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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의 옥웅룡과 <삼국유사>
1984년 중국 요녕성 우하량에서 적석총을 발굴하던 도중에 한 쌍의 옥룡(玉龍)이 출토되었다. 발굴되는 유물과 유적이 대부분 ‘사상 처음’이고 ‘인류사 최고(最古)’인 홍산문화의 일부다. 서로 대응하는 모습의 C자형 옥룡은 면밀한 검토 후 웅룡(熊龍)으로 명명되었다.
이른바 옥웅룡(玉熊龍)이다. 풀이하자면 옥으로 만든 곰과 용 모양의 형상물이다. 옥과 곰, 용의 의미가 이 유물의 문화·역사적 가치를 해석하는 키워드다.
옥은 변하지 않는 보석으로 영생불멸을 상징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옥을 ‘오덕五德을 갖춘 아름다운 돌’이라 하였고, 공자는 ‘군자는 옥으로 덕을 견준다’고 하였다.
『주역』「설괘전(說卦傳)」에서는 팔괘의 첫째인 건괘(乾卦)의 성격을 옥(玉)으로 표현하였다. 그 까닭은 옥玉이 하늘의 빛깔과 하늘의 신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홍산문화 유적지 전체에서 옥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곰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삼국유사』의 ‘일웅일호(一熊一虎)’다. 바로 곰을 토템으로 섬기는 웅족(熊族)을 말한다. 홍산인들이 곰을 얼마나 신성시 했는지는 우하량의 여신묘 터에서 여신상과 함께 곰 소조상이 나온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용은 동북아에서 경이롭게 모셔지는 동물로 봉황과 함께 천자天子를 상징한다. 역대 황제와 왕들이 곤룡포(衮龍袍)를 입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상징하는 청와대의 문장(紋章)이 봉황이다. 용봉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천자(天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준말이다. 천자는 하나님이신 상제님을 대행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의 ‘Son of God’이라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천자가 등극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하늘의 상제님께 제사를 지내는 천제天祭를 올리는 일이었다.
예로부터 천자는 통치자이며 스승이었고 신의 뜻을 전하는 대무(大巫)였다. 우리는 무당을 단골로 불렀다. 단골은 단군으로 제사장을 뜻하고, 왕검은 통치자의 의미다. ‘단군왕검’은 정치와 종교, 정교(政敎)가 합일(合一)된 호칭이다. 동방 신교(神敎,以神設敎)에서는 예로부터 군사부(君師父) 일체를 말한다. 다시 말해 천자는 다스리는 군君이자, 가르치고 깨우치는 스승(師)이고 새로운 생명을 열어주는 아버지(父)다. 군사부 문화가 신교神敎의 삼신문화에서 나왔다. 또한 군사부는 삼신(三神)의 현현顯現인 천지인의 덕성이기도 하다.
동방의 한민족은 원래 천자(天子)의 나라
천자는 동이의 호칭 처음으로 천제자(天帝子)라는 말을 쓴 것은 배달국 환웅 때부터였다. 환인, 환웅, 단군 이들은 상제님으로부터 국가건설과 통치의 대권을 신탁받아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나라를 다스렸다. 한민족사 최고의 전성기인 단군조선은 몽골, 티벳, 흉노, 중국 대륙 전체와 한반도, 일본을 아울러 산하에 70여개의 제후국을 거느린 대제국(大帝國)이었다.
중국에서는 6국을 통일한 진秦왕 영정(嬴政)이 최초의 천자로 ‘황제皇帝’가 되었다. 이 천자문화가 한민족에게서 유래했음을 중국의 역사서에서도 증명하고 있다.
한나라의 채옹이 지은『독단(獨斷)』에 보면 “천자는 동이족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까닭에 천자라 부른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 故稱天子.]”는 대목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치우는 구려의 천자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孔安國曰 九黎君號가 蚩尤라.(『사기색은史記索隱』), 應劭曰 蚩尤는 古天子之號라(『사기집해史記集解』), ]라고 하였다.
