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낯익은 세상>
딱부리는 열네 살 소년이다. 골목에서는 동네 형들에게 꿀리지 않으려고 늘 열여섯 살로 행세했다. 변두리 산동네에서 노점상을 하는 엄마와 함께 살던 소년은 어느 날 트럭 화물칸에 실려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간다. 노점상보다 세 배는 더 수입이 좋다는 아빠 친구의 말에 엄마는 망설임 없이 이삿짐을 싼 것이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소년은 만화영화 <마징가 제트>에 나오는 악당 아수라 백작을 떠올렸다. 눈 아래에서부터 왼쪽 뺨을 거의 덮을 정도로 푸르고 큰 점이 있는 모습이 얼굴의 반은 남자고 나머지 반은 여자인 영락없는 아수라 백작이었기 때문이다. 저물녘 도착한 낯선 동네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는 반장으로 일하는 아수라 덕분에 하루 종일 쓰레기더미 속에서 폐품을 골라내는 일을 하며 짭짤하게 돈벌이를 했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꽃섬이라고 불렀다. 아수라 반장의 아들인 좀 모자라는 땜통과 동네 아이들의 비밀 공간인 본부의 대장 두더지가 소년의 친구들이었다. 이곳에서 딱부리와 땜통은 동심의 눈으로 아름다운 풍경들을 발견해낸다. 그것은 지금은 사라진 옛날 꽃섬의 모습과 마을의 주인이었던 도깨비들이었다. 낯선 동네 안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낯익은 세상. 그 매트릭스의 세계는 딱부리가 “아아,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다”고 중얼거렸던 욕망 저편의 세상이었다.
정확히 11년 만이었다. 한국 문학의 거장 황석영을 다시 만난 건. 그는 <장길산>이 출간된 지 몇 년 후부터 10여 차례에 걸친 방북과 김일성 주석 면담 등으로 5년에 걸친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93년 귀국하자마자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석방된 그는 긴 공백을 깨고 <오래된 정원>으로 문단에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11년 전 여름, 어렵사리 찾아간 그의 집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대치리에 있는 아름다운 전원주택이었다. 집 이름이 ‘연산재(然山齋)’였다. 그저 산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 지은 집이라고 했다. ‘ㄷ’ 자 모양의 집은 꽃들이 만발한 작은 정원을 감싸고 있었다. 수덕산 아래 위치한 집에서 보면 서해가 바라다보이고 언덕 너머에는 해미읍성이 자리한 명당이었다. 작가는 그곳에서 이른바 1980년대 세대들이 소중히 간직해 왔던 ‘좋은 세상’에 대한 꿈과 희망이 다 어디로 가버렸느냐고 묻고 있었다. 11년 후, 다시 일산으로 돌아온 그는 고희를 눈앞에 둔 노작가가 되어 있었다. 어젯저녁 마련된 술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져 점심때가 훌쩍 지난 조금 전에야 일어났다는 그는 환한 미소와 너털웃음으로 낯선 손님들을 맞았다. 그가 펴낸 새로운 장편은 <낯익은 세상>이었다. 그가 찾아 헤매던 오래된 정원을 낯익은 세상에서 드디어 찾아낸 것일까. 노작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지구 위에 집을 짓고 도시를 이루며 산다는 게 이렇게 덧없는 일이구나
그동안 국내외 여러 곳을 옮겨가며 살아오셨는데 어디 살 때가 제일 좋으셨습니까?
지금 와서 가만 생각해보면 역시 덕산 연산재에 살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요즘도 가끔 그곳 생각이 나고 그래요.
소설 첫 장면에 엄마와 소년이 트럭을 타고 이사 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주로 이렇게 이사를 다녔죠. 저도 어릴 때 트럭 화물칸에 실려 이사를 간 적이 있었거든요. 이사하면 선생님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이 다니셨죠? <장길산> 쓰실 때는 서른 번이 넘게 이사를 다니셨다면서요? 왜 그렇게 이사를 많이 다닌 겁니까?
