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어린이에서 소년으로 자라나고 있다.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자기주장과 자기표현이 강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순하기만 했는데 요즘에는 자꾸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물론 이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니까.
첫째의 사춘기 시절을 겪은 나와 아내는 요즘 둘째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둘째가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한두 번 부탁에 아내와 나는 현실적인 이유로 이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현재 지내고 있는 집이 아파트인데다가 5인 가족이 지내기에 현재도 공간이 좁아 개, 고양이는 안된다며 거절 의사도 밝혔다.
그러나 둘째는 끈질기게 우리를 설득했다.
키우고 싶은 애완동물은 바로 도마뱀이라고, 그리고 게이지에 넣어 키우니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혼자 남자라(위로 누나, 아래로 여동생) 외롭단다.
혼자 남자라는 그 말에 딱하기도 하고 또 사춘기에 접어드는 요맘때 정서적 안정이 필요할 것 같아 못 이기는 척 허락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면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해 본다.
대신 스스로 분양처를 알아보고 미리 공부 하라고 미션을 내 주었다.
그랬더니 며칠간 유튜브와 인터넷을 뒤져 근처 광주에 파충류 삽이 있다는 것을 조사하여 알려주었고, 도마뱀을 키우는 데 필요한 구매 물품 목록도 다 적어 놓았더라.
둘째가 사고 싶은 도마뱀은 가고일 게코라는 종류의 도마뱀이었다.
어느새 사진을 캡처하여 보여준다.
그래 좋다.
이 정도 관심과 준비성이면 도마뱀을 키워도 될 것 같다.
차를 몰고 바로 광주로 출발.
샵에 도착하니 다양한 도마뱀과 거북이 그리고 뱀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별 감흥이 없는데 둘째는 여기가 천국인가보다.
다양한 종류의 파충류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설명을 한다.
이쪽으로 이리 박식한 줄, 여기 와서야 알았다.
진짜 공부는 이런 데 있었구나.
둘째는 어느새 바로 본인이 원하는 가고일 게코를 찾는다.
그것도 한 번에.
둘째와 샵 사장님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말 못하던 아이가 입이 트인 듯 수다가 상당하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같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치 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하는데 나만 영어를 못하는 것과 같다.
예상했던 금액을 넘어선 상당한 액수를 지불하고 도마뱀을 분양받고 게이지와 부속품을 들고 집으로 고고...
본인이 원하던 것을 가져서 그런지 둘째의 기분은 세계 최강이다.
지금이라면 뭐든 다 할 것 같다.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말해볼까?’ 생각만 할 뿐이다.
이럴 때 공부하라고 하면 이 기분 다 잡치겠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에는 시켜도 하지 않던 방을 청소 및 정리하고 적당한 위치에 게이지를 설치하고 도마뱀을 놓아준다.
그러고 앉아서는 도마뱀을 계속 관찰하며 히히덕거린다.
기분 참 좋은가보다.
잠시 후 둘째가,
“아빠, 제가 이름을 지었어요. 고일이요.”
“뭐 고1? 고2도 아니고 고3도 아니고 고1?”
“네 가고일을 줄여서 고일이요.”
“아... 그 고일. 이름 참 좋네.”
그러다 갑자기 김춘수의 시 ‘꽃’이 생각이 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를 살짝 바꿔보면,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너는 다만 하나의 파충류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고일이가 되었다.’
참 좋겠다.
좋은 친구가 생겨서.
그래 도마뱀 잘 키워라.
애완동물로 인해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 더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혹시 알아?
이쪽으로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여 진로가 개발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