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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경심회'에서 실시하는 이벤트인데 이번 행사는 새로 회장으로 취임한 이 선배님의 역점사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요일에 귀가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일요일에 출발하여 월요일에 돌아오는 역발상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방학 중이라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
☞ 2015.8.9.(일) ~ 10(월) 속초 아바이 마을 및 통일전망대
지금까지의 우리 행사는 노선버스를 이용하여 현지에 도착 한 후에는 시티투어버스를 주로 활용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장님이 회원들을 위하여 좋아하는 술도 자제를 하고 렌터카를 직접 운전하여 행사를 진행하니 엄청 편리하다.
회원들은 아주 편안하게 구경을 한 덕분에 모두가 좋은 기획이었다는 후일담이다.
참고로 스타렉스 12인승 최신형 렌트비가 2일에 19만원, 자차보험료 2만원, 기름 값이 9만원 소요되었다.
▶ 1일차 : 9일(일)
아침 6시에 포항을 출발하여 동해안으로 올라가다가 강원도 삼척시 ‘임원항’에 위치한 [여정식당]에서 시원한 ‘물곰탕’으로 아침을 해결하다.
정가 1만5천원이다.
“마수걸이로 6명이나 식사를 하니 DC를 해 줄 수 없느냐?”
고 흥정을 한 결과, 1만2천원에 식사를 한 맛있는 메뉴였다.
첫 일정으로 삼척시 원덕읍에 위치한 [해신당공원]에 들리다.
풍랑에 휩쓸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처녀를 위로하는 작은 사당인 ‘해신당’이 바다와 접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억울한 처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남성의 성기를 본 딴 나무 조각 공원을 조성하여 매년 정월과 시월 두 번씩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어린 자녀들과 동행하면 민망할 정도로 남근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놓았다.
이곳은 2004년 ‘동오산악회’ 동료들과 처음 들린 후 이번이 4번째 방문이다.
처음 와보는 회원들은 아주 흥미롭게 관찰을 하는 것 같았다.
이어서 관동팔경의 제1경인 [죽서루]를 둘러보다.
'관동팔경'이란 대관령의 동쪽에 있는 가장 빼어난 여덟 곳의 경치란 뜻이다.
강원도에 네 곳(고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양양의 낙산사)과 북한에 두 곳(고성의 삼일포, 통천의 총석정), 경북에 두 곳(울진의 망양정, 월송정)이 있다.
이곳은 주변에 오십천이 흐르고 있으며 보물 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자연암반 형태를 적절하게 조화시키기 위해서 양측면의 칸수가 다르며 2층 누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다리가 없다.
조선시대에는 일종의 관아시설이었으며 삼척부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의 가장 특이한 점은 기둥의 길이가 모두가 다르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자연암반위에 기둥을 세웠기 때문이다.
다음코스는 역시 관동팔경으로 양양에 소재하며 수년전 산불이 일어났을 때 소실되었다가 새롭게 중건을 한 [낙산사]를 둘러보았다.
귀중한 문화재가 하루아침에 소실되는 일이 없도록 온 국민들이 산불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불에 탄 흔적이 남은 동종은 형태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문화재는 복원을 한다고 해도 이미 옛것이 아니다.
또한 주변에 웅장함을 자랑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한 울창한 산림들이 복원되는 것은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불조심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속초에 당도하니 점심때가 되었다.
회장님이 수년전에 들린 적이 있다는 유명 맛 집인 [항아리물회]집을 찾았다.
그런데 우와!
엄청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으로 인하여 주차도 못하고 우리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다시 찾아간 곳이 [속초명품전복물회]집이다.
‘전복물회’가 1인분에 1만5천원이다.
포항물회가 유명한데 이곳 속초는 포항물회와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전복과 멍게 등을 혼합했는데 아주 특별한 맛이 나는 색다른 음식 맛을 체험한 점심이었다.
중식 후 숙소부터 정하자는 의견에 따라 [갯배펜션]에 여장을 풀다.
