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사용법 / 복향옥
좁다란 딸아이의 자취방에 들어서는데, 마음이 불편해진다. 책상 때문이다. 아니 그 위에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탓이라고 해야 정확하겠다. 게다가 책이나 노트, 혹은 노트북처럼 공부하거나 글 쓰는 데 필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더 언짢게 한다. 다름 아닌 화장품류가 자리를 훨씬 많이 차지하고 있다. 클렌징 오일, 클렌징 로션, 미스트, 스킨, 로션, 세럼, 크림, 썬크림, 헤어 오일, 바디 미스트, 바디 로션 등등이 어지럽다. 외모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나는 스킨과 로션이면 그만이었다. 그런 내 젊은 시절과 자꾸 비교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 떨치는 게 쉽지 않다. 그나마 색조 화장은 별로 하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 하나 생각하는데 헛웃음이 나온다. 케이크를 먹었는지 생크림 묻은 접시랑 포크도 보인다. 딸이 옆에 없어 다행이라고 여긴다. 있었더라면 한소리 퍼부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책상이니, 화장대니, 식탁이니? 먹었으면 치워야할 거 아냐.” 그래놓고는 어쩌면 찔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너는...’
자판 두드리는 내 책상 위 풍경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종류가 더 다양하다. 커피잔과 핸드크림, 클립, 안경, 작은 카메라도 있다. 카메라는 왜,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여태 카메라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글쓰기 숙제하는 지금에야 눈에 들어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딸에게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 식의 잔소리 해온 것이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날 닮아 그 모양인 걸 누굴 탓하랴.
또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그 나이 때, 식탁과 책상을 겸해 쓰면서 자취했다. 자주 이사하는 바람에 무거운 책상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결국, 나 혼자서도 들을 만한 작은 식탁을 샀다. 얼마 가지 않아 식탁은 그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요즘 노트북 높이의 열 배 정도 되는 타자기가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가장자리는 책과 신문과 복사물들이 놓였다. 어쩌다, 라면이라도 끓이게 되면 신문 더미 위에 냄비째 올려놓고 먹었다. 그 광경을 딸아이가 봤더라면 아마 입이 떡 벌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그땐 참 행복했다.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신문이나 스크랩북을 뒤적일 때면 뭐라도 된 것처럼 뿌듯했던 감정을 지금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딸아이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다니랴,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하랴, 새벽까지 과제 하랴. 정신없이 사느라 책상 정돈할 시간은 없지만, 그래서 가끔 엄마한테 잔소리는 듣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다. 시나 소설이 밤을 새운다고 잘 써지거나,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건 아니겠으나, 어쨌든 성실하게 과제물 제출하고, 간간이 좋아하는 작가 강연장 다니는 딸이 기특하다. 음악만 하다 느닷없이 들어간 문창과 수업에 이제는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는지,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며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얘기할 때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딸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아르바이트하는 데마다 주인은 물론 동료들에게 좋은 소리 들을 수 있는 것도 고맙다.
1970년대 흑백 티비 시절,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던 광고 문구를 좋아한다.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마는 늘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공부는 좀 덜해도 괜찮으니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받을 일 하지 말고, 배려하고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주문한다. 공부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책상뿐만 아니라 밥상도 화장대도 되는 가슴 넓은 사람으로 살라고.
첫댓글 가슴 넓은 사람으로 잘 자랄 거 같아요. 부모님 닮을 테니까요.
나보다는 나아야죠. 하하
책상을 다용도로 활용하네요. 열심히 생활하는 딸이 자랑스럽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