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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공주와의 동침 위소보가 궁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태감이 달려와서 조정에 내 리는 성지를 선포했다. 그 내용은 위소보를 일등 자작에 봉하고 사혼사 (賜婚使)라는 직책을 하사해서 건녕 공주를 호송하여 운남으로 가 평서 왕의 세자인 오응웅에게 시집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오응웅을 삼등정기니합번(三等精奇尼哈番)에다가 소보(小保) 겸 태자태보(大子大 保)에 봉한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은자를 꺼내서 태감에게 수고비로 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된다면 오응웅이란 녀석이 득을 보는 셈이로구나. 아름다운 공 주를 맞아들이게 될 뿐만 아니라 큰 벼슬에 봉해지는군. 이야기 선생은 정충악전(精忠岳傳)에서 악비 악 나으리가 소보에 봉해졌다고 했다. 그 런데 너 오응웅이란 못난 녀석이 어찌 악 나으리와 견줄 수 있겠는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황상께서 그에게 큰 벼슬을 내리는 것은 그저 오삼계로 하여금 의심하 지 않게 하자는 것이고 조만간 그의 목을 자를 것이다. 오배 역시 소보 에 봉해지지 않았던가? 맞았다, 맞았다. 악비 악 소보 역시 황제에게 살해당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소보라는 관직에 봉한다는 것은 바로 그의 머리를 자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음에 황상께서 만약에 나 에게 소보라는 벼슬을 내리겠다고 한다면 나는 죽어라 하고 사양을 해 야겠다.) 즉시 그는 황제에게 가서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말했다. [황상, 소신은 이번에 운남으로 달려가서 황상을 위해 일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황상께서 어떤 금낭묘계(錦囊妙計)가 있으시다면 저에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강희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소계자는 역시 학문이 부족하구만. 금낭묘계는 바로 금낭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써 천기를 누설할 수 없다는 말인데 어찌 먼저 그대에게 이 야기할 수 있겠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아. 그렇군요. 애석하게도 저는 글자를 모릅니다. 황상께서 만약 금낭 묘계가 있다면 반드시 그림으로 그려야 할 것입니다. 황상, 지난 번 청 량사 주지로 임하게 되었을 때 내린 그 그림은 정말 멋지더군요.] 강희는 웃었다. [자고로 성지에 글자를 사용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 것은 아마도 우리 군신 두 사람이 처음으로 시도해 본 것일 게야.] 위소보는 말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죠.] 강희는 웃었다. [좋아, 좋아. 자네 기억력이 무척 좋군. 숙어를 금방기억하는군.]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황상께서 가르치는 것은 언제나 기억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가르치는 것은 언제나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한답니다. 정말 어떻게 된 노릇인지 모르겠군요. 예를 들면 한 마디를 내뱉으면 무슨 말이고 뒤쫓 아 잡을 수 없다고 할 때, 그 한 필의 말이 무슨 말인지 언제나 기억할 수가 없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태감이 들어와서 건녕 공주가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고 전했다. 강희는 위소보를 한 번 바라보고는 들어오라는 분부를 내렸다. 건녕 공 주는 서재로 들어서자 그만 강희의 품안으로 뛰어들면서 대성통곡을 했 다. [황제 오라버니, 저는....저는....저는....운남으로 시집가고 싶지 않 아요. 제발 성지를 거두어 주세요.] 강희는 어릴 적부터 이 누이동생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가짜 태후의 악 행을 알게 된 이후부터 누이동생에게까지도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를 오응웅에게 시집보내는 것은 오삼계를 멸하려는 계책도 있었지 만 한편으로는 실로 그녀를 불행에 빠뜨리려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 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토록 불쌍하게 우는 것을 보고 차마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이 이른 이상 이미 내린 명령을 거두어 들일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부드럽게 타일렀다. [여자는 성장하면 반드시 시집을 가야 된다. 내가 너를 위해 선택한 남 편감은 정말 괜찮다. 소계자, 그대가 공주에게 이야기해보게. 그 오응 웅이란 녀석 용모가 꽤나 준수하지 않던가, 그렇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공주, 그대의 부마는 운남성에서 유명한 미남자입니다. 지난 번 오 공자가 북경으로 들어올 때 앞문 밖에서 십여 명의 소저가 싸워 세 사람이나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습니다.] 건녕 공주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싸웠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평서왕의 세자는 미남으로 천하에 이름이 나 있습니다. 그가 서울로 들어오던 그 날 북경성의 수천 수만이 되는 소저들과 부인들이 몰려들 어 구경을 하게 되았습니다. 그리하여 십여 명의 소저가 서로 밀고 밀 치다가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죠.] 건녕 공주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환히 미소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쳇, 거짓말을 하는군요. 그런 일이 어딨어요?] 의소보는 말했다. [공주, 그대는 황상께서 어찌하여 나를 시켜 그대를 호송하여 운남으로 가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소? 그리고 또 어째서 나에게 분부하여 많 은 시위들과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그대를 적절히 보호하도록 분부하셨 는지 아시겠소?] 공주는 말했다. [그것은 황제 오라버니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이죠.]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소. 이것은 황상께서 영명하시어 멀리 내다보고 생각을 하시기 때 문이오. 공주도 생각해 보시오. 부마가 그토록 영준하고 뛰어나니 얼마 나 많은 소저들이 그의 부인이 되고 싶어하겠소? 그런데 이제 공주에게 빼앗기게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부숴질는지 모르는 일이오. 부녀자들은 질투가 생기고 화가나면 곧잘 물건을 부수지 않소? 무예를 할 줄 아는 어떤 소저는 노해서 그대를 괴롭히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 오. 