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파트너스 공동대표 · 이 희 용
우리나라는 2009년 12월 한전팀이 UAE로부터 APR1400 한국형 원전 4기 건설사업을 동시에 수주한 이래 아직 한국형 원전을 해외에서 수주하는 소식을 또다시 전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형태와 UAE 원전 사업에서 얻은 교훈을 통하여 우리가 직면한 도전 사항과 이를 극복할 방안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자 한다.
상용원전 국제 신규사업 추진 형태
신규 원전건설을 위한 사업은 국제 공개경쟁입찰, 제한경쟁입찰 및 국가 간 협정(Inter Government Agreement, IGA)으로 진행이 된다.
한국이 최초로 해외 수주에 성공한 사례는 공개 경쟁 입찰 방식이었다. UAE의 2009년 2월 국제적으로 공개입찰을 선언하는 자리에 세계시장에서 활동 중인 많은 경쟁 업체가 모여들었다. 그러나 UAE는 국제입찰을 시행하기 이전에 이미 착실하게 준비하였다. 핵 비확산에 대한 우려를 없애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하여 IAEA와 긴밀히 협력하였고 미국과는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등을 배제한 원자력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UAE 원자력 규제기관인 FANR(Federal Authority for Nuclear Regulation)가 주계약 체결 이후에 발족하여 주계약과 규제요건과의 충돌을 우려 하였으나 다행이도 그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UAE와 미국이 체결한 원자력 협력 협정을 황금 협정(Gold Agreement)이라 칭한다. 핵확산의 위협 요소를 모두 배제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반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속을 태우고 있다. 오일머니의 헤게모니를 오랫동안 흔들어 오고 있는 사우디가 핵연료 시장에서 농축과 재처리를 못 하여 끌려다닐 수 없다는 자존심이 아직도 미국과의 원자력 협력 협정 체결을 가로막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격으로 그 직격탄을 우리가 맞고 있다. 미국과의 원자력 협력 협정이 체결되어야만 우리의 수출이 가능하다. 사우디와 미국과의 정치 외교 군사적 줄다리기가 진행되면서 사우디 원전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한전의 고민이 깊다.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신규 원전 시장에서 서방국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아예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한국, 미국, 프랑스 3파전으로 압축되는 제한 경쟁 입찰방식이 전개되고 있다.
네델란드는 Borssele 원전(485 MWe)을 1973년에 준공한 이후 신규로 상용원전 2기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 전력 공사와 한수원을 초청하여 설명회를 했고 입찰을 위한 정보요청서를 발급하였다.
정부 간 협력 협정은 양국 간 협력 협정 IGA를 체결하면 공개경쟁 입찰 없이 양 국간 합의로 원전 건설을 추진할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되는 폴란드의 경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과 폴란드는 2010년 10월에 IGA를 체결하였다. 1,000 MWe 원전 6기의 설계, 건설, 시운전 및 해체를 목적으로 18개월간의 작업을 통하여 폴란드 정부에 CER (Concept and Executive Report)를 제출하기로 했다. 주요 분야는 원전건설을 위한 FEED(Front End Engineering Design), 파이낸싱 조달방안 및 첫 호기 사업과 전체 사업 수행을 위한 사업구조 등이다. 전략적 협력 방안으로는 폴란드 정부는 사업주관회사가 미국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미국 원자로를 선택하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개경쟁입찰 없이 원자로기술과 EPC(일괄 도급계약- Engineering, Procurement & Construction) 업체를 선정하고 파이낸싱을 지원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렇게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입한 미국의 폴란드 신규원전 사업에 한수원이 참여를 결정하자 경쟁업체인 웨스팅하우스를 한껏 자극하여 결국 소송까지 가게 되었다. 한전과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를 상대로 한 협상을 하루빨리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
교훈과 도전사항
UAE 사업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도전받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UAE 원전 4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프랑스 프라마톰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해오던 만성 건설 공기 지연과 공사비 증가의 오명을 벗고 “On Time On Budget”을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게 되었다. 그간의 많은 교훈을 실무차원에서 몇 가지로 함축하여 언급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신규 원전 수주 시 EPC 즉 원전 건설에만 너무 치중하였다. 원전은 건설 10년, 운영 60년∼80년 및 해체사업으로 이루어져 100년 사업이다. 한국 원자력 산업은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운영 정비 핵연료 연구개발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프라를 구축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UAE 원전 사업 주계약 협상 당시 이러한 한국의 훌륭한 원자력 인프라를 UAE에 그대로 옮겨보자고 공동협력 협약을 분야별로 추진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한전과 ENEC(UAE 원자력공사)가 공동으로 만든 원전 운영회사인 NAWAH이다. 그러나 핵연료 공장 건설에 대해 논의가 진전된 것 외에는 여러 분야 협력이 유명무실하게 된 것이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다. 원전 건설계약에만 치중하지 말고 국내 원전 운영 정비 경험과 노하우를 점차 체계화시켜 원전 수주에 활용할 뿐만 아니라 준공 이후 해체까지 우리의 사업 참여 분야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발주처의 관심은 적기 준공과 안전 운영의 양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사업 경험 인력을 유지하면서 세대 간 기술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기술과 경험의 맥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강점이자 자랑은 70년대부터 지속해 원전 건설과 운영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신규 원전 건설이 제한되면서 기술 인력은 분산되고 노령화 퇴직이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도 웨스팅하우스와 프라마톰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고 이미 발을 들여놓은 상태이다. 기술 인력 세대 간의 차이를 줄이고 유지 관리하는 것은 해외원전 수출에 매진하는 우리 원자력 산업계에 절실하다.
셋째, 글로벌 마인드가 필요하다. 우리 원자력 기술을 강조하다 보니 우리 것에만 마음이 쏠리고 있다. 우리는 해외업체들과의 관계를 항상 갑을의 위치로만 익숙해져 있어서 해외업체들과 동반자 관계로 업무를 나누고 리딩하는 마인드가 부족하다. 특히 신규 원전을 도입하려는 국가에서는 현지화를 앞세우고 있다. 우리가 원전을 개발하면서 국산화 기술 자립을 하였듯이 현지화를 통한 기술 축적과 제3국 공동진출을 조건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국내에서 동원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건설에서 운영 정비에 이르기까지 현지 업체와 Value Chain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넷째, 원전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파이낸싱 조달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UAE 원전 사업을 위시하여 모든 나라가 대형원전은 물론 SMR에 이르기까지 파이낸싱 지원을 요구한다. 사업자의 지분투자 참여는 피할 수 없는 요구 사항이며 정부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지원방안이 필요하다. 한국 단독이 아니라 UAE를 위시하여 공동진출이 가능한 국부펀드와 손잡아야 한다.
결정적인 파워
대형 상용원전 도입사업은 그 나라의 에너지 정책에 따라 파급영향이 매우 큰 국책사업이다. 따라서 한전과 한수원이 발주처와 아무리 진지한 협의를 하더라도 VIP 가 적극적으로 세일즈 외교를 하면서 원전 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 패키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다.
<UAE 원전사업 주계약서 서명 장면>
필자소개
(전)한국전력공사 원전수출본부장
(전)UAE-원자력공사 Nuclear Power 자문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