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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14 - 울어도 괜찮아
#1. 경찰서 앞 주차장? 혹은 길가?
정후가 옷깃을 세워서 어떻게든 얼굴을 가리려 하며 경찰서 입구로 달려가다가 멈춘다.
거기 경찰서 앞에 세워져 있는 구급차. 정후가 불안한 마음으로 빠르게 걸어 다가간다.
그때 안에서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나온다. 그 옆을 따라 나오는 당혹스러운 얼굴의 윤형사.
정후가 얼른 기둥? 사각의 장소로 이동해 피하며 다시 본다. 그러다 멈춘다.
들것 위에 천으로 얼굴까지 덮여 있던 시신의 팔이 툭.. 들것 옆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것은 정후가 입었던 점퍼. 팔 부근이 베어 아직도 피가 묻어 있는 바로 그 점퍼다.
정후가 더 생각할 것 없이 들것을 향해 움직인다.
그 순간 바로 앞을 가로막으며 미는 사내. 퀵서비스의 옷을 입은 남자다.
정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옆으로 밀치고 전진하려는데.
또 다른 남자가 그 앞을 막는다. 뒤이어 대용이 또 막는다.
// 들것이 실린 구급차 뒷문이 쾅 닫힌다.
그 앞에 서 있던 윤형사가 문득 돌아본다.
저만치에 서너명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에워싸고 있는데. 폭력적이기 보다는 누군가를 달래는 듯.
윤형사가 다시 구급차 쪽을 본다. 출발해가는 구급차.
// 정후를 둘러싼 사내들. 그러나 정후 눈에는 저만치 출발해가는 구급차만 보인다.
자기를 잡고 있던 사내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더니 자기 차 쪽을 향해 걷는다.
대용이 먼저 달려가서 운전석 앞을 가로막더니.
대용 : 못 가. 사장님이 아무데도 못 가게 하랬어.
정후가 대용의 어깨를 잡아 밀쳐버린다.
차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는데. 손에 힘이 하나도 없다. 손잡이를 자꾸 헛잡아서 열 수가 없다.
정후가 멈춘다. 옆에서 대용이가 뭐라고 떠드는데 소리가 번져서 잘 안 들린다.
돌아보니 사내들이 자기를 에워쌌는데.
정후의 귀에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그 숨소리가 자꾸 커진다. 손을 두어번 쥐었다 펴고 문을 연다.
옆에서 그의 팔을 잡으려는 자를 한방에 밀쳐(날려)버린다. 운전석에 올라탄다. 문을 쾅 닫는다.
#2. 민자 아지트
모니터들의 불빛 아래. 테이블에서 멀찍이 떨어뜨린 의자 위에 민자가 앉아있다. 반쯤 넋이 나가서.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모니터 하나에서 통화신호가 오고 있다.
의자를 주욱 밀어 다가와 키보드를 찍는다. 컨넥트..
대용소리 : 사장님. 우리가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요. 일단 택배 바이크가 쫓아가긴 했는데요. 우째요.
민자가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멍하다. 키보드만 들여다보고 있다.
대용소리 : 사장님!
민자가 비로소 마음을 정하고는 고개를 든다. 입을 열었는데 말이 잘 안 나오다가. 겨우 목을 가다듬고.
민자 : 그래서.. 그 놈 어디로 갔어.
#3. 문호의 거실 / 아침
출근복 차림의 문호가 커피를 마시며 이동하는데 거실 테이블에 놓여있던 휴대폰이 울린다. 받아든다.
문호 : 김문홉니다.
민자소리 : 기영재라고 기억하십니까. 예전에 잘 아는 사이였다고 들었는데요.
#4. 병원 복도 일각
윤동원이 전화를 하고 있다. 잔뜩 찌푸린 얼굴.
윤동원 : 사망 진단은 받았어. 부검을 할 거니까 바로 신청 좀 해줘. 그리고 경찰서 내에 CCTV 몽땅 확보해.
특히 조사실이 있던 3층. 어제 저녁부터 오늘 공여덟시까지 빠짐없이. 아 경석아. 이거 바로 실시해라.
경찰서 내에 누가 장난치지 못하게. 지금. 바로.