물론 공주의 무공이 고강하긴 하나 질투에 눈이 먼 수많은 여자들 을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중과부적이 아니겠소? 그렇기 때문에 소신이 이번에 공주를 호송하여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저로서는 맡은 책임이 가볍지 않단 말이오. 그야말로 질투심에 불타는 낭자들을 수도 없이 상대해야 하니, 그대도 생각해 보시오. 얼마나 어렵겠는가?] 건녕 공주는 웃었다. [뭐가 질투심이 많은 낭자들이라는 거예요? 정말 터무니없는 말을 잘도 하시네요.] 이때 그녀는 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빰에는 여전히 몇 줄 기의 수정 같은 맑은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강희에게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 소계자가 저를 운남으로 호위한 이후 그로 하여금 저 를 상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심심풀이 상대가 되도록 해주세요. 그렇 지 않으면 가지 않겠어요.] 강희는 웃었다. [좋다. 좋아. 그로 하여금 어느 정도 너를 더 모시도록 하겠다. 그리하 여 네가 모든 일에 익숙해진 이후에 돌아오게 하마.] 건녕 공주는 말했다. [저는 그가 영원히 나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그가 돌아가도록 하지 않 겠어요.] 위소보는 혀를 내밀며 말했다. [그것은 안 됩니다. 그대의 부마가 만약 나를 보고 혐오감을 일으켜 화 를 내고 한 칼로 저를 내려 친다면 저는 머리통 없는 소계자가 되지 않 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공주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심심풀이 상 대 노릇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건녕 공주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흥, 그가 감히 그럴 수 있겠어요?] 강희는 말했다. [소계자, 그대는 운남으로 가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일을 조사하여 주 게. 서재에서 한 권의 불경이 없어졌는데 이 일은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이곳에 있는 물건을 누가 감히 훔치겠는가?] 마지막 한 마디 말은 그 어조가 퍽이나 준엄했다.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예.] 건녕 공주는 불쑥 입을 열었다. [황제 오라버니, 그 한 권의 불경은 제가 가져간 거예요. 히히히!] [네가 가져가서 무엇에 썼느냐? 어째서 먼저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가 져갔지?]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그 [태후께서 저에게 분부해서 가져오라고 한 것이에요. 태후께서는 한 권 의 불경을 가져가는 것은 하찮은 일이며, 황제께서는 매일같이 수백 수 천 가지의 군국대사를 처리해야 하니 그 일로 황제를 번거롭게 하지 말 라고 말씀하셨어요.] 강희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더 말하지 않았다. 건녕 공주는 혓바 닥을 낼름 내밀어 보이고 부탁했다. [황제 오라버니, 그 일로 저에게 화를 내지 마세요. 이제 제가 운남으 로 가게 되면 다시 이곳에 와서 황제 오라버님의 책을 가져가고 싶어도 가져갈 수 없지 않겠어요?] 강희는 그녀가 가련하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대뜸 마음이 누그러져서는 부드럽게 말했다. [네가 운남으로 가는 이 마당에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나에게 달라고 해라!]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평서왕부에는 없는 물건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 든 줄 수 있다.] 위소보는 서재에서 나왔다. 그러자 시위들과 태감들이 다투어 축하를 했다. 모든 시위들은 위소보가 자기를 데리고 운남으로 가 주기를 바랐 다. 오삼계의 재산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평서왕부로 들어가면 많은 돈을 사례금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후에 강친왕은 다시 궁 안으로 들어와 위소보를 만나 보고 기뻐서 말 했다. [형제, 경서는 이미 황상에게 바쳤네. 황상께서는 매우 기뻐하셨으며 나에게 몇 마디 칭찬의 말을 하시더군.] 위소보는 말했다. [그것 참 잘되었군요.] 강친왕은 말했다. [그대가 며칠 후에 운남으로 가게 되니 오늘은 이 형이 한턱 내겠네. 첫째로, 그대가 자작에 봉해진 것을 축하하고 둘째로는, 그대의 환송연 을 열어 주겠네.] 강친왕은 위소보의 손을 잡고 궁에서 나왔다. 그러나 강친왕부로 가지 않고 동성에 있는 한 채의 매우 멋진 저택으로 들어갔다. 이 집은 강친 왕부의 저택처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기둥이나 대들보에 조각을 새기 고 꽃나무와 바위들을 심고 나열해 놓은 것이 꽤나 호사스러워 보였다. 강친왕은 말했다. [형제, 그대가 보기에 이 집은 어떤가?] 위소보는 말했다. [정말 좋습니다. 아름답기 그지없군요. 왕야께서는 정말 복을 누릴 줄 아십니다. 이곳은 소복진(小福晋:왕의 작은 마누라)의 거처입니까?] 강친왕은 대답하지 않고 그를 데리고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대청에는 이미 높은 벼슬아치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색액도, 다륭 등도 그 안에 있다가 위소보를 맞으며 축하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해댔다. 강친왕은 웃었다. [오늘 이 자리는 위 대인이 높은 벼슬길에 오르심을 축하하기 위해서 마련하였으니 위 대인이 가장 상석에 앉아야 옳을 것이오. 하지만 위 대인은 이 집의 주인이니 부득이 주인석에 앉을 수밖에 없겠구려.] 위소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 집의 주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친왕은 웃었다. [이 저택으로 말하자면 바로 위 대인의 자작부(子爵府)일세. 이 형이 그대를 위해 마련한 것이라네. 마부, 요리사, 하인, 시녀, 모두 골고루 갖추어 놓았네. 너무나 총망해서 완전하지 못한 점도 있을 것이니 형제 가 보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분부를 하시게. 사람을 시켜 내 집으로 가서 무슨 물건이든지 옮겨 오도록 하겠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자기가 강친왕에게큰 도움 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한 푼의 돈도 들이지 않았고 대단한위험을 겪은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가 어떤 보답을 하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와 같은 굉장한 예물을 갖추어 선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터라 그만 잠시 말을 못하고 더듬거렸다. [이건.. 이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강친왕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형제 두 사람은 그야말로 목숨을 같이 하기로 한 사이 아닌가? 어찌 네 것 내 것을 가리겠는가?자자자, 모두들 술을 마십시다. 