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볼모로 한 윤석열 정부의 ‘즉·강·끝’, 제정신인가?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새해 벽두부터 남북 대결이 심상치 않다. 북한이 서해상에서 3일 연속 포병사격을 실시하자 우리 군도 포사격으로 대응한 것이다. 여기에 남북 당국자의 무책임한 발언들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긴장을 해소해야 할 유엔사는 침묵하고 있으며 언론 또한 9.19 남북 군사합의가 ‘사실상 백지화’됐다며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난장 속에 ‘평화’는 사라지고 없다. 남북 당국의 어리석은 불장난에 남북의 주민들만 벼랑 끝으로 내몰린 판국이다. 이 글에서는 적대적 상호의존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에서 어떻게 평화를 다시 이야기하고 되찾을 것인지 대안을 모색해 본다.
‘선대의 유훈’ 걷어찬 김정은 위원장
최근 김정은 위원장은 스스로 체결한 남북 합의뿐만 아니라, 선대의 정상 합의까지 부정하는 ‘대범함’을 보이고 있다. 지난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가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의 발언이 이전에 남북정상들이 쌓아올린 약속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남북정상’ 중에서도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 약속을 부정한 점이 핵심이다. 물론 그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들이 지속되고 있지만, 김정은이 ‘불가침의 금기’를 깨는 발언을 지속하는 것은 분명 또 다른 차원의 도발이다.
필자가 말하는 ‘도발’은 남한에 대한 ‘도발’뿐만 아니라, 선대에 대한 ‘도발’이기에 그 심각성이 더 크다. 김정은이 소위 ‘선대의 유훈’이라 할 수 있는 정신과 약속을 부정하는 것은 그의 도발에 안전장치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윤 정부의 ‘즉·강·끝’ 선언, 제정신인가?
전에 없는 북한의 ‘도발’에 우리 정부 또한 이성을 잃은 듯하다. 정부는 북한의 무력 시위에 ‘두 배’로 받아쳤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한 발 더 나가 “북한의 무모한 도발 행위에 대해 우리 군은 ‘즉·강·끝’(즉시·강력히·끝까지) 원칙에 따라 다시는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완전히 초토화하겠다는 응징태세를 갖춰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국방부 장관이 됐을 때 우려했던 모습 그대로이다. 정말 ‘참수작전’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그는 과거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에게도 유사한 표현을 했다. 그가 국방부 장관으로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관련 기사: 남북 충돌 불사하는 듯한 윤 정부... 위험 신호 3가지, https://omn.kr/25urg)
윤석열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의 불장난을 말릴 생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에게 ‘즉·강·끝’(즉시·강력히·끝까지) 원칙을 지시하는 것이 제정신인가?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핵무기를 실전에 배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는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한 어느, 어느 정부를 비난하는 것조차 한가하다.
문제는 바로 지금, 현재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즉·강·끝’의 ‘끝까지’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불장난을 하는 국방부 장관에게 전쟁의 광기마저 느껴진다. 지금까지 핵으로 무장한 국가를 상대로 ‘끝까지’를 외친 나라는 제국주의 일본뿐이었다. 이 전쟁의 광기를 막아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그냥 찾아오지 않는다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떻게 한반도 평화를 되찾을 것인가?
우리가 직면한 환경은 분명 녹녹지 않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논의는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의 재정이 반영된 토론회에서 균형을 찾아보기 힘들다. 안보와 국제정치의 시각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분명 평화는 튼튼한 안보 위에서 가능하다. 다만, 안보와 평화의 관점이 균형을 이루고 국제정치의 일반과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함께 논의될 때 합리적인 대안이 도출될 수 있다.
먼저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할 공간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김영호와 신원식이란 극우 장관들이 등장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 ‘평화’를 지워가고 있다. 이는 정부가 관여하는 모든 사업과 공간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정부가 요구하는 ‘평화 지우기’에 저항하고 평화를 이야기할 공간을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한다. 다만 저들처럼 ‘평화’와 남북관계의 ‘특수성’만을 논해서는 안 된다. 안보와 평화, 한반도 문제의 일반과 특수성을 함께 다루는 균형 속에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문제는 남북 당국이 대결에 몰두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에 무언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공산전체주의’에 맞선 ‘반공전체주의’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결국 작금의 열악한 한반도 정세에서 평화는 시민사회가 주도해야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의회와 국제단체, 그리고 전문가 그룹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최근 주류 언론의 김주애 짝사랑이 길어지고 있다. 다만 언론이 평화를 다루지 않는다고 푸념할 상황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전파하고 행동해야 한다. 멋진 행사장의 거대한 토론장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평화의 목소리를 나누고 전파하면 된다. 그렇게 공간을 만들고 작은 목소리를 연대의 물줄기로 이어 남북 당국을 압박하고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의 정당성과 군사 대결의 부당함을 호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