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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 / 창 50:15-21, 눅 9:18-27
오늘은 우리 민족의 해방 52주년을 기념하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통일주일이다. 우리 민족은 40여년에 걸친 일제의 통치 아래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왔다. 일제의 통치 아래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과 억울함은 입으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은 잔악한 일본의 제국주의를 패망하게 하시고 이 민족에게 해방의 기쁨을 주셨다. 우리 민족의 8.15 해방은 전적으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요 구원사건이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생활을 하던 애굽으로부터의 구원과 같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았다. 우리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통당화하 자들을 건져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이제 우리 민족은 과거의 아픔을 교훈으로 삼아 앞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겠다. 우리는 지금 2천년대(21세기)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우리 민족은 이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시대적 사명을 다하는 민족으로 성장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교회로 거듭나야 하겠다.
오늘 성서 본문에는 야곱의 아들 요셉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담겨 있다. 요셉은 자기를 해치려 했던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셔서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의 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해를 유익으로, 그리고 화를 복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겪는 한숨과 눈물과 고통의 나날들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전화위복-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라고 했다.
1. 요셉의 삶은 전화위복 그 자채였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서 그가 더욱 사랑하던 라헬로부터 얻은 아들이다. 야곱은 늙어서 얻은 요셉을 더욱 사랑하여 좋은 옷을 입히곤 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했다. 어느 날 요셉은 참으로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내용인즉 요셉이 형제들 가운데 으뜸이 되고 다른 형제들은 요셉을 섬긴다는 것이었다. 순진한 요셉은 자기가 꾼 꿈을 형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고 싶을만큼 미웠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일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르우벤이 목숨만은 살려주자고 하여 요셉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는 미디안의 장사꾼들에게 팔리는 운명이 되었다. 그후 다시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종으로 팔렸다. 어느날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동침하자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더욱 더 열정적으로 날마다 요셉을 유혹했다. 그러나 요셉은 깨끗한 믿음으로 그 유혹을 이기기 이해 그 여인과 자리도 함께 하지 않았다. 집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보디발의 아내는 적극적으로 요셉을 붙잡고 매달렸다. 그러자 요셉은 이를 뿌리치고 도망쳤다. 이에 보디발의 아내는 분노하여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고 했다며 중상모략을 하여 요셉을 감옥에 갇히게 했다.
그러나 인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항상 요셉과 함께 하셔서 요셉이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셨다. 마침내 요셉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7년 동안의 극심한 흉년을 예견하고 대비하였다. 그래서 요셉은 7년 동안의 극심한 흉년으로부터 애굽의 백성들은 물론이고, 자기의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다른 나라의 백성들까지 구원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일을 했다. 이렇게 요셉의 고난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인 야곱의 가정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기아로부터 구원하는 기쁨이 되었다. 우리 하나님은 실패와 아픔을 성공과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사랑과 능력이 풍성하신 분이시다. 사람이 살다보면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어떤 때에는 암벽이나 홍해처럼 길이 막혀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과 능력이 한이 없으셔서 절망을 소망으로,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가 만난 재앙을 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전화위복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셔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고, 그의 고난을 통하여 세계 만민을 구원하셨다. 우리 또한 어떤 곤경에 처할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하겠다.
2. 요셉의 신앙 인격은 대단히 훌륭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이다. 요셉은 비록 종의 신세가 되었을지라도 자기의 책임을 공정하고 성실하게 수행하여 주인의 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요셉은 여주인이 동침하자는 유혹을 받을 때에도 동침은 커녕 자리를 함께 하지 않음으로써 깨끗한 믿음을 지켰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애굽을 다스릴 때의 일이다. 세계는 7년 대흉년으로 기근이 심했다. 그러나 요셉이 다스리는 애굽은 그 흉년을 예견하고 그 흉년에 대비하였기 때문에 식량이 충분했다. 야곱은 애굽에 요셉이 있는 줄은 모르고 그저 애굽에는 식량이 있다는 소문만 듣고 10명의 아들들을 보내어 식량을 사오도록 했다. 그래서 요셉은 식략을 구입하려고 애굽으로 온 형들을 만나게 되었다. 요셉에게 있어서 그들은 단순히 형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려 했다가 장사꾼들에게 팔아넘긴 원수들이었다. 그런데도 요셉은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환대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형들과 베냐민이 곡식을 사러 왔을 때 요셉은 사랑하던 동생 베냐민을 보자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립고 사랑하던 아버지 야곱을 모셔다가 봉양했다. 야곱이 나이많아 죽자 요셉의 형들은 과거에 저지른 죄과 때문에 요셉이 막강한 건력을 가지고 자기들을 해하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이때에도 요셉은 자기의 뼈아픈 고난의 나날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그들을 위로하였다. 요셉은 사람이 보고 안보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려는 진실된 신앙의 소유자였다. 요셉은 자기가 당한 고난의 나날들을 원망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였음을 믿고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들을 도리어 환대하고 위로하는 신앙 인격자였다.