열국시대에서 고려까지 대부여를 계승한 북부여는 물론이고 해모수의 후예, 고주몽이 건국한 고구려 역시 천자가 다스리던 나라였다. 천자국 고구려인들의 자부심이 만주 집안현(集安縣)에 1,500년 동안 굳건히 서 있는 광개토태왕비문에도 잘 나타난다.
비문에는 ‘천제지자天帝之子’, ‘황천지자皇天之子’라는 문구가 있어 그들이 하늘의 자손, 천제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 역시 당나라에 예속된 지방정권이 아니라 당당히 천자국의 위상을 떨친 독립국이었다.
최근에 발굴된 상경성의 제2궁전지의 전면이 19칸인 사실(당나라 장안성의 함원전은 11칸)과 1980년 발견된 정효공주의 묘지명에서 그 아버지인 문왕을 ‘황상皇上’이라 부른 것이다. 왕비의 묘비명에서 황후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고려 역시 출발은 천자국이었다. 태조 왕건은 천수天授, 광종은 광덕光德, 준풍峻豊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수도 개성을 황도皇都라 일컫고 원구단을 설치하여 천제天祭를 올렸다.
※ 甲午三十四年이라 十月에 東明國高豆莫汗이 使人來告하야 曰我是天帝子라 將欲都之하노니 王其避之하라한대 帝難之러시니 是月에 帝憂患成疾而崩하시고 皇弟解夫婁가 立하시니라.
재위 34년 갑오(단기 2247, BCE 87)년 10월에 동명국(東明國) 고두막한이 사람을 보내어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天帝子]이로다. 장차 여기에 도읍하고자 하나니, 임금은 이곳을 떠나도록 하시오” 하니, 임금께서 난감하여 괴로워하셨다. 이 달에 고우루단군께서 근심과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아우 해부루解夫婁가 즉위하였다. (「북부여기 上」)
※ 時에 下夫餘人이 將欲殺之어늘 奉母命하사 與烏伊摩離陜父等三人으로 爲德友하시고 行至岔陵水하사 欲渡無梁이라 恐爲追兵所迫하야 告水曰 我是天帝子오 河伯外孫이라 今日逃走에 追者垂及하니 奈何오 於是에 魚鼈이 浮出成橋하야 始得渡하시고 魚鼈이 乃解하니라.
당시 동부여 사람들이 주몽을 죽이려 하므로, 주몽이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세 사람과 친구의 의를 맺고 함께 길을 떠났다. 차릉수岔陵水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었다. 뒤쫓아 오는 군사들에게 붙잡힐까 두려워하여 강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상제님)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으로 오늘 달아나는 길인데 쫓는 자가 다가오고 있으니 어찌하리까?” 하니, 물속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수없이 떠올라 다리가 되었다. 주몽이 물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졌다.(「북부여기 下」)
중국으로 전해진 천자문화(天子文化) 금간옥첩(金簡玉牒) 전수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 동북아에는 9년 홍수라는 사상 최대의 대재난이 있었다. 당시 초대 단군왕검은 우주변화원리로 무사히 홍수를 다스렸는데, 중국의 순임금은 홍수를 다스리지 못해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이때 순(舜)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가 도산塗山에서 단군왕검의 큰아들 부루 태자에게서 오행치수법(금간옥첩)을 전수 받아 홍수를 다스리게 된다. 그 공덕으로 우는 하夏 왕조를 개창하게 되는데 그가 죽기전에 부루태자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자기를 회계산(도산)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오월춘추』)
우禹가 전수받은 금간옥첩은 치수의 요결일 뿐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도道와 동방 단군조선(고조선)의 정치제도와 문화가 수록된 국가 경영지침서다. 여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도, 홍범구주의 내용도 실려있었다.
