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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ZECHARIAH 1:7–12
E: 스가랴 1:7–12
The first statement about a period of seventy years in the book of Zechariah appears in a vision given to Zechariah on “the twentyfourth [day] of the eleventh month, that is, the month Shebat, in the second year of Darius.”—Zechariah 1:7. 스가랴서에 나오는 칠십년의 기간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열한 번째 달, 즉 다리우스 둘째해 세밧 월 24[일]에 스가랴에게 주어진 환상에 나타나 있다.—스가랴 1:7. Darius’ second regnal year corresponded to 520/19 B.C.E., and the twenty-fourth day of the eleventh month may be translated to 15 February 519 B.C.E. in the Julian calendar.40 Although the Jews had resumed the work on the temple in Jerusalem five months earlier (Haggai 1:1, 14–15), Jerusalem and the cities of Judah were still in a sorry condition. That is why the angel in Zechariah’s vision brings up a question that undoubtedly troubled many of the repatriated Jews: 다리우스 통치 2년은 기원전 520/19년에 해당하며, 율리우스력으로 11월 24일은 기원전 519년 2월 15일로 환산될 수 있다.40 비록 유대인들이 5개월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작업을 다시 시작했지만(학개 1:1, 14-15), 예루살렘과 유다의 도시들은 여전히 보기에 민망스러운 상태였다. 그래서 스가랴의 환상에 나타난 천사가 고국으로 송환된 많은 유대인들에게 문제가 되는 질문을 제기한 것이다. Zechariah 1:12: 스가랴 1:12 So the angel of Jehovah answered and said: “O Jehovah of armies, how long will you yourself not show mercy to Jerusalem and to the cities of Judah, whom you have denounced these seventy years?” (NW) 그러자 여호와의 천사가 말했다. “만군의 여호와여, 예루살렘과 유다 도시들에 언제까지 자비를 보이지 않으실 것입니까? 하느님께서 진노하신 지 70년이나 되었습니다.”(NW) |
E-1: Denunciation for seventy years or ninety?
E-1: 70년간의 진노인가 아니면 90년간의 진노인가?
According to the angel, Jehovah had denounced Jerusalem and the cities of Judah for seventy years. The Watch Tower Society applies these seventy years of denouncement (”indignation,” KJV, ASV; “wrath,” NEB) to the period 607–537 B.C.E., thus equating them with the seventy years of Jeremiah 25:10–12 and 29:10.41 It seems evident, though, that the reason why the angel put this question about the denouncement was that Jehovah still, in Darius’ second year (519 B.C.E.), had not shown mercy to the cities of Judah. Or did the angel mean to say that Jehovah had denounced Jerusalem and the cities of Judah for seventy years up to 537 B.C.E., and then continued to be hostile against them for about eighteen more years up to 519? This would make the period of hostility nearly ninety years, not seventy.42 천사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칠십년 동안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에 진노하셨다. 워치타워 협회는 이러한 70년의 진노("분노", KJV, ASV; "격노", NEB)를 기원전 607-537년에 적용하므로, 이들을 예레미아 25:10-12 및 29:10의 70년에 적용시켰다.41 하지만, 천사가 여호와의 진노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이유가 여호와께서 여전히 다리우스의 둘째 해인 기원전 519년에도 유다 성읍들에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니면 여호와는 기원전 537년까지 70년 동안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에 대해 진노하고, 이후 519년까지 18년 동안 더 적대관계를 유지했다고 천사가 말하려 했던 것일까? 이 사실은 70년이 아니라 90년 가까이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셈이 될 것이다. 42 But the “indignation” or “wrath” clearly refers to the devastated state of the cities of Judah, including Jerusalem and its temple, which began afte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in 587 B.C.E. This condition was still prevailing, as may be seen from Jehovah’s answer to the angel’s question: 그러나 "분노" 또는 "격노"는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멸망된 이후 시작된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포함한 유다 도시들의 황폐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천사의 질문에 대한 여호와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Therefore this is what Jehovah has said, “I shall certainly return to Jerusalem with mercies. My own house will be built in her,” is the utterance of Jehovah of armies, “and a measuring line itself will be stretched out over Jerusalem.” Call out further, saying, “This is what Jehovah of armies has said: ‘My cities will yet overflow with goodness; and Jehovah will yet certainly feel regrets over Zion and yet actually choose Jerusalem.’ “ —Zechariah 1:16–17, NW.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비를 품고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그곳에 내 집을 세우겠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다. “측량줄이 예루살렘 위에 쳐질 것이다.”’ 한 번 더 외치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도시들이 다시 좋은 것으로 넘치리니, 여호와께서 시온을 다시 위로하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겠다.”’”—스가랴 1:16-17, NW. Counted from 587 B.C.E. the indignation had now, in 519, lasted for nearly seventy years, or sixty-eight years to be exact. And if counted from the beginning of the siege on January 27, 589 B.C.E. (2 Kings 25:1; Ezekiel 24:1–2; Jeremiah 52:4), the indignation had lasted for almost exactly seventy years on February 15, 519. But just two months earlier the work on the foundation of the temple had been finished. (Haggai 2:18) From that time onward Jehovah began to remove his indignation: “From this day I shall bestow blessing.” ― Haggai 2:19, NW. 기원전 587년부터 519년 당시까지 지속되었던 분노는 정확히 거의 70년, 즉 68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589년 1월 27일 포위 공격이 시작된 때부터 계산하면, 519년 2월 15일 거의 70년 동안이나 분노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전에 성전 기초 공사가 끝났다. (학개 2:18) 여호와께서는 그때에 "오늘부터 내가 복을 베풀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분노를 풀기 시작했다. - 학개 2:19, NW. It seems clear, therefore, that the seventy years mentioned in this text do not refer to the prophecy of Jeremiah, but simply to the time that had elapsed by 519 B.C.E. since the siege and destruction of Jerusalem and its temple in 589–587 B.C.E.43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언급된 70년의 기간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원전 589-587년 예루살렘과 성전을 포위하고 파괴한 이후 기원전 519년까지 경과한 시간을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43 That seventy years elapsed from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 in 587 B.C.E. to its rebuilding in the years 520–515 is also confirmed by the next text in the book of Zechariah to be considered. 기원전 587년에 성전이 파괴된 후 520년에서 515년에 성전이 재건되기까지 70년이 흘렀다는 사실은 스가랴서에 있는 다음 글에서도 확인된다. |
F: ZECHARIAH 7:1–5
F: 스가랴 7:1–5
Again, the event recorded in this passage is exactly dated, to “the fourth year of Darius . . . on the fourth [day] of the ninth month.” (Zech. 7: 1) This date corresponds to December 7, 518 B.C.E. (Julian calendar).44 다시 말하면, 이 구절에 기록된 사건은 "다리우스 4년(9월 4일) ...일"에 정확히 일어났다.(스가랴 7:1) 이 날짜는 기원전 518년 12월 7일(율리우스력)에 해당한다.44 Zechariah 7:1–5: 스가랴 7:1–5: Furthermore, it came about that in the fourth year of Darius the king the word of Jehovah occurred to Zechariah, on the fourth [day] of the ninth month, [that is,] in Chislev. And Bethel proceeded to send Sharezer and Regem-melech and his men to soften the face of Jehovah, saying to the priests who belonged to the house of Jehovah of armies, and to the prophets, even saying: “Shall I weep in the fifth month, practicing an abstinence, the way I have done these O how many years?” And the word of Jehovah of armies continued to occur to me, saying: “Say to all the people of the 1and and to the priests, ‘When YOU fasted and there was a wailing in the fifth [month] and in the seventh [month] , and this for seventy years [literally ‘these seventy years,’ as in 1:12], did you really fast to me, even me?’ “ (NW) 다리우스 왕 제4년 아홉째 달 곧 기슬레우 월 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했다. 베델 사람들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사람들을 보내어 여호와의 은혜를 간청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의 집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해 온 대로, 다섯째 달에 울며 단식해야 합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했다. “이 땅의 모든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말하여라. ‘너희가 70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단식하고 통곡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정말 나를 위해 단식한 것이었느냐? “ (NW) |
F-1: Fasting and wailing—for seventy years or ninety?