그렇게 지시를 하고 있는 윤동원의 뒤를 지나가는 정후. 모자만 눌러쓰고 얼굴은 다 내놓은 상태다.
속을 알 수 없는 가라앉은 표정.
#5. 병원 지하층 복도
지하층의 외진 복도라서 인적이 드문.
조무사 차림의 남자가 차트를 보며 걸어온다. 그와 스쳐서 걸어가는 정후.
조무사가 돌아보더니
조무사 : 저기요.
정후가 멈춘다.
조무사 : 그 쪽은 관계자 말고는 가시면 안 됩니다.
정후가 돌아서더니 조무사 쪽으로 온다. 워낙 분위기가 차가워서 조무사가 좀 쫄지만.
조무사 : 거기 안치실이 있거든요. 그래서..
하는데 정후가 그냥 팔꿈치로 한 대 갈겨버린다. 한 방에 정신을 잃고 주저앉아 버리는 조무사.
#6. 안치실 앞 쪽 복도
걸어오는 정후. 서두르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으면서. 오다가 한 곳을 문을 열어보고 아니면. 닫고 그 다음으로 이동.
그 다음 문을 열었는데 안에서 나오던 안치실 직원이 정후를 본다. 뭐라 말도 꺼내기 전에 맞고 쓰러진다.
정후는 지금 누구 때문에 지체하는 것도 싫고 머리를 써서 좋게 피하는 일도 싫다. 그냥 직진.
#7. 병원 일각
윤동원이 또 하나의 전화를 하느라고 휴대폰 화면에서 고르고 누르고 하다가 보는 곳.
거기 문호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라..해서 앞을 막으며
윤동원 : 김문호 기자님?
문호는 그저 팬이거니 해서 옆으로 피해가려 하며
문호 : 예. 안녕하세요.
윤동원 : (다시 막으며) 저 윤동원입니다. 사이버팀에 형사. 저번에 우리 전화 했었는데. 여긴 웬일이세요?
#8. 안치실
시신 보관함들 앞에 새로운 침대가 하나. 흰 천으로 덮은 시신.
그곳까지 거침없이 왔던 정후가 주춤거리며 침대로 다가선다.
주춤거리며 떨리는 손을 들어, 멈췄다가.. 얼굴을 덮은 천을 간신이 벗긴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듯 물러나다가 뒤에 부딪혀 겨우 선다.
믿을 수가 없어서 울지도 못하고. 그저 보다가. 떨며 웃는다.
정후 : 아니지?
대답이라도 기다리듯.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어.
정후 : 저번에도.. 그때도.. 이렇게 장난쳤던 거 내가 기억하거든. 그니까 그만하고 일어나지.
사부. 와아. 진짜 심하네. 그만하라고. 좀..
울음이 나오지 않아서 터질 듯한 마음에 숨만 가빠진다.
그제야 보이는. 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누워있는 영재.
#9. 병원 지하층 복도
문호와 윤동원이 함께 오고 있다.
문득 윤동원이 걸음을 멈추며
윤동원 : 어.. 잠시만요.
하더니 옆에 비품실?(적당히)로 간다. 문이 좀 열려 있다.
윤동원이 문을 활짝 연다. 그 안에 조무사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
윤동원이 급히 휴대폰을 건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문호가 마음이 급해지며 앞서 이동한다.
#10. 안치실 앞 쪽 복도
빠르게 걸어오는 문호. 거기 문 하나가 힘겹게 열리고 있다.
문호가 얼른 윤형사가 오는지 돌아보고 그쪽으로 성큼 다가서 문을 열다가 멈칫.
#11. 안치실
문 안 쪽에 기대앉아서 문을 열려는 직원. 맞은 머리?가 아픈지 움켜쥐고..
문호가 얼른 안을 살핀다. 안에 정후는 없는데. 영재의 시신을 덮은 흰 천이 젖혀져 있다.
문호가 후딱 들어가 천을 다시 덮으려고 잡는데.
거의 동시에 윤동원이 들어온다. 문호를 먼저 살피고. 문가의 직원에게
윤동원 : 괜찮으세요? 금방 사람이 올 거에요. (하며 문호를 살피는)
문호 : (영재를 내려다보며, 마치 자신이 천을 벗긴 듯) 영재 형.