환경이 바뀌면 생각도 좀 새로워지고 괜찮아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집필실도 옮기고 집도 옮기고 그랬어요. 그런데 또 몇 달 지나면 그게 그거예요. 그러니 자꾸 옮기는 거죠. 다시 일산으로 이사 온 뒤 앞마당에 백송나무 한 그루를 심었거든요. 그런데 집사람이 이러더라고요. 나는 나중에 저 나무 아래 수목장을 할 테니까 어디 딴 데 갈 생각 말라고요. 이제 더 이상 떠돌아다니며 살기 싫다는 거겠죠. 여기 완전히 터를 잡을 모양이에요.
작품 제목은 <낯익은 세상>이지만 딱부리 입장에서 보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낯선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더군요.
그렇죠. 패러디를 뒤집은 거예요. 거기 제시된 쓰레기장부터 해서 여러 가지 벌어지는 일들이 ‘낯설다고? 아 여기가 낯설어? 이거 우리가 다 만들어놓은 거야’ 이런 뜻이죠. 다 뒤집은 거예요. 소설 집필이 4월쯤에 끝났는데 그전인 2월에 문인들 하고 무슨 행사가 있어서 일본을 갔어요. 신칸센을 타고 동북부 여러 지역을 거쳐 올라가면서 이곳저곳에서 어묵도 사 먹고 사람들도 만나고 구경도 하고 그랬단 말이죠. 후쿠시마나 센다이도 지나갔어요. 그런데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그곳에 대지진이 일어난 거예요. 쓰나미가 밀어닥치고 원전사고가 나고 난리가 났죠. 그걸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저곳에 얼마 전 내가 만났던 가게 주인이나 악수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순간 다 사라져버렸다 생각하니 참 막막했어요. 소설을 쓰면서 그 기억을 떨칠 수가 없었죠. 체르노빌 때는 멀어서 실감이 나질 않았지만 이번에는 너무 생생했던 거예요. 우리가 지구 위에 집을 짓고 도시를 이루며 산다는 게 이렇게 덧없는 일이구나, 그래서 더 낯익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히로시마의 폐허라든가 6·25 때 서울의 폐허 등을 떠올리면 이 세상이 참 낯선 세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다 너희들이 만들고 저질러 놓은 세상인데 낯설다고?’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이죠.
딱부리와 땜통, 두더지 등 10대 중후반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전 작품인 <모랫말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미지가 많이 연결되더라고요.
아주 꼼꼼하게 읽으셨군요. 맞습니다. 이 소설은 <모랫말 아이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에요. 땜통은 <모랫말 아이들>에도 나오는 캐릭터고요. 작품 속에서는 장소나 시간이나 사람들을 안개 속에 있듯 추상화시켰잖아요?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난지도 이야기인 줄 뻔히 알죠. 옛날에 제가 영등포에 살았거든요. 둑만 넘어오면 여의도에 닿았어요. 여의도 일대에는 양말산과 호수가 있었죠. 호수에 목선을 건조하는 작업장이 있었고요. 양말산은 양과 말을 기르는 목장이 있던 곳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산인데 이 산을 폭파시켜서 호수를 메워 여의도광장을 만들고 산이 있던 자리에 세운 건물이 국회의사당이에요. 지금 아파트가 있는 자리의 절반 정도가 미군 비행장이었고 나머지 땅이 땅콩밭이었어요. 우리 어릴 적에는 오목교에서부터 동작동 지나 방배동 정도까지 걸어서 왔다 갔다 하며 놀았죠. 마포가 바라보이는 한강변에서 자주 놀았는데 그 근처에 큰 조개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거기서 보면 오른쪽에 밤섬이 보였고 왼쪽에 꽃섬이 보였어요. 난지도의 옛 이름이 꽃섬이거든요. 밤섬은 물론 꽃섬에도 마을이 있었고 사람들이 많이 살았죠. 나중에 밤섬은 폭파시켜버렸어요. 지금 있는 밤섬은 모래톱이 스스로 모여서 생긴 거예요.