어느 분이건 오늘 취하지 않는다면 놓아 주지 않겠습니다.] 모두들 즐겁게 술을 마시고 흠뻑 취해서 헤어졌다. 위소보는 자작에 오르게 되었고, 모두들 그가 태감 노릇을 한 것은 황 제의 명을 받들어 가장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궁안으로 들 어가 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다. 이날 밤 그는 화려한 침실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모 두가 금그릇, 은그릇이거나 능라비단이었다. 그는 갑자기 생각했다. (제기랄, 내가 만약 이 자작부에 기녀원을 차리게 된다면 여춘원보다 훨씬 호화스럽겠다.) 이튿날 아침 일찍 그는 구난을 찾아뵙고 황제가 그를 운남으로 보내 공 주의 혼사를 추진시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구난은 말했다. [매우 잘되었다.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하며 고개를 돌리고 아가를 바라보았다. 구난은 말 했다. [아가 역시 함께 간다.] 위소보는 더욱더 기뻐했다. 황제가 그를 자작에 백번 봉하는 것보다 이 사실이 그에게는 더 기쁜 것이었다. 그는 구난과 작별하고 천지회의 은거지로 갔다. 그는 공주를 오삼계에 게 시집보내려고 자기가 수행하게 된 일을 이야기하였다. 진근남은 한 참 동안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오랑캐 황제가 오삼계에 대해서 그토록 총애를 하니 오삼계를 쓰러뜨 릴 수는 없겠구나.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좋은 기회이다. 소보, 오삼계 이 간악한 도적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를 충동질해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여 스스로 무덤을 파도록 만들자. 충동질에 성공 하지 못한다 해도 억지로라도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는 누명을 씌워야 할 것이다. 나는 본디 너와 함께 가려고 했으나 둘째 공자와 풍석범이 대만으로 돌아가서 반드시 왕야에게 참언을 하였을 것이니 왕야께서는 반드시 사람을 보내 천지회의 일을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이곳에 남아 있다가 솔직히 보고를 해야겠다. 이곳의 형제들은 네가 모두 데리고 운 남으로 가도록 해라.] 위소보는 말했다. [풍석범이란 녀석이 또다시 사부님을 해칠까 걱정이 됩니다. 이곳의 형 제들은 역시 이곳에 남아서 사부님을 돕도록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 제자는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진근남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네가 그토록 효성심이 있다니 갸륵하다. 풍석범의 무공이 강하다고는 하나 너의 사부가 그보다 약하지는 않다. 저번에 그는 우리들의 의표를 찌르고 공격을 한 데다가 다짜고짜 문 뒤에 숨어서 암습을 가해 왔기 때문에 나의 팔에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에 만나게 된다 면 그가 이긴다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오삼계를 주살하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일이다. 우리들은 반드시 전력을 기울여 임해야 한다. 이곳의 일이 해결되면 나도 운남으로 달려가겠다. 우리들은 목씨 집안에서 선수를 쓰도록 놔둘 수는 없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목왕부에서 먼저 성공을 하게 된다면 앞으로 천지회는 그들의 명 령을 받들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재미없게 되는 것이죠.] 진근남은 손을 뻗어 그의 맥박을 짚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혓 바닥을 내밀어 보라고 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중독된 독이 어째서 또 성질이 바뀌었지? 다행히 한꺼번에 퍼지 지는 않겠다. 내가 너에게 전수한 내공은 잠시 연마하지 말아라. 그래 야 독성이 경맥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구나.] 위소보는 몹시 기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사부님이 제자에게 내공을 연마하지 말라고 직접 말씀하신 것 이니 이후에 저를 탓하면 안 됩니다.)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표태역근환은 정말 무섭구나. 사부님도 해독할 자신이 없으신가 보 구나. 아무쪼록 육 선생이 해약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구나.) 며칠 후 모든 일이 갖추어졌다. 위소보는 어전시위, 효기영, 천지회의 군웅, 신룡교의 반두타 등을 데리고 강희와 태후에게 작별을 고하고 건 녕 공주를 호송해서 운남을 향해 떠났다. 구난과 아가는 궁녀로 변장하고 사람들 틈에 섞여 들었다. 천지회의 군 응들과 반두타는 모두 변장을 하였는데 위소보의 시종이 되거나 효기영 군사의 복장을 하였다. 위소보는 강친왕이 선사한 옥총마를 타고 앞뒤로 호위를 받으며 의기양 양하게 남쪽으로 향했다. 그는 이미 하남성으로 사람을 보내서 쌍아에게 남쪽으로 오라고 통지했 다. 그는 도중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 이 순간 유일 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곁에서 그와 같이 온순하고 알뜰하게 시중을 들 어줄 하녀였다. 길을 가는 동안 관가에서는 융숭하게 그들을 대접했는데 그야말로 그 대접이 지나칠 정도였다. 위소보는 벼슬을 한 이래 지금처럼 신나고 마 음 편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늙은 갈보가 힘을 쓰지 않아서 딸을 딱 하나밖에 낳지 못했구나. 빌어 먹을, 만약 단숨에 열일곱, 여덟 명을 낳았더라면 나는 그저 매일같이 사혼사라는 대신이 되어서는 그들을 하나하나 시집보낼 것이 아니겠는 가? 그렇게 된다면 한평생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을 것이고 금은보화 를 매일처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니 그야말로 다른 짓을 하는 것보 다 훨씬 낫겠다.) 정주(鄭州)에 이르자 지부는 이 일행들을 영접하여 정주에서 가장 큰 부호의 화원에다가 유숙을 시켰다. 그리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대접 을 했는데 잔치가 끝난 후 건녕 공주는 다시 위소보를 불러 한담을 나 누었다. 북경에서 출발한 이래 매일같이 건녕 공주는 그를 불러 한담을 나누곤 했다. 위소보는 공주가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찰까봐 매번 전노본 과 마언초를 대동하고 공주를 만났다. 공주가 부탁을 하든 화를 내든 간에 두 사람을 곁에 두고 자신을 호위하도록 하였다. 이 날 저녁밥을 먹은 후에 공주는 위소보를 불렀다. 세 사람은 공주의 거실 밖에 조그만 객청에 이르게 되었다. 공주는 위소보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전노본과 마언초 두 사람은 그 뒤에 서 있있다. 이때는 한참 더운 여름철이라 공주는 엷은 비단 장삼을 걸치고 있었고 두 명의 궁녀들은 손에 부채를 들고 그녀의 등 뒤에서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공주의 얼굴은 발그레했으며 입술가에 방울 방울 땀방울이 맺히기도 했 는데 그 얼굴 모습이 무척이나 화사해서 위소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 다. (공주는 내 마누라보다 아름답진 못하지만 역시 보기 드문 미인이라 할 수 있다. 