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1
지명유래에 담긴 춘천의 뿌리 맥국(貊國)
<조상의 영광과 회귀>
“여기에 오래된 집터가 있었어요. 까만색 큰 기둥이 몇 개 나왔어요.”
춘천 신북읍 발산리 발산(鉢山) 앞에 사는 노인의 증언이었습니다. 노인은 아주 자랑스럽게 자신의 집터를 얘기했지요. 발견된 기둥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마치 석탄처럼 까만색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가 맥국의 왕궁터가 맞아요.”
그렇게 집터에서 발견된 유적을 얘기하다가 자신 있게 노인은 발산리 일대가 옛 맥국의 왕궁터임을 말했습니다. 신북읍 지명답사를 하던 2012년의 일입니다. 이후 노인은 고인돌이며, 맥국 관련 지명이며, 우두산 등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이어갔습니다. 나는 마치 청동기 시대에서 21세기에 온 사자(使者)를 만난 느낌이었지요. 그 순간 나는 황홀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왜 그 노인은 나에게 맥국의 유적과 지명과 옛이야기를 그렇게 했던 것일까요.
<얼을 찾아 살아가는 이상향>
“근데 원래는 원나루래. 원나루. 맥국이 있을 때 원님이 건너다녀서요.”
동면 지내리 지겸촌에 사는 노인은 워나리배터를 말하면서 맥국 시대 원님이 건너다니던 나루였다고 했습니다.
“정승고개라는 고개가 있는데 그 옛날 샘밭에 맥국이라는 나라가 있었거든요. 그 맥국에 정승이 여기서 넘어서 출퇴근을 했다 해서 정승고개라 해요.”
지내리 노인은 월곡리 정승고개에 얽힌 이야기도 했습니다. 노인의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었습니다. 노인의 얼굴 모습과 말의 억양에는 맥국에 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어요. 노인은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라 했습니다. 노인의 신념처럼 조상 대대로 전하는 맥국 이야기는 옛 도읍지였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노인은 아마도 임금이 살던 장소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낙원 의식의 발로를 말했을 겁니다.
<꿈꾸는 자긍심>
노인들의 맥국 이야기 전승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합니다. 각종 춘천 관련 지리지에는 빠짐없이 “본맥국(本貊國)”, “고맥국(古貊國)” 등처럼 “춘천은 옛 맥국의 도읍지였다.”고 전하고요. 옛 지도에도 ‘맥국도읍(貊國都邑)’ 또는 ‘고맥국(古貊國)’, ‘맥국허(貊國墟)’, ‘맥도(貊都)’, ‘고맥성(古貊城)’, ‘고맥도(古貊都)’ 등으로 현재 신북읍 발산리와 춘천 중심가 지역에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맥국에 얽힌 지명과 옛이야기가 춘천에는 신북읍, 동면, 남산면, 서면 등지에 골고루 분포해 있고요. 화천, 홍천, 횡성, 평창, 정선 등지에도 수두룩합니다. 지명만 기록해도 백여 곳이 넘습니다.
춘천에 맥국 도읍만 있지 않았습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 태봉, 고려, 조선 등등의 많은 나라가 차지했던 장소입니다. 그러나 도읍지는 아니었지요. 수많은 나라 중 유일하게 맥국만 도읍지로 있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유일하게 맥국 관련 지명과 설화가 많습니다. 우리는 춘천사람들이 왜 맥국에 대한 향수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가끔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전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방물장수가 맥국 시대 어떻게 있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요.”
춘천 삼악산에 얽힌 매국 이야기에 방물장수가 나오거든요. 이런 오류는 설화 전승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설화는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대를 달리하면서 모두의 생각이 담긴 공동작으로 전승되니까요.
춘천 맥국 도읍지 관련 지명과 이야기는 옛 영화를 꿈꾸는 춘천인의 바람이면서 자긍심의 원형입니다. (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