F-1: 금식과 통곡—70년간인가? 90년간인가?
Why did “all the people of the land” fast and wail in the fifth month and in the seventh month? Speaking of the fast in the fifth month the Watch Tower Society admits: 어찌하여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이 금식하고 통곡하였는가? 워치타워 협회는 다섯째 달의 금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It was observed evidently on the tenth day of that month (Ab), in order to commemorate how on that day Nebuzaradan, the chief of Nebuchadnezzar’s bodyguard, after two days of inspection, burned down the city of Jerusalem and its temple. (Jer. 52:12, 13; 2 Kings 25:8, 9)45 그 달(Ab 월) 열흘에 분명히 관찰되었는데, 이는 느부갓네살 경호대장 느부사라단이 이틀간의 시찰을 마치고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을 불태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렘 52:12, 13, 왕하 25:8, 9)45 Further, the fast in the seventh month was “to commemorate the assassination of Governor Gedaliah, who was of the royal house of King David and whom Nebuchadnezzar made governor of the land for the poor Jews who were allowed to remain afte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2 Kings 25:22–25; Jer. 40:13 to 41:l0)”46 또한 일곱 번째 달 금식은 다윗 왕의 왕가 출신으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파괴한 후 머물러 있었던 가난한 유대인들을 위해 총독으로 삼았던 그달리야 총독의 암살을 추모하는 것이었다. (왕하 25:22–25, 렘 40:13 - 41:l0)"46 For how long had the Jews been fasting in these months in memory of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nd its temple and the assassination of Gedaliah? For “seventy years,” according to Zecharaiah 7:5. The year 518/17 was the seventieth year since 587 B.C.E.!47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그달리야를 암살한 것을 추모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금식을 해왔을까? 스가랴 7:5에 따르면 "70년 동안"이다. 기원전 518/17년은 기원전 587년으로부터 70번째 해였다!47 That the Jews still, in 518 B.C.E., held these fasts in the fifth and seventh months is clear from the fact that the men from Bethel had come to ask if they, “now that the faithful remnant of Jews were rebuilding the temple of Jehovah at Jerusalem and were about half through, should . . . continue to hold such a fast.”48 If now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nd its temple is dated in 607 B.C.E. instead of 587, once again this would make the time these fasts had been observed ninety years rather than seventy. This is actually conceded by the Watch Tower Society in the book quoted above, but no satisfying explanation is given for this discrepancy.49 Thus Zechariah 1:7–12 and 7:1–5 both give very strong support for the year 587 B.C.E. as the correct date fo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s in the case of Jeremiah 25:10–12; 29:10; Daniel 1:12 and 2:1, the easiest and the most direct reading of Zechariah 1:7–12 and 7:1–7, too, is seen to be in open conflict with the interpretation the Watch Tower Society gives to the seventy years. 기원전 518년에 유대인들이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을 했다는 사실은 베델에서 온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충실한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중이었으며, 이제 절반 정도 건축했으니 . . . 계속해서 그러한 금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48 만약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의 시기를 기원전 587년 대신 607년으로 잡는다면 이 금식기간은 70년이 아니라 90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위에서 인용한 책에서 사실상 워치타워 협회가 인정하지만, 이러한 불일치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설명이 제시되지는 않았다.49 따라서 스가랴 1:7–12와 7:1–5 모두 예루살렘 멸망의 정확한 날짜가 기원전 587년임을 매우 강력하게 지지한다. 예레미야 25장 10~12절, 29장 10절, 다니엘 1장 12절, 2장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스가랴 1장 7-12절과 7장 1- 7절 역시, 워치타워 협회가 70년에 대해 내리는 해석과 노골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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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R. A. Parker & W. H. Dubberstein, Babylonian Chronology 626 B.C.—A.D. 75 (Providence, Rhode Island: Brown University Press, 1956), p. 30. This presupposes that the date is given according to the Persian accession year system. If Zechariah applies the Jewish nonaccession year system, the date would have fallen about one year earlier, in February, 520 B.C.E. (See E. J. Bickerman’s discussion of this problem in Revue Biblique, Vol. 88, 1981, pp. 19–28). The Watch Tower Society accepts the secular dating of Darius’ reign, as may be seen, for example, on page 124 of the book Paradise Restored to Mankind—By Theocracy! (Brooklyn, N.Y.: Watch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1972).