홍범구주의 다섯 번째가 황극皇極사상이다. 바로 이 황극으로부터 천자사상이 나왔다. 즉 천자제도의 기틀, 동양문화의 근본정신이 담겨 있는 금간옥첩(金簡玉牒)이 전해짐으로써 단군조선의 천자문화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 汝后請予하야 以欲導治水土하야 拯救百姓일새 三神上帝가 悅予往助故로 來라
너희 임금(순임금)이 나에게 수토를 다스려 백성을 구해 주기를 청원하니, 삼신상제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왔노라 (『태백일사』 「번한세가上」)
※ 且其五行治水之法과 黃帝中經之書가 又出於太子扶婁오 而又傳之於虞司空하고 後에 復爲箕子之陳洪範於紂王者가 亦卽黃帝中經과 五行治水之說이니 則蓋其學이 本神市邱井均田之遺法也니라.
또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黃帝中經)』이 부루태자에게서 나와 우虞 사공司空에게 전해졌는데, 후에 기자箕子가 은나라 주왕紂王에게 진술한 홍범구주(洪範九疇) 또한『황제중경』과 오행치수법이다. 대저 그 학문은 본래 배달 신시 시대의 구정법(邱井法)과 균전법에서 전해져 내려온 법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하·상·주 3왕조는 단군조선(朝鮮)의 제후국 하夏나라에서 상商나라로 교체될 때에도 단군조선의 힘이 작용하였다. 상나라 개국공신 이윤은 단군조선 11세 도해단군 때의 국사(國師) 유위자의 제자였다. 상나라 말기의 도읍지였던 하남성 안양시 은허 유적에서 출토된 궁전, 성벽, 무덤 등이 동북방(단군조선)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단군조선을 상국上國으로 지극히 받들었음을 보여준다. 상나라 다음으로 550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주周나라도 그 창업 당시부터 단군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많은 병력과 전차를 보유한 상商나라 군대를 이기기 위해서 주周 무왕은 동이족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무왕을 도운 동이족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강태공이다. 주周나라도 이전의 왕조와 마찬가지로 단군조선에 조공(朝貢, tribute) 과 방물(方物)을 바쳐 예를 표했다.
『단군세기』에는 주나라 왕 하가 단군조선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친 일, 32세 추밀단군 때 주나라가 번조선에 방물方物을 바친 기록이 있다. 하·상·주 중국 3왕조는 모두 단군조선을 문화의 종주로 모시던 제후국이었다.
※ 是歲冬에 殷人이 伐夏한대 其主桀이 請援이어늘 帝以邑借末良으로 率九桓之師하사 以助戰事하신대 湯遣使謝罪어늘 乃命引還이러시니 桀이 違之하고 遣兵遮路하야 欲敗禁盟일새 遂與殷人으로 伐桀하시고 密遣臣智于亮하사 率畎軍하시고 合與樂浪하사 進據關中邠岐之地而居之하시고 設官制하시니라.
이 해(BCE 1767) 겨울, 은殷 나라 사람이 하夏나라를 치자 하나라 왕 걸桀이 구원을 청하였다.(13세 흘달단군)임금께서 읍차邑借 말량末良에게 구환의 병사를 이끌고 전투를 돕게 하셨다. 이에 탕湯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군사를 되돌리라 명하셨다. 이때 걸이 약속을 어기고 군사를 보내어 길을 막고 맹약을 깨뜨리려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께서 마침내 은나라 사람과 함께 걸을 치는 한편, 은밀히 신지臣智 우량于亮을 보내어 견군畎軍을 이끌고 낙랑樂浪군사와 합세하여 관중의 빈邠·기岐 땅을 점령하여 주둔시키고 관제官制를 설치하셨다.「( 단군세기」13세 흘달단군)
천자국의 위상이 무너지는 과정- 고려의 쇠망
고려 초기에는 천자국으로서 당당히 건원칭제(建元稱帝)를 하였다. 고려는 예종 때 와서 윤관(尹瓘·1040~1111)을 앞세워 여진을 물리치고 동북쪽에 9성을 구축함으로써 고구려의 후예라는 건국이념에 보다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나 동북 9성은 설치된 지 1년 만에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고 매년 공물을 바친다’는 언약을 받고 다시 여진족에게 돌려주게 된다.
