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물리‧천문 분과 · 민경찬
지난 3월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는 KAIST에 2026년 대학 평가 순위에서 제외하겠다는 통보를 하였다. 작년 말경 KAIST의 어떤 과에서 300명에 가까운 해외 대학교수들에게 이메일로 QS 설문조사 참여를 유도하면서 일정액의 상품권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QS는 이를 대학 평가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이 해프닝은 아직 KAIST까지도 획일적, 양적 지표 중심의 대학 평가 순위에 예민해져 있음을 보인다. 사실 많은 국내 대학이 아직도 이 ‘왜곡된’ 평가 순위에 연연하고 있다.
유럽대학 연합(EUA)은 2022년 7월 “연구 평가 혁신” 보고서에서, 평가는 ‘질(quality)’과 ‘영향(impact)’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확인해야 하며, 그 요소들도 과제별 특성에 따라 달라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에는 40개국 350여 개 대학, 연구 기관이 참여하였고, 이의 실천을 위한 연합체(Coalition)를 구성하였다. 평가의 기본 원칙 네 개에 ‘저널 중심 지표(IF, h-index 등)의 부적절한 사용’을 포기할 것과 ‘대학 평가 순위’를 사용하지 말 것,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 선언(DORA)’에서도 지표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정부 관리, 국회의원, 인론인을 포함한 우리의 연구 관련 생태계는 아직도 각종 지표, 순위 등을 성과의 기준으로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벨과학상은 인류에 가장 큰 유익을 주는 연구로서, 최초로 이 연구의 문을 연 연구자에게 주는 상이다. 즉, 영향(impact)과 최초(original)가 핵심인 것이다. 그럼데도 우리 사회는 노벨과학상 후보도 인용지수 등의 지표를 기준으로 가능성을 판단하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의 연구 관련 생태계는 아직도 기초과학 영역에도 단기적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2023년 R&D 예산 삭감 사태 이후에도 예산 규모는 복구되었지만 기초 연구 과제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풀뿌리 연구’의 개념조차 사라진 것 같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연구의 목표나 방향을 정하지 않은 연구,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과제에 도전하는 것을 격려하고 장기적으로 지원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연구는 지원받을 수 없다.
우리 연구 생태계의 다른 큰 문제는 인재들이 이공계로 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기초과학으로 최우수 인재들이 와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거부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아도 계약직이 많고, 초봉은 4천만 원대다. 의사의 직업 안정성, 인센티브와는 비교조차 의미가 없다. 지난 10여 년간 이공계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매년 3만 명 정도가 해외로 떠났다. 교수 등 고급인재들도 급여를 10배 이상까지도 대우받을 수 있는 해외로 나가고 있다.
국가 힘의 원천은 기초과학 연구력이다. 국가 경쟁력은 첨단 기술에서 나오는데, 이는 첨단 기초과학이 뒷받침해 줘야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작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중국 딥시크의 요체, 본질은 다 수학이다. 지난 20년간 칭화대를 중심으로 수학, 물리 국제올림피아드 수상자급을 모아 AI 인재들을 꾸준히 키워온 것이 마중물이 되었다. 국가의 경쟁력은 물론 시급한 과제인 AI 기술과 기후변화의 위협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지구촌’으로 미래를 지켜가는 일 때문에 기초과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는 다음 세대들의 생존이 걸린 일이다.
우리 과학기술계는 정부, 국회, 언론 그리고 국민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태도를 크게 바꿔줘야 한다. 특히 국가의 힘으로서 기초과학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 정부는 AI가 외면당하던 1990년대부터 몬트리올대학 등의 AI 연구자들에게 ’묻지마 연구비‘로 30여 년간 계속 지원하였다. 당시 연구자들에게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탐구를 이어갈 수 있어 세계에서 연구자들이 모여들었다. 그 결과 오늘의 몬트리올은 AI의 성지가 되었고, 글로벌 기업과 젊은 인재들이 세계에서 몰려들고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연구 활동에 대한 지원 및 관리시스템을 시급히 대전환시켜야 한다. 단기적 효율성보다 장기적 효과성, 획일적 양적 지표보다 다양한 질적 영향을 추구하며, 이공계 인재들의 직업 안정성과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내야 미래 희망이 있다. 누가 이를 책임지고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동안 현장에서 많은 경험과 경륜을 갖춘 리더들이 모인 KASSE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경직된 현장이 아닌 자유로운 ’어른‘ 위치에 계시기 때문이다. 미래는 오늘의 KASSE에 미래를 책임지는 목소리를 기대하고 있다.
필자소개
캐나다 Carleton대학교 이학박사(수학)
대한수학회 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과학기술분과 의장)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연세대 명예교수, 과실연 명예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