오응웅이란 녀석이 그녀를 맞아들이게 되었으니그야말로 염복 이 터진 셈이다.) 공주는 고개를 돌리고 미소지으며 물었다. [소계자, 덥지 않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괜찮습니다.] 공주는 말했다. [덥지도 않다면서 어째서 이마에 그토록 많은 땀을 흘리죠?] 위소보는 웃으며 소맷자락으로 땀을 훔쳤다. 이때 궁녀가 오색 무늬가 새겨진 커다란 항아리를 들고 들어왔다. [공주님, 이것은 맹(孟) 지부(知府)가 바친 빙진산매탕(氷鎭酸梅湯)인 데 더위와 갈증을 푸는 데 좋다고 공주님께서 드시라고 하는군요.] 공주는 기뻐서 말했다. [좋아. 한 그릇 떠서 나에게 먹여 다오.] 궁녀는 푸른 바탕에 꽃이 새겨진 자기 그릇에다가 산매탕을 따라서 공 주 앞으로 나아가 바쳤다. 공주는 숟가락을 들고 몇 모금 먹어 보더니 말했다. [조그만 정주 지부인데도 한여름철에 얼음을 구할 수 있다니 대단하구 나.] 산매탕의 맑고 달콤한 계화 향기가 대청 안에 가득 차게 되었고 조그만 얼음 조각과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위소보와 전노본, 마언 초 세 사람은 그만 침을 꿀꺽 삼켰다. 공주는 말했다. [모두들 매우 더위를 타시니 한 그릇씩 드리도록 해라.] 위소보, 전노본, 마언초는 사의를 표하고 나서 얼음같이 차가운 산매탕 을 마셨다. 시원한 기운이 곧장 가슴팍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 아 뭐라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꼈다. 삽시간에 세 사람은 모조리 깨 끗하게 산매탕 그릇을 비웠다. 공주는 말했다. [이와 같은 더운 날 길을 재촉하려니 정말 고생스럽네요. 내일부터는 하루에 사십 리만 가도록 하고 새벽녘에 출발해서 해가 뜨면 휴식을 취 하도록 해요.] 위소보는 말했다. [공주께서 친히 아랫사람을 아껴주시니 모두들 그 은덕에 감격할 따름 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 시일이 너무 지체될까봐 걱정입니다.]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뭐가 두려워요? 나는 급하지 않은데 오히려 그대가 급하게 구는군. 오 응웅이라는 녀석이 기다리는 것도 좋아요.] 위소보가 미소지으며 막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하 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공주가 물었다. [왜 그래요? 더위를 먹었나요?] [아무래도....아무래도 조금 전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군요. 공 주 전하,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공주가 말했다. [술을 많이 마셨다고? 그렇다면 모두들 산매탕을 더 마시도록 해요. 그 래야 술이 깰 테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고....고맙습니다.] 궁녀는 다시 세 그릇의 산매탕을 가져왔다. 전노본과 마언초 두 사람 역시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허겁지겁 산매탕을 마셔댔는데 갑자기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위소보 역시 눈앞에 별이 번쩍이 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회미한 의식 속에서 그는 물줄기가 머리 위에 쏟아지는 느낌을 받고 눈을 뜨려고 하는데 다시 한바탕의 물줄기가 머 리 위로 쏟아졌다. 잠시 후 머리가 약간 맑아지면서 온 몸에 한기가 느 껴졌다. 그때 어디선가 킥, 하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공주가 히히덕거리며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자기가 바닥에 누워 있 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몸을 지탱해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손과 발 은 이미 꽁꽁 묶여 있었다. 깜짝 놀라 몇 번 버둥거렸으나 몸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자기는 어느덧 공주의 침실에 와 있었고 온 몸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옷이 홀딱 벗겨져 있는 것을 알고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부르짖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방안에는 촛불이 휘황하게 밝혀져 있었고 공주와 그 두 사람뿐이었다. 궁녀들, 전노본, 마언초 등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놀란 음성으로 더듬거렸다. [그들은 어디로 갔죠?] 공주는 아름다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당신의 시종들을 보기만 하면 구역질이 치미밀어요. 나는 이미 그 두 녀석의 머리통을 잘라버렸어요.] 위소보는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지 참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공주는 무슨 짓이건 가리지 않고 저지르는 성격이었다. 전노본과 마언 초 두 사람을 죽이는 짓도 능히 해낼 수 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위소보는 그녀가 산매탕에다 무슨 수작을 부렸음을 깨닫고 물어 보았다. [산매탕에 몽한약을 탔나요?] 공주는 히히 웃었다. [그대는 정말 총명해요. 조금만 더 일찍 그 총명함을 발휘했으면 좋았 을 텐데 이미 늦었어요.] 위소보는 물었다. [몽한약을.... 시위들로부터 얻었나요?] 위소보는 오립신 일행을 탈출시킬 때 시위들로부터 몽한약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 후 그는 몽한약은 상결을 비롯한 라마들을 상대할 때 모조 리 사용했었다. 이번에 북경에 돌아오자 그는 즉시 장강년에게 부탁해 서 한 봉지의 몽한약을 행낭 안에 넣어 두었다. 비수, 보의, 몽한약은 소백룡 위소보가 공격과 수비를 하는데 쓰이는 삼대법보(三大法寶)였다. 건녕 공주는 시위들에게 무공을 배웠으며 강 호에서 일어나는 회한한 일들에 대해서도 간간이 들은 적이 있었다. 따 라서 시위들로부터 몽한약을 얻어서 장난을 친 것 같았다. 공주는 웃었 다. [그대는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인데 산매탕에 몽한약이 들어 있다는 것 을 어떻게 알아채지 못했지?] 위소보가 말했다. [공주님은 저보다 백 배나 더 총명하시지 않습니까? 공주님께서 소신을 어떻게 다루시든 손발이 묶인 저로서는 그저 처분에 맡길 뿐이지 별 수 있겠습니까?] 입으로는 고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주는 냉소했 다. [그대의 도둑놈 같은 눈동자가 자꾸 구르고 있군. 아무래도 못된 생각 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공주는 위소보의 비수를 쳐들면서 말했다. [그대가 소리를 지르기만 해봐요. 나는 즉시 배때기에다가 열여덟 개의 구멍을 뚫어버릴 테니. 그러면 그대는 죽은 태감이 될까, 아니면 살아 있는 태감이 될까?] 위소보는 비수의 날에서 싸늘한 광채가 번쩍이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죽일 계집애, 염병할 계집애, 무법천지로구나! 저 비수를 내 몸에 갖다대고 한번 살짝 긋기만 하면 이 어르신께서는 왔던 곳으로 돌아가 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녀를 놀라게 만들어 감히 나를 죽이지 못하게 하자. 그런 후에 도망칠 방법을 강구하자.)