6인 숙박료가 12만원이다.
한여름 성수기라서 어제까지는 20만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싸게 받는다고 하여 우리들은 계약을 하였다.
그런데 역시 ‘싼게 비지떡’이라더니 수건이나 방청소등에서 서비스가 기대에 못 미치는 집이었지만, 싼 맛에 계약한 집이라 감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장을 푼 우리들은 [갯배]체험을 하였다.
1인 200원씩의 승선료를 내고 손으로 쇠줄을 당겨서 건너편으로 이동하는 이 배는 예전 그대로였다.
배에서 내린 곳은 함경도 사람들이 6.25때 내려와서 곧 귀향을 하리라는 기대에서 잠시 정착한 곳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귀향을 하지 못하고 정착하고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이름도 함경도사투리에서 따온 [아바이마을]이다.
이들의 사연과 관련이 있는 대표적인 노래가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이다.
1.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 ~ ♩♪♬ ~
2.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 달만 외로이떴다.
♩♪♬ ~ ♩♪♬ ~
3.철의장막 모진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잡고 웃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 ~ ♩♪♬ ~
♣ [아바이 마을]은?
아바이마을은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에 위치한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의 집단촌이다.
행정구역상 속초시 청호동에 속해있으며 속칭으로 '아바이촌' 또는 '아바이집단촌' 이라고도 불린다.
한국 전쟁 당시 월남한 실향민이 이 곳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이듬해 1.4 후퇴가 발생하여 국군이 남하하게 되면서 당시 북한에 있던 함경도 피난민들이 같이 내려오게 되었다.
휴전이 되면서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속초시 청호동 지역에 지금의 집단촌을 만들었다.
함경도 방언으로 '아저씨'를 뜻한다는 '아바이' 라는 방언을 붙여 마을이름을 지었다.
실향민 집단촌이지만 함경도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북파공작원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 주민 중 일부는 북파공작원이 남한으로 데려온 사람이라고 한다.
지금은 실향민 2세들이 대부분이다.
실향민 1세들은 대부분 고령으로 인하여 사망하였다.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냉면과 순대 등 북한요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함경도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함흥냉면’이 대표적이며 ‘아바이순대’라 불리는 오징어순대가 유명하다.
이 마을에 순대를 파는 가게가 밀집되어 있지만, 속초시의 다른 곳에서도 많이 팔고 있다.
결집력과 단결력이 강하며 고향인 함경도 지역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짙은 편이다.
예전에는 조용하고 쓸쓸한 집단촌에 불과했으나 1990년대 말에 관광객들로부터 새로운 명소로 알려져 이 지역을 방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KBS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같은 방송사의 예능프로인 ‘1박 2일’도 이곳에서 촬영했던 적이 있다.
☞ 「갯배」란?
속초시내와 아바이마을 사이에 놓인 수로를 넘나드는 도선이다.
갯배는 동력선이 아니라서 탑승자가 쇠갈고리로 와이어를 당겨 반대편 선착장까지 배를 끌고 가야한다.
갯배는 곧 아바이마을의 상징이다.
직접 사람이 배를 끄는 재미에 아바이마을과 함께 속초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힘깨나 쓰는 젊은이들이 와이어를 당기며 직접 배를 끌고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설악금강대교’가 개설되기 전에는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속초시내까지 갯배를 이용하면 100m 거리로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갯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청초호 둘레로 5km를 돌아서 가야 했다.
다리가 개설된 이후에도 갯배 선착장이 있는 신포마을과 속초관광수산시장을 왕래하려면 자동차보다 갯배가 더 편하다.
갯배의 1년 유료 이용객수는 약 15만~20만 명이다.
갯배는 실향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속초시민과 동고동락하는 삶의 현장으로 그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갯배는 사람만이 아니라 오징어를 실은 손수레도 실어 날랐으며, 학생들도 갯배를 타고 통학을 했다.
그래서 갯배는 지역주민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되어 있다.
