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信不立
설헌서택 |
백성의 신뢰가 없이는 국가가 존립할수 없다.
무신분립(無信不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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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이상 정치를 한 말로 표현하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국가가 부유하기 위해서는 병력이 강해야 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잘 사는 나라란 군대가 강한 나라다.
논어 안연편 7장을 보면 자공이란 제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는 말이 있다.
子貢問政 :
「足食。足兵。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於斯三者何先?」 曰:「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於斯二者何先?」 曰: 「去食。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論語 顔淵篇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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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 〈 顔淵篇 〈 7章 논어 안연편 7장
子貢問政。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子曰
공자가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足食。足兵。民信之矣。」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이 (윗 사람에게 )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여기서 잠간 윗말을 되새겨 본다.
足食 : 삭량을 풍족하게 한다. 足兵 : 군대를 풍족하게 한다.
족병(足兵)? 군대를 풍족하게 한다니? 말이 좀 그렇다.
强兵(강병)이라 해야 할 터인데 足兵이라 하니 낯이 설다.
왜 그랬을가? 아래에서 찾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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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거슬러 본다.
주(周)나라가 천자국으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었다.
정전법(井田法)이다.
주나라는 정방형의 토지를 우물 정(井)자형으로 9등분하여 관리했다.
총면적은 1정(井)인 900무(畝)를 한 필지로 뮦어 사전(私田)과 공전(公田)으로 구분했다.
私田 | 私田 | 私田 | 私田 | 公田 | 私田 | 私田 | 私田 | 私田 |
사전은 800무로 8가구에 100무씩 나누어 주었고 나머지 100무인 중앙의 토지를 공전이라 했다.
사전는 각자의 소유이고
공전은 8가구가 함께 경작하였다.
공전 소출은 세금으로 바치는 제도였다.
이 정전법은 주나라와 제후국에서도 함께 시행되었다.
한데 정전법에는 단서 조항이 있다. 군대 제도다.
당시 군대는 우리나라 예비군과 같았다.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발발하면 소집되는 제도였다.
국가에서 부여한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남정네는 국가의 소집에 응해야 하는 의무사항이었다.
그래서 국가는 경작지를 늘려 세금을 거둠과 동시 인적 자원 곧 군대 인력을 충족해 나갔다.
농토를 많이 확보하여 병력자원을 늘려갔던 것이다.
足兵이란 군대에 소집해야 할 인적자원을 넉넉히 보유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어서 더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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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足食。足兵。」
군대를
强兵이라 하지 않고 足兵이라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백성들이 먹고 사는 것이 풍족하고 병력의 인력자원이 풍족해야 한다.
이리 되어야 백성은 배불리 먹고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하나 문제 요소가 있다. 백성들의 신뢰성 문제다.
정전법에 있어서
백성들이 공전의 세금을 양심껏 받처야 되고
병력의 소집명령에도 빠짐 없이 참여해야 한다.
특히 군대 동원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이 그랬다.
전쟁에 나가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소집에 응하지 않은 개연성이 많았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이 신뢰성이었다.
民信之矣 (足食。足兵。民信之矣)
백성들이 윗사람에게 신의를 키키는 것이다.
신뢰 문제가 나왔기에
史記 本紀 奏本記 幽王편을 사기 본기 진본기 유왕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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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西周)를 마감한 12대 유왕(幽王)의 고사다.
유왕은 포사(褒姒)라는 경국지색의 미인이 있었다.
褒姒不好笑,幽王欲其笑萬方,故不笑。
포사가 웃지를 않았다.
유왕은 그녀를 웃겨보려고 만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웃지를 않았다.
幽王為烽燧大鼓,有寇至則舉烽火。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왕이 북을 둥둥 치면서 봉화불을 올렸다.
적군이나 도둑이 침략하면 봉화를 올렸다.
諸侯悉至,至而無寇,褒姒乃大笑。
제후들이 다 도착하였다. 悉(실) : 다. 다하다.
제후들이 와보니 도둑이나 적군이 없었다.
이에 포사가 크게 웃었다.
幽王說之,為數舉烽火。
유왕은 그것이 기뻤다. 說(열) : 기쁘다.
그리하여 자주 봉화를 올렸다. 數(삭) : 자주
其後不信,諸侯益亦不至。
그런 뒤로 불신이 일어났다.
제후들은 더욱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西夷犬戎攻幽王。
서방 오랄캐인 견융이 유왕을 침공해 왔다.
幽王舉烽火徵兵,兵莫至。
유왕이 군대를 소집하는 봉화불을 올렸다.
병사들이 오지 않았다.
遂殺幽王驪山下,
유왕은 여산 아래서 살해되었다.
虜褒姒,盡取周賂而去。
포사는 포로로 붙잡혔다.
주나라 재물(賂)은 모두 착취 당해 빼았겼다.
이렇게 하여 서주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13대 평왕(平王)이 호경에서 낙읍으로 수도를 옮겨 동주시대가 된다. (동주시대를 춘추와 전국시대로 구분한다)
주나라가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공자는 이 상황을 무신분립(無信不立)이라 하고 있다.
논어로 되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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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貢曰:
자공이 다시 물었다.
「必不得已而去,於斯三者何先?」
「반드시 부득이해서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曰:
공자가 말하였다.
「去兵。」
「군대를 버려야 한다.」
子貢曰:
자공이 또 물었다.
「必不得已而去,於斯二者何先?」
「반드시 부득이해서 버려야 한다면,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曰:
공자가 말하었다.
「去食。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양식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기 마련이지만,
백성들이 신의가 없으면 존립할 수가 없다.」
無信不立
(주나라 유왕처럼) 신뢰가 없으면 일어 설 수 없다.
백성들이 믿고 딸아주지 않으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백성들의 식량은 풍족한가 足食 군대의 인적 자원은 넉넉한가 足兵 백성들이 신뢰하는가 民信
이것이 점검해야 할 과제다.
위정자는 民信(백성의 신뢰)이 無信(신리가 없다) 않도록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백성의 신뢰 없이는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무신분립(無信不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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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정리
子貢問政 :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足食。足兵。民信之矣。」 식량이 품족하고 병력이 풍족하며 백성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子貢曰: 자공이 물었다.
「必不得已而去,於斯三者何先?」 반드시 부득이 해서 버려야 한다면
이 세가중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曰:「去兵。」 군대를 버려야 한다.
子貢曰: 자공이 또 물었다.
「必不得已而去,於斯二者何先?」 반드시 부득이 해서 버려야 한다면
이 두 가지중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曰: 공자가 대답하였다.
「去食。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식량을 버려야 한다.
자고로 사람들은 모두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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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하고갑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즐거ㅓ운 하루 되시기를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절벽이 되고 있으니 앞으로 군대의 인적 자원이 부족하니 足兵이 걱정이 되는군요.
모병제 그리고 무기의 첨단화를 한다고 해도 인구절벽은 부국에 심각한 문제가 될것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자원 문제는
중요사항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저출산 나라로서는
어떤 대책이 수립되어야 할 지?
神의 한수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