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相歸休圖贊 幷序
洪範九五福。一曰壽。二曰富。三曰康寧。四曰攸好德。五曰考終命。孟子曰。天下有達尊三。爵一齒一德一。夫箕子殷賢也。因周王之訪。敍其彝倫。而壽先之富次之。德又次之。以示天下通理。故其辭詳而伸。若夫康寧考終命。則雖屬於壽可矣。至孟子則甞至於齊。方論天下之達尊。庶幾悟君。故先以爵次以齒。又次以德。其辭未免於簡而屈。勢固然也。此二公皆名世大賢。其立言也。雖先後詳略。有所不同如是。必以德爵齒爲言者。盖古今所同敬。無過於此三而然耳。則凡士之行於世也。得於一而失之於二。有其二而不及於三。猶可以不後於聖人君子之列矣。况乎備其三而無一欠者哉。今昌原崔太尉昆季。俱以文章聞於世。位至一品。其臣國庇民之烈。垂光竹帛。蔚然爲一代之宗臣。相次懸車。退休于里第。無一日不相從以盡其歡。眞所謂五福純圓三尊皆備者也。歷千古而得一人猶可貴。况一時而並之耶。爰請畫局朴子雲。作二相歸休圖。以爲朝家之盛事。庶不使籣陵父子得全美於漢朝也。贊曰。
天下達尊。曰德爵齒。孰備於三。靑雲昆季。接武亨衢。同歡舊里。誰可與言。蘭陵父子。
동문선 제50권 / 찬(贊) / 이상귀휴도 찬 병서 (二相歸休圖贊幷序) 이인로(李仁老)
홍범(洪範) 아홉 번째의 오복(五福)은, 첫째가 수(壽), 둘째가 부(富), 셋째가 강녕(康寧), 넷째가 덕을 좋아하는 것[攸好德], 다섯째가 제 명대로 사는 것[考終命] 등이었고,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천하에 세 가지 달존(達尊)이 있으니 관작이 하나, 연치가 하나 덕이 하나다.” 하였다. 이를테면 기자(箕子)는 은(殷) 나라의 어진 이로서 주무왕(周武王)의 방문(訪問)에 따라 그 의륜(彛倫)을 서차하게 되므로 수를 먼저하고, 부를 다음으로 하고, 덕을 또 그 다음으로 하여 천하의 공통된 이치를 보인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이 자상하고 활발하며 저 강녕이나 제 명대로 사는 것 등은 수에 속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맹자에 있어서는 일찍이 제(齊) 나라에 이르러 바야흐로 천하의 달존(達尊)을 논하여 임금을 깨우치려고 했기 때문에 관작을 먼저하고 연치를 다음으로 하고 덕을 또 그 다음으로 하여, 그 말이 간략하고 꿀림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형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두 어른은 다 당세의 이름난 대현으로 그 입언(立言)한 바에 있어서는 비록 선후 상략(詳略)이 한결같지 않은 것 같으나 반드시 덕ㆍ관작ㆍ연치를 들어 말한 것은 대개 고금이 다 같이 존경하는 바가 이 세 가지에 지나지 아니해서였다. 무릇 선비가 세상에 나서 그 중의 하나를 차지하고 나머지 두 가지는 못했으며, 두 가지는 차지하고 셋까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성인 군자의 열에 뒤지지 아니할 터인데 하물며 그 셋이 다 구비하고 하나도 부족함이 없음이랴. 지금 창원(昌原) 최 태위(崔太尉) 형제가 함께 문장으로 세상에 유명하였고 벼슬은 1품에 이르렀으며, 그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한 공은 역사에 빛을 남기어 거룩히 1대의 종신(宗臣)이 되었거니와, 서로 차례를 밟아 퇴직하고 고향에 물러가서 하루도 빠짐없이 상종하여 그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른바 오복이 모두 원만하고 삼존(三尊)이 다 구비하다는 것이다. 천고를 두고 한 사람만 얻어도 오히려 희귀하다 하겠거늘 하물며 한때에 병립(竝立)한 것임에랴. 이에 화원(畵員) 박자운(朴子雲)을 청하여 이상귀휴도(二相歸休圖)를 그리게 하여 조가(朝家)의 성사로 삼았으니 거의 저 한(漢) 나라 난릉(蘭陵)의 부자(父子)가 아름다움을 독차지 할 수 없게 되었다. 찬은 다음과 같다.