예전에는 갯배 구간이 100미터 정도였으나 2000년대 들어 교량 건설과 항만정비 때문에 수로가 50m 정도로 좁아졌다.
2017년 11월부터 새로 제작된 신형 갯배가 운행 중이다.
기존의 갯배는 19년 동안 운행해 왔는데, 당초 33인승으로 제작되어 잘 운행해 왔으나 2015년 선박안전법이 바뀌면서 13인승으로 운행할 수밖에 없어 다시 제작해 운행하게 되었다.
☞ 「갯배」의 유래와 역사
아바이마을의 상징인 갯배는 속초항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현재 갯배가 운행되는 선착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속초 남북교통의 길목이었다.
1932년 지도를 보면 원산 - 양양간 도로가 속초리를 거쳐 갯배 운행 지점에서 청초호를 건너 청호동을 관통했다.
폭이 100m도 안되고 물이 얕아 거의 육로였다.
1932년부터 1936년까지 청호동 동편 바다 쪽으로 방사제 8백m를 쌓고, 바다 쪽 외항과 내항(청초호) 사이로 선박이 드나들도록 수로를 준설 확장해 폭 92m의 수로를 개설했다.
이에 속초 읍에서는 끊어진 육로 교통을 잇고자 갯배 1척을 만들어 운행했다.
당시 갯배로 사람은 물론 소형버스도 실어 날랐으며, 한 번에 우마차 네 대 정도 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속초항이 개발되면서 1937년 속초항 주변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많은 인구가 몰렸으며, 남북 육로를 잇는 갯배는 크게 활성화되었다.
이 갯배로 6.25 전쟁과 1.4후퇴 때도 우마차와 차량이 건너다녔다.
그 후 갯배는 전쟁 중에 폐선이 되었다가 다시 수복되면서 조막손 영감 김영학씨가 주업으로 운행했으며, 자기 소유의 거룻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청호동에 많은 실향민들이 정착하면서 작은 거룻배로는 손수레나 자전거도 싣지 못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1952년 1군단에서 목재 및 자재를 지원하여 50인승 갯배 1척을 건조해 운행했다.
1961년 속초 읍은 갯배 한 척을 더 제작해 갯배 2대를 정식도선업 허가를 받아 재향군인회에 위탁하여 운영했다.
1988년 청호동개발위원회에 위탁 운영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갯배는 2000년 TV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스쳐 지나가는 명장면을 연출하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고, 2010년에 ‘1박2일’로 다시금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아바이마을은 1박2일에 출연한 탤런트 이승기의 어머니 고향이며, 외할머니가 실향민 출신이다.
주변에 건어물가게와 횟집, 생선구이집, 오징어순대집 등이 들어서며 갯배나루 주변은 일약 관광 번화가로 도약했다.
☞ 「가을동화」 촬영지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2000년 9월부터 11월까지 16부작으로 KBS2 TV에 방송된 드라마이다.
은서(송혜교, 아역 문근영)와 준서(송승환)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방영 당시 40%가 넘는 시청률로 인기를 끌었으며, 종영 후에도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각국에 방영되어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선착장 초입에는 드라마 속에서 은서가 살던 집 ‘은서네 집’이 있다.
은서와 준서가 다시 만날 때 서로 다른 지점에서 각각 갯배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암시하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드라마 마지막 편에서 백혈병에 걸려 휠체어를 타고 나온 은서와 준서가 함께 해변에서 사진을 찍고 바다를 바라보는 모래사장이 바로 이곳 아바이마을 백사장이다.
아바이마을 갯배 선착장에는 가을동화 촬영을 기념해 은서와 준서 두 주인공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명소이다.
이곳 갯배 선착장에는 북청사자놀음에 나오는 사자, 소달구지 조형물과 아바이 마을 실향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과 벽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설악 – 금강대교
아바이마을에서 멋진 속초와 설악산의 풍경을 즐기려면 설악금강대교 위로 올라가면 된다.
지난 2012년 7월에 개통된 설악-금강대교는 구 수로와 신 수로 위를 지나는 아치형 교량이다.
