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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아 날아라 북으로 북으로 자유소식을 싣고 북한 폐쇄사회 뒤흔드는 ‘자유의 바람’
애드벌룬은 긴 봉 모양으로 돼 있으며 끝부분이 매듭지어져 있다.
북측은 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실무 회담에서 남측 민간단체가 살포하는 전단 살포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면서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남측에서 삐라를 보내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인 이민복 씨는 ‘북한 주민의 알권리를 위해 삐라를 보내는 일은 계속 할 것’! 繭箚 밝혔습니다. 박성우: 선생님, 북측이 이렇게 삐라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름대로 분석하고 계실텐데요. 이민복: 북한 사회의 특징은 폐쇄잖아요. 북한 당국의 최대 전략은 폐쇄죠. 이것이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구요. 이걸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건 삐라 밖에 없습니다. 자유롭게 뚫을 수 있는 것이요… 외부 소식이 들어가니까 그들은 가장 놀랄 수밖에 없고 싫을 수밖에 없죠. 또 삐라의 내용이 북한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내용이거든요. 북한의 정신적 기준 두 가지가… 하나는 수령에 대한 충성. 또 하나는 증오심인데, 혁명주의요. 수령이 얼마나 잘못돼 있는가를 삐라에서 가르쳐 줬고. 또 증오, 그러니까 혁명주의인데… 6.25 전쟁을 미국이 일으켰다는… 이것을 북한이 일으켰다는 걸 정확히 가르쳐 주고… 그러면 이 사회를 지키고 있는 정치적 기조 두 가지가 그냥 무너지는 거니까… 놀랄 수 밖에 없는 거죠. 박성우: 최근에 보내는 삐라에는 김정일의 건강과 관련된 정보도 포함이 돼 있나요. 이민복: 저는 그렇게 폐쇄된 사회에서… 아픈지 아닌지… 북한에서는 여자도 남자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거짓말을 워낙에 많이 하기 때문에… 저는 그런 말은 안합니다. 박성우: 최근에 삐라를 북측으로 보내는 개인이나 단체가 또 있다면 어떤 분들이 계십니까. 이민복: 많이 늘어났죠. 자유운동본부 박상학 대표, 자유북한인협회 한창권 회장, 민주화위원회… 여러 곳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성우: 앞으로도 삐라 보내는 활동 계속 하실 건가요? 이민복: 저는 최소한 북한 주민들이 원초적인 인권… 볼 수 있는 권리,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 또 그것이 가장 인도주의적인 북한 주민 돕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나 그 어떤 모든 것을 떠나서 주민들을 위해서 저는 계속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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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공개|북한에 보내는 ‘삐라(전단) 풍선’ 현장
북한 폐쇄사회 뒤흔드는 ‘자유의 바람’ 표현이나 내용 완벽하게 북한식으로 호소력 커
정부 삐라는 DJ정부 때 없어져
▲ 비닐에 인쇄된 삐라
북한민주화운동본부가 북한에 ‘풍선 삐라’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2004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박상학 대표는 일가족 5명이 1999년 가을 탈북해 2000년 봄 한국에 들어왔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애드벌룬팀장 박영학씨는 박 대표의 친동생이다. 기독탈북인연합회 이민복 대표는 북한 농업과학기술원 출신의 과학자로 1995년 탈북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측은 처음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풍선을 이용했다. 북풍(北風)이 불 때 DMZ 근방에 접근해 풍선에 삐라 봉지를 매달아 날려보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드는 데 비해 효율성이 떨어졌다. 풍선이 기류를 타기 위해서는 3000~5000m 상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이 풍선은 중간에서 터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국방부에서는 대형 풍선을 만들어 띄우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궁(窮)하면 통(通)한다고 했던가. 