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들은 말을 마음속에 담아 두지 못하고 금방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버리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입이 싸다’고 한다. 이때의 ‘싸다’는 ‘값이 싸다’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갖는 말이다. 이처럼 ‘입이 싸다’거나 ‘불이 싸다’라고 할 때의 ‘싸다’는 원래 <빠르다>를 뜻하던 말이었는데, 그 본래적 의미가 조금씩 확대되면서 이러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지끔이라도 싸게 가먼 시간 안에 도착허껏이요’ 이 ‘싸다’는 표준말에서는 <빠르다>를 뜻하는 ‘재다’와 합해진 ‘잽싸다’의 형태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전라도 방언에서는 ‘싸게’처럼 부사로 굳어져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쓰이고 있다. ‘지끔이라도 싸게 가먼 시간 안에 도착허껏이요’라고 말할 때의 ‘싸게’가 이런 예이다. 흔히 ‘싸게’는 반복하여 ‘싸게싸게’처럼 쓰이는 수가 많다. 전라도 말의 ‘싸게싸게’에 대응하는 말로 제주도 방언에서는 ‘재기재기’, 평안도 방언에서는 ‘날래날래’와 같은 말이 쓰이는데, 이 말들도 모두 <빠르다>를 뜻하는 ‘재다’와 ‘날래다’에서 파생된 부사라는 점에서 공통이다.
<동작이 날래고 재빠르다>의 의미로 ‘날쌔다’라는 말이 있는데, 전라도에서는 흔히 ‘날싸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전남의 서남 해안 지역에서는 여기에 /ㅂ/을 덧붙여 ‘날쌉다’ 등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날담보같이 날싼 거!’와 같은 감탄은 그 사람의 몸놀림이 마치 날담비처럼 날쌔다는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 ‘날싸다’는 ‘날다’와 ‘싸다’가 합해진 말로 보이는데, 그러고 보면 전라도 방언에서는 ‘싸다’가 ‘싸게’와 같은 부사뿐만 아니라 ‘날싸다’ 등의 합성어로도 활발히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빠르기와 관련된 또 다른 전라도 말로 ‘핑’이라는 부사를 들 수 있다. ‘딴 디 들르지 말고 핑 댕게 오니라’의 ‘핑’은 <옆길로 빠지지 않고 곧바로>를 뜻하나, ‘지끔이라도 핑 갔다 와’라고 할 때의 ‘핑’은 <곧이어 바로>의 뜻으로 쓰이는데, 이러한 ‘핑’의 쓰임은 표준어의 ‘곧장’에 그대로 대응한다. 물론 ‘핑’은 걸음걸이가 빠르거나 동작이 빠른 것보다는 <꾸물거리거나 지체하지 말고>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끔이라도 핑 갔다 와’ 이처럼 빠른 것을 나타내는 말과 달리 느린 움직임을 표현하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느낌을 담는 수가 많다. 예를 들어 ‘느리다’라는 말에는 ‘느려 빠지다’나 ‘느려 터지다’처럼 ‘빠지다’나 ‘터지다’와 같은 말들이 결합해서 쓰이기도 하는데, 이런 말들은 결코 ‘빠르다’에는 붙지 못하는 것들이다. ‘빠지다’는 ‘썩어 빠지다’나 ‘약아 빠지다’처럼 부정적인 어감을 갖는 말에 결합되어 쓰이는 것이 원칙이므로, 느린 행동에 대한 말하는 이의 못마땅함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느린 동작을 형용하는 말로서 표준말에는 ‘뜨다’ ‘굼뜨다’ ‘메뜨다’와 같은 말이 있는데, ‘굼뜨다’는 <답답할 만큼 느리다>, ‘메뜨다’는 <밉살스럽도록 느리다> 등으로 사전에 뜻풀이가 되어 있어, 우리 민족이 옛날부터 느린 동작에 대해서는 유난히 못마땅해 하거나 답답해 했음을 보여 준다. 이뿐만 아니다. 행동이 아주 굼뜬 사람을 가리켜 ‘느림보’라고 부르는데, 이때의 접미사 ‘-보’는 ‘울보, 곰보, 갈보’처럼 부정적 어감이 있는 말을 만드는 데 쓰이곤 한다. 이러한 ‘-보’가 ‘느리다’에는 붙을 수 있지만 ‘빠르다’에 붙지 못하는 것도 모두 느린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영칭께 싸목싸목 묵어라’ 전라도 말에는 ‘느리다’에 대한 못마땅함을 표현하기 위해 ‘느리데하다’, 그리고 이를 더 강조하기 위해 ‘느리데데하다’와 같은 말을 사용하는데, 이들은 모두 ‘느려 빠지다’ 정도로 번역하면 좋을 말들이다. 그밖에 느리게 행동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느시렁거리다’ ‘느시렁느시렁하다’ 등과 같은 말도 쓰이는데, 이 역시 부정적인 색채를 띠고 있음은 물론이다. ‘느림보’를 전라도 말에서 ‘늘낙지’라고 낮추어 말하는 수가 있는데, 이것은 느리게 움직이는 낙지를 빗대어 상대를 비아냥거리거나 조롱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늘낙지’의 ‘늘’이 ‘느리다’의 ‘느리’에서 온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느린 동작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급하고 서둘러 행동하여 탈이 생길 수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런 때 쓰이는 전라도 말로는 ‘싸목싸목’과 같은 말이 제격이다. 이 말은 ‘싸목’처럼 한 번으로 쓰이는 법은 없고, 언제나 반복형으로 쓰이면서, ‘천천히’처럼 부사적인 기능을 갖는다. ‘영칭께 싸목싸목 묵어라’는 급하게 먹는 아이에게 체할 것을 걱정하는 할머니나 어머니의 말로 적당한 전라도 표현이다. 그래서 이 말에는 부정적인 색채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쩌 놈은 항시 느리데느리데 묵어’라고 할 때와 ‘쩌 놈은 항시 싸목싸목 묵어’라고 할 때의 말맛이 전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