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10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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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3장은 사라의 죽음으로 인한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매장지를 구매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를 통해 성경 기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3장 전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절
대응 구절
1-2절
사라의 죽음
3-4절
아브라함의 매장지 요구
⇦⇨
5-6절
헷 족속의 답변
7-9절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 요구
⇦⇨
10-11절
에브론의 답변
12-13절
아브라함의 토짓값 청구 요구
⇦⇨
14-15절
에브론의 토짓값 청구
16-20절
사라의 장사
사라는 127세까지 살다가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한 후 헷 족속에게 다가가 사라의 매장지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을 팔아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 지역에 이방인이었던 아브라함은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 대한 존경심에서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자신과 에브론 사이의 거래를 중개하여 막벨라 동굴을 구체적으로 매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간청을 듣고 있던 에브론은 동굴뿐만 아니라 동굴이 위치한 밭 전체를 아브라함에게 주기로 동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제안을 거부하며 밭을 공짜로 받는 대신 값을 지불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그 밭이 은 400 세겔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지만, 아브라함에게 무상으로 주겠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에게 400 세겔을 지불했고, 그 땅과 동굴은 아브라함의 재산으로 양도되었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의 동굴에 묻었습니다.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의 전환
이 이야기의 의도에는 더 깊고 역사적인 목적(아브라함의 토지 구입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이 특별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이삭이 신부를 찾는 이야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 세대가 죽고 이제 다른 세대가 생겨나 세대가 계속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말 성경(개역개정) 1절에서는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라고만 번역을 하였는데, 23장의 히브리 원문의 첫 단어는 ’와이흐유‘(וַיִּהְיוּ֙)입니다. 이를 직역하면 '그리고 ~이다(And was)'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지금까지의 내용이 이제 다른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복선을 깔고 있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입니다(창14:1; 창15:17). 즉, 바로 전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과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가문 계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러한 대형 사건들과 당시 족보를 통한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을 하면서 그에 따른 새로운 차원의 내용이 전개될 것이라는 복선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 가문의 계보에 대한 설명이 끝난 22장에 이어, 본장인 23장은 '열국의 어머니'로 불리는 사라의 죽음과 그녀의 죽음을 통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정착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라가 죽은 때의 나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으로서는 유일한데, 사라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역사의 단면으로 기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긴 여정을 나선 것은 실로 믿음의 결단이 있었기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비록 하갈과의 갈등으로 우리에게 불편한 행동을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의 믿음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충분히 본받을 만한 신앙의 모델이 되었고,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벧전3:6).
헤브론, 기럇아르바의 위치
남동쪽에서 바라본 헤브론 언덕, 헤브론의 동남향에는 계곡이 있음 <The Hill of Hebron From the Southeast>
또한 2a절에서는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 약 35km, 베들레헴 남서쪽 19km 지점에 위치했으며 오래된 도시입니다. 헤브론은 계곡을 끼고 있어 물이 풍부하여 아브라함이 가나안 이주 후 조카 롯과 결별하기까지 20여 년간 거주한 곳이기도 합니다(창13:18). 이후 아브라함은 그랄(창20:1)을 거쳐 브엘세바(창21:31)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리아 산에서의 이삭 제물 사건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은 브엘세바로 돌아왔습니다(창22:19). 그러나 사라가 헤브론 땅에서 죽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2절) 아브라함의 가족 내에 어떤 문제가 있어 사라가 헤브론에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브론은 '기럇아르바(קִרְיַ֥ת אַרְבַּ֛ע/Kirjath arba)'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기럇(קִרְיַ֥ת/kirjath)은 '도시', '마을', '성읍'이란 뜻이고(욥39:7; 사1:21), '아르바(אַרְבַּ֛ע/arba)'는 가나안에 거주하던 거인 족속인 '아낙 자손'의 조상 이름(민13:28)입니다. 따라서 기럇아르바는 '아르바의 성읍'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당시에는 이 성읍이 '헤브론'으로 불렸으며, '기럇아르바'는 아브라함 시대 이후에 붙여진 지명으로 보입니다.
사라가 '가나안 땅'인 헤브론에서 죽었다고 강조한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다는 의미이며, 이 시점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저자가 사라의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를 포함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이야기는 다소 이상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의 아내의 장례식을 보도하는 데 한 장 전체를 할애했을까요? 사실 이 장면은 이스라엘 역사의 맥락에서 상당히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땅은 아브라함이 소유한 최초의 땅이며, 공짜로 받은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거래를 통해 "매입한" 땅입니다. 본질적으로 이 땅은 이스라엘 땅의 기초를 형성했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토의 첫 번째 땅이 되었습니다.
