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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제 18회 한국수필가협회 해외 심포지엄 및
문학기행
- 한국. 우즈베키스탄 수교 20주년 문학행사 -
현대 한국수필의 현황과 전망
일시: 2012. 8. 25-26
장소 : 우즈베키스탄 호텔
주관 : 우즈베키스탄 문인협회
주최: (사) 한국수필가협회(www.kessay.or.kr)
후원 : 월간 한국수필. 우즈베키스탄 신문사 . 우즈베키스탄 문학잡지
제 18회 (사) 한국수필가협회 우즈베키스탄 심포지엄 및 문학기행
제 1일 일시 2012. 8. 25. 토 오전 11시
진행 권남희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동시통역 Mr. 욱탐 우즈베키스탄
* 정목일 이사장 인사
* 우즈백 문인협회 회장 인사
* 양국 작가소개
* 심포지엄
정목일 수필가 한국 수필의 현황과 모습
Alesey Ustimenko (전 Zvezda Vostoka 문학잡지 편집장)
Afltuni Eugeniy Abdullaev
Bakh Ahmedov
이현복 문학평론가 현대 한국수필 문단의 현황과 전망
토의 김경실(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3분씩
김윤숭(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3분
김혜숙 (한국수필가협 운영이사) 3분
축가 안명희 윤행원
수필낭독
전수림 수필가 3분
우즈베키스탄작가 3분
최영희 수필가 3분
양국 대표 선물 증정 (개인 작품집 포함)
단체사진촬영
2부 정원에서 전통 공연 및 관람 .오찬과 작가교류
진행 서원순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
동시통역 Mr .욱탐
제 2일부터 실크로드 문학기행
수필작품 (약력 생략)
김경실 약식동원
김윤숭 국보 제1호 독도
박수주 순심이
오정순 비누와 비누곽
윤행원 은밀한 유혹
김의배 고향의 푸른 동산
안명희 물이 좋아야 차 맛이 좋다
이상목 배우는 자세로
김혜숙 어머니의 분홍구두
권남희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서현성 기도할 수 있는데
서원순 음악의 오스람
김신애 상사화
전수림
이춘자 내 삶의 땡볕을 가려주는 양산
윤중일 한 마리 새가 되어
문육자 사라짐에 대하여
김연희 곱게 늙고싶다
최영희 남편따라 즐기는 등산
한국 수필의 현황과 모습
鄭 木 日수필가(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협 부이사장)
1. 수필은 삶의 문학
수필은 멀리 있지 않다. 나의 생활 곁에, 삶의 곁에 있다. 슬픔의 곁에, 눈물의 곁에, 기쁨의 곁에, 그리움의 곁에, 정갈한 고독의 한가운데에 있다.
수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맑고 투명한 거울이다. 수필은 상상을 토대로 한 픽션(ficthin)이 아닌, 사실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non ficthin)이다. 상상이나 거짓이 아닌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의 독백, 마음의 토로이다. 수필은 산문 문학으로 형식이 자유로우며 분량이 짧다. 갈수록 가속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대에 알기 쉽고 체험을 통한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을 담은 수필은 독자들의 삶과 인생에 부응하여 갈수록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 한국의 문인 중에서 시인 다음으로 많은 문인이 수필가라는 것만 보아도 대중들의 선호도를 알 수 있다. 수필은 우선 자신의 삶과 인생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중시되며 삶의 발견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이를 통해 인생에 대한 성찰과 완성을 위한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 수필의 힘이다.
기록한다는 것은 자아(自我)의 발견이며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기록함으로써 비로소 역사의식과 영원성을 수용하게 된다. 기록은 삶을 성찰하여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다. 기록하는 일을 통해 삶은 더욱 진지해지고 충실해지며 가치로워진다. 기록은 사실 그대로를 쓴 것이다. 체험에 상상과 느낌을 보태어 재구성과 해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수필이다. 기록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지만, 수필은 사실에 상상과 느낌을 불어넣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담아낸다. 우리 삶의 얘기가 그냥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수필로 승화되기 위해는 상상과 느낌을 의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필은 누구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일기, 고백, 기행, 감상, 편지- 어느 형식이든지 자유롭게 마음을 토로할 수 있다. 수필은 자신과의 대화이다. 자신과의 대화에 과장과 허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장신구를 떼어내고 화장도 지워버리고 홀가분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친구에게 마음을 토로하듯 쓰는 글이다. 권위의식, 체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일체의 수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수필이 '마음의 산책' '독백의 문학'이라 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 내는 문학임을 말한다.