윤동원 : 아는 분이시라고요?
문호 : 예. (내려다보는데 마음에 온갖 격동이 일어나고 있다. 애써 누르며) 잘 알아요.
윤동원 : 근데 여긴 어떻게 이렇게 바로 알고 오셨을까요.
문호 : 나에겐 가족 같은 형이에요. 가족이 죽었는데.. 알아야죠. (어쩔 수 없이 핑 도는 눈물. 영재의 손을 찾아 잡는다.
고개를 숙여 영재의 얼굴 가까이에 .. 낮게) 형. 이제 내가 알아서 할게.
윤동원이 슬퍼하는 문호를 보다가 몸을 돌려 통화를 한다.
윤동원 : 기영재 사건. 3반이 맡았다고 했지? 거기 알려줘. 여기 병원에 누가 다녀간 거 같다고.
기영재 때문에 온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암튼..
하다가 돌아보고 어라. 문호가 보이지 않는다.
열려있는 입구를 본다. 거기 도착한 병원 사람들이 다친 직원을 부축해 일으켜 나가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윤동원 : 그리고 내 말 잘 들어. 우리 팀에서 작전에 들어가지 않은 모든 요원. 이제부터 경찰 사이버망을 방어할 거야.
오늘, 늦어도 내일 중으로 반드시 손님이 들어올 거다. 공격 목표는 기영재의 진술내용.
조용히 함정을 놓고 기다렸다가... 잡는다.
#12. 거리 / 낮
정후가 운전하는 차가 달리고 있다. 계속 숨이 반만 쉬어지는 갑갑한 느낌.
그 위로 들리는
젊은영재소리 : 생일엔 미역국을 먹는 거다.
#13. 정후 건물 일각
곤로에 올려져 있는 냄비. 그 안에 들어있는 물. 그 옆에 나란히 쭈그려 앉은 젊은 영재와 어린 정후.
영재 : 생일. 미역국. 그게 상식이란 거지.
정후 : 케잌은.
영재 : 케잌은 남이 만든 거. 이 미역국은 사부가 직접 만들어 주는 것. 비교가 되냐?
정후 : 그러니까 케잌
영재가 찡그린 얼굴로 정후를 빤히 들여다본다.
정후 할 수 없이.
정후 : 만들 줄은 아나?
영재 : 수퍼 아줌마한테 배워왔지. 물.
하며 냄비 속의 물을 가리키고.
영재 : 소고기.
하더니 한 덩이의 고기를 그대로 냄비 물에 넣는다.
영재 : 그리고 미역.
마른 미역 한판을 든다.
영재와 정후가 동시에 그 커다란 미역 한 장을 보고 냄비를 보고. 들어갈 거 같지가 않다.
영재가 가위를 들더니 미역을 숭덩숭덩 잘라 넣기 시작한다.
정후 : 그거 안 씻어도 되나?
영재 : 팔팔 끓이면 다 소독이 되는 거야.
// 시간경과.
놀라서 보고 있는 정후. 그 옆에서 영재도 마찬가지.
그들이 보고 있는 냄비. 안에서 불어난 미역이 냄비뚜껑을 밀어올리며 불어 넘치고 있다.
영재가 국자로 조심스레 뚜껑을 연다. 그러다 둘이 동시에 으어어.. 겁에 질려 뒤로 도망간다.
냄비에서 꾸역꾸역 불어 올라와 사방으로 넘치고 있는 미역.
#14. 국도 / 낮
정후가 운전하는 차가 달린다. 운전석의 정후가 울 것 같은 얼굴로 혼자 웃는다. 그 위로 들리는
정후소리 : (나이 든) 봐봐. 여기. 합격증서.
#15. 정후 건물 일각
나이든 정후가 합격 증서를 보여주며 읽는
정후 :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전 과목 합격했음을 증명합니다. 봤지? 그러니까 이제 주시지.
영재 : (나이 든) 이 망할 넘이 진짜로 합격해버렸네.
정후 : 달라고. 그 가방.
영재 : (침대 밑에서 잠겨진 서류가방을 꺼내 내밀어 주는가 싶더니 가슴에 끌어안는다) 이게 내가 어떻게 구한건데..
이렇게 허무하게..