이후 여진은 성장을 계속하여 9성을 환부받은 지 6년째에 금나라를 세운고, 드디어 고려 인종 3년(1125년), 요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는 유화적인 태도를 거두고 고려에 군신君臣관계를 강요해 왔다.
전쟁을 두려워한 고려 조정은 금나라에 상표上表를 올리고 스스로 신하라고 칭신稱臣하였다. 고려를 부모로 섬기던 여진족을 이제 고려가 임금의 나라로 섬기게 된 것이다. 유교식 정치체제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고려는 어느 새 문약(文弱)에 빠져 버렸다.
이후 고려는 금나라와 송나라의 연호를 쓰기 시작하며 사대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고려 말엽에는 세계 제국을 건설한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이 시작되면서 황제국 고려는 제후국으로 전락하였고, 국왕에 대한 칭호는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었다. 그 첫째 왕인 충렬왕은 원나라 쿠빌라이 황제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을 왕비로 맞았다. 이후로 고려는 줄곧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다. 환국, 배달, 조선(단군조선) 이래 줄곧 천자국이었던 고려의 위상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고려 말기의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7~1364) 때에는 원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더욱 강화되어 오잠, 류청신 등이 국호 ‘고려’를 폐지하고 원나라의 일개 성(城)이 되고자 하는 것을 조정에 청원하였고, 원으로부터 ‘원나라의 삼한성(三韓省)으로 한다’는 칙령이 내려오기도 하였다.
이즈음 이존비(李尊庇, 1233~1287)와 이암은 상소문을 통해 자주독립정신을 상실한 고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 本國이 自桓檀朝鮮北夫餘高句麗以來로 皆富强自主하고 且建元稱帝之事는 至我太祖初하야 亦嘗行之나 而今則事大之論이 定爲國是하야 君臣上下가 甘受屈辱하고 不圖所以自新하니 其畏天保國則誠美矣어니와 奈天下後世之笑에 何.
우리나라는 환단.조선.북부여.고구려 이래로 모두 부강하였고 자주를 유지하였다. 또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칭한 일은 우리 태조 때에 이르러서도 일찍이 실행하였으나,
지금은 사대事大의 주장이 국시로 정해져 있어 군신상하가 굴욕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방법을 도모하지 않으니,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고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진실로 훌륭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천하 후세의 비웃음은 어찌하겠사옵니까?「( 고려국본기」-이존비의 상소문)
※ 國界를 不可破也며 民俗을 亦不可混也니이다. 况我國이 自桓檀以來로 皆稱天帝之子하고 行祭天之事하니 自與分封諸侯로 元不相同이오 今雖一時爲人轅下나 旣有魂精血肉하야 而得一源之祖하니 是乃神市開天과 三韓管境之爲大名邦於天下萬世者也니이다.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각기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조국으로 삼고 제 풍속으로 민속을 삼으니, 나라의 경계를 깨뜨릴 수 없으며 민속 또한 뒤섞이게 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환桓·단檀(환국-배달-고조선) 시대 이래로 모두 천상 상제님의 아들(천제자天帝子, 天子)이라 칭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니 자연히 분봉을 받은 제후와는 원래 근본이 같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일시적으로 남의 굴레 밑에 있으나 뿌리가 같은 조상[一源之祖]에게 물려받은 정신과 육신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배달의) 신시개천神市開天과 (고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이 천하 만세에 대국으로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된 것입니다.「( 고려국본기」 -이암의 상소문)
조선왕조의 멸망
고려를 계승하여 새롭게 열린 조선왕조는 고려 때보다 더한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조선 사회는 철저한 모화사대주의(慕華事大主義) 사회였다. 선비들은 말끝마다 명나라를 본조本朝 또는 천조天朝, 성조聖朝라고 했고 조상의 비문에도 항상 유명조선(有明朝鮮), 명나라에 속한 조선이라고 내세웠다.
