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친 우정
최원혜
내 나이 불혹 나이 때 한창 힘겨운 삶을 살아갈 때이다. 그 시절 나는 아이들 키우며 시부모와 함께 살아가느라 아등바등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때 내 인생에 있어서 늘 힘이 되어주었던 십오 년 지기 성당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의 만남은 내가 잃어버린 신앙 찾아 헤맬 때 나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었던 친구이다. 그 친구는 참으로 진심 어린 허물없이 터놓고 지냈던 친자매나 마찬가지이었던 찐 친인 우정이다.
성당 가면 교우 몇몇 사람들은 친자매 같은 우정을 때로는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무슨 일에나 늘 함께하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친정이 서울이어서 대구에는 지인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나를 만나 공감된 처지에 서로 이끌리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느님은 찐친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버리었다. 그때는 참으로 슬펐다. 그래서 찐친과의 이별을 한동안 잊지 못하여 우울해하며 방황하기도 하였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후 찐친의 우정은 끊어 져버리었다.
그 친구는 딸 둘, 아들 하나 두고 이 세상 떠났다. 딸 둘은 저네들 밥벌이 잘할 수 있는 능력 길러주고 떠났다. 그 시절 아들은 초등학교 때라 철부지 개구쟁이이었다. 저희 엄마 장례식날 그 애는 철모르던 시절이라 장난만 하고 있었다. 지금은 고만고만하며 살아간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 친구는 자신을 위하여 만학의 열정이 가득한 친구이었다. 한창 성당 활동할때 신일전문대학, 지금은 수성대학교이다. 입학 원서 접수하여 입학 통지서 받아두어 너무도 기뻐하였던 모습을 보았다. 그때는 그 친구를 몹시도 부러워하였다. 그 친구는 내게 언젠가는 나도 만학도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 안에 불을 지른 장본인이다 .
그러나 행복도, 기쁨도 잠시 나에게 무선호출기(삐삐폰)로 연락이 왔다. 어느 날 “요세피나 일하고 있지? 내가 갑자기 어지럽고, 눈앞에 아지랑이가 가물 거리네. 두통이 하도 심하여 약을 두 알이나 먹었는데 효과가 없네?”라고 하였다. “그래? 그러면 병원 가보자. 내가 너희 집 앞으로 갈 테니 기다려줄래?.” 하였다. 우리는 택시 타고 근처 만촌네거리에 있는 수성 메트로병원으로 초조한 마음조이며 달렸다. 혈액검사 해본 결과 간호사가 “혈액 수치가 감소 되었어요. 빨리 경대병원이나 큰 병원 가 보아요.”라고 권유하였다.
친구가 남편에게 연락하여 알리었다. 남편과 경대병원 함께 가서 검사 받아보았다. 검사 결과 “급성 혈액암”이라 하였다. 그 말 들은 나는 예감이 썩 좋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이쿠!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툭 치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였다. 친구는 백혈병으로 사형선고 받아 무균실에 바로 입원하였다. 또 마음의 준비 하라고 한다며 슬퍼하는 척하는 목소리로 남편이 내게 전화 주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진단받고 일 년 조금 넘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임종 시 친구가 나를 찾는다며 전화 왔다. 내가 갔을 때는 이미 헐떡거리며 숨가파 할 뿐 말 한마디 못 하였다. 고통스러워하는 친구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분명 나에게 할 말이 많았기에 나를 찾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억장이 무너진듯하였다. 내 혈육보다 더욱 진하였던 우정의 끈이 떨어져 나가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장례미사로 이별하였다. 그 친구는 본인이 원하여 시댁 묘원으로 갔다. 묘원 개발 명목으로 이장하여 지금은 경주 진목 성지에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친구는 늘 운동하며 대구 볼링협회 선수이기도 하였다. 나에게 수영 가르쳐 준다며 수영복 구하여 수영장으로 데리고 갔던 기억도 있다. 여유로운 형편으로 아이 셋 키워가며 무엇이든 열심히 생활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급성 혈액암이 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늘 크고 작은 얘기들을 나에게 터놓았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같은 직감의 촉이 온다는 얘기로 나에게 귀띔하여 주었다.