정후 : 진짜 무공비급이 들어있는 건 맞아? 그것만 배우면 실력이 딱 세배 는다고 했지. 아니기만 해.
영재 : 사람에 따라 좀 다르긴 할 거야. 너처럼 백지 상태에서 이걸 익히면 효과가 좀 더 있을 수도 있고.
정후 : 내놔. 약속했잖아.
뺏기지 않으려고 움켜쥐는 영재에게서 억지로 가방을 뺏는 정후. 좋아서 자기 침대로 간다.
영재가 슬금슬금 거리를 벌려 저만치 가며 이리저리 춤 스텝을 밟아본다.
정후. 침대에서 가방을 열었다가 멈춘다.
정후 : 이게 뭐야.
영재 : (좀 더 멀어지며) 그거 진짜 구하기 힘든 것들이거든?
정후가 가방을 뒤집어 쏟는다. 쏟아지는 각종 성인잡지들과 비디오 테이프.
정후 : 이 변태..
정후가 영재를 잡으러 달린다. 벌써 도망가고 있는 영재.
#16. 문식의 집 근처 길 / 낮 (혹은 다른 경치 좋은?)
정후의 차가 달려오고 있다.
운전석의 정후가 바라보는 길이 자꾸 초점이 맞지 않는다. 눈을 비빈다.
그 때 정후의 차 옆을 거칠게 추월해가는 차 한 대가 저 앞에서 정후의 차를 가로막으며 급정거를 한다.
정후가 겨우 급브레이크로 차를 세웠다.
앞의 차에서 뛰어내리는 문호. 이쪽으로 달려온다.
정후가 차를 옆으로 빼서 가려는데 달려온 문호가 앞을 막는다. 비킬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정후가 운전석의 문을 열고 내린다.
문호가 앞을 막는데. 밀쳐버리고 걸어간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게 그냥 짜증난다.
차를 막으면 걸어서 갈 생각이다.
문호가 그 옆을 따르며
문호 : 어떤 여자 분이 전화를 했더라. 분명히 니가 일루 올 거라고. 늦기 전에 막아달라면서. 잠깐만 서봐.
(팔을 잡으며) 정후. 니가 그 놈을 죽일 거라고. 너... 아니지?
정후 : (거칠게 뿌리치는) 좀.. 비켜.
문호 : (악착같이 앞을 가로막으며) 하지 마. 그런 놈들 때문에 살인범이 되겠다고? 니가 왜.
정후가 더 말도 하기 싫어서 문호를 밀치고 가려는데.
문호가 그대로 정후를 끌어안는다.
정후가 떼어내려고 옆구리를 치고 무릎으로 찬다. 고스란히 맞으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문호가 놓지 않는다.
정후가 그대로 밀쳐서 차에 거칠게 부딪히면서도 정후를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는다.
초조한 정후가 뿌리치려고 실갱이를 하다가 둘이 같이 옆의 낮은 비탈로 구른다.
그 바람에 정후를 놓치는 문호.
정후가 일어나 비탈로 올라가려는데 문호가 악착같이 달려와 뒤에서 또 끌어안는다.
정후가 반사적으로 팔꿈치로 거칠게 가격한다. 갈비뼈를 다치며 무릎이 꺾이는 문호.
정후가 돌아본다. 한 대 더 치려다 보면 문호가 가슴을 끌어안고 힘들어하고 있다.
문호와 몸싸움을 하는 바람에 그나마 정후의 정신이 좀 돌아왔다.
문호 : (고통을 참으며) 영재형도 이건 아니라고 할 거야. 알지?
정후 : 좋아. 그럼.. 어떻게 하면 돼.
문호 : 내가 찾아볼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정후 : 뭔 소리야. 지금 알려달라고. 지금. 내가 뭐든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내가 뭘 하면 되는지! 말 좀 해달라고!
문호 : 나도 그랬어. 지난 이십년 넘게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힘들었어.
정후 : (보다가 어이없어 웃는다. 미치겠다)
문호 : 그러니까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줘. 반드시 찾아낼게.
정후 : 내가.. 사부를 불렀거든. 오기 싫어하는 사람을.. 내가 불렀다고.
문호 : 정후야.