선생님 어린 시절에 옛날 꽃섬을 가본 적 있나요? 굉장히 아름다웠다면서요?
가보진 못했고 강 건너에서 매일 같이 보던 섬이에요.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꽃으로 꽉 차 있었어요. 물이 맑고 깨끗해서 겨울이면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자연의 보고였다고 그래요. 그렇게 아름답던 꽃섬은 이후 서울의 쓰레기 매입지로 이용되면서 악취와 먼지로 뒤범벅된 쓰레기장이 되고 말았어요. 언제부터 난지도라고 불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난지는 난초와 지초를 아우르는 말이에요. 난지도는 우리 사회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지금 겉보기에는 하늘공원이니 노을공원이니 해서 그럴싸한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여전히 그 밑에는 층층이 쓰레기가 쌓여 있고 거기서 침출수나 가스가 나온단 말이죠. 나중에 어떤 고고학자가 난지도의 한 단면을 발굴해서 들여다본다면 그 시대 우리들의 욕망과 생활상들이 다 드러날 겁니다. 이를 테면 근대화 과정에서 쌓여온 부정적이고 어두운 부분들을 그대로 덮어버린 채 그 위에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저는 거기서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보게 돼요. 그런 독극물과 쓰레기더미 위에 흙을 덮고 다져서 만든 산인데 그곳에 다시 풀이 돋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온갖 새와 짐승들이 생겨나 살아간단 말이죠. 자연은 참으로 위대한 거예요.
먹구사는 법을 먼저 배워야 진짜 일꾼이 되는 거란 말야
엄마와 딱부리가 쓰레기 오두막 촌에 도착해서 처음 맛본 음식이 꿀꿀이 꽃섬탕입니다. 그 환상적인 맛에 파리 떼가 달라붙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허겁지겁 입에 넣기 바쁘죠. 이때 아수라 반장이 말합니다. “이렇게 먹구사는 법을 먼저 배워야 진짜 일꾼이 되는 거란 말야.” 결국 이들의 정체성은 도시를 기반으로 살아가기는 하지만 도시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먹고살기 위해 도시 주변을 떠도는 유목민 혹은 이방인 같은 존재들인 거죠?
그렇죠. 박정희 정권 이래 개발독재가 이어지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에 중산층이라는 게 생겨요. 그 중산층이 도시를 기반으로 사회 주요 구성원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이 바로 도시의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반면 그즈음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을 대비해 도시 정비를 하면서 300여 개의 산동네에 흩어져 살던 빈민들을 전부 외곽으로 몰아냈어요. 이 소설에 나오는 꽃섬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해서 떠밀려난, 어떻게 보면 버려진 존재들이에요. 도시에서 쓰레기처럼 쓸모없다고 내동댕이쳐진 것이죠.
그런데 도시로부터 버려진 존재들이 모여 사는 이 꽃섬에도 도시와 동일한 법칙이 있고 서열이 있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있습니다. 구청 구역과 개인차 구역이 나눠지고, 일선과 이선으로 구분되고, 돈과 계급의 논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강남몽>에 나오는 졸부들의 천박한 생존 법칙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요.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에 보면 소위 우리가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원시부족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봤더니 바깥세상, 즉 서구 사회와 거의 다를 바 없이 그 안에도 선과 악이 있고 계급이 있고 사회 규범이 있더라는 거예요.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나 그런 게 있기 마련인 거죠. 따라서 소설에 나오는 꽃섬도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도시에서 통용되는 사회 규범이나 법도 같은 것들이 다 들어와 있는 것이죠.
시라이꾼이라는 게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사전에도 안 나오던데요.