40 R. A. 파커 & W. H. 더버스타인의 <바빌로니아 연대기 기원전 626년—서기 75년>(신의 섭리, 로데 섬: 브라운 대학 출판부, 1956년), 30면. 이것은 날짜가 페르시아 즉위 연도 방식에 따라 지정된다고 가정하였다. 스가랴가 유대인의 비즉위연도 방식을 적용하는 경우, 날짜는 약 1년 전인 기원전 520년 2월로 소급될 것이다(E. J. 비커만의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Revue Biblique, 88권, 1981년, 19-28면 참조). 워치타워 협회는 다리우스의 치세에 대한 세속적인 연대를 인정한다. 예를 들어, <신권통치에 의해 회복될 낙원>책의 124면에서 그점을 찾아 볼 수 있다. (뉴욕 부룩클린 워치타워 성서 및 책자 협회, 1972년).
41 Paradise Restored to Mankind—by Theocracy!, pp. 131–134.
41 <신권통치에 의해 회복될 낙원>책 131-134면.
42 The Watch Tower Society attempts to explain this contradiction by arguing that Jehovah had denounced the cities of Judah for 70 years up to 537 B.C.E., but allowed the Gentile nations to carry on the denunciation up to the time of Zechariah, making it seem as if he was still denouncing the cities of Judah! —Ibid., pp. 131–34. Also from a grammatical point of view it is difficult to uphold the idea that the seventy years here refer to a period that had ended many years in the past. The demonstrative pronoun “these” (Hebr. zeh) denotes something near in time or space. Commenting on the expression “these seventy years” at Zech. 1:12, the Swedish Hebraist Dr. Seth Erlandsson explains: “Literally it says ‘these 70 years,’ also at 7:5, which is tantamount to ‘now for 70 years.’ “ (Letter ErlandssonJonsson, dated Dec. 23, 1990.) This is evidently the reason why Professor Hinckley G. Mitchell renders the phrase as “now seventy years” in both texts.—H. G. Mitchell in S. R. Driver, A. Plummer, & C. A. Briggs (eds.),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Haggai, Zechariah, Malachi and Jonah (Edinburgh: T. & T. Clark, 1912), pp. 123–24, 199–200.
42 워치타워 협회는 여호와께서 기원전 537년까지 70년 동안 유다의 도시들에 진노했지만, 스가랴 시대까지 이방인 국가들로 하여금 유다의 도시들을 여전히 진노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러한 모순을 해명하려고 한다. (앞서 인용한 책 131-34면) 또한 문법적인 측면에서는 70년이 이미 끝나버린 과거의 세월을 언급한다는 생각을 지지하기 어렵다. 지시 대명사 "these"(히브리어, 제)는 시간이나 공간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 스웨덴의 헤브레이스트 박사는 스가랴 1:12의 "70년"에 대한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70년은 문자적인 것이며 스가랴 7:5절 역시 현재를 포함한 70년에 해당된다. (1990년 12월 23일자의 엘란손존슨 편지) 이것이 바로 힝클리 G. 미첼 교수가 그 구절을 "지금 70년"으로 번역한 명백한 이유이다. 미첼은 이 문구를 두 본문에서 모두 "지금 70년"이라고 번역한다.ㅡS.R. Driver의 H. G. Mitchell, A. Plummer & C. A. Briggs (eds), 학개, 스가랴, 말라기 및 요나에 대한 국제 비평 주석.(Edinburgh: T. & T. Clark, 1912), 123–24, 199–200면.