정후 : 말하기 싫다는 거 말하게 하고. 말했다고 화내고. 화내느라고 팔년 만에 왔는데. 밥 한끼 같이 안 먹었어.
근데 이 영감탱이가.. (울컥 울음이 목을 막는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문호 : (안타까워 보다가) 그냥 울어.
정후 : (울음이 나오지 않아. 다시 숨이 차다. 옷깃을 잡아당긴다)
문호 : (마음이 아파서) 울어도 괜찮아. 그니까 울어. 정후야.
정후 : 이 망할 변태 영감탱이가..
더 할 말은 모르겠고, 터질 것 같은 마음 때문에 정후가 소리를 지른다. 그러더니 비틀비틀 차 쪽으로 올라간다.
문호가 정후를 따라간다. 정후가 차에 올라탄다.
문호가 그 문을 닫기 전에 잡더니.
문호 : 약속해. 앞에 보이는 저것들, 그 맨 뒤에 있는 놈까지 끌어낼 거야.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할게.
정후가 문을 잡아당겨 닫으려 하는데. 문호가 문을 버티며
문호 : 날 믿어봐.
정후 : 어떻게.
문호 : 정후야.
정후 : 날 말리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는데.
정후가 빤히 문호를 본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문호가 문에서 손을 뗀다.
쾅 닫히는 문. 정후가 차를 출발시킨다. (백을 해서?) 유턴을 하더니 왔던 길로 돌아간다.
그 차를 보고 있던 문호. 가는 정후의 차와 엇갈려서 다른 차 하나가 오고 있다.
문호가 보는 앞을 지나쳐, 비스듬하게 세운 문호의 차 때문에 피해서 문식의 집 쪽으로 달려간다.
차 안에는 기자들 두 명이 보인다.
#17. 문식의 집 정원
오비서가 안내하고 아까 차 안에서 봤던 두 명의 기자가 뒤를 따른다.
그 중의 하나는 기자. 하나는 포토. 사진 기자가 주변의 풍경 몇 장을 찍는다.
오비서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조신하게 기다려준다.
#18. 문식의 부엌
명희가 휠체어를 밀고 나오다가 속도를 줄인다.
부엌 쪽에서 포토 기자가 부엌 살림들을 사진 찍고 있다.
기자가 명희를 먼저 발견하고.
기자 : 어이구 사모님 나오셨네요. (명함을 꺼내 들고 오며) 월간 아시아에서 나왔습니다.
명희 : (명함을 받으며) 어서 오세요. (미소지어주는)
문식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명희에게 다가오며.
문식 : 아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당신 쉬어야 되는 시간인데.
다정하게 명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내려다본다.
카메라기자가 재빨리 그 장면을 찍는다.
문식이 당황스럽다는 듯 기자를 보고 웃는다. 명희도 웃는데 어쩐지 굳어있다.
기자 : 이왕 찍히신 김에 몇 장 더 하죠. 김사장님..하면 또 잉꼬부부의 전설 아니십니까.
문식 : (웃으며 명희를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괜찮겠어?
명희가 미소 짓고. 손을 들어 자기 어깨 위에 얹힌 문식의 손을 잡는다.
둘이 포즈를 취하고 앞에서 카메라가 찰칵.
문식이 명희에게 좀 더 가까이 하며 찰칵.
// 시간경과
명희가 메이드의 도움을 받아 차와 한과를 준비하고 있다. 서재에 들여갈 것이다.
명희가 접시에 보기 좋게 한과를 담다가 서재 쪽을 본다. 휠체어를 밀어 간다.
서재 앞에 도달해 서재 문을 조용히 열어본다. 안에서 인터뷰하는 소리가 들린다.
굳이 안을 볼 생각은 없이 귀를 기울여 듣는다.
기자 : 이번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하시는 거. 사실 어려운 결정이셨을텐데요.
#19. 문식의 서재
문식과 기자가 마주 앉아 인터뷰 중.
사진 기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고 있고. 한쪽 구석에 오비서가 조용히 서 있다.
기자 : 김의찬 전후보가 불미스럽게 사퇴한 자리 아닙니까? 게다가 김사장 님께선 정치 경험도 없고 말이죠.
