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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2025.3.2 주일 낮 예배
말씀:요17:1-3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요절)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제목: 주님의 중보기도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은혜성가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의 본문은 주님의 중보기도라는 큰 틀에서 부활을 염원하는 우리의 소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춘 3월 첫 주를 맞이한 우리 만나인의 가장 큰 소망은 겨우내 웅크렸던 가슴을 쫙 펴고 새롭게 움트는 만물의 소생, 즉 부활가 함께 우리의 단 한 번의 생명이 영생으로 가는 생명의 부활은 오직 주님의 중보의 힘이라는 내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의 본문(요한복음 17장)은 주님의 기도 특히 “대 제사장의 기도문”이라고도 합니다. 기도의 내용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마지막 기도입니다. 내용은 대충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1-5) 둘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6-19) 셋째는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20-26). 기도 내용은 주기도문과 유사한 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주기도문과 다른 주님의 중보입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직접드리는 기도문이지요.
첫째로,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면서 동등(삼위일체)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둘째로, 이 기도는 거룩하고 의로운 아들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셋째로, 이 기도는 무엇을 달라는 간구가 아니라,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 즉 우리 죄인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의 기도입니다. 바로 처음 말씀드린바대로 대 제사장이신 주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되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나님께 드려지기 때문에 중보 기도가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제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중보 사역으로 인해 우리는 이제 다른 그리스도인들 및 잃은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간구하며 기도로 중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1. 주님의 중보기도는 말씀에 대한 응답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믿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주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습니다. 오직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할렐루야!!!!~~~
사도행전 24장 15절 말씀에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부활" 이라 하심은 요한복음 5장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죄인이요 악인으로서 그 죄와 악으로 행함이 그 사람으로 사망의 길에 들어 갑니다. 고린도전서 15장56절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그 마지막은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중보기도의 훌륭한 본은 다니엘서 9장에 있습니다. 이 기도는 참된 중보기도의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보 기도는 말씀에 대한 응답입니다(2절). 열정으로 기도하고(3절) 자기를 부인하며 기도하고(4절)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가 되어 기도하며(5절) 죄악을 자백함으로 힘을 얻고(5-15절)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하고(4, 7, 9, 15절) 하나님의 영광을 그 목표로 삼고 기도합니다(16-19절). 그리스도인들은 다니엘처럼 자신을 부인하는 의식 가운데 자기의 무가치함을 인식하면서 상한 심령과 회개하는 자세로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다니엘은 "나는 주님의 특별한 택함 받은 중보자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러한 요구를 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하고 또한 실제로 “나는 아무 것도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참된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그 기도가 성취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유익이 되든 그렇지 않든,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참된 중보기도는 우리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2. 중보기도의 효능
주님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형상의 보존과 회복으로서 부활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위 즉,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모든 고통(출생, 성장, 그리고 죽음)을 체휼하신 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랍고 의미 있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이며, 그 부활체의 모습이 '사람의 모습'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체는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는데, 범죄하여 하나님이 '정녕 죽게 하신 바로 그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는 인간의 '처음 모습'이 하나님께서 매우 의미 있게 만드신 형상이라는 뜻이다. 바로 그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창 1:27).
인간의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으며, 부활하신 예수님도 인간의 모습을 입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골 1:15, 3:10, 히 1:3). 범죄하여서 정녕 죽는 죽음 아래 있게 된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자신(아담)의 형상을 닮은 자녀를 낳게 하시고(창 5:2~3), 그들을 통해서 태어난 생명의 귀중함을 말씀하신 것은 바로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 때문이다(창 9:6).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골 1:15).
2)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영생과 영벌 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향은 모든 인류에게 미친다. 그러나 이 부활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육적인 부활체를 입게 된다(행 24:15). 그러나 부활에는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의인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부활에 참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악인은 사단과 함께 심판을 받고 영원히 지옥에 거하게 된다(요 5:29, 행 24:15).
