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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최근 수정 시각: 2023-04-19 01:10:56
분류:
속담|
비교|
세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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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원인
2.1. 올챙이 시절이 수치스럽다
2.2. 자수성가형 인물의 노력/능력 신봉
2.3. 고통의 시점 차이
2.4. 경험에 따르는 가치관/사고관 변화
2.5. 권력 욕망
3. 관련 표현
4. 여담
1. 개요[편집]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Toutes les grandes personnes ont d’abord été des enfants. (Mais peu d’entre elles s’en souviennent.).”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대한민국의 속담으로서 자신이 어렵게 지내던 시절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가진 이를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2. 원인[편집]
2.1. 올챙이 시절이 수치스럽다[편집]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서는 어려웠던 자신의 옛 시절을 흑역사로 수치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이를 잊기 위해서 어렸을 적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철저히 조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일종의 동족혐오로도 볼 수 있다.
2.2. 자수성가형 인물의 노력/능력 신봉[편집]
개구리 올챙이 시절형 인물들은 소위 '입지전적' 성공을 이룬 인물들이 상당수인데, 이들 인물은 자신의 의지 또는 능력을 기반으로 성공했다는 믿음이 지나쳐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즉, 자기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했는데 남들이 그러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부족하거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1] 그러나 겉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각자의 어려움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빚는다.
•관련 문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
“배가 고파 남의 빵을 훔친 절도범을 두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울 것 없이 공부해서 판사가 된 사람과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라면 하나로 주린 배를 채우며 죽어라 공부해서 판사가 된 사람 중 누가 더 엄한 판결을 내릴 것 같으냐.”
'가난한 사람의 심정은 가난한 사람이 알아준다지 않나.' '배고파보지 못한 사람이 남의 배고픈 고통을 알까.'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그 반대다.
“나는 너보다 더 힘들었어도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고, 이렇게 보란듯이 성공했다. 너는 뭘 했냐. 그러니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2]
◦능력주의
◦의지드립
◦의지박약
2.3. 고통의 시점 차이[편집]
위의 이유들이 '실제론 까먹지 않았으나 자신의 과거에 대해 해석을 달리하는' 예라면 이건 정말로 문자 그대로 까먹은 것이다.
아무리 같은 고통을 겪었다 해도 그 고통이 현재진행형인 것과 과거의 일인 것은 차이가 크다. 지나간 고통은 어쨌거나 지금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미화될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의 고통은 그럴 수가 없다. 대체로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경험은 희미해지기 때문에 공감을 못 하는 일도 많다. 실제로 막 그 처지에서 벗어난 때는 올챙이 적을 기억하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잊어버리는 이들도 많다.
2.4. 경험에 따르는 가치관/사고관 변화[편집]
기득권을 얻으면서 사고 자체가 '개구리'라는 기득권자의 사고로 바뀌어 올챙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갑과 을 문제에서도 자신들이 약자(올챙이)일 땐 평등을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이 강자(개구리)의 위치를 잡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면을 몰수하고 타인을 찍어 누르곤 한다. 위 #자수성가형 인물의 노력/능력 신봉, 아래 #관련 표현 가운데 학습된 무기력 등 개구리가 되기까지의 기간에 입은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일 수도 있는데, 어떤 이들은 이미 그들을 이해하기에 잔소리를 하는 거라며 약자나 역지사지하라고 주장한다. 곧, 올챙이가 개구리의 올챙이 시절 고통을 모른다는 식. 위 빵 절도범 판결로 따지면 판사는 남의 배고픈 고통을 알고 있지만 절도범은 그 고통을 모른다는 식이 된다. 이는 보상심리와도 유관하다. 위 개구리의 고통, 아래 속담 '감탄고토'처럼 올챙이가 개구리에게 들러붙기도 한다.
2.5. 권력 욕망[편집]
'개구리'라는 기득권이 없으며 겉으로는 평등을 외치면서 올챙이 시절부터 기득권자의 사고를 가지고 질투하거나 기득권을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또 다른 이유로 올챙이가 개구리에게 들러붙어 개구리를 부려먹기도 한다. 손놈 등 원인도 이런 우월의식 등 문제이기도 한데, 해당 문서 내용처럼 사람들이 '평등'과 '존중하기'를 과연 좋아하는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 내용처럼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고 정을 나누어 스트레스 등을 풀면서 이런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만, 정작 그런 걸 실천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강약약강 문서에서도 나와 있지만, 사회적 약자였을 땐 착해 보였는데 권력을 조금조차 쥐고 나니 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잖이 있는데, 경우별로 딱 이곳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3. 관련 표현[편집]
•유사 표현
◦종이 종을 부리면 식칼로 형문을 친다.
여기서 '형문(刑門)'이란 몽둥이로 죄인의 정강이를 때리며 죄를 심문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동물에 비유한 예
◾나비가 애벌레 시절 모른다.
◾닭이 병아리 시절 모른다.