수필의 입문(入門)은 어느 문학 장르보다 쉽지만 수필의 완성은 실로 어렵다. 성공한 인생은 많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작은 쉬웠지만 점점 들어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글이 수필이다. 시, 소설, 희곡 등 픽션은 작가와 작품이 일치하지 않아도 되지만 논픽션인 수필의 경우엔 작가와 작품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인생의 경지에 따라 수필의 경지가 달라진다. 수필은 인생의 거울이므로 사상, 인품, 경륜, 인생관 등이 그대로 담겨진다. 심오한 사상, 고결한 인품, 맑고 따뜻한 마음, 해박한 지식, 다양한 체험이 수필을 꽃피우는 요소이고, 이런 인생 경지에 도달한다는 자체가 구도, 자각, 실천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수필은 완성의 문학이 아니라, 그 길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문학이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통한 의미와 가치를 최상으로 높이는 도구다. 수필을 쓰려면 무엇보다 겸허하고 진실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꽃피우는 문학이므로 스스로 교만과 허위의 옷을 벗어야 한다. 마음속에 항상 자신의 영혼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깨끗이 닦아 두어야 한다. 마음속에 양심의 종을 매달아 두어서 불의나 탐욕의 손길이 뻗힐 때 스스로 자각의 종소리를 내게해야 한다. 마음속에 맑고 깊은 옹달샘을 파 두어서 거짓의 먼지를 깨끗이 씻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마음의 경지를 얻은 사람이라면, 진실과 겸허의 눈으로 말하고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습성을 가지는 일이 수필을 쓰는 첩경이 된다. 삶의 기록이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① 체험의 서술
② 체험 + 느낌
③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④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 감동
①은 자신이 겪은 대로 쓴 것이어서 기록문에 불과하다.
② 수필이 되려면 체험과 느낌이 조화를 이뤄야 함을 말한다. 체험이 많고 느낌이 적을
땐 정서감이 부족하여 딱딱하게 느껴지고, 체험이 적고 느낌이 많은 경우엔 추상적이고 현실감의 결여를 느끼게 한다.
③의 수준이면 수필에 진입한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창출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험을 통한 인생의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④의 경우엔 '감동'을 주문하고 있다. 수필이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나 인생의 의미를 일깨우고 읽는 보람을 안겨 주기 위해선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감동'은 문학성의 핵심 요소이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 수필쓰기는 자신의 삶을 가치롭게 꽃피우는 자각과 의미 부여의 행위이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의미의 꽃으로 피워낼 수 있을까, ― 이것이 수필을 쓰는 핵심이며 궁극적 목표가 아닐 수 없다.
2. 수필과 에세이, 서정적 수필과 논리적 수필
수필에 대한 개념과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그 정립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의 수필과 서양의 에세이는 사뭇 다른 글임에도 번역할 때 동일시(同一視)하는 경향으로 오는 차이점과 우리나라 수필의 태동기인 1930년대의 현상과 현대와는 다른 측면이 있으며, 수필문학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개념의 설정이 필요해졌다.
첫째, 동양의 수필과 서양의 에세이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른 글이다. 문장이란 쓰는 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반영한다. 한국인들의 삶과 사고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정(情)’이며, 서양 사람들에겐 ‘논리(論理)’이다. 어떤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에 있어서
한국인은 정을, 서양인은 논리를 기준 삼는다.
수필은 대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재제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글인데 반해, 에세이는 대개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제재를 논리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수필의 작자는 ‘나’이며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인생적인 발견과 의미를 담으려 하지만, 에세이는 ‘우리’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목적이 있다.