사라를 위하여 슬피 울고 있는 아브라함 (장막 문밖에는 이삭과 하갈로 보입니다. 아브라함 뿐 아니라 외아들 이삭의 엄마 잃은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요?)
마르크 샤갈(1887-1985), 사라를 위해 슬피 우는 아브라함, 1931년 <Marc Chagall(1887-1985), Abraham Weeping for Sarah, 1931, Paris, France>
마르크 샤갈(1887-1985), 사라를 위해 슬피 우는 아브라함, 1956 <Marc Chagall(1887-1985), Abraham Weeping for Sarah (Genesis, XIII, 1), 1956, France, Series: Etchings for the Bible (1930-1939; 1952-1956)>
마르크 샤갈(1887-1985), 사라를 위해 슬피 우는 아브라함, 1958 <Marc Chagall (French, b. Belorussia, 1887-1985), Abraham Weeping for Sarah, 1958>
2b절에서 아브라함은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해 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리쓰포드 레사라 웨리브코타흐(לִסְפֹּ֥ד לְשָׂרָ֖ה וְלִבְכֹּתָֽהּ׃ / to mourn for Sarah, and to weep for her)"입니다. '리쓰포드'는 가슴을 치며 애곡하는 행위를 가리키며(왕상14:13; 전3:4), '웨리브코타흐'는 큰 소리로 그녀를 위해 슬피 울며 눈물 흘리는 행위를 말합니다(창43:30; 삿11:37). 이처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두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또 '사라를 위하여'라는 말까지 같이 반복한 것은 그만큼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으로 인하여 크게 슬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사라는 아내이기도 하였지만 사실 믿음의 동반자였습니다. 아브라함 나이 75세(사라 65세)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지금 137세(사라 127세) 때까지 62년 동안 사라 또한 믿음으로 험난한 가나안 여정의 길을 불평없이 함께 하였기에 지금의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녀와의 수많은 추억들이 그의 주마등을 스치며 많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을 것입니다.
죽음의 이별만큼 큰 충격은 없습니다. 특히 배우자를 사별한 충격은 매우 커서 대부분 약 2년간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한 갑자 이상을 함께 한 배우자라면 얼마나 그 빈자리가 크고 힘들었을까요? 지금 당장은 슬픈 감정으로 정신이 없겠지만, 장사를 지낸 후에는 사라의 빈자리로 인해 뻥 뚫린 것 같은 마음은 더욱 시리고 아플 것입니다.
사라의 죽음과 막벨라 땅을 사는 아브라함 <Death of Sarah, Abraham buys the land of machpelah>
피터 코케 반 엘스트, 아브라함 시리즈의 이야기(상세), 1540-43 <The Story of Abraham Series (detail) 1540-43, attributed to Pieter Coecke van Aelst. The Royal Trust>
사라 앞에서 한 없이 애통하며 통곡하던 아브라함은 계속 슬퍼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라를 장사지내야 하는 현실이 눈 앞에 닥쳐왔기 때문입니다. 4a절에서 아브라함은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죽은 사라 앞에서 일어섰고 나갔다는 말은 없습니다. 실내에 사라의 시신이 있다는 전제로 밖으로 나갔다고 유추하여 번역한 것이지요. 2절도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했다고 했는데, 원문에는 '들어갔다'는 말은 없습니다. 역시 실내에 시신이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들어갔다'는 말을 추가하여 번역을 하였습니다. 어째든 아브라함은 마냥 앉아서 슬퍼할 수 없었습니다. 현실은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매장할 묘 자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땅 안에서 살고 있었지만 그의 이름으로 공식 소유한 땅이 없었습니다. 헤브론 기럇아르바는 헷족속의 땅이었습니다. 헷 족속은 영어로 Hittites 즉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힛타이트 민족을 말합니다.
함 - 가나안 - 헷의 계보
헷 족속은 바로 가나안의 아들 헷의 자손들로서, 소아시아의 수리아 지방을 근거지로 하여 철기 문화를 꽃피운 막강한 힛타이트족(Hittites)입니다. 다만 창 23장에서 언급된 헷 족속은 수리아 땅의 힛타이트 족속이 아니라 이들로부터 분리되어 가나안 땅에 정착한 그들의 한 분파입니다. 이들은 아브라함 당시에는 주로 헤브론과 브엘세바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었으며,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때에는 아모리 족속, 여부스 족속과 함께 주로 가나안 산간 지방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민13:29).
