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물리학, 그리고 불교
(글쓴이: 志山 성유경 71세,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이론물리연구소장, – wsung@postech.ac.kr)
내가 불교를 배우게 된 것은 고교 시절에 서울 종로 근방에 있는 대각사에서 룸비니 불교학생회라는 모임에 참가하게
된 이후부터였다. 통상적 불교의식을 떠나서, 입정, 지도법사와 명사들의 법문, 논교,
사홍서원 등의 간소한 형식으로 진행되어, 불교에 입문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모임이었다. 기억나는 동기로는 박광서, 서중석 교수와, 권장혁 교수ᆞ권남혁 판사 형제 등인데 서울대 출신이지만 총불 멤버는 아닌 것으로 안다. 만물은 마음에서 비롯된다[一切唯心造]는 불교의 가르침은 최고의 진리로 부각되었고, 우주와 합일하는 ‘큰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배웠으나, 고苦의 개념을 알기에는 아직 어린,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이 심각했던
시절이었다.
대학은 아버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리대 물리학과를 고집하여 들어갔다. 노벨상
등에 대한 명예욕에 눈뜬 것이 아니었고, 다만 우주의 근원을 알고자 했던 내 나름대로의 희구가 있었다. 고교 시절 순진한 모범생이었던 나를 대학은, 봇물 터진 자유와 낭만, 그리고 끝없는 방황과 고뇌로 이끌었다. 과학은 인문적 가치에 무관한
것으로 다가왔고 현실의 고학자란,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지식의
돼지, 명예의 거지’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기독교에 경도되지 않았지만, 파스칼의 명상록 『팡세』를 읽고 과학과 인간의
한계성에 고민하였다. 파스칼은 과학과 철학은 정신적 질서에 속한다고 하며 더 높은 차원의 심정적 질서, 즉 종교에 도달할 수 없음을 말하였다고 기억한다. 젊었을 때 천재적인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그는 최후에는 영성적 신학자가 되지 않았던가? 전공 공부에의 신념을 잃은 나는
방황과 방종을 거듭하며 모범적 물리학도의 상궤에서 크게 벗어났다. 룸비니 모임에서 어느 날 한 법대생이
“여러분들은 다 비겁하다. 불교가 최상의 배움이라면 지금
왜 출가를 하지 않는가? 라고 외쳤는데 이에 공명하였다. 세간의
기대와 가치를 포기하고 막상 대자유의 길을 갈 용기가 나지 않았으나, 이에 계속 괘념했었다.
긴 방황 끝에 결국 나는 물리학을 하는 것으로 되돌아와 같은 과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상급 학년이 되면서
현대물리학의 지성사적 의미를 알게 된 이유였다. 특히 양자量子물리와 상대성이론은 사물에 대한 절대적
존재론이 아니라 상대적 관계론임을 시사한 것에 주목하였다. 극미대상의 이중성,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등에는 관찰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대두되었고 이는 불교의 불이不異와 중도中道 사상과 유사하게
보였다. 이러한 현대물리학 사상은 서구적 분별지分別智의 극치일 것이지만 대각大覺의 경지에서 얻어지는
일체지一切智와는 차원이 다를 터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불교가 과학을 포용하는 우주적 종교라면
20세기 과학 혁명과 첨단 문명을 이끌었던 이 현대물리학의 지식체계도 또한, 나에게 당분간은, 물상에 대해 오성悟性이 추구할 가치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금 보면, 그때 내 생애 중 가장 견고한 심지와 순수한 구도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총불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73년
대학원 학생 때였는데 선배였던 김성구 교수(물리 64)와
함께 총불 학부 학생들을 따라 월정사 수련회에 동참한 잉연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밤의
철야정진이었다. 나는 참선하는 그룹에 속하였는데 밤새 경책을 받아가며 수마를 견딘 초심자였으나 딴 방에서
3000배를 한 법우들을 무모하다고 생각하였다. 아침에는
월정사에서 적멸보궁까지 산행을 하였는데 도반들과 함께 해서였는지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더구나
3000배를 하여 고행을 하였다고 여겼던 어떤 후배들은 신기하게도 날듯이 고준한 산길을 타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적멸보궁에 도달하여 가졌던 느낌은 표현할 수 없는 청정심과 환희심 이었으며 이는 내 인생을 통해 가장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남아있다.