대형 풍선을 띄우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은 과학자 출신의 이민복 대표였다. 수소가스를 이용해 대형 비닐로 애드벌룬을 만들었다. 헬륨가스를 이용하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비용 때문에 포기했다. 이 대표는 삐라 부대가 3단계(단거리, 중거리, 장거리)로 터지도록 타이머를 개발했다. 공중에 떠오른 지 30~40분 지나 터지는 게 1단계로 DMZ 부근의 인민군용이다. 2단계는 DMZ를 너머 평양 이남에서 터지도록 되어 있고, 3단계는 평양 시내 한복판을 겨냥한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측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 1년간 한국 정부에 10차례 ‘삐라 풍선’에 대해 항의했다고 한다. 이민복 대표는 “이런 반응은 그 어떤 것에도 꿈쩍하지 않던 (북 당국이) 삐라 풍선으로 치명상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남북한은 40년 이상 서로가 서로에게 체제선전용 삐라를 날려보냈다. 탈북자의 말을 종합하면, 그 동안 군 당국이 날려보낸 삐라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대로 1970~1980년대 북한체제가 나름대로 안정되어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삐라의 내용이 북한 실정과 맞지 않게 기술되었거나 지나치게 자본주의 냄새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민복 대표는 “특히 삐라의 내용에 영어식 표기를 남발했다는 것이 문제였다”면서 “이것은 오히려 북한 주민으로 하여금 남한이 미제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북 당국의 주장을 믿게 했다”고 말한다. Hungary를 우리는 ‘헝가리’라고 표기하지만 북한에서는 ‘웽그리아’라고 쓴다. 또한 World Cup을 한국에서는 월드컵이라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세계축구선수권대회’라고 쓴다. 그 동안은 북한에서 실제 쓰는 언어로 삐라를 만들지 못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과거 대북 삐라를 작성하는 군 당국에 탈북자 출신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자리에 모인 '삐라 풍선' 주역들.
왼쪽부터 박영학 팀장, 박광일 사무국장, 박상학 대표, 이민복 대표
그렇다면 현재 탈북자가 작성한 삐라는 어떻게 다른가.
북한민주화운동본부가 만든 삐라에서 ‘녀배우 성혜림과 김정일’의 일부 내용을 옮겨본다.
1970년 인기영화 ‘한자위단원의 운명’을 기억하시죠. 주인공 갑룡(엄길선)의 약혼녀(성혜림)가 그 후 나타나지 않지요. 1960년대 인기영화 ‘분계선마을에서’ ‘백일홍’ 등의 주역으로 모두 알고 있던 그녀가 왜 갑자기 사라졌을 가요?!
그녀는 문예총련맹 위원장 리기영의 아들 리평의 안해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강제 리혼시키고 아들(김정남)을 낳았습니다. … 김정일과 성혜림 관계 당시는 당 5차대회로선인 ‘온 사회의 혁명화, 로동계급화’로 남녀가 련애만 해도 간첩 잡듯 투쟁하던 시기였지요. 특히 예술인들은 7일 생활총화를 2일로 강화한 때입니다. 이런 시기에 지도자동지의 뒤면은 참으로 놀랍지요. 그 당시 인기영화 <목란꽃> 주인공 우인희 인민배우를 부화했다고 죽인 지도자 동지는 과연 녀자문제가 깨끗한가 말입니다. 삐라의 내용은 완벽하게 북한식이다. 북한 사람 입장에서도 어색하거나 거북한 대목이 없다. 이민복 대표는 “레이더에도 안 잡히고 소리 없이 하늘로 날아가는 풍선만이 폐쇄사회인 북한을 자유롭게 뚫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면서 “폐쇄문화는 구전문화를 발달시켜 삐라 한 장이 수천, 수만의 입이 되어 저절로 전파된다”고 말한다. 박상학 대표는 “삐라는 북한 주민에게 인권의 눈, 민주화의 눈을 키워준다”면서 “최근 탈북해 온 사람은 우리가 날려보낸 삐라를 읽어봤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삐라 풍선 하나를 북쪽으로 날려보내는 데 드는 비용은 10만원 선.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모든 경비를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박상학 대표는 앞으로 북한 주민에게 삐라와 함께 달러도 동봉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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