수필은 자신의 삶과 사색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나름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에세이의 경우엔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동조, 설복시켜 따르도록 하려 한다. 수필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펼쳐 보일 뿐 어떤 결론이나 생각에 따르도록 유도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생각하고 느끼게 만들면서 각자의 삶과 인생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에세이의 경우엔 반드시 어떤 결론에 대한 방향을 결정짓게 강요한다. 옳고 그름의 시비를 가리고, 찬성과 반대의 분명한 입장에 대하여 분석적이고 구체적인 논증을 제시하여 설득시키려 든다.
수필은 읽고 나서야 주제가 무엇인가 알게 하지만, 에세이의 경우엔 처음부터 분명하게 주제를 드러낸다. 수필은 마음의 행로에 따라, 감정의 흐름에 따라 써지는 자유분방한 글이라 한다면, 에세이는 목적과 형식과 주제가 분명한 글이다. 수필은 글의 감상을 통한 마음의 전달이라면, 에세이는 주장을 통한 설득과 동조를 위한 글이다.
수필의 핵심은 서정, 사랑이라면, 에세이의 핵심은 논리, 지식이다. 수필은 독자들에게 마음으로 서정을 선물하는 것이라면,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이성으로 사리분별과 문제해결의 방법을 가르쳐 준다. 수필은 독자들에게 사랑, 위로, 용기, 아름다움, 여운, 발견, 깨달음 등 정서를 제공한다.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이성, 철학, 논리, 분석, 합리적인 사고와 의식을 길러준다.
수필은 개인의 감정을 바탕으로 한 글이기 때문에 자칫 감정의 유로와 개인의 기록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개인의 체험이지만 ‘인생의 의미’라는 보편성 획득이 필요하며 독자들의 삶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에세이는 논리에 근거한 글이기 때문에 정감이 없어 딱딱하게 느껴진다. 시비를 가리는 데 목적이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가치 지향과 삶의 철학을 알려주어야 한다.
수필은 개인의 삶, ‘나’의 인생 발견과 의미 찾기를 통한 성숙과 발전을 가져오게 하고, 에세이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부딪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분별력과 해결 능력을 신장시켜 준다. 이 두 가지 뚜렷한 관점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삶의 지표와 방식을 제시해주므로 각각의 효용성을 지니고 있을 뿐, 좋고 나쁨의 척도가 되진 않는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삶의 환경, 문화전통, 의식구조가 다른 까닭으로 글의 성격과 모습도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수필은 오래 동안 동양인의 마음에서 피운 서정의 모습이라면, 에세이는 오래 동안 서양인의 이성에서 피운 논리의 모습이다.
수필과 에세이가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시하기 때문에 혼돈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또 수필에 있어서도 중수필(重隨筆)과 경수필(輕隨筆), 에세이도 포멀에세이(formal essay )와 인포멀 에세이(informal essay)로 구분하여, 중수필과 포멀에세이, 경수필과 인포멀 에세이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수필과 에세이는 개념과 정의가 다르고, 이에 따른 혼돈을 막기 위해서 서정적 수필과 논리적 수필로 대별하여야 한다. 정서를 바탕으로 개인의 체험과 인생을 드러내는 서정적 수필과 논리를 바탕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적 수필로 구분하여야 한다.
3. 수필과 신변잡기
수필은 나의 생활 곁에, 삶의 곁에 있다. 슬픔의 곁에, 눈물의 곁에, 기쁨의 곁에, 그리움의 곁에, 정갈한 고독의 한가운데에 있다.
삶과 가장 근접해 있는 문학이 수필이다. 수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맑고 투명한 거울이다. 한숨이 나오거나, 그리움이 사무칠 때나, 외로움이 깊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때 백지 위에 무언가 써보고 싶어진다. 그냥 낙서일 수도 있고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이 '끄적거림'은 별 의식 없이 나온 것이지만 마음의 독백, 마음의 토로로서 이 속에 자신의 인생과 느낌이 담겨진다는 뜻에서 중요하다. 이 끄적거림이 발전하면 삶의 기록, 인생의 기록이 되며,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다. 기록한다는 것은 자아(自我)의 발견이며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기록함으로써 비로소 역사의식과 영원성을 수용하게 된다.
기록은 삶을 성찰하여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다. 기록하는 일을 통해 삶은 더욱 진지해지고 충실해지며 가치로워진다. 기록은 사실 그대로를 쓴 글이다.