조상의 비문에도 항상 유명조선(有明朝鮮), 명나라에 속한 조선이라고 내세웠다.
유교를 국교로 숭상한 조선은 개국초 태종 때에 서운관에 보관되어 있던 한민족의 고유사서를 이단이라 하여 모조리 소각하였다. 그 이후 세조에서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사서수거령을 내려 유교 지상주의에 반하는 수많은 사서들을 압수, 소각하였다. 이는 자기 스스로 자기의 역사를 파괴하는 해괴한 행위다. 이미 국초國初부터 망국으로 가는 비운의 단초가 시작된 것이다.
1910년의 경술국치는 사실상 죽어가는 환자의 숨통을 일본이 와서 끊은 것에 지나지 않다. 조선은 이미 정신적으로 한·중합병으로 망한 상태였다. 조선의 명운이 촛불처럼 꺼져가던 1897년 고종 임금은 원구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스스로 천자의 보위에 올라 새로운 국호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비록 대한제국은 곧바로 망했지만 이 사건은 끊어진 한민족의 천제문화의 맥을 되살리고 동방의 한민족이 본래부터 천자국임을 만천하에 알린 역사적인 대사건이다.
바야흐로 동북아는 역사전쟁이다. 일본은 자국의 교과서까지 왜곡하면서 집요하게 독도 침탈을 노리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 프로젝트를 통해 만주 지역에 있었던 우리의 고대사인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강탈해갔다. 이러한 역사전쟁의 이면을 보면 한·중·일 삼국三國이 사실상 천자국의 종주권宗主權싸움을 하고 있다.
천자국이 되면 인류문명의 종주국宗主國이자 장자국長子國의 위치에 서게 된다. 중국은 ‘세계의 중심에서 빛나는 나라’라고 해서 나라 이름을‘ 중화中華’라고 한다. 그들은 급속도로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으로 패권의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름 그대로 자신들이 인류 역사의 천자국임을 내세워 앞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넘버원 행세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근본’이라는 일본日本 역시 그들의 왕을 천황天皇이라고 해서 진짜 천자국임을 표방한다. 천자국이 성립되려면 제후국을 점령하여 다스린 역사가 필요하다.「 임나일본부」라는 가공의 역사가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났다. 독도 침탈 야욕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그 깊은 심연에는 천황제가 자리잡고 있다. 결국 중국과 일본이 천자국 다툼을 벌이는 것은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이자 동북아의 원형 문화인 홍산문화에 대한 소유권 다툼을 벌이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를 쓰는 우리가 홍산문화의 주인공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드러난 유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고, 역사기록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바로 천자 문화의 고향, 동방의 한민족으로 삼신상제님께서 오셨다. 인간으로 오신 증산甑山 상제님(1871~1909)께서는 동방의 한민족이 다시 천자국의 위상을 회복할 것을 말씀하셨다.
제 뿌리를 못 찾고 환부역조하는 조선인을 경계하심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이 無依無托하니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 무의무탁
不可不 文字戒於人이니라
불가불 문자계어인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道典 5:347)
※ 장차 조선이 천하의 도주국(道主國)이 되리라. (증산도 道典 7:83)
한국이 세계의 일등국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조선이 중국을 대국이라 칭한 고로 중국 인종이 조선 사람보다 큰 것이니라. 또 대국의 위에 특대국이 있으니 이는 곧 서양이라. 그러므로 서양 인종이 제일 크니라. 그러나 앞으로는 조선이 세계의 일등국이 되리니 선생국의 인종이 서양 사람보다 작아서야 쓰겠느냐. 내가 너희들의 키를 여섯 자 여섯 치로 쭉 늘여 뽑으리라.” 하시니라.
이 때 한 성도가 여쭙기를 “일등국이 되려면 전쟁으로 세계 각국을 다 이겨야 되지 않습니까?”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넌 왜 그리 멍청하냐? 세계 사람들이 ‘선생님’이라 하면 일등국이 될 것 아니냐.” 하시니라.
