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지키시는가(2)
2006년 5월 28일 / 대예배 / 시 121:1-8
시편 120편에서 134편까지 열다섯 편의 시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시편 121편에는 "지킨다"라는 말이 6번 나옵니다. 한문 성경에는 "보호"(保護)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성경들을 찾아보면 "지킨다"라는 말이 경우에 따라, 번역에 따라 여러 가지가 나옵니다. 모두 "지킨다"는 말의 구체적인 뜻을 잘 알려주는 말들입니다. keep, preserve, caring, watching, defender, guards 등입니다.
시편 121편은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신앙시입니다. 이 시를 쓴 신앙시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또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회상하면서 이 시를 쓴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감사할 때 더 큰 감사의 제목을 주시고 과거의 일들에 감사를 드릴 때 미래를 축복으로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철저하게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세 가지 질문을 가지고 이 신앙시를 읽을 때 우리는 더욱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지키시는가?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지키시는가?
첫째, 우리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1절과 2절을 보면, 성전에 올라가기 위해 예루살렘 가까이 오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보입니다. 신앙시인은 산들을 보면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노래합니다. 매우 평범한 것 같지만 사실은 깊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저 믿음직한 산에서로다.”라고 말하거나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많은 우상숭배자들이 우람한 산에 눌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산은 언제나 든든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산을 향해 빈다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신앙시인은 “나는 저 든든한 산에게 도움을 구하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저 장엄한 산을 만드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겠다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가까이 있는 강한 존재에게 얼른 의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에 가까운 심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하고 있을 당시 유다의 왕은 아하스였습니다.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쳐들어옵니다. 왕과 백성들이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인심이 흉흉해졌습니다. 나라가 안정을 잃었습니다. 이사야서는 이 모습을 (사 7:2) “아람과 에브라임의 연합 군대가 유다를 치려 한다는 비상 통보가 다윗 왕가에 전해지자 아하스왕과 그 백성의 마음은 폭풍에 흔들리는 숲 속의 나무들처럼 두려워 떨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왕을 만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계획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사 7:11) “아하스야,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분명히 내가 네 원수들을 진멸하겠다. 너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무슨 표징이든지 내게 요구해 보아라. 네가 원하는 것이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어느 것이든 요구해 보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렇게 답변을 하는 것입니다. (12절) “그러나 왕은 거절하였다. 아닙니다. 제가 그와 같은 것으로 주님을 괴롭히지는 않겠습니다.” 아하스 왕은 이사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습니다. 내세운 이유는 매우 그럴듯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말의 뜻은 ‘만일 내가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는데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 연합군이 물러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체면을 깎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불신앙을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반가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기회를 주셨건만 아하스 왕은 눈에 보이는 대로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유다를 기울게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언서들을 보면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사 31:1-2)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을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예언자들의 공통된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강성한 세력을 의지하려고 하지 말라.” 예레미야는 주변에 눈에 당장 보이는 강한 세력에 의지하는 것을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을 파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렘 2:13)“내 백성은 두 가지 죄악을 저질렀다. 그것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버리고 떠난 것과 스스로 웅덩이들을 판 것이다. 그들은 그 웅덩이들에 빗물이 고이기를 기다렸으나 그 웅덩이들이 모두 갈라 터져서 물을 저장할 수 없게 되었다.”
산을 바라보면서 그 든든함에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그 산에게 도와 달라고 하지 않고 그 산을 지으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생수의 근원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요 4장에도 나오듯이 야곱의 샘물을 찾아 생수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만나를 보는 것보다 만나를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일본 군대가 문화재를 많이 약탈해 갔습니다. 도자기들도 많이 약탈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도공(陶工)들을 많이 납치해 갔습니다. 도자기들만 약탈해 갔다면 좋은 도자기 여러 점을 소유하는데 그쳤겠지만 도공들을 납치해 갔기 때문에 일본의 도자기 문화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많이 발달하면서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침략군이지만 슬기롭게 처리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의 근원인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요 지혜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지키십니까?
신앙시인은 3절, 4절에서 반복해서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사무엘상 26장에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이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을 추격해 왔습니다. 26장 2절에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특별히 선발된 정예특공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솔책임자는 용맹하기로 소문난 군사령관 아브넬 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부하 몇 명과 함께 밤에 사울의 진영에 침투해 보니 다 잠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깊이 잠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지하는 일이라고 하고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갑니다.