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즉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죽은 태감도 되지 않고 살아 있는 태감도 되지 않고 바로 흡혈귀나 강시가 되겠소.] 공주는 그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죽일 꼬마야, 또 나를 놀라게 만들거냐?] 위소보는 아파서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공주는 말했다. [창자가 삐져 나온 것도 아닌데 왜 엄살을 떠는 거지? 아하, 그렇지. 내가 몇 번 발로 밟으면 창자가 나올까, 아니면 염통이 튀어 나올까? 알아맞추면 그대를 놓아 주지.]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일단 사로잡혀 꼼짝을 못하게 되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답니다.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게 되죠.] 공주가 말했다. [짐작할 수 없다? 그럼 내가 한번 시험해 봐야지. 한 발! 두 발! 세 발!] 한 번씩 셀 때마다 그녀는 발바닥으로 그의 배를 꽉꽉 밟았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다시 한 발만 더 밟으면 내 뱃속의 구린내 나 는 똥이 나올 것입니다.] 공주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밟아서 창자가 터져나오는 것은 상관 이 없지만 똥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구린내가 충천할 것이니 더럽기 짝 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착한 공주님, 제발 부탁이니 저를 놓아 주세요. 소계자는 공주님의 분 부를 받들어 무공을 겨루겠습니다.] 공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싸우는 건 싫고 때리는 게 좋더라.] 그녀는 침대 밑에서 한 자루의 채찍을 꺼내더니 위소보의 벌거벗은 몸 뚱어리를 십여 번이나 철썩, 철썩, 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살갗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공주는 피를 보자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웃으며 허리를 굽히고 다가와 가볍게 그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위소보는 불에 데인 듯 쓰리고 아픈 것을 느끼고 애걸했다. [착한 공주님, 오늘은 실컷 때렸을 것입니다. 저는 공주님에게 죄를 지 은 적이 없습니다.] 공주는 갑자기 화를 내더니 그의 코를 찼다. 대뜸 코피가 터졌다. [네가 나에게 죄를 짓지 않았다구? 황제 오라버니가 나를 오응웅이란 녀석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은 모두 너의 발상이란 말이야.] 위소보는 즉시 말했다. [아니, 아니오. 이것은 황상께서 거룩하신 결단을 내린 것이며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소.] 공주는 몹시 화를 내며 말했다. [책임을 전가하려고? 태후는 줄곧 나를 귀여워하셨다. 그런데 무엇 때 문에 내가 멀리 운남으로 시집을 가는데도 태후께서는 아무 말도 안 하 셨느냐? 심지어 내가 태후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데도 태후께서는 본 척 도 하지 않았다. 그녀.. 그녀는 바로 나의 친어머니인데도 말어야. 그 러니 모두 네가 꾸민 수작이 아니고 뭐냐?]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태후는 이미 바뀌어졌지. 늙은 갈보는 이미 진짜 태후로 바뀌었고 진 짜 태후는 너를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니 자연히 그대를 본체만체한 것이다. 너에게 욕을 하지 않은 것만 해도 많이 봐준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비밀이니 말할 수가 없지.) 공주는 한바탕 울더니 한 맺힌 음성으로 말했다. [모두 네가 꾸민 수작이야! 모두 네가 꾸민 수작이야!] 그녀는 위소보에게 마구 발길질을 했다. 위소보는 갑자기 꾀를 생각해 냈다. [공주, 그대가 오응웅에게 시집을 가고 싶지 않았다면 어째서 진작 말 하지 않았소? 나에게 좋은 방법이 있소.] 공주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나를 속이려고? 너에게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이야? 이것은 황제 오라버 니의 뜻이니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단 말이야.] 위소보는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황상의 뜻을 어길 수 없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한 녀석만은 황상조차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오.] 공주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게 누구죠?] 위소보가 말했다. [염라대왕이오.] 공주는 여전히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물었다. [염라대왕이라니?] 위소보가 말했다. [염라대왕께서 도와주시어 오응웅이란 녀석을 잡아간다면 공주님은 시 집을 가지 않아도 되죠.] 공주는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그토록 공교로운 일이 있을 수 있겠어? 오응웅이 바로 이때 죽을 리가 있나?]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그가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지 않으면 우리가 그를 보내면 되오.] 공주가 말했다. [그를 찔러 죽이자는 건가?]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찔러 죽이는 것이 아니오. 영문도 모르는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있지 않소? 그 누구도 영문을 알지 못하는 죽음 말이오.] 공주는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너는 나보고 남편을 모살하라는 거냐? 안 돼. 너는 오응웅이란 녀석이 준수하여 친하의 아가씨들이 누구나 그에게 시집을 가고싶어 한다고 하 지 않았어? 네가 만약 그를 죽인다면 나는 너를 죽이겠다.] 그녀는 채찍을 들더니 다시 그를 한 차례 매질을 했다. 위소보는 너무 나 아파서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많이 아파? 나는 아파하면 아파할수록 재미있더라. 너는 너무 크게 비 명을 지르면 안 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대영웅의 기개가 없 다고 비웃을 테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영웅이 아니오. 나는 구웅(狗熊)이오.] 공주는 욕을 해댔다. [제기랄! 알고보니 너는 구웅이었구나.] 이 금지옥엽인 공주가 갑자기 천한 욕을 해대자 위소보는 어리둥절했 다. 공주는 위소보의 발에서 버선 한 짝을 벗겨 단번에 위소보의 입 안 에다 쑤셔넣고 채찍을 들고 개 패듯 후려쳤다. 몇 번 매질을 당한 위소 보는 기절한 척했다. 두 눈을 까뒤집고 흰자위를 드러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주는 욕을 했다. [좀도적아, 너는 죽은 척하려고? 그렇다면 너의 배를 세 번 비수로 찔 러 보겠다. 네가 정말 죽었다면 움직이지 않겠지.] 