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어제의 감격이 되살아 오른다. 바깥사돈은 오늘을 위하여 기타연습을 많이 한 듯하다. 저 때만해도 막동이 딸아이는 꿈조차 꾸지 않았는데 ......북성로 대사관길을 해 ''편안한 집'' 외손자 돌 잔치하는 곳으로 갔다. 장시간 걸려 큰아들은 운전했다. 둘째 아들은 장기요양등급 3급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책임졌다. 휴게소 도착할 때마다 볼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무슨 바람은 그리 부는지 지난 날 두 아들을 데리고 한 가방은 아기 먹을것과 옷 넣고 한 가방은 천기저귀 가득 넣어 한 아이는 걸리고 한 아기는 업었다. 포항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소나무 두 그루가 논두렁 가운데 있는 시댁 과수원엘 갔던 기억. 시어른 생일 챙기고 다달이 있는 제사 챙기며, 일 년에 열 두번도 넘게 오 갔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우리도 가족사진을 찍어 걸어 둡시다. 함께 등산도 가고 야유회 갑시다 아이들 데리고 말입니다. 어찌된 셈인지 소 귀에 경 읽기가 되어 버렸다. 시어른들이 잠들고 있는 칠포해수욕장 뒷편 산소에 갔다 바로 앞 칠포해수욕장에 몸 담그고 가까운 식당에서 밥 급히 먹고 오는 것이 다였다. 작은아들 학교 여선생님이 ''어머님 어머님 가족과 여행했던 그림을 그려라고 했는데 생각이 안 난다며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하고 일러 주었다. 마음이 아려왔다. 그러고보니 결혼하고 곧바로 서점을 해 성당에서 단체로 성지순례라든가 움직이는것 외 가족끼리 오붓이 여행한 적은 없다. 본인도 돈을 안 쓸뿐더러 누구도 헛 돈 쓰는 것을 원치 않는 구두쇠 중에 구두쇠. 이삿짐도 숫제 나에게 맡기고 트럭을 한 대 빌려 와 큰아들 작은아들 박스에 담아 놓은 것 싣게하고 새벽에 짐을 날라 해결하였다. 같이 직장 안 가는 날 택해 짐정리 하자고 했다. 그래야 무엇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본인 물건도 찾기 쉽지 않겠냐 해도 허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리해 놓은 물건 찾느라 뒤벼놓기 일쑤. 다음엔 방 한 군데는 아예 그닥 중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넣어 두는 방으로 골방으로 만들어 두었다. 손님이 오면 쓸만한 물건들 그곳으로 다 옮기고 가면 다시 원위치로 돌렸다. 코로나 터지고는 손님 올 일도 없고 밖에 나가서 음식이고 음료고 대화함도 다 해결 되었다. 특히 몸이 불편한 남편은 신속히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더 일거리가 생기는건 지양 하기로 했다.
한 번씩 아버지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둥 푸념을 하면 ''엄마가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나는 안 태어났어.'' 라고 하며 듣기 싫어하는 딸아이. 술을 마시고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네.'' 하며 은근히 나를 불러내어 함께 집에 가길 원하는 남편은 전화를 한다. 정말 듣기 싫고 부딪히기 싫은데 참 재미를 낸 듯해 꼴보기가 싫었는데 도대체 위치가 어떻게 돌아돌아 가야 하는지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를 이해 할 수 없을때도 아들들은 잘 알아들어 함께 가면 찾아내었다.
모두 지난 일이다. 아이들 대학 시키고 빚 안지고 여자 못지않게 다부지게 살아 집도 사고 자녀 집도 사 주고 혼자 벌어 먹고 살겠다고 그 많은 부모재산 포기한 알 수 없는 사람. 고와도 내 남편이고 미워도 내 남편이다. 가족사진은 큰아들이 성전에서 혼배성사하며 생겼다. 남편은 부모님이 고생하며 사과 농사하던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그런지 힘든 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억세게 살아간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번 돈 있는 돈은 아끼지 말고 즐겁게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닮아 야무지다. 나 홀로 야무지지 못해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고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잘 관리 해 나가는 중이다.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이제 외양은 모두 변했다. 오늘도 내일도 마음만은 청춘의 가도를 달린다. ''첫 돌을 맞은 아가~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자라고,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다오.'' 사랑하는 재윤이 해피 버스데이 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