•관련 속담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
이 '찬물'은 어려운 처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흉보면서 닮는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문서에서 보듯이 시대에 따른 예의범절 수준은 별 차이가 없고 단지 고연령층이 자신들의 과거를 까먹었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하게 된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개구리가 이렇게 될 때도 있다. 어렸을 때 피해자였던 사람이 커서 권력층이 되어 가해자로 바뀌는 식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원인 중 하나이다. 올챙이 시절에 겪었던 일을 기억하고 안 좋았던 일이 반복되지 않게 노력하면 역사가 반복되지 않겠지만, 올챙이 시절을 까먹고 재발 방지 노력을 안 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이 계속된다.
•사다리 걷어차기
원인 중 하나이다. 청년 시절에 자기는 분명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는데 그 사실을 까먹고서 "나 때는 사다리 없이도 괜찮았다." 식으로 사다리를 걷어차곤 한다. 단, 그 사실을 까먹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미래의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 사다리를 걷어차는 때도 있다.
•개천에서 용난다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이 나중에 개천을 떠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올챙이 시절을 잊음) 비판받곤 한다.
•초심을 지키자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면서 변하지 말자는 뜻에서 쓰이는 말이다.
•감탄고토
자신의 상태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개구리가 된 올챙이 역시 개구리라는 상황에 이르면서 가치관의 변화를 겪고 올챙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 점에서 감탄고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올챙이들이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올챙이들은 출세를 위하여 개구리 하나에게 들러붙어 무임승차하려는 이기주의적 행태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개구리들에게 반발을 부르곤 한다. 또 다른 관련 표현으로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가 있다.
•샤덴프로이데
남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 자신이 올챙이 시절에 그 불행한 일을 겪었으면서 개구리가 된 뒤에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도 이 속담과 어울린다.
•악은 악으로
•학습된 무기력
다른 올챙이들을 못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 개구리가 되는 과정에서 무기력을 학습해서일 수도 있다. 곧, 어려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의지드립
4. 여담[편집]
올챙이 때 몹시 어려웠던 개구리들은 어떻게 해야 올챙이들이 부서지는지 잘 알고 있으니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자수성가 했으나 올챙이 시절을 수치스러워해 다른 올챙이들을 괴롭힐 때는 그 괴롭힘의 강도가 높다.
이 말은 비유적 표현이고, 개구리는 뇌가 발달하지 않아 기억 자체가 거의 없다. 많고 많은 동물 중에 굳이 개구리에 비유한 것은 변태 과정을 거쳐 어릴 때와 클 때 모양이 크게 달라지는 것들 중 유명한 동물이 개구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단, 별별 형태의 양서류가 다 서식하는 열대지방에는 올챙이 시절 자체가 아예 없는 개구리도 있다.
이 말은 개인이 아닌 국가나 기업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어렸을 적 자기 일을 못 기억하는 것은 유체이탈 화법 면에서 비판할 수 있겠지만, 국가나 기업의 '어린 시절'이란 대개 개인의 범주를 집단의 범주로 넘는 데다가 그 집단은 조상이나 선구자 등 개개인과 다른 인간으로 넘어가버리며, 타인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같은 궤에서 비판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개개인의 기억 말고 지속적인 역사 학습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어구로는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가 있다.
한편으로 문구 내용대로 따지면 올챙이 시절에 고통이 아닌 즐거움으로 산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물건, 콘텐츠 관련 문제로, 멀쩡한데도 단지 오래됐다고 싫증이 나서 버리기도 하는데, 그 정도에 멈추지 않고 그런 걸 좋아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수집' 문서 참고). "저런 촌스러운 게 왜 좋다는 거야?". 특히 해당 물건으로 즐거움을 누린 적이 있으면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세대 갈등의 원인이나 새로움에 호소하는 오류이기도 하다. 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의 원인일 수도 있는데, 응답하라 시리즈,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 같은 사례가 있는데도 그런 건 단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기기도 하며, 심지어 오히려 못 배운 노인이 빨리 죽어서 한 세대가 빨리 가야 세상이 좋아진다는 말도 있다.
그러는 식으로 타도해놓고 자신들이 바라거나 좋아하는 것들이 같은 방법으로 타도되기 전후에 옛날(가령 자신들이 타도한 뒤쯤)이 좋았다기도 한다. 타도하면서 어느 옛날이 배경인 어떤 작품에 필요한 물건이 남지 않아서 작품에서 그보다 늦게 나온 물건이 나오는 등 오류가 있다고 까면 이중잣대에 책임전가가 된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1] 의지를 강조하는 이와 능력을 강조하는 이의 태도가 약간 다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라는 취지에서 더 독하게 몰아붙일 가능성이 있고, 후자의 경우는 자기가 보기에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차갑게 대할 수 있다.
[2] 이와 비슷하게 '돈' 문서의 '관성의 법칙' 내용처럼 노동 소득이 자본 소득보다 천대되는데도 자기가 경험해서 안다면서 자본 소득은 허황된 꿈이고 온 가족이 한 집에서 살면서 노동해서 벌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남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그러지도 못한다는 식으로 하향비교를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