위소보는 절대로 시험당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급히 몸을 바둥거렸다. 공주는 히히, 웃으며 다시 채찍질을 시작했다. 가죽 채찍은 그의 윤기 가 흐르는 살결 위에 철썩 철썩,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녀는 십여 번 채찍질을 하더니 채찍을 내던지고 웃으며 말했다. [제갈양이 불로 등갑병을 태우려고 하신다.] 위소보는 다급해졌다. (오늘 이런 미친년을 만난 것은 나의 조상 십구 대가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공주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등갑병의 몸에 등갑이 없으면 좀처럼 불에 타지 않으니 아무래도 기름 을 좀 쳐야 되겠다.] 말을 마치자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기름을 찾아 나선 것이 었다. 위소보는 온힘을 다해서 버둥거렸다. 그러나 손발을 묶고 있는 줄은 단 단히 매어져 있어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다급한 그는 갑자기 사부가 생각났다. (이 어르신은 적지 않은 사부들을 모셨다. 해대부 늙은 자라가 첫 번째 사부이고 그 후에 진 총타주 사부를 모셨다. 홍 교주라는 수명이 하늘 처럼 긴 사부, 여우 같은 홍 부인, 소황제 사부, 징관 사질, 노화상 사 부, 구난이라는 아름다운 비구니 사부 등등, 그러나 한 꾸러미나 되는 이 많은 사부들 가운데 쓸모있는 무공을 가르쳐준 사람은 한 명도 없 다. 이 어르신네께서 만약 고강한 내공(內功)을 익혀 놨더라면 두 손과 두 발에 약간의 힘만 주어도 줄은 즉시 끊어졌을 것이니 무엇을 두려워 하랴? 그 고약한 계집애가 등갑병을 불태운다 해도 걱정할 게 없었을 텐데.) 그가 다급하고 초조하여 하늘이 무심하다고 원망하고 있는데 홀연 창 밖에서 누군가가 나직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그를 구출해라!] 바로 구난이라는 아름다운 비구니 사부의 음성이 아닌가? 그 한 마디 말이 귓전을 울리자 위소보는 뛸 듯이 기뻤으나 애석하게도 손발이 묶여 있어서 뛸 수가 없었다. 곧 아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그는 옷을 입지 않았어요. 저는 구할 수가 없어요.] 위소보는 대노하여 속으로 마구 욕을 했다. (죽일 년 같으니! 내가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구하지 못할 까닭이 뭐냐? 설마하니 옷을 입어야만 구하겠다는 거냐? 네가 남편을 구하지 않는 것은 곧 남편을 모살하는 것이다. 스스로 청상과부 노릇을 하려고 하니 저런 병신 머저리가 있나?) 구난의 음성이 들렸다. [네가 눈을 감고 손발을 묶은 밧줄을 잘라 놓으면 될 게 아니냐?] 아가가 말했다. [안 돼요. 눈을 감으면 볼 수가 없게 되잖아요? 그러다가 만약....만 약.... 저의 손이 잘못 더듬어 만지지 못할 곳을 만진다면 큰 일이 아 니에요? 사부님.. 아무래도 사부님께서 그를 구하시는 게 좋겠어요.] 구난은 노해 말했다. [나는 출가인인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위소보의 나이가 어리다고 하나 역시 남자였다. 벌거벗은 모습을 어찌 바라볼 수 있겠는가? 위소보는 버선짝이 입을 틀어막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의쳤을 것이다. [민저 옷을 던져 나의 몸을 덮으면 그곳을 볼 수 없을 것이 아니겠소?] 애석하게도 냄새 나는 버선이 입을 틀어막고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 다. 더군다나 구난과 아가 두 사람은 임기응번의 기지가 없었다. 두 여인은 궁녀처럼 변장하기 위해서 누런 가루를 얼굴에 바르고 공주 가 의심을 하고 캐물을까봐 잡일을 하는 궁녀들과 섞여 있었기 때문에 공주와 대면한 적이 없었다. 이날 밤 어렴풋이 공주의 침실에서 채찍질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 오자 살금살금 창가로 와서 살펴보았던 것인데 뜻밖에도 위소보가 발가 벗겨져서 꽁꽁 묶인 채 공주에게 지독한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창 밖의 구난과 아가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괴 있는 동안에 건 녕 공주가 돌아와서 히히, 웃으며 말했다. [돼지기름, 소기름, 참기름, 들기름 등을 구할 수 없으니 개와 곰의 기 름을 짜낼 수밖에 없다. 너 스스로 영웅이 아니고 구웅이라 했지? 구웅 의 기름이 어떤지 나는 본 적이 없는데 너는 본 적이 있냐?] 그녀는 탁자 위의 촛대를 들고 촛불로 위소보의 가슴팍을 태우기 시작 했다. 위소보는 극심한 통증에 몸을 뒤로 뻣대며 버둥거렸다. 공주는 왼손으 로 그의 머리채를 휘어 잡고 그가 피하지 못하게 하고는 오른손의 촛불 로 그의 살갗을 태웠다. 삽시간에 고기 타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구난은 대경실색하여 와락 창문을 열고 아가를 방안으로 던져넣으며 외 쳤다. [구해라!] 구난은 즉시 고개를 돌렸다. 위소보의 나체를 보게 될까봐 두 눈을 질 끈 감았다. 아가는 사부에 의해 방안으로 던져졌다. 위소보의 벌거벗을 몸뚱이가 눈에 들어왔다. 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부 득이 그녀는 일장을 들어 건녕 공주의 뒷덜미를 내리쳤다. 공주는 깜짝 놀라 외쳤다. [누구냐?] 왼손을 들어 막으려고 하면 오른손을 흔들어 반격하는데 그 바람에 손 에 들고 있던 촛불이 즉시 꺼지고 말았다. 그러나 탁자에는 아직도 너 댓 자루의 촛불이 실내를 환히 밝혀 주고 있었다. 아가는 연달아 손을 썼다. 공주가 어찌 그녀의 적수가 되겠는가! 뚜뚝, 하는 소리와 함께 왼괄과 왼쪽 다리가 탈골이 된 채로 공주는 침 대 옆에 쓰러지고 말았다. 공주는 성질이 못돼서 그런 와중에도 쉬지 않고 욕을 해댔다. 아가는 노해 외쳤다. [모두 네 탓인데 누굴 욕하는 거냐?] 아가는 왁, 하니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속으로 매우 억울한 모양이었 다. 공주는 흠칫해서 더 욕을 하지 못했다. 공주는 남을 때려 놓고 오히려 자기가 울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가는 바닥에 떨어 져 있는 비수를 집어 들고 위소보의 손발을 묶고 있는 밧줄을 잘랐다. 그녀의 얼굴은 수치심에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비수를 던지고 즉시 창문으로 뛰쳐나가더니 나는 듯이 달려갔 다. 구난은 그 뒤를 따라 달려갔다. 실내에서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한 소란이 일어나니 바깥에 있는 궁 녀나 태감들의 귀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 없건만 그들은 사전에 공주의 엄명을 받았다. 방 안에서 아무리 이상한 비명소리가 나도 부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안 으로 들어오지 말 것이며 함부로 머리를 방 안으로 디밀면 즉시 머리통 을 자르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얄궂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공주는 어려서부터 터무니없는 짓을 잘했고 별 희한한 일들을 끊임 없이 저질러댔기 때문에 모두들 그녀의 이상한 장난에 습관이 되어 있 었다. 공주의 생모가 가짜이고 강호초망(江湖草褥) 출신이니 제대로 딸을 가르칠 수 없었으리라. 순치는 출가하여 중이 되었고 강희는 나이가 어렸으니 건녕 공주가 무 법천지로 소란을 피워도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다. 가짜 태후가 버릇 을 제대로 가르칠 리는 더욱 만무했다. 조금 전에 그녀는 궁녀와 태감들을 들어오라고 하고는 정신을 잃고 쓰 러져 있는 전노본과 마언초 두 사람을 묶으라고 했었다. 