수필은 체험(사실)에다 상상과 느낌을 보태어 재구성과 해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한 글이다. 기록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지만, 수필은 사실에 상상과 느낌을 불어넣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담아낸다. 우리 삶의 얘기가 그냥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수필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상상과 의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필은 완성의 문학이 아니라, 그 길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문학이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통한 의미와 가치를 최상으로 높이는 도구다. 수필을 쓰려면 무엇보다 겸허하고 진실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꽃피우는 문학이므로 스스로 교만과 허위의 옷을 벗어야 한다. 마음속에 항상 자신의 영혼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깨끗이 닦아 두어야 한다. 마음속에 양심의 종을 매달아 두어서 불의나 탐욕의 손길이 뻗힐 때 스스로 자각의 종소리를 내게 해야 한다. 마음속에 맑고 깊은 옹달샘을 파 두어서 거짓의 먼지를 깨끗이 씻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마음의 경지를 얻은 사람이라면, 진실과 겸허의 눈으로 말하고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다.
4. 인터넷 시대와 수필
인터넷시대인 현대는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 자판을 치며 인터넷을 통해 지식, 정보를 얻으며 생활하고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시대의 흐름에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터넷을 통한 소통, 전자 메일은 세계 어느 곳이나 3초만에 무료로 전달될 수 있는 인류 사상 가장 신속하고 편리하며 비용도 들지 않는 완벽한 소통방법을 구현해 내었다.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는 문장들이 시와 소설 등이 아닌, 일기, 편지, 수기, 체험기, 건의 컬럼, 감상, 댓글 등이 모두 수필 장르에 들 수 있는 글이다. 모든 생활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필과 유사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필이 생활과 가장 연관된 문학으로써의 친밀감을 갖게 되며, 오늘날 ‘수필시대’라는 말을 쓰고 있다.
5. 한국수필의 현황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가입된 문인의 수는 약 1만 3천 명 정도이고 이 중 시가 55%를 차지하고 수필이 27%를 차지하여 운문에는 시, 산문에는 수필이 대세인 시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계간지 이상 수필전문지가 20여 종이 발간되고 있으며, 지역단체별로 수필문학회와 수필그룹이 형성되어 주기적인 발표와 창작활동을 펼쳐내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수필만도 5천여 명이 상회할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미국, 유럽, 아시아권 등 세계에서 수필만을 전문적으로 쓰는 수필가가 활동하는 곳은 한국이다. 한국 이외의 나라에선 대개 시인이이니 소설가, 희곡작가, 평론가들이 에세이 형식의 글을 발표하여 에세이스트라는 이름을 얻고 있을 뿐, 에세이만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를 찾아보기 힘 들 정도이다.
일찍이 다수의 유럽 작가들이 21세기는 수필시대가 될 것임을 예고한 바 있으며, 수필문학의 번성과 발전이 한국을 터전으로 하여 확산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수필가협회는 1971년에 창립되어 현재 700여 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으며, 전국적인 수필단체가
20여 개, 지방까지 합하며 50여 개가 되며 협회를 중심으로 회원들의 합동 수필집을 연간집 형식으로 발간하기도 하고, 계간이나 월간 잡지를 발행하면서 창작활동을 도모하고 있다. 수필문학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서 백화점, 대학 등에서 ‘수필교실’을 열어서 수필창작을 가르치고, 수필단체에서 매년 수필세미나를 개최하여 수필에 대한 관심과 발전을 위한 노력을 펴고 있다.
현대 한국수필 문단의 현황과 전망
이현복
1
오늘날 우리 한국수필문단은 종횡으로 확산 일로에 있으며 더욱 발전하여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문단의 주된 장르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는 시대의 흐름이다.
이에 대하여 프랑스의 아나톨 프랑스는 “수필이 어느 날에는 온 문예를 흡수해 버릴 것이다. 오늘이 그 실현의 초기단계다.”라고 한 말을 우리 수필계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수필동인문학회, 쏟아지는 수필집과 양산되는 수필작가들, 특히나 해마다 늘어나는 수필문학 입문 지망자들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한국의 서점에서 수필집을 제외하면, 한국문인협회 문인에서 수필인을 제외한 어떤 현상일까를 상상해 보면 가히 짐작이 간다.