외롭고 막막했던 미국 유학 초기의 생활에서 뉴욕 맨허턴에 있었던 한인 사찰인 대각사는 나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었다. 동국대 부총장을 하셨던 법안 스님이 주재하였던 정기법회에 참석하여 여러 한인 동포들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주지 스님이셨던 숭산嵩山 스님의 젊은 미국 제자들과 함께 용맹정진에도 동참하였다. 숭산 스님은 그때 동부 도시인 Providence에 선원을 설립하셨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한국 선불교를 서구 세계에 전파하고 계셨다. 어느 날 뉴욕에서의 특별 법회에서 숭산
스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알기 전의 본래의 마음 이른바 ‘Don’t Know Mind’를 참구하라고
설파하셨는데, 이는 높은 언어장벽을 뛰어넘어 미국 엘리트 지식인들의 큰 관심을 끌었음을 보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숭산 스님에게서 지산志山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러나
나의 불심은 그렇게 확고하지 않아 그 이후 범속한 삶과 과학연구라는 틀에 박힌 일상 속에서 이 중요한 인연을 최근까지 잊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박사학위 공부와 그 후 계속된 연구를 마치고 귀국하게 된 데에는, 포항에
미국의 CALTECH 같은 첨단연구중심대학을 만들겠다는 故 김호길 포스텍(POSTECH, 전 포항공대) 초대 총장님의 영향이 컸다. 나는 이 모험을 택해 포스텍의 창립에 참여했다.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을 추구하는 동기는 호기심이라고 한다. 더 근사한
표현으로는 연구를 통해서 펼쳐지는 자연의 신비에 대한 경외敬畏라고 할 것이다. 나에게는 현상에의 호기심과
흥미보다 만유에 대한 깨달음의 의미가 중요하였다. 그러나 포스텍 교수로서 성공하는 길은 연구로 이름을
날리는데 있었으며 그것은 주로 주요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에 대한 수량적, 상대적 평가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 위주의 평가 시스템은 유수한 대학에서 채택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긴 안목으로 학문을 하기보다 가시적 업적을 단기간에 양산해야 하는 경쟁적 분위기를 만들기
쉽다. 대학원 학생들의 학위 연구를 지도해야 했던 나는, 정교수가
되어서 학문적 자유를 가졌음에도, 전일적全一的 이해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전공분야인 통계물리학 논문연구에
매달렸다.
통계물리학은 분자, 원자, 전자
등 많은 미시적 요소들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물질계(material system)의 현상을 정량적으로
규명하는 가장 기본적 물리이론체계이다. 통계물리학에 의하면 물질현상은 이를 관측하는 수준 즉 관점에
따르며, 그 수준에서 드러나지 않은 물질계 내부의 요동搖動(fluctuation)에
의해 좌우되어 확률적으로 기술記述된다. 이 요동은 수많은 미시적 구성요소들의 끝없는 열적熱的 운동에서
비롯되어 엔트로피(무질서도, 또는 無知度)를 주는 것이다. 관측된 현상은 본래의 미시세계와는 매우 다른 성질을
보일 수 있는데 이를 창발創發(emergence)라고 한다. 한
예로서 삼라만상의 변화는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에 대해 가역적이나 거시적 관점으로는 비가역(irreversible)이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세계에서는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항상
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구립된 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이
이에의 한 표현이다.
나의 연구에서 가장 큰 보람을 찾은 방향은 생명현상에 대한 물리학적 접근이었다.