43 This is also the conclusion of many modern commentators. J.A. Thompson, for example, says: “In Zech. 1:12 it seems to denote the interval between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 in 587 B .C. and its rebuilding in 520–515 B.C.” (The Book of Jeremiah.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0, p. 514.) Dr. Carroll Stuhlmueller observes that, “if we tabulate from the beginning of Babylon’s plans for the first siege of Jerusalem (590/589; 2 Kgs. 24:10) to the time of this vision (520), the seventy years show up in a remarkably accurate way!” — Stuhlmueller, Rebuilding with Hope. A Commentary an the Books of Haggai and Zechariah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 Co., 1988), p. 64.
43 이는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의 결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톰슨은 "스가랴 1: 12에서, 기원전 587년의 성전 파괴와 기원전 520년에서 515년의 재건 사이의 간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예레미아서 그랜드 래피즈: Wm. B. Eerdmans 출판사, 1980년, 514면.) Carroll Stuhlmueller 박사는 "예루살렘 포위(590/589; 왕하 24:10)에 대한 바빌론의 계획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이 환상 (520년)이 나타날 때까지의 시간을 우리가 표로 나타내면, 70년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 스툴뮐러의 저서 <희망으로 재무장함>, 학개와 스가랴에 관한 주석: Erdmans Public. 1988년), 64면
44 Parker & Dubberstein, ap. cit. (note 40 above), p. 30.
44 Parker & Dubberstein의 앞서 인용한 책 (각주 40 참고), 30면.
45 Paradise Restored to Mankind—by Theocracy!, p. 235.
45 <신권통치에 의해 회복될 낙원>책, 235면.
46 Ibid.—Zechariah 8:19 shows that days of fasting and mourning in memory of various fateful events during the siege and destruction of Jerusalem were held in four different months: (1) in the tenth month (because of the beginning of the siege of Jerusalem in January, 589 B.C.E., 2 Kings 25:1–2); (2) in the fourth month (because of the capture of Jerusalem in July, 587 B.C.E., 2 Kings 25:2–4; Jer. 52:67); (3) in the fifth month (because of the burning of the temple in August, 587 B.C.E., 2 Kings 25:8–9); and (4) in the seventh month (because of the assassination of Gedaliah in October, 587 B.C.E., 2 Kings 25:22–25).
46 같은 책—스가랴 8장 19절은 예루살렘 포위와 파괴 중에 일어난 여러 가지 숙명적인 사건을 추모하는 금식과 애도일이 네번 열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1)10번째 달에 (기원전 589년 1월 예루살렘 포위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왕하 25:1–2);
(2)넷째 달에 (기원전 587년 7월, 예루살렘 점령 때문에, 왕하 25:2–4; 1월 52:67),
(3) 다섯째 달에(기원전 587년 8월에 성전이 불에 탔기 때문에, 왕하 25:8–9) 및
(4) 일곱째 달에(기원전 587년 10월 그달리야 암살 때문에 왕하 25:8-9).
47 From the end of August 587 B.C.E., when the temple was burned down, to December 518 it was sixty-nine years and about four months. From October 587, when the remaining Jews fled to Egypt and left Judah desolated, to December 518 was sixty-nine years and about two months.
47 성전이 소실된 기원전 587년 8월 말부터 518년 12월까지의 기간은 69년 4개월이었다. 남은 유대인들이 이집트로 도망쳐 유다를 황량하게 떠난 587년 10월부터 518년 12월까지 약 69년 2개월이었다.
48 Paradise Restored to Mankind—by Theocracy!, p. 235.
48 <신권통치에 의해 회복될 낙원>책, 235면.
49 “When the exiled Jews fasted during the seventy years of desolation of the land of Judah and also during all these years since the remnant of them returned to their homeland, were they really fasting to Jehovah?”—Paradise Restored to Mankind— by Theocracy!, p. 237. (Emphasis added.)
49 "유다 땅이 황폐한 칠십 년 동안, 그리고 유다 땅의 남은 자들이 고국으로 돌아온 후 이 기간 동안 유다 백성들이 금식한 것은 정말 여호와를 위해 금식했는가?"—<신권통치에 의해 회복될 낙원>책, 237면. (강조는 추가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