그 시절 평상시에 마음 잘 맞는 부부끼리 네 사람 모임을 자주 한듯하였다. 내가 가끔 들었을 때 오늘도, 어제도 L 모씨 부부, 내 친구 부부와는 잦은 저녁 모임 있었다는 얘기를 종종 해왔다.“사십 대 초반 젊은 나이에도 남녀 사이에는 눈이 맞을 수 있다.”는 어른들의 얘기를 가끔 흘러들었다. 친구의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무래도 사달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L 씨 집에 오라 하여 잠시 들렀다. 부부는 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둘은 토닥토닥 말싸움하는 것이다. 가만히 들어본즉 L 씨 여편네가 내 친구 남편에게 꼬리 흔들며 유혹한 듯하였다. 그 두 사람은 하느님 자녀이면서도 십계명 중“여섯 번째, 간음 하지 마라. 아홉 번째, 남의 아내를 탐하지마라.” 는 항목을 지키지 못하였다.
친구도 남편이랑 잦은 싸움을 하였다. 한창 젊은 나이이지만 부부의 속정 관계 마저 무려 팔 년이나 금하였다고 한다. 이성에 눈이 뒤집히어 남의 떡이 더욱 좋아 보이던 모양이다. 내 친구 부부는 급기야는 나락으로 떨어져 결국에는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까지 나오는 수위까지 왔다고 한다. 그때 친구는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을 오늘로 벌써 네 번째라고 얘기해주었다. 그 친구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기어 아이들 두고 이혼하기로 합의하였다며 주택 이층에 전세방 얻어 두고 그 길로 병원 갔다. 그 길이 강 건너가야 할 길임을 어찌 알았을까. 두 사람 관계 등 아무것도 모른 체 이혼 과정이 있기까지 무한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운동력이 있었던 친구가 갑자기 “급성 혈액암”이라는 진단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친구가 가고 그쪽 부부는 이혼 하였다는 소식이다. 친구가 없어도 그녀의 주변에 있던 지인들이 나에게 들려준 소식이었다. 제 속으로 낳은 부모 자식의 정 끊어버리고 남편도 배신하여 내 친구 남편에게 갔다는 소문이었다. 두 남편과는 형제 같은 찐친 우정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노년의 나이에 아직도 나는 의문부호(question?) 꼬리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 두 사람의 삶에 대하여 말이다.
며칠 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린 내 친구 큰딸의 SNS에 크나큰 사진이 올라왔다. “이것이 뭐꼬?” 하며 놀란 토끼 눈 되어 사진을 손가락으로 확대하여 보았다. 그런데 설마설마하였지만 내 친구 남편의 칠순 가족사진 속에 불륜이던 그녀의 사진도 떡하니 들어 있었다. 몹시도 행복해 보이는 얼굴은 혐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는 너무도“깜놀”하여 다시 보고 또 보았다. 너무도 속상하였다. 친구 아이들이 불륜이어서 엄마로 인정 안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알뜰히 살아오면서 불려놓은 행복한 가정에 들어와 행복해하며 번듯한 모습으로 찍혀있는 사진 보고 너무도 놀랐다.
그때는 새삼 친구가 너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 사람은 어떻게라도 살지만 죽은 사람은 불쌍하다.”는 생각만이 나의 뇌리를 헤집어 놓는다. 친구가 이루지 못하였던 꿈 내가 모두 이루었다. 만학도 공부며, 수필가도 되었다. 친구가 살아있음 엄청 좋아 해주었을 거다. “하느님!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불쌍한 나의 찐친 친구 젬마에게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라며 오늘도 기도할 뿐이다.
(20260826.)(20260829.1차퇴고)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