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제 3의 침팬지>
혹성 탈출
오늘 토론에서 관점의 차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혹성탈출, 1968년」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주비행사(미국 국기를 가슴에 새긴 우주복을 입은)는 인간이 더 이상 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난 후 지구 시각으로 3978년에 귀환하는 길이다. 그런데 우주비행선이 낯선 혹성에 불시착하는데 그 혹성(지구)의 일부분, 생명체가 유지되고 있는 한정된 곳을 지배하고 있는 주인은 진화한 유인원인데 그 유인원들에게 퇴화한 인간들과 함께 생포된다. 우리가 지금 고릴라 등 유인원을 우리 안에 가둔 채 실험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조작들을 행하듯, 그 진화한 유인원들이 인간 우주비행사와 퇴화한 인간들을 그렇게 다룬다. 언어와 문자가 가능한지, 법과 신념 그리고 규칙 따위가 있는지, 종족 번식을 위해 어떻게 성행위를 하는지, 뇌의 구조는 어떠한지 등 관찰과 수술적 처치를 행하면서.
인간의 관점과 입장에 선 책
책을 읽으며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과 다른 유인원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므로 당연히 ‘인간은 우월, 인간 외의 다른 유인원은 열등’이라는 공식 속에서 책의 내용이 진행된다는 느낌이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다. 인간 외의 유인원과 비교하여 인간이 우월하다는 부분들을 예로 들어 열거한다.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는 음성언어의 사용, 인간의 독특한 특징 중에서 인간이 발명한 가장 고귀한 것이라는 예술, 인간이 ‘재발명’한 농업으로 전염병과 영양실조가 나타나고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저하시켰고 계급에 근거한 불평등을 초래하였다. 또한 흡연과 음주와 마약 등 독성 화학물질 중독 등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입장에서이다.
저자의 주장은 마지막 빙하기 이후 대형포유류가 멸종되고 유전적으로 우세한 유인원이 진화하여 현생 인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픽션이긴 하지만 영화 「혹성탈출」처럼 핵으로 인한 인류의 멸종이나 대규모 환경파괴로 인하여 지구에 더 이상의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의 혹성이 된다면 그때에도 우리 인간이 다른 유인원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너무 심한 비약일까?
인간 탐욕의 결과
인간 외의 유인원은 인간들처럼 끝없는 탐욕은 부리지 않으니 그 종 전체가 같은 종으로부터 완전멸종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끝없는 탐욕과 잉여의 가치를 앎으로써 결국엔 ‘우리’ 인간이 집단이기주의를 발휘하여 동식물 혹은 심지어 ‘다른’ 인간종 까지도 멸종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천 년 전 뉴질랜드에 마오리인이 들어간 후 모아새나 기타 수십종의 대형포유류의 멸종, 하와이 섬에 유럽인이 가져간 쥐들에 의한 새의 멸종, 마다가스카르 섬의 코끼리새의 멸종, 이스터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며 섬 전체가 황폐화 된 사실, 미국 남서부 푸에블로 원주민부락의 사막화, 중동의 근대문명 탄생지역의 사막화 등이 현재까지 잘 알려진 인간 탐욕의 결과로 인한 멸종의 예이다.
genocide-인간의 독특한 특성
선험적으로 집단이기주의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단적인 예로 종교, 정치, 신념등으로 인간이 인간을 말살하는 genocide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다른 유인원과 DNA가 1.6%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도 그 행동특성이나 진화과정에서는 인간의 독특한 특성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는 저자의 이야기
나의 부정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저자는 에필로그 끝부분에서 ‘만약 우리가 이 책에서 더듬어 온 인류의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나머지 두 침팬지(제1의 침팬지, 제2의 침팬지)보다 밝을 것이다.’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나에게는 역설적으로 들린다.
책 익는 마을 송 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