예전에 쓰레기 속에서 폐품을 주워 먹고살던 사람들을 넝마주이 혹은 재건대라고 불렀어요. 쇠스랑을 들고 멜빵 달린 광주리를 메고 다녔죠. 넝마주이나 재건대가 공식 용어라고 한다면 시라이꾼은 자기들끼리 쓰던 은어 같은 거예요. 옛날에는 그런 친구들이 밥도 빌어먹고 그랬어요. 보통 때는 일을 하다가 때가 되면 밥을 빌어다가 어울려 먹었죠. 간혹 지나가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으면 몰래 들어와 쓸 만한 물건을 훔쳐가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양아치라고 불렀죠. 양아치라는 말은 동냥아치라는 말에서 왔고, 동냥아치라는 말은 움직일 동(動) 자에 방울 령(鈴) 자를 쓴 동령이라는 말에서 온 거예요. 동령은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강하게 일으키기 위해 흔드는 도구의 하나로 각종 불교의식 때는 물론 스님들이 탁발하는 과정에서도 이걸 흔들었다고 해요. 그러던 게 널리 퍼져 구걸하는 사람들이 이 동녕을 흔들어 방울 소리를 내면서 다녔던 것 같아요. 동령아치가 동냥아치가 되고 나중에 동 자가 떨어져나가면서 양아치라는 말이 된 것이죠. 조선시대 때도 도시 빈민들이 있었어요. 주로 시구문이나 왕십리 혹은 청계천 등에 모여 살았죠. 일제강점기 때 김두한이 거기서 자랐다고 하잖아요? 그때도 보면 폐품 줍는 사람도 있고 뱀, 거북이 등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도 있었는데 전부 도시 빈민들이었어요. 그러다가 1961년 5·16 직후 전국에 있는 양아치들을 조직화해서 만든 게 바로 재건대에요.
꽃섬 아이들의 식생활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쓰레기를 뒤져서 먹을 만한 게 나오면 그냥 먹거든요. 옷에 쓱 닦아서 입으로 가져가든가 아니면 이것저것 한데 넣고 끓여 먹죠. 어른들도 아이들이 뭘 먹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얼핏 자급자족하는 마을처럼 보여요.
소설을 쓰면서 출판사에 부탁해 1970~1980년대 신문 자료를 다 모아서 살펴봤더니 당시 양아치 아이들이 뭘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한 기사들이 나오더라고요. 우리도 어렸을 때 학교 갔다 오면 미군 부대에서 나온 쓰레기를 뒤져서 햄이나 소시지 같은 거 나오면 냄새 맡아보고 대충 먹고 그랬거든요. 그걸 끓여 먹은 게 바로 부대찌개였어요. 사람들은 꿀꿀이죽이라고 불렀죠. 시장에 가보면 상인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온 햄과 소시지를 넣어 끓인 부대찌개를 팔았어요. 한 그릇에 10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냄새가 너무 근사했어요. 그때 아이들이 뭘 제대로 먹었겠어요? 햄이나 소시지면 난리가 나는 거죠. 먹다 보면 담배꽁초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냥 건져내고 먹으면 그만이었죠. 그게 고급화되기 시작한 게 월남전쟁 때부터였어요. 저도 참전했으니 경험을 했죠. 한국 병사들은 미군들이 먹는 시레이션 전투식량이 나오면 느끼해서 몇 끼 이상은 도저히 못 먹어요. 그래서 한국 병사들을 위해 케이레이션이라는 게 만들어졌어요. 그 안에는 김치나 멸치볶음 등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있었죠. 그러니까 전투식량이 나오면 그냥 먹을 만한 거는 골라 먹은 다음에 케이레이션에 있는 김치와 시레이션에 있는 느끼한 고기나 햄, 소시지 등을 다 때려 넣고 부대찌개를 끓여 먹었던 거예요. 그건 상당히 고급이었어요. 그때 거기서 그걸 먹어보고 제대해서 돌아온 사람들이 의정부 인근에서 부대찌개 장사를 시작한 거죠. 지금은 의정부를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를 잡았어요. 사람의 풍속이라는 게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음식물 쓰레기를 골라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탈이 나는 경우가 없어요. 가난과 역경은 사람의 몸을 환경에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변화시키나봅니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깨끗한 걸 그렇게 가려 먹는 데도 아토피 피부염이 생기고 툭하면 탈이 나죠. 현대인들은 식품에 표시된 유통기한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때야 뭐 사람이 대장균하고 같이 살았죠. 우리 어릴 때는 정말 별의별 걸 다 먹었어요. 위생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형편없었어요. 그런 속에서도 잘살았는데 요즘 보면 정말 그렇게 조심하고 따져서 먹는 데도 아이들 체력이 약하고 학교에서는 걸핏하면 식중독 사고가 나고 그러더라고요. 우리 몸도 변한 것 같아요.