3. 우리 한국교회는 요셉의 신앙인격을 본받아 화해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요셉처럼 많은 고난을 겪어왔다. 특히 20세기 초에 우리 민족은 40여년 동안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일본사람들을 미워하고 원망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요셉처럼 너그러이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 민족은 해방의 축복을 받았으나 그 축복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남과 북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이뿐 아니라 서로를 향해 총을 쏘며 전쟁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맞대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요셉이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했듯이 북한 공산집단의 죄과를 용서하고 회개하기를 촉구하며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고통을 준 이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때 이루어진다. 우리는 우리의 영토를 침략하고 우리 민족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하고 선량한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던 일본인들을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켜 동족의 가슴에 총을 쏘아댄 저 북한 공산집단을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하겠다. 그래서 북한 동포돕기 운동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나님은 사랑을 베푸는 자를 기뻐하시고 용서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해를 유익으로, 악을 선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고난을 영광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는 우리에게 고통을 준 일본인들과 북한의 공산집단을 용서하고 화해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화해의 사도가 되어야 겠다.
< 평화통일주일 성찬식 순서 >
성만찬으로 초대
지금 우리는 민족간에 전쟁이 쉬지 않고 있는 이 역사 속에
구속의 제물로 오신 에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자리에 초대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모든 성도들을 이 성만찬 자리에 초대하시고 흑암에 놓인 우리들을 영생의 신비에 이르게 하십니다.
귀한 이 식탁에 불러주신 주님께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감사와 영광을 드립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식탁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하나되어 노력하는 성도가 되는 것이 우리 주님의 뜻입니다.
성령임재의 기원
주님, 당신의 빛을 사모하며 그 빛을 담고자 저희가 여기에 모였습니다.
빛을 비추는 일에는 용기가 없었고,
어둠과 싸우기보다는 어둠에 익숙하는데 길들여졌던 저희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을 당신의 빛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전에
주의 식탁에 초대하셨던 것처럼, 이제 저희로 하여금 성만찬의 신비를 통하여
하늘 나라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려 부르신 줄 알고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자비로 우리를 감싸시어
당신과 한 몸되는 이 신비한 순간에 거룩하신 성령께서 임하여 주옵소서.
하나되게 하시는 셩령이시여,
지금 이곳에 오셔서 우리를 평화통일을 위해 하나로 일으켜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떡을 뗌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같이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때에 떡을 들어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상하고 찢긴 내 몸이다. 받으라. 먹으라.’
우리 주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명령대로 주의 떡을 함께 받겠습니다.
- 이제 주님의 떡을 받으시고
우리 위하여 상하신 주님의 살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와 함께 드십시오.
잔을 부음
우리 주님은 식후에 잔을 들어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잔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다. 너희와 나 사이에 맺어진
새 언약의 피다. 받으라. 마시라.‘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대로 이 잔을 받겠습니다.
- 이제 주님의 잔을 받으시고 우리 위하여 한 방울도 남김없이 흘려 주신
주님의 보혈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와 함게 잔을 받으십시오.
감사기도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고 마심으로
저희가 주님과 연합하여 한 몸이 되게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웃 사랑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헌신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겨 주옵소서.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또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민족과 역사 앞에 바쳐진 모든 교회와 성도들과 성직자들의
수난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골고다를 오르며 폭력의 제물로 죽어간 성도들,
이념의 희생물로 죽어간 자매들과 형제들,
특히 극심한 식량난으로 고난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이 시간 주님을 저희 몸 속에 모셔들인 저희들로 하여금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새성 속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귀한 살과 피를 주신 것 같이 우리도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섬김으로서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주게서 허락하시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귀하게 쓰임박는 저희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997-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