조선이 천하의 도주국
상제님께서 안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 해동조선에 지상천국을 만들리니 지상천국은 천상천하가 따로 없느니라.” 하시며, “장차 조선이 천하의 도주국(道主國)이 되리라.” 하시니라.(증산도 道典 7:83)
진묵대사를 선경 건설에 역사케 하심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妙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명 개발에 역사(役事)하였나니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으로 돌아와 선경 건설에 역사하게 하리라.(증산도 道典 4:14)
상제님께서 태전으로 들어가시며 말씀하시기를 “우리 일에 말이 들어야 한다.”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얼마를 더 가시다가 문득 한 자리에 멈추어 서시더니 오른발로 땅을 힘껏 세 번을 구르시며 큰 소리로 외치시기를 “이곳이 제왕지지(帝王之地)니라! 여기서 왕이 나온다! 장차 여기에서 전무지후무지법(前無知後無知法)이 나오리라. 태전을 집을 삼고 인신합덕을 하리니 태전이 새 서울이 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오로봉전이십일(五老峰前二十一)이 아니라 오로봉전태전이니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萬國活計南朝鮮이요 淸風明月金山寺라
만국활계남조선 청풍명월금산사
文明開化三千國이요 道術運通九萬里라
문명개화삼천국 도술운통구만리
만국을 살려낼 활방은 오직 남쪽 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의 금산사로다. 가을의 새 문명은 삼천 나라로 열려 꽃피고, 도술 문명의 대운은 우주 저 끝까지 통하리라. 이후 상제님께서 틈만 나면 이 노래를 부르시니 성도들도 따라서 종종 읊조리니라.(道典 5:306)
한국은 온 인류 구원의 나라
상제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이 닥쳐오면 달리 방도가 있나니, 너희들에게 명하여 때를 기다리게 하였다가 때가 오면 천하에 쓰도록 할 것이니라.
세상 모든 나라들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진멸의 지경이 되었다가 너희들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 이후에 세계의 만백성들이 너희들을 맞아다가 진수성찬(珍羞盛饌)을 차려 놓고 한바탕 풍류를 펼쳐 크게 환대하리라. 그 때 너희들의 영락이 지금 내 눈에 선연하니라.” 하시니라.(道典 7:51)
道典 5:399) “이마두를 초혼(招魂)하여 광주 무등산(無等山) 상제봉조(上帝奉朝)에 장사지내고, 최수운을 초혼하여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에 장사하노라.” 하시니라. 이어 성도들에게 24절을 읽히시며 “그 때도 이 때와 같아 천지에서 혼란한 시국을 바로잡으려고 당 태종(唐太宗)을 내고, 다시 24절에 응하여 24장을 내어 천하를 평정하였나니 너희들도 장차 그들에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리라.” 하시니라.(道典 5:399)
나의 운수는 더러운 병 속에
7월에 제비창골 삼밭에서 공사를 보신 뒤에 성도들을 거느리고 서전재 꼭대기 십자로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손사풍(巽巳風)을 불리시며 장질부사 열병을 잠깐 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만하면 사람을 고쳐 쓸 만하도다.” 하시고, 손사풍을 더 강하게 불리신 후에 “손사풍은 봄에 부는 것이나 나는 동지섣달에도 손사풍을 일으켜 병을 내놓느니라. 병겁이 처음에는 약하다가 나중에는 강하게 몰아쳐서 살아남기가 어려우리라. 나의 운수는 더러운 병(病) 속에 들어 있노라.” 하시니라.
병목이 너희들 운수목
이에 갑칠이 여쭈기를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치병을 하시면서 병 속에 운수가 있다 하심은 무슨 연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속담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병목이 없으면 너희들에게 운수가 돌아올 수가 없느니라.
