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재(灰)는 참회를 상징한다. 구약에서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자 백성들과 임금이 단식을 선포하며 잿더미 위에 앉았다.(요나 3,4 참조) 신약에서 예수님도 죄인들에게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마태 11,21)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
유다인들에게는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머리에 재를 뒤집어쓴 후 예를 갖춰 참회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를 받아들여 사순 제1주일 전 수요일, 머리에 재를 바르는 일을 참회 예식으로 거행했다. 여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이름이 비롯됐다.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재의 수요일을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사순 시기 첫날로 제정했고, 복자 우르바노 2세 교황은 모든 신자가 재의 예식에 참여토록 권고했다.
재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재는 우리가 죄를 지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오게 된 ‘슬픔’을 상징한다. 물질이 타고 남은 잔재물인 재. 이는 인간이 지은 죄의 잔재로서, 지은 죄에 대한 ‘보속’ 행위도 기억하게 한다. ‘열정’을 뜻하기도 한다. 불로 단련 받아 자신을 모두 태워버린 재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항한 열정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남은 재에는
불순물이 없다. 재를 머리에 얹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을 빚었던 처음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정화돼야 한다는 의미도 함축한다.
성 바오로 6세 교황 때, 교회는 재의 수요일에 금식과 금육을 실천하도록 규정했다. 신자들은 이날 두 가지를 동시에 지켜야 한다.
금식은 하루 한 끼 식사만 거르면 된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금식재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날까지 지킨다. 금식과 금육은 절제와 극기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단식과 금육으로 절약한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봉헌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실천 과제도 내포한다.
재의 예식에 사용되는 재는 전년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신자들에게 나눠준 나뭇가지를 다시 거둬들여 태워 마련한다.
회개 이끄는 전례 구성
각 본당은 전년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신자들에게 나눠준 나뭇가지(聖枝)를 다시 거둬들여 태우고 재의 예식에 쓸 재를 마련한다. 사제는 재를 축복하고 성수를 뿌린 뒤, 신자들의 이마에 십자 형태로 바르거나 머리 위에 얹는 예식을 거행한다. 이때 신자들은 사제에게서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말씀을 듣는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삶과 죽음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회개를 요청하는 말씀이다.
교황청 경신성사부의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원칙과 지침」은 재를 얹는 행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운명,
하느님의 자비를 통한 구원의 필요성을 상징한다고 강조한다.(125항) 이처럼 재의 예식은 인간 존재의 허약함을 드러내며 회개를 촉구하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의 죄보다 더 큰 하느님의 자비를 부각한다.
사제는 재의 수요일부터 통회와 속죄를 나타내는 자색 제의를 입는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인 이날부터는 기쁨을 상징하는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노래하지 않는다. 말씀 전례는 참회, 단식, 자선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제1독서(요엘 2,12-18)는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강조하며 회개를 촉구한다. 제2독서(2코린 5,20-6,2)는 성찰과 회심으로 하느님과 화해할 것을 권고한다. 복음(마태 6,1-6.16-18)은 자선과 기도, 단식에 담긴 올바른 정신을 배우도록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재의 수요일 미사에서 “우리의 비참한 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용서를 청하며 먼지에서 생명으로 가는 여정을 거칠 것”을 요청했다.
재의 수요일 전례 참여는 의무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교회는 우리가 이 회개의 날을 거쳐 엄숙한 마음으로 사순 시기에 들어가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쁘게 기다리도록 초대한다. - 출처: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