지금도 세간에는 현대한국수필의 문제점으로 ①신변잡기적인 수필의 과다 ②문학성의 결여 ③허구성에 대한 시비 ④수필문학론 부재 등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필이 문학이냐? 수필이란 어떤 것이냐? 수필이 어떻게 써야 문학이 되느냐? 어떤 수필이 문학 수필이냐? 광의 수필과 협의의 수필이란? 앞으로의 수필이 어떻게 나가야 하겠느냐?고 묻는다. 이는 수필문학을 이론으로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일부의 움직임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이런 무정견(無定見)한 일인일설(一人一說)의 수필론은 차라리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할 뿐이다.그들은 미래문학으로 각광 받는 수필문학을 잡문시하고 주변문학으로 비하하고 비문학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것이 현대한국수필문단의 현실이다.
그들은 아무런 수필 문학관(隨筆文學觀)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문학을 논하는 논자로서 학구적 입장이요, 평론가적 입장일 뿐이다. 작가적 입장에서의 수필론이 아니다. 작가란 글을 쓰는 사람이요 논하는 사람은 아니다. 수필은 어의(語義) 그대로 수필일 뿐이다. 어쩌면 수필은 술이부작(述而不作)으로 만드는 글이 아니라 써지는 글이 아닐까 한다.
자조의 문학이요, 개성의 문학이요, 형식이나 내용에서 자유로운 수필문학의 속성상 작가 나름대로의 수필관을 기지고 문학성을 추구해 가며 자기세계의 개척과 개성적인 문체로 문학수필을 창작하는 것이 작가의 수필관이요, 수필론이다. 수필작품은 그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며, 작가의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솔직한 순진한 글이다.
오늘의 문학현실은 장르의 해체시대다. 이는 전기, 자서전, 기행, 일기 등 이른바 기록문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서구에서는 종래의 산문문학인 소설, 희곡 등이 점점 논픽션화되면서 수필문학에 합류되고 있는 오늘의 문학현실이다.
수필은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는 문학장르다.
교육이 대중화되고,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고속화가 요청되는 현대사회의 적합한 기술양식이 산문이며, 산문 중에서도 허구가 아닌 현실적 체험에서 삶의 진실을 직접 듣고자 하는 시대적 욕구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다양화한 사회, 다원화한 사회에서 사회구조는 복잡해지고 전문화된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에서 살다보면 ‘복잡상’보다는 ‘단순성’을. ‘길고 큰 것’보다는 ‘짧고 작은 것’, ‘난해한 것’보다는 ‘평이한 것’을 심리적인 반대급부현상으로 찾고, 소통관계에서는 운문인 비유나 상징보다는 산문인 설명과 설득을 요구한다. 이에 적합한 문학장르가 수필이다.
문제는 그 시대에 맞는 적절한 형식과 그 시대가 요구하는 사상 즉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있다. 제도의 개혁의 시대에 따라 달라지듯이 문학장르도 그 시대에 맞게 변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변화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의 지향이다.
2,
위와 같은 현대 한국수필의 현황과 전망에서 미래문학인 수필문학의 지향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문학작품은 시대상에 대한 작가의 개성적 반응의 기록이다.
산업화와 정보사회 시대가 되면서 “현대를 인간 본성을 잔인하게 누출시켜 신과 이상과 이성의 상실시대로
1.신이 없는 시대,
2.미로의 시대,
3.인간소외의 시대로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복수하고, 색스로써 위안을 삼고, 술로써 삶의 비극을 망각하며, 취미와 오락으로 여가를 선용한다.
이 시대의 인간상은 수많은 정보와 과학적 지식에 의하여 인간은 결국 정보와 지식의 노예로 변하여 현대인은 기계의 부품화 하여 냉정한 과학자로, 차가운 동물로 전략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사랑과 정의 상실이요, 인간성의 상실이다. 이런 시대상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서 혼돈을 피하고 제정신으로 자아의 존재의미를 찾아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향유할 것인가?에서 수필문학의 미래는 좌우될 것이다.