병목이 너희들 운수목이니 장차 병으로 사람을 솎는다.” 하시고, “내가 이곳에 무명악질(無名惡疾)을 가진 괴질신장들을 주둔시켰나니 신장(神將)들이 움직이면 전 세계에 병이 일어나리라. 이 뒤에 이름 모를 괴질이 침입할 때는 주검이 논 물꼬에 새비떼 밀리듯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세상이 한바탕 크게 시끄러워지는데 병겁이 돌 때 서신사명 깃대 흔들고 들어가면 세계가 너희를 안다. 그 때 사람들이 ‘아, 저 도인들이 진짜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하시니라.(증산도 道典 5:291)
제 뿌리를 못 찾고 환부역조하는 조선인을 경계하심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이 無依無托하니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 무의무탁
不可不 文字戒於人이니라
불가불 문자계어인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道典 5:347)
하루는 공사를 행하시며 성도들에게 옛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七八年間古國城은 畵中天地一餠成이요
칠팔년간고국성 화중천지일병성
黑衣飜北風千里하고白日頃西夜五更이라
흑의번북 풍천리 백일경서야오경
칠팔 년 동안에 고국성은 그림 속의 세상, 한 조각의 떡과 같네. 검은 옷이 북쪽으로 나부끼니 바람은 천 리에 이르고, 환한 해가 서쪽으로 기우니 밤이 벌써 깊었구나.
고국성(古國城):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유서 깊은 문화국가를 말한다.
東起靑雲空有影하고 南來赤豹忽無聲이라
동기청운공유영 남래적표홀무성
虎兎龍蛇相會日에 無辜人民萬一生이니라
호토용사상회일 무고인민만일생
동쪽에서 일어난 푸른 구름은 허공에 그림자만 드리우고, 남쪽에서 온 붉은 표범 홀연히 소리를 죽이는구나. 호랑이(寅), 토끼(卯), 용(辰), 뱀(巳)이 서로 만나는 날에 아무 죄 없는 창생들이 무수히도 죽겠구나.(道典 5:408)
※ 시두손님인데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내 세상이 되기 전에 손님이 먼저 오느니라.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道典 7:63)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에 꽂으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꾼이 콩밭(太田)에서 낮잠을 자며 때를 넘보고 있느니라.” 하시고, “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太田)에 꽂았느니라.” 하시니라.
작은 서울이 큰 서울 되리니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새 세상이 오면 서울이 바뀌게 되느니라. 큰 서울이 작은 서울 되고, 작은 서울이 큰 서울이 되리니 서울은 서운해지느니라. 허미수(許眉叟)는 하루 만에 강선루(降仙樓)를 지었다 하나 나는 하루 만에 36만 칸 옥경대(玉京臺)를 짓느니라. 금강산 구룡폭포의 금(金)이 서해바다에 와 묻혔나니 장차 36만 칸 옥경대의 상량이 되리라.” 하시니라.(증산도 道典 5:136)
허미수(許眉叟)는 하루 만에 강선루(降仙樓)를 지었다 하나: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읍 비류강 기슭에 있던 고려시대의 누각. 성천 객사의 부속 건물이었다. 관서팔경의 하나로 꼽혔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후천선경 종주국 공사
상제님께서 매양 뱃소리를 내시매 성도들이 그 뜻을 여쭈니, “조선을 세계 상등국으로 만들려면 서양 신명을 불러와야 할진대 이제 그 신명이 배에 실려 오는 화물표를 따라 넘어오게 되므로 그리하노라.” 하시고, “해동조선 사람들은 장차 세계의 조물(兆物)을 받아먹고 사느니라.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다 다닐 길이 난다.” 하시니라.(道典 5:389)
남조선 국운 도수
하루는 약방에 성도 여덟 사람을 벌여 앉히신 뒤 사물탕 한 첩을 지으시어 그 봉지에 사람을 그리시고, 두 손으로 약봉지를 받쳐 드시며 시천주주를 세 번 읽으시니라. 이어 여덟 사람으로 하여금 차례로 돌려서 그와 똑같이 하게 하신 후에 “남조선배가 범피중류(汎彼中流)로다.” 하고 노래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갑오년(甲午年)에는 상륙을 못 하여 풍파를 당하였으나 이제는 상륙하였으니 풍파는 없으리라. 장차 조선이 제일로 좋으니라.” 하시니라.(道典 5:388)
동서양 운세가 서로 바뀌리라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서양이 잘살지만 나중에는 동양이 잘살게 되느니라.” 하시고, “조선과 미국은 운세가 서로 바뀌리라.” 하시니라.