문식 : 바로 그 정치경험이 없어서 제가 잡혀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후보의 문제 때문에 현재 우리 당에서 가장 내세워야 할 게
투명성. 신뢰성. 이런 거거든요. 제가 이게 약점이기도 한데. 속과 겉이 똑같습니다. 뭐 숨기질 못합니다. 참 큰일이죠?
문식이 허허 웃고 앞의 기자도 웃는다.
그렇게 웃는 문식의 얼굴을 놓치지 않고 찍는 사진기자.
#20. 썸데이 편집실
영신이 휴대폰을 들고 상대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앞에서 장부장이 보고 있다가.
장부장 : 안 받아?
영신 : (고개를 젓는다)
장부장 : 아니 밤새 같이 있었대매.
영신 : (전화를 끊으며) 그니까요. 아침 운동 간다고 나갔는데. 아침 같이 먹으려고 암만 기다려도 안 오는 거에요.
여기자 : 박봉수 기자가 무서우면 일단 도망가는 버릇이 있지 않습니까? 그니까.. 간밤에 혹은 새벽에 뭔가 무서운 걸 본 겁니다.
(하며 영신을 보는)
영신 : 나.. 뭐요.
여기자 : 도대체 채기자가 무슨 짓을 했길래 박봉수가 새벽같이 도망을 갔을까. 전화도 한통 못할까. 회사까지 안 나올까.
몹시 알고 싶습니다.
영신 : (에이 진짜..)
떠드는데 입구에서 들리는 소리.
문호 : 박 봉수. 며칠 쉽니다. 저도 좀 늦었네요. 30분 후에 회의하겠습니다.
하면서 오셨습니까.. 분분히 인사하는 직원들에게 손만 들어 보이며 바로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영신이 부지런히 자기 책상으로 간다. 프린트 종이를 찾는다.
종수가 영신의 옆으로 슬쩍 다가서며 몹시 친근하게. 수줍게
종수 : 아침.. 맛있었습니다. 제가 제 아파트에서 혼자 자취를 하다보니까요. 집밥이 그리워서 가끔 목이 메었거든요.
그런데.. 영신씨가 직접 차려 준 밥을.. 마주앉아서..
하다가 돌아보면 영신이 있던 자리에 여기자가 서서 빤히 보고 있다.
종수 아 깜짝이야. 싶은데.
여기자 : To infinity, and beyond!
종수 : 뭐요?
여기자 : 무한한 공간. (한 손을 뻗치며) 저 너머로
하더니 영신의 책상에서 가위?를 집어 들고 간다.
#21. 문호 집무실
문호가 웃옷을 옷걸이에 거는데 노크 소리.
문호 : 예.
영신이 문을 열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이밀며
영신 : 잠깐 상의드릴 게 있는데요.
문호 : 들어와.
영신 : 우리가 이번에 김문식 사장을 취재하잖습니까.
하면서 들어온다. 손에 프린트물 한 장을 들고 있다.
문호 : 그런데.
영신 : 솔직히 김문식의 구린 뒤를 캐는 게 목적이고요.
문호 : 맞아.
영신 : 그러니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만나서 물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당신이 이러저러하게 구리다고 생각한다. 맞는가? 하고요.
문호 : (미소) 그러네.
영신 : 문제는 과연 우리 인터뷰 요청을 허락해 줄 것인가. 요건데. 어떻게 빽 좀 쓸 수 없을까요? 친형님이시잖아요.
문호 : 오늘부터 아니야.
영신 : ..예?
문호 : 내가 결정했어. 김문식하고 나. 형제 아니야. 이제.
영신 : 아..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형제끼리는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은...흠. 그럼 제가 직접 접촉해보겠습니다.
문호 : 김문식을 만나겠다고.
영신 : 사실은 그 부인을 만나고 싶어서요.
문호 : (멈췄다)
영신 : (들고 있던 프린트 종이를 보여주며) 옛날 기사를 찾다가 본 건데요. 김문식사장이 부인하고 그렇게 사이가 좋대요.
여기.. 이 분이 부인. 아참.. 잘 아시겠구나. 형수님이니까. 아이구 헷갈려.
문호가 말없이 종이를 받아 들어 본다. 영신이 어제 밤 찾아낸 기사를 프린트한 것이다.