빈센트 반 고흐, 막벨라의 동굴, 1877년 <Vincent van Gogh, 1877, The Cave of Machpelah>
아브라함은 당시 헤브론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헷 족속에게 나아가 사라의 매장지를 구입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에 왔지만 현실적으로는 땅 한 평도 소유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그러한 자신을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I am a stranger and a sojourner with you)”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약속의 땅은 커녕 그 땅에는 이미 강대한 이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이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하며 땅을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십 년 동안 하나님께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또한 하나님의 방법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어디에서도 건물을 짓거나 터를 만들어 정착하지 않고 장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장막 생활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여 자기의 삶의 필요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자체를 기뻐하고 만족하였습니다. 그는 삶의 형통과 생활의 안정을 구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삶의 주인으로 내세우지 않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이 먹고 사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계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29-31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브라함은 4절과 8절에서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라는 말을 2번이나 반복합니다. 이 말은 곧 죽은 사라를 "내 얼굴에서부터" 곧,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out of my sight)" 장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의 다른 민족과 다른 장사 풍습이었습니다.
4-18절에서 아브라함과 헷 족속, 그리고 아브라함과 에본론 사이의 토지 매매에 대한 협상 내용이 나옵니다.
헷 족속은 아브라함은 무척 존대하며 그에게 극진한 자세로 땅을 매각하였습니다. 물론 에브론의 상술은 뛰어납니다. 아브라함에게 손해를 보지 않고 넉넉한 값을 받고 팔았습니다. 막벨라 굴과 그 주변의 땅을 구입함으로써 아브라함은 최초의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막벨라의 굴은 이후에 수백 년간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지역이 됩니다. 사라의 죽음 이후에도 아브라함, 이삭(야곱의 아버지), 야곱, 리브가(야곱의 어머니), 레아(야곱의 아내)는 모두 막벨라 동굴에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에브론에게 은 400세겔의 가격을 지불하고 막벨라 굴이 있는 지역을 샀습니다. 이 가격은 다윗이 예루살렘 성전이 들어설 아라우나 타작마당을 은 50세겔에 사들인 것과, 예레미야가 아나돗에 있는 삼촌의 밭을 은 17세겔에 사들인 것(렘32:1-23)과 비교하면 높은 가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므리가 사마리아를 건설한 땅에 대한 은 6,000세겔보다는 낮습니다(왕상16:24). 이 토지들에 대한 면적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에브론이 제시한 가격의 높고 낮음을 판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이 400세겔이라는 가격은 아브람의 후손이 400년에 걸쳐 많은 재산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애굽(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야 하는 기간과 일치하기 때문에 상징적 가치가 있습니다(창15:12-16). 400년 후에 다시 돌아올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대해 아브라함은 알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에브론과의 거래에 있어서 아브라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16절에서 아브라함은 가격을 놓고 흥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거래가 무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대의 관례와 마찬가지로 서면 계약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토지 권리를 판매한 것은 구두 계약으로 서술되며, 합의된 조건과 아브라함이 대금을 전액 지불한 후 아브라함에게 권리가 인수된 것으로 헷 족속이 보는데서 말로써 선포합니다.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헷 족속의 성읍 밖에서 장막 생활을 하며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리브가의 유모 데보라(창35:8)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창35:19)의 경우처럼 사라가 장사된 곳에 묻힐 것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이 토지 구입의 중요성에 대한 한 가지 힌트는 23:19에서 "가나안 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전체적으로 일곱 번째입니다. 즉 일곱 번째 "가나안 땅"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 완성 또는 마무리가 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3장 내에서 이 일곱 번째 표기는 2절의 여섯 번째 표기와 짝을 이루어 반복되는 구절 사이에서 사라의 장례로 인한 땅을 구매하는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호가스(1697-1764), 아브라함이 헷족속 에브론의 밭을 사다 <William Hogarth(1697–1764), Abraham buys the field of Ephron the Hittite>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40년 헤롯 대왕이 막벨라 동굴 주변에 건설한 구조물(울타리)의 대부분을 발견했습니다. 헤롯이 지은 이 구조물은 서기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수십 년 후 이 지역이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간 후 재건되었습니다. 구조물 내의 여러 구역은 위대한 족장들과 대부들의 매장지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동굴에는 두 개의 입구가 있습니다. 두 입구 모두 문과 큰 돌로 봉인되어 있으며,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일반적으로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동굴의 지하 공간에 대한 비밀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계단, 긴 복도, 작고 단순한 방을 발견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적어도 두 개의 역사 문서에 따르면 서기 1113년경 동굴 천장의 일부가 무너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신이 드러났습니다. 수십 년 후(서기 1170년), 12세기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여행 기록을 세밀하게 남긴 유명한 여행가 투델라의 벤야민(Benjamin of Tudela)이 이 도시를 방문하여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수의가 조각조각 떨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등불이 놓여 있었다".