사람이 지키는 것은 이와 같이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 남자 성도들 대부분 군대생활을 하면서 야간보초나 불침번 근무를 했을 텐데, 경험이 있을 터인데 한 번도 졸지 않은 분 있습니까?
정예 특공대 3,000명이 사울을 지켜도 다 잠들었기 때문에 적이 침투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기도에 응답이 없다고 느껴질 때 ‘하나님이 졸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주무시지 않는가?’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불신앙입니다. 내가 졸고서 하나님이 졸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졸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주무시지 않는가?' 생각할 때 하나님은 눈을 크게 뜨고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많은 재앙에 노출되어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대결을 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이 아무리 바알을 불러도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도 없습니다. 엘리야가 무엇이라고 조롱합니까? (왕상 18:27)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여행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낮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모르니 어서 그를 잠에서 깨워보아라."
이 말에는 ‘내가 섬기는 여호와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다.’하는 확신이 들어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한 번 부를 때 기다렸다는 듯이 응답하시고 불을 보내어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을 핥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엎드려 “여호와 그는 참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참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오른쪽에서 우리의 그늘이 되십니다. 철저하게 지키신다는 말입니다.
지난번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 양쪽의 경호책임자가 언제나 양쪽 정상 뒤에서 밀착해서 각기 자기 쪽의 통치책임자를 지키는 것입니다. 양쪽 정상이 단 둘이 차에 같이 탔을 때는 경호책임자가 동승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국회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는데 국가적인 행사를 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 순서가 되면 모든 사람이 오른 손을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합니다. 그런데 대통령 경호책임자는 그때도 국기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대통령을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손도 가슴에 올리지 않고 휴대한 무기 근처에 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철저하게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림자와 같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든든함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든든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은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옆에 누가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그런 체험을 더 자주합니다. 그럴 때만 하나님이 우리 옆에서 우리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늘 지키십니다. 다만 우리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고 믿음의 감각이 예민해졌을 때만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영원까지 지키십니다.
대통령도 임기 동안, 그리고 임기가 끝나고 나서 얼마동안만 경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한 미군은 전에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주둔하고 있는 고마운 존재였는데 이제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주둔하고 있는 군대로 바뀌는 것 같아 욕을 먹고 있습니다.
▶ 세상의 힘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이와 같이 한계가 있고 오래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영원히 지켜주십니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셨습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며 지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며 우리를 지키신다, 나의 오른쪽에서 그늘이 되어 항상 지키신다, 하나님은 영원까지 나를 지키신다.” 이 사실을 생각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사십시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지키십니까?
모든 환난으로부터 지키십니다.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요즘 자외선 경보가 종종 발령되는데 이 말은 자외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신다거나 뜨거운 햇살 때문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해 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햇볕과 달빛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행진을 할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 당신의 사명을 받들어 지키는 자들을 철저히,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십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지켜주심이 그 한 예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환난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겪는 환난은 환난이 아닙니다. 연단입니다. 과일 나무나 채소가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가지를 자르거나 잎을 따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겪는 어려움들은 환난입니다.
그 한 예가 흉년이 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떠나 모압으로 간 나오미입니다.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는 남편과 자식들을 잃는 아픔을 겪지만 다시 하나님을 찾았을 때에는 신앙의 여인인 룻을 얻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일생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우리의 영혼을 마귀로부터 지킬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지옥 가지 않도록 지켜 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누가, 무엇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이 한 절 말씀 때문에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5절 첫 부분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영어성경은 "The Lord is your keeper"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능한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축구팀은 상대방의 공격이 아무리 거세도 실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키퍼로 있는 축구팀의 선수들입니다.
사자굴 속에 던져졌던 다니엘을 하나님은 무서운 사자의 입으로부터 지켜주셨을 뿐 아니라 그를 모함하여 사자굴 속에 던져 넣었던 자들로부터도 지켜주셨습니다. 아니 그 연단을 통하여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을 사자굴 속에 던져 처단했으며, 다니엘을 높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온 땅의 모든 민족들에게 섬기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지키고, 당신의 명예를 높이는 사람들을 또는 어떤 과정에서라도 당신을 부인하지 않고 섬기려하는 자들을 높이고, 복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