거기 문식과 명희가 나란히 찍은 사진이 있다.
영신 : 이 두 부부의 사이가 장난 아닌 모양입니다. 기사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더라고요. 영혼의 남매. 영원한 순정. 원앙의 전설..
문호 : (애써 평온하게) 그래서.
영신 : 저.. 선배가 김문식사장을 나쁘게 생각하시는 거 압니다. 서울 시장이 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믿는 것도 알고요.
가까이 있었으니 잘 아시겠죠. 근데요 (눈치를 보는)
문호 : (끄덕인다. 계속하라고)
영신 : 그냥 저의 감상적이고 신파 돋는 생각이지만요. 이렇게 한 사람을 평생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우물쭈물...)
문호 : 내 생각은 편파적일 수 있으니까. 직접 만나서 판단하고 싶다.
영신 : .. 죄송합니다. 먼저 그 부인을 만나보고 싶은.. 데요.
문호 : (헛기침을 해서 마음의 동요를 감추고) 생각해보자.
영신 : (밝아져서) 감사합니다. 그럼 전.. (문을 열려다가 멈춰 돌아보더니) 박봉수가 선배한테 연락한 거에요? 못 나온다고?
문호 : 아프대.
영신 : (놀라서) 어디가요. 다쳤대요?
문호 : 감기.. 아닐까.
영신 아.. 하더니 나간다.
문호가 닫힌 문을 보다가 손에 들린 종이를 다시 본다. 거기 웃고 있는 문식과 명희.
#22. 탕비실
영신이 문을 닫고 탁자로 앉으며 계속 문자를 찍고 있다.
영신소리 : 박봉수. 감기야? 아파? 전화도 못해? 그럼 문자라도..
의자에 앉으며 자기가 찍어놓은 문자를 본다. 안되겠다. 도로 주루루 지운다.
다시 찍기 시작한다.
영신소리 : 봉수야.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턱을 괴고 방금 자기가 찍은 문자를 내려다본다. 하나씩 도로 지운다. 그리고 다시 친다.
[ 이름이 뭐에요? ]
보다가 다시 지운다. 빈 화면만 남았다.
#23. 민자의 아지트
어두운 공간에 빛을 내고 있는 모니터들.
그 중에 한 모니터에 영재의 얼굴이 있다. 신분증에 넣은 사진인 듯.
민자가 소주병과 잔을 들고 온다. 잔을 채워서 모니터의 영재에 대고 건배를 하더니 한잔을 다 마신다.
다시 잔을 채우더니 그 모니터 앞에 놓는다. 나름대로의 예식이다.
아예 소주병을 들어 두어모금 더 마시고 병을 놓는다.
두 손을 올리더니 머리칼을 끌어올려 묶는다.
민자 : 어이 정치범. 내가 이제부터 내 잠자고 있던 초능력을 좀 끌어내 볼라 하니까. 거기서 응원 좀 해봐.
두 손을 들어 손가락을 풀며 의자에 앉는다.
민자 : 윤동원. 기다리고 있나.
다다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추기 시작한다.
#24. 경찰서 복도
윤동원이 달려오고 있다.
#25. 사이버팀
문을 박차고 달려 들어오는 윤동원.
거기 몇 명의 부하들이 컴 앞에 매달려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작업을 하며 빠르게 보고한다.
부하 : 우리 경찰망에 백도어를 심어놨던 거 같습니다.
윤동원이 그 부하를 잡아채어 비키게 하더니 자기가 그 앞에 앉으며
윤동원 : 상황이 어때
부하 : 좀 이상해요. 한꺼번에 파생적으로 들어와요. 이런 건 처음 봅니다.
윤동원 : 난 여러 번 봤었지.
미친 듯이 C언어를 쳐 넣기 시작하며
윤동원 : 딱 이런 모양으로 치고 빠지고 귀신같이 사라졌다가.. 전혀 예상 못한 골목에서 나타나고.. 봐. 딱 이렇게.
어쩐지 즐거운 얼굴.
#26. 과거 회상 / 골목길 / 밤
2000년도. 봉고차 내부. 사이버팀 형사들(이십대 후반 30대 초반 정도 나이)이 5명 타고 있는 차 내부.