천하의 달존을 말하면 / 天下達尊
덕과 벼슬과 연치로세 / 曰德爵齒
이 세 가지를 겸한 자는 누구인가 / 孰備於三
청운의 형제라네 / 靑雲昆季
행운의 벼슬길에 발칙을 맞대였고 / 接武亨衢
고향에 돌아가 즐거움을 같이 하네 / 同歡舊里
뉘라 견주어 볼까 / 誰可與言
난릉의 부자로세 / 蘭陵父子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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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릉(蘭陵)의 부자(父子)->각주달것
*자치통감강목(5)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5권 하 한 선제 본시 원년~한 선제 원강 4년 戊午年(B.C. 63)
戊午年(B.C. 63) 元康三年 夏六月
疏廣, 疏受請老어늘 賜金遣歸하다
前稱兄子受矣 此其不稱兄子 何 不以廣掩受名也
廣, 受歸鄕里 注+廣ㆍ受, 東海蘭陵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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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50권 / 찬(贊) / 태위공기우도 찬(太尉公騎牛圖贊) 이인로(李仁老)
장자방은 유후로 봉하게 되자 / 子房封留
적송자를 따라가 노닐었고 / 與赤松遊
도주공(범려)은 월나라의 정승인데 / 陶朱相越
배를 타고 오호로 떠나갔네 / 泛五湖舟
마음은 기교가 없으니 / 心絕於機
해객의 갈매기를 친할 수 있고 / 可狎海客之鷗
족적은 속세와 혼동하여 / 迹混於俗
노군의 소를 탈 수 있네 / 宜駕老君之牛
뇌전을 문석에 무릅써도 / 則其冒雷霆於文石
그 낯빛을 변하지 아니하고 / 不變其色
음양을 금현에 섭리하여 / 燮陰陽於金鉉
모두 그 은택을 입었지만 / 咸被其澤者
그 덕에 비하면 한 털끝이거늘 / 此特德之毫末也
세상이 어찌 알리오 / 世豈識之哉
생초비단 한 번 펴 보니 / 一展生綃
얼음인 양 눈인 양 맑고도 늠름하네 / 凜然冰雪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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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로(李仁老) (1152~1220)
고려 명종(明宗)~고종(高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경원(慶源). 강좌칠현(江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오세재(吳世才)ㆍ임춘(林椿) 등과 교유하고,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등을 지냄. 시문(詩文)뿐만 아니라 초서(草書)ㆍ예서(隸書)에도 능함.