심판의 부활을 입게 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를 피해서 죽기를 원해도 영생하는 부활체이기 때문에 죽지 못하고 고통 중에 거하게 된다(계 9:6, 6:15~16).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이 오히려 저주스러운 사건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그들에게는 차라리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은 불변의 하나님 뜻이기 때문에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하신 표현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더 좋았을 뻔한 사람들이다(막 14:2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다. 아담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와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하며,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세상에 관한 일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들은 출생과 죽음에 관한 필연적인 사실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의미를 깨닫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자신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중보의 응답은 우리가 받는 부활의 기쁨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말씀하시기를 혈과 육은 하나님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전15:50)고 하였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전하는 이 말씀을 우리는 부활장(고전50장)이라고 합니다.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할렐루야~~~~
사도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사망이 삼켜지고 승리하는 순간"(고린도전서 15:53-57),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53절)는 말씀은 놀라운 변화를 약속합니다. 썩지 아니함과 죽지 아니함이란 새로운 몸을 입는 것을 말하며, 이는 부활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사망아 네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 독침이 어디 있느냐'(55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망이 완전히 패배했음을 선언합니다. 사망의 독침은 죄이고, 죄의 권능은 율법이지만,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해 우리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3. 중보기도의 목적과 효력
다음은 누구를 위해 중보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그 목록 중 일부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자들(딤전 2:2), 사역자들(빌 1:19), 예루살렘(시 122:6), 친구들(욥 42:8), 동족들(롬 10:1), 병든 자들(약 5:14), 원수들(렘 29:7),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마 5:22), 우리를 버린 자들(딤후 4:16), 그리고 모든 사람들(딤전 2:1)입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항상 응답되고 효력이 있습니까?
"예수의 중보가 항상 응답되고 효력이 있고 오류가 없다면,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잃고 다시 죄로 돌아갑니까?
가롯 유다가 잃어버렸다는 것은 유다에 대한 예수의 중보가 실패였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유다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까? 만약 크리스천이 타락한다면, 그것은 그를 위한 예수의 중보가 실패였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예수가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 마태복음 26:1-5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태복음 26:6-7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한복음 12:4-6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마태복음 26:14-16
주님의 중보를 부정하는 것은 악의 심판이며 영원한 형벌입니다.
예수의 중보가 실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그분의 대제사장의 기도에 아름답게 답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중보가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그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은 주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려 하려 하심이니이다" (요한복음 17:2). 이것은 예수의 중보가 특별하며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내가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이는 그들이 아버지의 것임이니이다"(요한복음 17:9). 그러므로, 그분의 기도는 모든 인류를 무차별적으로 위한 것이 아니라, 택함 받은 자들, 즉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그분께 드린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결론
유다와 관련하여, 요한복음 17:12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당신이 내게 주신 그 이름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켰습니다. 성경이 성취될 수 있도록 멸망당할 운명에 처한 자 외에는 아무도 잃어버린 자가 없다." 유다의 역할은 예언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안에서 정해졌고, 예수는 결코 유다를 위해 중보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다는 겉으로는 제자들 가운데 있었지만, 그는 실제로 영생을 위해 그리스도께 주어진 제자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배신은 예수와의 가까움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령을 통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안전하다.
그리스도인들이 뒤로 물러섰다고 해서 예수의 중보가 실패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7:11-12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서 당신 자신의 백성을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의 능력으로 저희를 보호하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당신이 내게 주신 그 이름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켰나이다." 참된 신자들은 일시적으로 실족하거나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예수님의 중보로 그들은 궁극적으로 믿음 안에서 보존되고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빌립보서 1:6; 요 10:28-29). 명백한 믿음의 상실은 종종 일시적인 타락을 드러내거나 어떤 사람이 결코 진정한 신자가 아니었음을 드러냅니다(요일 2:19).
맺는 말씀
예수의 중보는 그것이 의도된 사람들, 즉 아버지께서 그분께 주신 사람들에게 항상 효력을 발휘합니다. 유다는 결코 이 무리에 속하지 않았으며,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은, 만약 정말로 그분의 것이라면, 그분의 지속적인 중보에 의해 지지를 받고 그분의 은혜에 의해 회복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사역의 완전한 효력과 그분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흔들리지 않는 안전을 강조합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7:24-25
사랑하는 우리 만나인들은 주님의 신권을 영원히 지니기를 바랍니다. 결과적으로, 주님은 주님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오는 사람들을 끝까지 구원할 수 있는데,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중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의 말씀의 한마디 요약입니다.
이제 금년도 새로운 계절 새 봄이 시작되는 3월의 첫 주일 예배를 마칩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저는 우리 만나인에게 두가지 말씀을 가슴에 새기도록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고 서로 사랑하는 일을 부탁하였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되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새 봄을 맞이하여 부푼 가슴과 설레이는 마음으로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의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실 것을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하나님게서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이 시간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