사물의 지옥 속에서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영성은 다 어디로 갔는가
딱부리와 땜통이 만난 김 서방네 식구들은 누군가요? 도깨비 가족인가요?
맞아요. 이 섬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이 도깨비라는 거죠. 도깨비는 사람과 귀신의 중간쯤 되는 존재라고 해요. 이를테면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땔 때마다 쓰던 부지깽이 또는 매일 마당을 쓸던 빗자루 등 사람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도깨비로 변한다고 본 거예요. 옛날 꽃섬의 주인은 바로 이 김 서방네 식구들, 즉 도깨비들이었어요. 그런데 계속 섬에 문명의 흔적들이 밀어닥치고 사람의 손때가 묻거나 정이 깃들지 않은 생활 쓰레기들이 쌓이게 되니까 도깨비들이 살아갈 곳이 없어진 것이죠. 이 소설에서 던지는 질문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따른 사물의 지옥 속에서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영성, 즉 휴머니티라든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정 같은 것들이 어디로 갔는가 하는 겁니다. 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전기가 들어오고부터라는 시골 노인들의 말처럼, 지금의 세계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도깨비를 끝없이 살해한 과정이었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나는 우리 속에 있는 도깨비 또는 영성이나 정령을 불러내 그이들의 마음으로 묻고 싶었습니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고 말이죠.
도깨비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땜통입니다. 땜통은 지능이 좀 떨어지는 아이죠. 그리고 빼빼엄마도 도깨비를 알아보는데 이 여자 역시 정신이 나간 사람입니다. 딱부리는 땜통을 통해서 도깨비를 보죠. 결국 섬 안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마음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이 도깨비와 소통하게 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 거죠. 땜통이 모자란 아이라는 건 그만큼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는 말이에요. 남들처럼 욕망도 없고 돈이 뭔지도 모르고 그런 아이니까요. 욕망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일부 사람들만 도깨비들과 소통을 한 거예요.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생산과 소비가 목적이 된 세상은 도깨비를 몰아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그들을 볼 수도 없는 겁니다.
막내 도깨비의 요청에 의해 딱부리와 땜통은 빼빼엄마를 통해 메밀묵을 만들어 김 서방네 가족에게 가져다줍니다. 도깨비들이 왜 그렇게 메밀묵과 막걸리만 좋아하는 겁니까?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민담에 보면 도깨비들은 메밀묵과 막걸리를 제일 좋아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메밀묵만 갖다 주면 뭐든지 다 해준다는 거예요. 어떤 자료에는 개고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쓰여 있기도 해요. 나중에 막내 도깨비가 땜통에게 돈과 금붙이가 있는 곳을 알려줘 보답을 하죠. 그런데 이게 함정이에요. 민담에 보면 도깨비들이 사람에게 어떤 보답을 했을 때 사람은 그걸 굉장히 도덕적으로 사용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그게 다 물거품이 되거나 오히려 화를 입거든요. 소설 속에서도 땜통에게 준 돈을 딱부리와 엄마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려 하자 마을에 화재가 났을 때 다 타 버리잖아요. 고스란히 날린 거죠.
쓰레기가 된 욕망 속에서 또 다른 욕망을 캐내며 살아가던 꽃섬에 큰 불이 납니다. 이미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아빠와 노름판을 벌이다 살인 미수로 감옥에 간 아수라 반장에 이어 엄마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돈마저 다 태워버리고, 땜통도 슈퍼 마리오 게임기를 가지러 갔다가 연기에 질식해서 죽게 됩니다. 현실은 온통 불행의 도가니인데 딱부리는 혼잣말로 ‘아, 다행이다’라고 중얼거립니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죠?