“이마두를 초혼(招魂)하여 광주 무등산(無等山) 상제봉조(上帝奉朝)에 장사지내고, 최수운을 초혼하여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에 장사하노라.” 하시니라. 이어 성도들에게 24절을 읽히시며 “그 때도 이 때와 같아 천지에서 혼란한 시국을 바로잡으려고 당 태종(唐太宗)을 내고 다시 24절에 응하여 24장을 내어 천하를 평정하였나니 너희들도 장차 그들에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리라.” 하시니라.(道典 5:399)
가을개벽 전 시두(천연두)가 대발한다
하루는 최창조의 집에서 성도 수십 명을 둘러앉히시고 “각기 글 석 자씩을 부르라.” 하시므로, 천자문의 처음부터 부르기 시작하여 최덕겸(崔德兼)이 ‘일(日) 자’까지 부르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덕겸은 일본 왕도 좋아 보이는가 보다.” 하시며 “남을 따라 부르지 말고 각기 제 생각대로 부르라.” 하시니라.
그 다음 날 밤에 담뱃대 진을 쑤셔 내시며 덕겸에게 “한 번 만에 잡아서 놓치지 말고 뽑아내어 문밖으로 내버리라.” 하시거늘, 덕겸이 명하신 대로 하니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어대는지라, 덕겸이 여쭈기를 “어찌 이렇듯 개가 짖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대신명(大神明)이 오는 까닭이니라.” 하시거늘
또 여쭈기를 “무슨 신명입니까?” 하매, 말씀하시기를 “시두손님인데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내 세상이 되기 전에 손님이 먼저 오느니라.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 그 때가 되면 잘난 놈은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너희들은 마음을 순전히 하여 나의 때를 기다리라.” 하시니라.(증산도 道典 7:63)
상제님은 지구촌에 병겁이 휩쓰는‘ 다시 개벽’ 상황이 오기 전에 먼저 시두가 대발한다고 하셨다. 시두(천연두)와 천자국(天子國)은 우주 가을개벽의 암호를 푸는 비밀열쇠와 같다. 그 해답은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이 집행하신 9년 천지공사天地公事에 들어있다. 병든 천지를 뜯어고쳐 새 천지를 열어주시고, 해원解寃, 상생相生, 보은報恩,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이념으로 역사의 방향을 설계하신 천지공사를 통해 인류는 태고 시절 누렸던 광명의 삶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인류가 꿈꾸어왔던 이상세계가 이 지상위에 구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개벽의 실제상황에서 한민족이 상제님의 도道로 인류를 구원함으로써 성취된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9천년 전 환국에서부터 전수되어 내려온 홍익인간 사상의 실현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천명을 가을개벽기에 인류구원으로 완성했을 때 우리는 다시‘ 인류 문화의 도주국(道主國)’으로서 우뚝 서게 된다. 사실 한반도는 ‘개벽의 진원지’이며 동시에 ‘구원의 땅’이다. 홍익인간 정신으로 크게 하나 되어 다가오는‘다시 개벽’을 준비하는 비상한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첫댓글 환단고기 북콘서트 천부경과 홍익인간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L4GH2qEaT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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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북콘서트 천부경과 홍익인간 2부
https://www.youtube.com/watch?v=ICxLncbJz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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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아침 환단고기 북콘서트 천부경과 홍익인간 3부
https://www.youtube.com/watch?v=ql99_60zt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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