오늘의 현대인은 ‘남, 남의 일에 정신이 팔려 나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면 미래사회는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나의 정체성’을 찾아 ‘나다운 나’로 사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수필은 문학의 한 분야다. 문학은 사람사는 이야기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하여 인생을 배우고, 아름다움을 찾고, 눈물과 웃음의 의미를 알며, 만나고 헤어짐의 인연을 아는 것이다. 이에 수필문학은 나의 이야기다. 나의 체험을 통하여 생활을 문학화하는 것이고, 문학을 통하여 나를 생활화하는 것이 수필인의 길이다.
생활의 문학화, 문학의 생활화에서 수필문학을 살찌워 미래문학으로 자리매김 하자.
경력: 문학평론가. 경인교대명예교수. 계간 <수필춘추 발행인>
국보 제1호 독도
김윤숭 수필가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반대한다면 이해가 되나 한국인이 결사반대하니 이해가 안된다. 일본이나 중국의 침략에 대비할 수 있는 관문 아닌가. 물론 현재는 북한의 해상침투에 대비할 수 있으니 북한이 반대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크게 보면 한반도를 지키는 것이 우리 민족을 수호하는 것이니 북한에게도 유리하지 않은가. 북한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 북한의 지지를 받는 것이 반대여론을 잠재우는 첩경이다.
임진왜란 전에 일본의 침략 기미를 간파하고 율곡선생이 10만 양병을 주장하자 미친 소리라고 하였다. 나중에는 10만양병설은 날조라느니 가지가지로 험담한다. 선견지명이 있는 현자를 존경하지는 못할망정 비방하고 폄훼하기 급급하니 어찌 그 정신을 본받아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대비할 수 있겠는가. 결국 북한의 6.25남침을 예견하고 대비를 주장한 사람들이 바보취급당하고 말았으니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 국가원수로 독도를 방문하였다. 일본이 비난하는 거야 이해되지만 반정부측에서 비난하는 것은 이해불가이다. 대통령은 단순히 여당총수일 뿐 아니라 국가원수가 아닌가. 국가를 대표하여 국토를 순시하는 것은 수천년 역사의 상식인데 그것을 진정성 운운하며 비난하니 새로운 친일파가 따로 없다. 국익을 무시하고 반정부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새로운 매국노의 행태이다. 한 치의 땅덩이도 내줄 수 없고 터럭만큼의 실지도 되찾겠다는 중국이나 일본의 영토의지는 본받아야 할 정신으로 국방과 국토수호는 여야를 떠나 한 목소리로 지지해야 하지 않겠나.
몇 년 전 지금은 미국 브라운대에 다니는 아들놈이 민사고 다닐 때 한밤중에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 이대통령이 독도를 팔아먹었다고 소문이 낭자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물은 적이 있어 뒤통수맞은 기분이었다.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니 국가원수를 불신하고 비방하기 급급한 사색당파 분열성이 학생에게까지 악영향 끼쳐 소름 돋은 적이 있는데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온국민이 적극 지지하기는커녕 그런 현상이 재발된 것이다.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독도를 국보 제1호로 지정하여 그 중요성을 전세계에 공지해야 한다. 국보 제1호는 무의미한 순서 1이 아닌 중요한 지식, 상식 가치 제일이다. 국보 지정순서가 경중 순위가 아니라고 반대할 일이 아니다. 어느 기자의 국보·보물·사적 ‘1호’에 ‘불편한 진실’ 있다는 기사를 보니 남대문은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이 입성하고, 동대문은 소서행장이 입성한 전승기념물이라서 보존되고 보물 1호와 2호로 지정되었다고 하였다. 그것이 건국후 국보와 보물로 나뉘어 각기 제1호로 지정된 것이다. 일본이 1호와 2호로 지정한 것은 분명히 가치중심으로 지정한 것이다. 국보 제1호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동쪽 끝의 소중한 영토 독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문화재보호법에 보물에 대하여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국보에 대하여 제1항의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법을 고치면 유형문화재만이 아니고 천연기념물도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독도를 국보로 지정할 수 있으니, 국보 제1호로 독도를 지정하라. 숭례문은 현재 국보 맨끝에 배치하면 된다. 그리해도 숭례문의 가치는 변하는 것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