 위탁 업체를 만들어 운영하게끔 해서 자격증을 갖춘 사람들을 고용해 산림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게 했다. 목포에도 업체가 한 곳이 있었지만 자연 휴양림 같은 곳이 없어 숲 해설가들은 멀리 장흥이나 보성까지 가서 일해야 했다. 나하고 친하게 지내는 그 대표는 나에게도 몇 번 같이 일하자고 했는데 멀리까지 가기도 싫기도 했고, 같은 월급으로 하루종일 매여 있는 것보다 여기서 일하는 게 조건이 더 좋아 거절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대표가 다른 위탁 업체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회사를 차리고는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해 왔다. 나와 성향이 맞지 않아 고민이 되었지만 조금이라도 수입이 낫기도 했고 내가 더욱 발전하려면 다른 곳에서도 일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선택했다.
일 년이 쉽지 않았다. 시청에서는 수업만 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각종 서류며 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았다. 각 지자체에 흩어져서 일하는 회사의 특성상 직원들이 한 곳에 모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회의한다고 모이라고 하는 것도 오후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 나로서는 버거웠다. 그것도 대부분 목포보다는 나주에서 모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회의 분위기도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 거기에 직원들은 대부분 광주 사람들로, 대표가 전직장에서 데려 와 자기네끼리 만 끈끈하게 뭉쳐 있는 것 같아 속내를 알 수 없어 낯설고 힘들었다. 나이 어린 대표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고용주와 근로자는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더욱이 난 혼자서 일했다. 다행히 영암팀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어 위안이 되 주긴 했지만 늘 누군가 곁에 있어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도 다행히 별 탈 없이 일 년을 보냈다.
사업이 종료되고 계약 기간도 끝이 나자 대표가 내년에도 같이 일하기를 바랐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은 애초부터 본인도 사업을 해 보겠다며 나갈 계획이 있었다. 나에게도 같이 일하자고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년 일자리는 지금 회사가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거절했다. 난 사람 보고 일할 형편이 아니다. 신념이나 의리보다 일자리가 더 중요했다. 매년 사업 제안서 넣고 시연해서 사업을 따 와야 내 일자리가 생기는 떠돌이 보따리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어찌어찌 해서 그 사람도 함께 남았고 거기에 또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한 사람 더 늘었다.
올해는 두 명이 함께 일한다. 시에서 숲 해설가 1명과 유아 숲 지도사 2명을 뽑았는데 우리 업체가 유아 숲을 가져왔다. 숲 해설을 놓쳐서 아쉽기는 했지만 같이 일할 사람이 있어 좋았다. 처음에는 나이 든 아저씨여서 조심스러운데다 말도 많은 것 같아 싫었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일해야 편할 텐데 큰일이다 싶었다. 군인으로 살다가 전역했다는 이력도 그렇고 경상도 쪽에서도 경험을 쌓았고 나주에서도 일을 했다고는 하나 수업 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아이들하고 잘 지낼지도 의심이 들었다.
수업을 앞두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내 마음이 열렸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내가 하자는 대로 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제시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뚝뚝한 나보다 훨씬 밝고 상냥해서 의외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장점이 있었다. 내가 일이 있어 수업에 빠져야 할 일들이 생겼는데도 싫은 소리 안 하고 본인이 두 반 모두 이끌어가겠다고도 하며 걱정 말라고 했다. 우려와는 달리 유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수업도 잘 이끌었다.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일주일 넘게 같이 움직이며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산에도 같이 갔더니 이제 스스럼이 없어졌다. 회사 단톡에다 좋은 짝꿍이 생겨 복 받았다고 자랑했다. 그 선생님과 전에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도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이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얘기해도 맞장구를 쳐 준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며 한 편이 되어 즐겁게 일 하기를 바랄 뿐이다.
첫댓글 좋은 파트너를 만나셨군요. 소중한 일을 하시는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동료 만나신 것 축하드려요. 직장 생활의 가장 큰 복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