딱부리는 삼청교육대에 간 아빠나 감옥에 간 아수라 반장, 병원으로 실려 간 빼빼엄마가 모두 소독이라도 한 것처럼 새사람이 되어 돌아오길 바랐어요. 그리고 자기는 절대 감옥이나 병원이나 학교 같은 데 갇혀 살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다시 확인하죠. 그러던 어느 날 본부 앞마당에 앉아 저무는 강변을 바라보는데 뭔가 거뭇한 그림자가 자기 옆에 와서 가만히 앉습니다. 도깨비가 되어 돌아온 땜통이었어요. 얼마 후 춤추듯 푸른 불빛으로 사라져가는 땜통을 보며 ‘아, 다행이다’라고 중얼거린 거예요. 죽은 줄만 알았던 땜통이 꽃섬의 진정한 주인인 도깨비가 되어 다시 자기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라는 말이에요. 다 타버린 폐허 속에서도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에 여린 새잎이 돋아나듯 절망 가운데 빛나고 있는 한 조각의 희망을 발견한 거라 할 수 있어요.
낯익은 세상으로 일컬어지는 욕망으로 가득한 자본주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작가들에 따라서는 결국 대파국이 올 거라고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통해 이어져온,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관계들이 이 세상을 또 다른 세계로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지금 제 문학 속에서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화두 세 가지를 연속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첫째는 국경 없이 움직이는 이동과 이동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조화예요. <바리데기>와 <심청, 연꽃의 길>이 이런 주제를 다룬 작품이죠. 둘째는 생존과 절제에요. 현재 지구가 여섯 번째 절멸기에 와 있다고 하더군요. 잘못하면 사람도 다른 종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어요. 기존 삶의 방법이나 생산 방식으로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거죠. 셋째는 정체성과 보편성이에요. 각각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를 소유하는 겁니다. 서로 충돌하지 않고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이 세 가지 화두를 제 만년문학의 주제로 다루고 있는 거예요. 만년문학이란 시인 김정환이 말했듯이 치매의 문학이죠. 모든 것을 쓸어버린 뒤의 폐허에 남아 있는 연민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곧 칠순이시고 문학 인생 오십 년이 되셨는데 이제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도는 문학은 좀 내려놓으시고 한 곳에 조용히 머무는 문학에 심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제는 해외에도 아주 중요한 행사가 아니면 가지 않을 작정이에요. 나이도 먹었고 이제 조용히 한 자리에 머물면서 작품을 쓰려고 해요.
노작가와 나 사이에 놓인 건 빨간 토마토였다. 그는 속도 풀고 요기도 할 겸 토마토를 썰어 먹었고, 나는 유리잔에 담긴 토마토주스를 마셨다. 접시 위에 놓인 토마토가 다 없어지고 주스 잔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두 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작가는 운동하러 갈 시간이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처에 있는 헬스클럽에 가서 두 시간씩 운동을 한다고 했다. 함께 운동하기로 한 옆 동네 작가 김훈이 게을러서 잘 나오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독자로서 치열했던 리얼리즘 문학의 지평을 넘어 거장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만년문학의 정수를 만끽하려면 그의 건강과 왕성한 활동을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 황석영은…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다. 1962년 고교 재학 중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공사판과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뒤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등 당대 역사의 큰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삶을 살아왔다. 등단 이후 50년 동안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장편 <장길산>,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손님>,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등을 발표하며 불꽃같은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글쓴이 유승준은…
디자인하우스 출판본부장과 가나북스 대표를 거쳐 자유기고가 및 출판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각종 잡지에 글을 써온 그는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요리의 세계를 탐구한 첫 번째 책 <사랑을 먹고 싶다>를 펴냈으며, 그 외 <안동교회 이야기> <천국의 섬> 등을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