남쪽 교량은 설악대교, 북쪽 교량은 금강대교이다.
설악대교는 1999년 완성되었으며, 금강대교는 2012년 개통되어 남북을 잇는 속초시 해안도로가 완전히 소통되었다.
당초 신 수로 위 교량은 청호대교라고 이름을 지었으나 두 교각이 모두 완공된 2012년 새로운 이름으로 공모를 통해 설악대교와 금강대교로 정했다.
설악과 금강이 서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통일염원의 뜻을 담았다.
신수로가 개설되어 남북으로 나뉜 아바이마을은 이 교량을 통해 반대편으로 통행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교량 위로 올라가서 수로 반대편 엘리베이터로 내려온다.
계단도 있다.
교량 위에서는 속초 앞바다와 조도, 속초시 전경, 청초호와 설악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일출 감상도 좋다.
특히 청초호와 설악산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계단을 이용해 청초호 방면 인도로 올라가면 된다.
설악-금강대교는 야간에 형형색색 조명을 비춰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 아바이 마을 골목길
실향민들의 소박한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곳이다.
아바이마을 역사는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의 정착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향민들의 임시 거처로 나무판자를 이어 얼기설기 지은 판자 집이다.
대문도 없이 좁은 골목길 바로 옆에 방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고 부엌인 판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 아바이 마을의 골목길이다.
이곳은 실향민 정착촌이 보여주는 특유의 집단 주거 형태로 성인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길을 마주보고 판자 집들이 모여 있다.
좁고 작은 판자 집의 귀퉁이에는 어김없이 화분이 놓여있다.
통조림 깡통이나 수산물을 담았던 나무상자에 흙과 연탄을 다져 넣은 화분에 고추며 화초들을 집집마다 심어 놓았다.
작고 허름한 판자 집에서 고기잡이와 거친 막일로 자식들을 키워낸 ‘아바이’와 ‘어마이’들의 높은 교육열도 유명하다.
이제는 옛 청호동의 가옥형태와 골목길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골목길 드문드문 옛집 그대로 간직한 집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청호동 아바이마을 골목길에서 우리들의 아픈 역사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사랑과 강인한 삶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015년에는 아바이 마을 골목길에 재미있는 벽화가 그려져 한결 더 길이 훤해졌다.
내가 오래전 처음 찾았을 때는 오직 갯배로만 건널 수 있었던 것이 이번 방문시에 살펴보니 고가도로가 시원하게 놓여있는 것이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를 둘러본 후에 생선구이집에서 일잔을 걸친 후 시가지 구경을 나서다.
일행들은 여행 중에 색다른 체험을 한다며 [소금당구클럽]에서 당구를 즐겼다.
통상 여행중에는 당구를 잘 치지 않는데 그야말로 색다른 체험이었다.
8월초라서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시원한 ‘강원도막국수’를 먹자는 제안에 따라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강원도인데도 막국수 집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찾아 간 곳이 [나룻배 식당]이었는데 우리가 오늘 묵을 펜션주인이 운영하는 집이란다.
늦은 시간이어서 일부메뉴는 주문이 되지 않았다.
마땅한 메뉴가 없어서 순대국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숙소로 향하다.
▶ 2일차 : 10일(월)
이튿날 기상 후에 들리는 지난밤에 일어난 에피소드.
우리들의 숙소 ‘갯배펜션’은 다락이 있는 방이다.
다락방에도 침대가 있으므로 맨 밑에 방, 다락방 바닥, 다락방 침대를 계산하니 우리들은 같은 방이었지만 3층으로 된 방에서 취침을 한 셈이다.
그래서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을 정면에서 바로 맞은 사람은 추워서 고생이었다.
누군가 취침도중에 춥다고 에어컨을 끄는 바람에 맨 밑에 방에서 잔 사람은 더워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며 세상 참 고르지 못하다고 야단이었다.
같은 방이었는데도 누구는 추워서 고생이었고, 누구는 더워서 고생이었으니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다.