여러 사람들은 그 때 이미 오늘 밤 해괴한 일이 벌어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주가 남에게 얻어맞아 쓰러질 줄은 정말 생각도 못하 고 있었다. 위소보는 아름다운 비구니 사부와 아가가 이미 멀리 간 것 을 알고 즉시 입 안에 틀어박힌 버선을 빼고 창문을 닫으며 욕을 퍼부 었다. [냄새 나는 계집애야! 여우의 기름을 너는 본 적이 있느냐? 나는 본 적 이 없다. 우리 한번 짜내서 살펴보자.] 그는 그녀를 두어 번 걷어찼다. 곧이어 그녀의 두 팔을 뒤로 돌리고 그 녀의 치맛자락을 찢어서 그녀의 두 손을 묶었다. 공주는 이미 손과 다 리의 관절이 탈골되어 고통에 식은땀을 흘릴 지경이라 전혀 반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그녀의 앞섶을 힘껏 잡아당겼다. 꽉, 소리와 함께 옷자락이 즉시 찢어졌다. 그녀가 입고 있는 비단옷이 찢어지자 눈처럼 희고 탐스 러운 유방이 툭 튀어 나왔다. 위소보는 원한이 극에 달하여 바닥에 나뒹구는 촛대를 집어들고 초에 불을 붙였다. 촛불을 공주의 젖꼭지에 가져가며 욕을 했다. [냄새 나는 계집애야! 눈앞에서 보복을 당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빠 르냐? 여우의 기름을 나는 많이 짜내지는 않겠다. 그저 한 그릇의 산매 탕 정도만 짜면 그걸로 층분하다.] 위소보가 촛불을 갖다대자 공주는 고통스러워 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위소보는 말했다. [옳지. 너도 나의 냄새 나는 버선짝 맛을 보아라.] 그는 버선을 집어들고 공주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다. 그러자 공주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계 패륵, 버선으로 틀어막을 필요 없어요.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게 요.] 계 패륵이란 한 마디를 듣자 위소보는 순간 멍해졌다. 그 날 공주의 침 실에서도 그녀는 시녀로 분장하고 위소보를 시중 들며 그와 같은 칭호 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와 같은 다정한 칭호를 들 으니 그만 가슴이 설레었다. 그녀는 다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계 패륵, 아무쪼록 소신을 용서해 주세요. 언짢으면 채찍질로 소신을 한 차례 매질을 하셔도 좋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물론이지. 신나게 패주지 않고는 내 가슴에 맺힌 한을 풀기 어려울 것 이다.] 그는 촛대를 내려놓고 채찍으로 그녀의 몸을 갈기기 시작했다. 공주는 나직이 부르짖었다. [아야,아야!] 그런데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앵두 같은 입술에 웃음을 머금고는 말 할 수 없이 기분좋은 듯한 표정이 아닌가? 위소보는 욕을 했다. [천한 것아! 뭐가 그리 좋으냐?] 공주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이 노예는 비천한 년이에요. 계 패륵께서는 아무쪼록 더 힘껏 때려주세요. 아아!] 위소보는 채찍을 던지고 말했다. [그렇다면 때리지 않겠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옷을 찾았으나 어디에 숨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내 옷은 어떻게 했느냐?] 공주가 말했다. [제발 나의 관절을 맞춰 주세요. 이 하녀로 하여금 게 패륵께서 옷 입 는 것을 시중들게 해주세요.] 위소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천한 년은 정말 괴상학탁. 그러나 황상께서는 그녀를 운남으로 데 려가라고 했으니 그녀를 죽일 수는 없다.) 그는 욕을 했 다. [제기랄! 개같은년.] 공주는 웃으며 물었다. [재미있었나요?] 위소보는 노해서 말했다. [네 에미야 말로 못된 짓을 하며 재미를 느끼지.] 그는 그녀의 손과 발을 잡고 관절을 맞춰주었다. 그는 뼈를 맞출 줄 몰 라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겨우 맞출 수 있었다. 공주는 아파서 아야, 아야, 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다리 관절을 다 맞췄을 때 공주는 그 의 등에 엎드려 있는 형상이었다. 공주의 유방이 등 뒤를 압박하자 위 소보는 목이 마르고 입술이 바싹 타 들어가고 마음이 설레어 급히 말했 다. [너는 제대로 잘 앉아라. 이와 같이 구는 것은 그야말로 마누라 노릇을 하겠다는 뜻이다.] 공주는 코 막힌 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마누라 노릇을 하고 싶었어요.] 공주는 갑자기 그를 힘껏 껴안았다. 위소보는 가볍게 몸을 흔들며 그녀 를 떨치려고 했다. 그러나 공주는 더욱 힘껏 그를 끌어안더니 갑자기 그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위소보는 머리가 띵하니 울리고 눈이 가물 거렸으며 두둥실 구름을 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곁에 있는 이 비천 하고 백 년 묵은 여우 같은 것이 말할 수 없이 귀엽고 아름답게 보였 다. 방 안의 촛불이 한 자루, 두 자루 차례로 꺼져 갔다. 그는 얼떨떨한 정 신에서 본능적으로 공주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한창 넋이 나가 있는데 창 밖에서 아가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소보, 당신은 안에 있나요?] 위소보는 깜짝 놀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나는 여기 있소.] 아가는 분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위소보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아무것도....아무것도 하지 않소.] 그는 공주를 밀어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공주는 죽어라 그를 껴안고 나직이 말했다. [가지 말아요. 그녀보고 꺼지라고 해요. 그녀는 누구죠?] 위소보는 되는 대로 지껄였다. [바로....나의 마누라요.] 공주가 말했다. [내가....내가 그대의 마누라예요. 그녀는 아니에요.] 아가는 수치스럽고 화가 나 발을 동동 구르다가 몸을 돌려 떠나갔다. 위소보는 다급해서 소리쳤다. [사저, 사저!]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그의 입을 꼭 틀어막아 다시는 아가를 부를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위소보는 옷을 입고 살금살금 공주의 침실에서 나왔다. 밖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태감에게 물어 전노본과 마언초가 무사하며 아직도 동쪽 상방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부끄럽고 창피스러워 감히 두 사람을 볼 면목도 없었다. 그는 태감에게 빨리 두 사람을 풀어 주라고 말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는 공주를 범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한편으로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는 감히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이 날 오후에 그는 구난을 만났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혔다. 어쩌면 사부님이 크게 벌을 내리실 것이고 일 장으로 자기를 때려 죽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뜻밖에도 구난은 전혀 사정을 알지 못하는 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위로의 말을 했다. [그 계집애가 그토록 악독하니, 정말 그 에미에 그 딸이로구나. 