생명현상은 생명과학의 본령이지만 그 근본적 이해를 위하여는 정량적인 물리학의 언어로 설명되어야 하는 역사적 전기轉期에 놓여 있었다. 나와 제자들은 90년대 중반부터 생체계에 통계물리학 이론을 적용하고
개척하였다. 우리들은 미시계와 거시계의 중간인, 나노/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관측되는 중시계에 속한 생체계, 특히 DNA 등의 생체체고분자와 생체막, 세포의 물리적현상에 주목하였다. 특히 우리가 연구한, 생체막을 통한 긴 고분자의 전송(transldcation), 세포융합, 짧은 DNA 고리형성, 유연체 자기조립(self-assembly)
현상들은 통상적 물리학으로는 불가해不可解한, 즉, 언뜻
보면 넘을 수 없는 물리적 장벽을 많은 경우에 엔트로피에 의해 뛰어넘는 기작을 보였다. 생명질서를 위해
일어나는 이러한 자기조직 현상들은 구성요소의 상호간의 연결성(網狀性),
복잡한 상호작용과 내부와 환경의 요동에 의해 창발되는 확률과정(emergent stochastic
process)이었다. 이에 대해 여러 논문을 발표하여 생체 형상과 동역학의 새로운 생물물리학
패러다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생명현상에 대한 통계물리적 접근을 대학원 수준으로 소개하는 교과서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없으므로, 나는 졸저 『Statistical
Physics for Biological Matter』를 저술하였는데 이는 올해 중에 유럽 출판사인 Springer에서 출간될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진전은 불가사의한 불교의 진리를 과학적 지성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양자물리에 의하면
원자, 전자 등의 미시적 대상은 관측에 따라 입자와 파동으로 나타나나 입자와 파동은 둘이 아닌 일체一體
즉 양자量子이다. 또한 관측 이전의 이 미시대상은 실재성이 없다고 한다. 한편 상대성원리에 의하면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시간과 공간은 따로 나타날 수 있지만 통일된 이론으로는 다를
이유가 없는 일체 즉 시공(space-time)이다. 더
나아가서 시공과 물질은 또한 일체를 이루며 서로 의존되어 있다. 이미 주목된 바와 같이 (김성구,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 2018, 불광출판사), 미시적 대상의 이중성, 불가지성不可知性과 시공과 물질에 대한 상대성은 불교의 불이不異, 공空, 중도中道사상을 분별지로 이해하는데 일조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시대상들의
집합체인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거시적 물질계와, 중시계 특히 생체에 대한 앞서 언급한 창발현상은 불교사상으로
비유될 수 있을까? 통계물리적으로 물질현상은 이 집합체를 관측하는 입장(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했는데 이는 사물의 실상實相은 하나이나
인식방법에 따라 여러 가유假有로 나타나서, 空(실상)과 假(현상)가 다르지
않다는 중도사상과 유사하지 않은가? 예컨대 우리의 연구에서 본 긴 고분자가 세포막을 통과하는 현상(가유)은 그 관점에서 생산되는 엔트로피 즉 무지(또는 無明?)의 결과인가? 이
집합체 현상뿐만 아니라 시공간, 양자量子현상 조차도 모두 상황(緣起)에 따라서 창발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아닌가[諸行無常]? 이러한 논의에서 주의할 것은, 불교를 물리학적 사실로 입증하려고
한다면, 분별지를 넘어 최고의 깨달음으로 증득證得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일이 될 수가 있음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나 불교사상이 현상에 대한 자연철학을 넘어서서
삶에 대한 실천적 지혜를 가르쳐주는 것이리라.
인생에는
성장기, 활동기, 마지막으로 성숙기의 3단계가 있고 각 단계는 약 30년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면, 4년 전에 정년 퇴임하여 활동기를 졸업한 나는 아직 성숙기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퇴임 후에도 연구소에 소속하여 그 동안 한 일을 되돌아보면서 두 번째 단계의 껍질을 벗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퇴임 후 박차를 가해 저술한 대학원 교과서는 후학을 위한 것이고 활동기의 일을 부분적으로 마무리하는 보람을
주었으나, 물리에의 전일적 이해와 생명체 자기조직의 물리적 원리규명이라는 큰 문제에는 아직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성장기에 가지고 있었던 비교적 견고한 구도심으로 그 동안 신해행증信解行證하지 않았고
과학 연구의 타성에 매여 방일放逸하였다. 무수한 세월 후에 이제 더욱 더 혼미해진 마음으로 고苦에 쉽게
얽히고 선정禪定에 들기 힘들다. 현생 마지막 단계에서 내가 할 일은 송담 스님 말씀대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을 열기 위한 마음공부밖에 없을 것이다. 주객이 일여一如한 때 과학지식 체계는 어떻게
보일 것인 것? 다물라. 오로지 수행정진만이 길일진저.
원문: 서울대 불교학생회 창립60주년기념
에세이 집(2018.10) “가던 길 멈추고 돌아보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