먼 길 가려면 조금이라도 서두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식전에 설악산에서 발원된 물이 흘러드는 석호로 유명한 [청초호]를 둘러보았다.
속초시는 설악산이 서쪽과 경계를 이루고 남으로는 양양군, 북으로는 고성군과 접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8만 5천명 정도 라고 한다.
‘청초호’와 ‘영랑호’의 큰 석호가 형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석호는 선박들이 외해의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연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청초호’는 좋은 항구 구실을 하며 특히 풍랑 때는 각종 어선의 대피 정박지로 이용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아침 일찍 갓 잡아온 해산물을 경매하는 모습을 한참 살펴보았다.
포항에 비하여 규모가 아담한 편이다.
다시 이동을 한 우리들은 주변에 위치한 [영랑호]를 둘러보다.
이곳에서는 드라이브로 절경을 감상한 후 동해안을 따라 [통일전망대]를 향해서 일정을 재촉하였다.
이동 도중에 식사시간이 되어서 [청파추어탕]집에서 6천원에 '황태백반'으로 아침을 때우다.
고성군에도 8경이 있다.
건봉사, 천학정, 화진포, 청간정, 울산바위, 통일전망대, 송지호, 마산봉 설경이 8경이다.
부지런히 달려온 덕분에 늦지 않는 시각에 ‘통일전망대’에 도착을 하다.
이곳은 1990년대 초반 우리아이들이 초등학생 일 때 이 선배 댁과 두 집이 처음으로 와본 곳이다.
첫 구입한 엑셀승용차를 이용해서 이곳을 둘러보고 [화진포해수욕장]에서 텐트를 치고 1박을 한 아련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통일전망대는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찾을 기회가 있어서 나는 새로운 감흥이 나지 않는 곳이었다.
다만 찾는 횟수가 더해질수록 첫 방문 때에 비하여 긴장감이 약해진 것이 달라진 점이랄까?
☞ 고급 뉴스 하나!
2007학년도에 경주동천초등에 근무 할 때 동학년들이 금강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기억으로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열매로 만든 [들쭉술]이 아주 인상에 남는 술이었다.
그런데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매장에서 이 술을 4만원(40도)에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모두가 꾼들이다.
우리들이 관심을 보이니 아주 인심을 쓰는 양 할인을 해서 3만7천원에 판매를 한다.
포항에서 해단식용으로 쓰려고 1병을 구입하다.
그런데 통일전망대 매장에서는 똑같은 이 제품을 10%할인을 해서 3만6천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천원을 손해 본 셈이다.
다음에 찾을 때는 이 고급정보를 꼭 참고해야 되겠다.
그런데 나중에 해단식장에서 보니 전임 오회장은 북한산 소주를 해단식용으로 고맙게도 별도 구입을 하였다.
우리나라 소주는 16도급인데 북한산 소주는 아직도 25도 소주이다.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 꾼들에게는 ‘들쭉술’을 꼭 권유하고 싶다.
양주보다 훨씬 좋은 술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북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철책을 통과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북쪽으로는 올라 갈수가 없으므로 하는 수없이 내려오는 길에 화진포해수욕장에 접해있는 김일성별장으로 불리는 [화진포의 성]을 둘러보았다.
원래 선교사가 지은 휴양지였는데, 김일성이 6.25전쟁 전에 사용한 적이 있어서 [김일성 별장]으로도 불린다.
다음으로 인근에 위치한 [이기붕 별장]을 둘러보았다.
이곳도 원래는 선교사들에 의해서 건축되어 전쟁 전에는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전쟁 후에는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을 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단한 권세에 비하여 별장은 이외로 작고 검소하게 느껴졌다.
별장 안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응접세트가 놓여 있는 이곳은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풍광이 일품이었다.
연일 폭염특보가 발효 중이라 엄청 더운 날씨였지만, 이곳에 또다시 들릴 날이 언제일지 기약하기 힘든 상황이라 우리들은 인근에 위치한 [이승만 별장]도 둘러보았다.