조운흘(趙云仡) (1332~1404)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태종(太宗) 때의 문신. 이인복(李仁復)의 문인으로,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고, 조선 개국 후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제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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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1권 / 오언배율(五言排律) / 기로연 계병에 쓰다 12운 〔題耆老宴禊屏 十二韻〕
화창했던 사월의 일 생각하노니 / 憶在淸和節
이원(梨園)에서 화려한 잔치 활짝 열었네 / 梨園敞綺筵
아름다운 날은 맑은 경치와 어울리고 / 佳辰當霽景
여러 재상들은 의젓하게 높은 나이였네 / 諸宰儼高年
향기로운 술을 대궐 주방에서 보내오고 / 芳醞天廚送
맛있는 음식을 내부시에서 내어오니 / 珍羞內府傳
쌍명재의 옛 행적을 다시 징험하고 / 雙明徵舊躅
악관들은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였지 / 兩部奏危絃
멀리는 향산의 노래에 비견하고 / 遠擬香山詠
겸하여 낙사의 시편에 의거했으니 / 兼憑洛社篇
희끗한 눈썹은 서로들을 비추고 / 厖眉相照映
구장 짚고 함께 배회하였지 / 鳩杖共周旋
성대한 모임이 밝은 시대 만났으니 / 盛會逢昭代
남은 사람들 흡사 나이든 신선인 것 같고 / 餘生怳老仙
다시금 태평시대의 모습이 나타났으니 / 太平還有象
수역에 다행히 어깨를 나란히 했다네 / 壽域幸隨肩
그 좋았던 일 불현듯 돌아보자니 / 勝事俄回眄
가는 세월 아쉽게도 흘러가는 냇물 같아 / 流光嘆逝川
남은 꿈을 깨고 난 후 바람은 처량하고 / 風悽殘夢後
구부러진 난간 가에 달빛은 차가워라 / 月冷曲欄邊
영상은 저승으로 돌아가시고 / 上相歸冥漠
좌ㆍ우상은 산야로 숨어들어서 / 中台遯野田
즐거움을 누리던 일 이제는 그만이니 / 追歡今已矣
지난 일 생각하며 서글퍼하노라 / 撫迹一酸然
[주-D001] 내부시(內府寺) : 내자시(內資寺)를 말한다. 왕실에서 소용되는 각종 물자를 관장하던 호조 소속의 관청으로, 왕실에서 사용되는 쌀, 국수, 술, 간장, 기름, 꿀, 채소, 과일 및 내연 직조(內宴織造) 등을 관장하였다.[주-D002] 쌍명재(雙明齋) : 최당(崔讜, 1135~1211)으로, 본관은 창원(昌原), 호는 쌍명재이다. 최당은 일찍이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수태위(守太尉)로 치사(致仕)했는데, 풍류가 매우 뛰어나서 치사한 뒤에는 당대의 나이 많은 명사들과 함께 기로회(耆老會)를 결성하여 시주(詩酒)로써 즐겼다.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지상선(地上仙)이라 호칭하고 이들의 도형(圖形)을 돌에 새겨서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이때 이인로(李仁老)가 연소한 후배로 참여했다가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지은 시문을 모아 《쌍명재집(雙明齋集)》을 편찬하였는데, 이것이 후대에 이인로의 호를 쌍명재로 오인한 결과를 낳았다. 《東文選 卷65 雙明齋記》 《高麗史節要 卷14 熙宗成孝大王》[주-D003] 향산(香山) :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자호한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를 가리키는데, 특히 여기서는 그가 나이가 많고 벼슬에서 물러난 여덟 사람과 어울려 낙양(洛陽)에 모여 시주(詩酒)로 즐기면서 결성한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를 가리킨다.[주-D004] 낙사(洛社) : 송(宋)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도 유수(西都留守)로 있을 때 부필(富弼)의 집에서 사마광(司馬光) 등 연로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모아 놓고 술자리를 베풀어 서로 즐겼던 모임을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또는 낙사기영회(洛社耆英會)라고 하였다.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와 매요신(梅堯臣) 등이 노년에 낙양에서 조직한 시사(詩社)인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말하기도 한다. 후대에는 기로소(耆老所)를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였다. 《宋史 卷313 文彦博列傳》[주-D005] 구장(鳩杖) : 손잡이 부분 머리에 비둘기의 형상을 조각한 지팡이를 말하는데, 옛날에 제왕(帝王)이 공훈(功勳) 있는 노대신(老大臣)에게 이 지팡이를 하사하였다.[주-D006] 수역(壽域) : 인수지역(仁壽之域)의 준말로, 일반적으로 태평성대를 뜻한다. 인수(仁壽)는 원래 《논어(論語)》 〈옹야(雍也)〉의 “인자는 장수한다.〔仁者壽〕”는 대목에서 온 말인데, 이를 원용하여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구례(舊禮)를 찬술하고 왕제(王制)를 밝혀서 온 세상의 백성들을 이끌어 인수의 지역에 오르게 하면, 풍속이 어찌 주나라 성왕(成王)과 강왕(康王) 때의 태평시절 같지 않겠으며 수명이 어찌 은나라 고종(高宗) 때와 같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김영봉 (역)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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