상처는 어떠냐?] 위소보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다행히 근골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말했다. [사부님과 사저가 구해 주시지 않았다면 그녀는....그녀는 어젯밤 저를 태워 죽였을 것입니다.] 아가가 말했다. [당신은....당신은 어젯밤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녀는....공주는....몽한약을 썼습니다. 사저가 방안으로 뛰어 들어 와 나를 구하게 되었을 때.... 약기운이 다 가시지 않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구난은 가여운 생각이 들어 말했다. [내가 너를 제자로 거두어들였으나 줄곧 너에게 어떤 무공도 전수해 주 지 못했구나. 그런 계집애에게 그토록 고통을 당했으니 너에게 미안하 구나.] 위소보가 훌륭한 무공을 배울 마음이 있었다면 이때 간청을 했을 것이 고 구난은 반드시 적당한 무공을 전수했을 것이다. 그가 무공을 배웠다 면 한평생 써 먹고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생스러운 일 을 피하려는 습성이 있었다. 어젯밤 공주에게 꽁꽁 묶여 채찍에 맞고 불로 지지는 고통을 당할 때는 속으로 사부가 무공을 전수하지 않았다 고 탓했으나 정작 사부가 무공을 전수하려 하자 그는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사부님, 저는 골치가 매우 아픕니다. 마치 머리통이 빠개질 것만 같습 니다. 몸의 살점도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구난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가서 쉬어라. 앞으로는 그 계집애를 자주 만나지 않도록 조심해라. 정 말 만나야 할 때는 반드시 여러 사람을 대동하도록 해라. 그녀는 공공 연히 너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주는 음식은 무조건 먹거나 마시지 말아라.] 위소보는 연신 대답하고 물러나며 한마디 했다. [그녀는....그녀는 운남으로 시집가기 싫다고 했습니다. 운남으로 시집 보내는 것이 제가 꾸민 꾀라고 말했습니다. 또 사부님과 제가 그녀의 어머니를 상대했던 일을 그 천한 것이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거짓말로 공주가 어젯밤 그를 때린 이유를 대고 그 책임의 대부분 을 구난에게 떠넘긴 셈이었다. 구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에미가 그녀에게 말을 했을 게다. 그러니 앞으로는 각별히 조 심하도록 해라.]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날 나는 궁에서 가짜 태후에게 매우 악독하게 대했다. 그러나 그 날 소보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는데 가짜 태후가 어떻게 알아차리고 그 녀의 딸을 시켜 보복을 하게 했을까?) 일행은 천천히 서남쪽으로 갔다. 매일 밤 공주는 살며시 위소보를 불러 서 함께 있자고 했다. 위소보는 처음에는 사부와 천지회의 동료들이 알 게 될까봐 두려워했으나 젊은이가 난생 처음 낟녀의 일을 알게 된 데다 가 간드러지고 아름다운 공주가 매달리는데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는 가? 설사 성인군자라도 거절하기 힘들었으리라. 그는 윤리와 예법에 대 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남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 았으나 나중에는 공주의 방에서 밤을 새우며 운우의 기쁨을 누렸다. 그 러니까 밤에는 부마 나으리가 되었던 것이다. 궁녀들과 태감들은 공주를 두려워했고 위소보가 은자를 마구 뿌렸기 때 문에 어느 누구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아가가 공주의 손발 관절을 비틀어 놓자 공주는 자연히 위소보 에게 그 사저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위소보가 교묘하게 둘러대니 공주 는 한창 쾌락에 젖어서 자세히 묻지 않았다. 두 젊은 남녀는 애정의 진 미를 속속들이 맛보았는데 꿀보다 달콤하다고 느꼈다. 공주는 그 야만 스러운 성질을 버리고 스스로 하녀로 자처하며 그가 방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엎드려 영접을 하며 연신 계 패륵,계부마, 라고 불러 주었다. 옛날 방이가 거짓말을 하며 위소보를 신룡도로 데려가게 되었을 때 배 안에서 방이는 친밀한 태도와 부드러운 말로 그의 정신을 빼앗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공주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고 몸을 바쳐가며 섬기니 진짜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위소보는 반은 미치다시피 그녀와 의 정사에 탐닉했다. 두 남녀는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말기를 바랐다. 아가가 궁녀들과 함께 섞여 있었으나 위소보는 그녀가 공주처럼 자기에 게 헌신하며 섬기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추근거리지 않 았다. 이날 장사(長7少)에 도달하자, 육고헌이 신룡도에서 쾌마를 타고 달려 와 홍 교주의 말을 전했다. 홍 교주는 두 권의 경서를 얻자 매우 기뻐 하면서 백룡사가 똑똑하고 부지런하며 충성을 바쳐 일을 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위소보가 신룡교의 크나큰 공신이라고 추켜올리며, 특별히 표태역근환의 해약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이 며칠 동안 공주 와의 사랑에 빠져 극독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육고헌의 말을 듣자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공주와 표태역근환의 해약 을 얻으니 경사가 겹친 셈이었다. 그는 당장 육고헌, 반두타와 함께 해 약을 복용했다.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은 다시 허리를 굽혀 사의를 표하며 모두 백룡사가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그 덕에 힘입어 두 사람 은 교주의 영약을 하사받고 심복지환(心腹之患)을 제거하게 되었다고 고마워했다. 육고헌은 또 말했다. [교주와 부인께서는 백룡사에게 유시를 내리셨습니다. 즉, 나머지 여섯 권의 경서도 계속해서 찾아내야 한다는 분부입니다. 백룡사께서 다시 큰 공을 세우면 교주는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 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소? 몸을 아끼지 말고 노럭해야지요. 교주와 부 인의 은혜가 태산 같으시니 우리들로서는 분골쇄신(粉骨碎身)해도 보답 하기 어려울 것이오.] 반두타와 육고헌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교주께서는 영원히 선복을 누리시고 수명은 하늘과 같을지어다. 백룡 사께서는 영원히 청복을 누리시며 수명은 남산과 같을지어다.] 위소보는 그 말에 미소를 보내머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청복을 누리는 게 뭐가 좋아? 매일 요즘처럼 영원히 염복을 누리고 수 명이 남산 같다고 한다면 내 마음에 쏙 들 텐데.)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