아브라함과 족장들의 무덤 위에 세워진 터키 모스크, 브레이스브리지 부인이 즉석에서 스케치한 것을 D. 로버츠가 그림 <Drawn by D. Roberts, from a Sketch made on the spot by Mrs. Bracebridge, Turkish Mosque erected over the Tombs of Abraham and the Patriarchs>
19-20절에서 토지 매매 관련 협상이 모두 종결되고 권리가 확정된 후에 아브라함은 사라를 막벨라 굴에 안치합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볼 때까지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사라를 영원히 떠나보내야 합니다. 사라를 떠나 보내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사라의 장례식에는 아브라함의 모든 권속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 주변의 많은 족속의 사절들도 참석했을 것입니다. 헷 족속도 그 소식을 들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토지매매건도 쉽게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삭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다만 늦게 얻은 외아들 이삭의 결혼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사라가 못내 안타깝습니다. 죽어가면서도 이삭을 위해 얼마나 걱정하였을까요?
세상 일은 그냥 되는 것이 없습니다. 세월의 수고와 쌓이고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지금과 같은 담백하고 단순한 장막 생활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을 좋아하거나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영혼은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에 천착되어서 세상 그 무엇으로도 그 마음을 채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맹자집주(孟子集註) 진심장구(盡心章句) 상편(上篇) 24에 보면 "流水之爲物也 不盈科 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 不達(유수지위물야 불영과 불행 군자지지어도야 불성장 부달)"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는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다. 군자가 도(道)를 추구함에 점진적으로 성취하지 않으면 통달하는 데에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금방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 세상 욕심과 번민의 구멍과 장애를 만나도 그 구멍을 채우고 장애를 모두 덮어버리고 흘러갈 수 있는 넓고 굳고, 그러면서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집착하면 마음은 편치 않고 갈등이 생깁니다. 늘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고 결단을 해야 합니다. 선택하고 결단하려면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피곤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세상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 땅을 향하여 오늘도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7세의 나이로 사라의 죽음 코덱스 212(또는 파도바노 또는 파도바의 성경) 1390-1400년 로비고, 아카데미아 데이 콩코르디의 미니어처 작가 미상 <Sarah's death at the age of 127 Miniature from codex 212 (or padovano or Bible of Padua) 1390-1400 Rovigo, Accademia dei Concordi by Unknown artist>
사라의 장례식 코덱스 212(또는 파도바 코디체 또는 파도바 성경)의 미니어처, 1390-1400 로비고, 아카데미아 데이 콩코르디, 작가 미상 <The funeral of Sarah Miniature from codex 212 (or padovano codice or Bible of Padua) 1390-1400 Rovigo, Accademia dei Concordi by Unknown artist>
로야몽의 성경, 구약성서: 사라의 죽음. 사라(사라)가 죽다. 아브라함은 그를 묻기 위해 막벨라 굴을 사다. 1811년 삽화, 작가 미상. <Bible of Royaumont, Old Testament: Death of Sara. Sara (Sarah) dies. Abraham to bury him bought a sepulchre from the city of Geth. Illustration from 1811. by Unknown artist.>
보이어 성경의 아브라함 125. 사라가 묻히다. 네덜란드어 성경 <Abraham in the Bowyer Bible 125. Sarah is buried. Dutch Bible>
톰 러벨 (미국 삽화가, 1909-1997)의 사라의 매장, 성경 시대의 일상생활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 1967), 104-105 페이지. <Burial of Sarah by Tom Lovell (American illustrator (1909-1997), for Everyday Life in Bible Times (National Geographic Society, 1967), p. 104-105.>
존 마틴, 사라의 매장, 1833년, 예일대 영국 미술 센터 <John Martin, Burial of Sarah, 1833, Yale Center for British Art>
구스타브 도레 작품의 에칭, 막벨라 굴에서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장례 <Burial Of Sarah, Wife Of Abraham, in The Cave Of The Field Of Machpelah (Genesis 23:19; 24:1). Wood Engraving After Gustave Dore. Poster Print by Granger Collection>
막벨라 굴 내부의 사라의 무덤 자리에서 돌문을 닫는 모습을 못내 아쉬워 뒤돌아 보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너무 슬퍼 보입니다. 그 뒤로 붉은 겉옷을 걸친 이삭이 머리를 푹 숙이고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제 살아 생전에는 모두가 보지 못하는 생과 사의 이별을 하게 됩니다.
우리도 언젠가 이 땅을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남기고 떠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릴 것인지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데이비드 로버츠, 헤브론 전경, 1839년 <Hebron in 1839, after a drawing by David Roberts, in The Holy Land, Syria, Idumea, Arabia, Egypt, and Nub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