이대통령과 프란체스카여사가 응접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의 마네킹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유품과 기념관의 전시물이 비교적 많이 남겨진 별장이었다.
이곳에 관련된 상세한 얘기는 우리 까페 [인생이야기] 69번 「꿩대신에 잡은 닭」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귀향을 위하여 내려오던 우리들은 드디어 [화진포 메밀막국수]집을 발견하였다.
어제 속초에서 막국수 맛을 보기 위하여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강원도의 진수 막국수로 점심을 때우다.
7천원 하는 막국수는 포항에서 먹는 것과는 맛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메뉴를 정할 때 한 회원이
“나는 막국수 보다는 냉면이 좋은데…….”
라고 발언을 했다가
“강원도 까지 왔으면 이 지역 특산물인 막국수를 먹어야지 냉면은 무슨......”
하면서 집단적인 항의를 받고는
“앞으로는 절대 냉면타령을 하지 않겠다!”
는 항복을 받고 선택한 막국수집이어서 감회가 어린 중식이었다.
작은 에피소드를 뒤로하고 남행길에 오른 얼마 후 길가에 [명란젓 2근에 1만3천원]이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2근이면 가격이 괜찮다 싶어 들리니 [오성식품] 젓갈공장이다.
통상적으로 고추는 1근이 6백그램인데, 젓갈은 4백그램이 한 근이란다.
아무튼 가격이 괜찮은 것 같아서 회비에서 1통씩을 구입하다.
집에 있는 내무부장관에게 모두들
“좋은 가격에 구입을 잘 해왔네!
하고 칭찬을 받을 기대를 하면서…….
다시 출발한 일행들은 고성군에 위치한 관동팔경의 한 곳인 [청간정]에 들리다.
설악산을 뒤로하고 동해를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이곳은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현판의 글씨를 쓴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포항에 도착 한 후 차량을 반납하고 필로스호텔 인근에 위치한 [강구산아구]집에서 본격적인 뒤풀이에 들어가다.
북쪽에서 내려 온 [들쭉술]로 초요기를 한 후 오회장이 기부한 국산쌀 87%로 빚은 고구려전통한방약술인 북한술 [오발주]로 분위기는 점점 up.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소주라면 25도가 당연했지만, 요즘엔 여성주당들을 겨냥해서 16도 후반의 소주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꾼들은 예전에 마시던 25도 소주를 그리워하고 있다.
최근엔 대형마트에 가면 예전에 나오던 ‘진로’나 ‘금복주’상표를 달고 25도 상품이 출시되고 있으니 나는 가끔씩 그 상품을 애용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산 소주는 25도로 나오니 오랜만에 옛 기분을 느끼며 술잔을 부딪치다.
북한산 술(40도 들쭉술 1병, 25도 오발주 3병)로는 부족해서 결국은 국산 소주로 일잔을 더 하다.
시동이 걸린 우리들은 결국은 2차로 노래방까지 거치다 보니 엄청 시간이 늦어졌다.
술을 좋아하는 회장님이 회원들을 위해서 여행 기간 동안 절주를 하시고 직접 운전을 하면서 봉사를 하였다.
그리하여 수고하신 회장님을 위하여 그 뒤풀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 ‘찐한 해단식’의 이유였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는 무사히 끝난 여행 뒤풀이가 더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첫댓글 들쭉술이 시바스와 가격도 비슷하고 양주보다 좋다고 하니 기회되면 사봐야 겠네요.
예전에 금강산 갔을땐 아무것도 몰라 북한더덕 좋은줄 알고 샀다가 맛없어 선물 주려던거 맛없다고 버렸답니다..
중간에 하모니카 연주도 넣고 잼나고 상세하게 올려 주셔서 즐감 합니다.
'들쭉술' 강추합니다.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들쭉나무 열매로 만든다고 하는데, 저도 들쭉나무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술맛은 짱입니다.
좋은 술이라서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