젊은 민자가 조수석에서 눈이 감기고 있던 젊은 윤동원의 머리통 뒤를 딱 때리며
민자 : 딱 이렇게...
동원 : 아아.
민자 : 졸다가 걸리면 뒤집니다.
동원, 에이씨.. 소리는 못 내고 욕하는데.
민자는 깔끔하게 뒤로 묶은 머리. 검은 바지 세미정장. 안경.
봉고차 안의 사이버팀 형사들은 꽤 오랫동안 이 안에서 잠복 중.
민자 : 우리가 지난 넉 달 동안 쫓은 놈들이 저 안에 있어요. 영장 떨어지는 대로 습격하는데.
절대. 놈들이 컴퓨터를 만지게 해선 안 됩니다. (윤형사 뒤통수를 또 따악 때리는)
윤동원 : 아 아퍼요 진짜.
민자 : 지난 번 세운상가에서 이놈처럼 우물쭈물, 오락가락. 정신 놓고 헤매다가 놈들이 파일 다 삭제하실 때까지 기다려주면
된다 안된다?
형사들이 킬킬 웃는.
민자 : 현관문 따는 즉시 달려요. 무조건 놈들의 컴퓨터 먼저 확보하세요.
윤동원 : 근데 그놈의 영장은 언제 오는 건데요.
민자 : (또 때릴 듯 손을 든다)
윤동원 : (재빨리 막는 자세)
민자 : 지금 몇 시냐?
윤동원 : (시계 보며) 지금..
민자 : (그 틈에 딱 때리며) 얜 어떻게 이렇게 학습이 안 되냐. 매번 걸려.
#27. 민자 아지트
민자가 빠르게 타자를 치고 있다.
#28. 사이버팀
윤형사가 빠르게 타자를 치고 있다.
#29. 과거 회상 / 골목길 공중전화 앞 / 밤
윤동원이 어정거리며 춥고 졸려서 하품을 하며 돌아보는 곳.
공중전화에서 민자가 전화를 하고 있다.
윤동원이 슬금슬금 가까이 가며 통화를 엿듣는다.
민자 : 글쎄 오늘은 정말 안돼. 내가 없으면 곤란하다고. 우리 팀 애들이 아직 너무 어려서 맡길 수가...
(듣다가) 금방 끝날 거야. 끝나는 대로 갈게.
상대가 소리를 지르는지 민자가 수화기를 귀에서 뗀다.
그 바람에 저쪽에서 민자의 남편이 소리질러대는 게 윤동원에게도 들린다.
남편소리 : 니가 그러고도 엄마야? 조민자. 너 당장 안 와.
민자 : (다시 귀에 대고) 알았어. 가. 지금 간다고.
전화를 끊고 돌아서던 민자가 윤동원을 봤다. 걸어간다.
윤동원 : (옆을 따르며) 많이 아프대요? 아드님.
민자 : (걷기만)
윤동원 : 몇 살이라고 했죠?
민자 : 네 살.
윤동원 : 어휴. 네 살짜리가 그동안 수술을 몇 번이나 받은 거야.
하다가 민자가 째려보는 바람에 머쓱.
윤동원 : 그냥 병원 가보세요. 여긴 우리가 어떻게 해보지 뭐.
하는데 저만치 어둠속에서 달려오는 형사 하나. (차 안에 있던)
형사 : 영장 떨어졌댑니다.
윤동원이 민자를 돌아본다.
민자.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빠르게 움직이며
민자 : 가자.
#30. 사이버팀
/ 자기 컴에서 작업을 하던 윤동원의 부하 하나가
부하 : 왔습니다. 함정으로 들어왔어요.
윤동원 : 잡아.
형사들이 저마다 빠르게 키보드..
#31. 민자 아지트
모니터를 노려보던 민자가 따악 엔터를 친다.
#32. 사이버팀
윤동원이 놀라서 본다.
모니터에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하는 이상한 기호들. 모니터에 떠 있던 글자들을 다 지우며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다른 부하 형사들이 급해서 각자의 키보드를 치며
부하 : 바이러습니다. 어..어..
윤동원이 보다가 허허 웃는다. 허.. 허..
#33. 민자 아지트
모니터 하나에서 자료 하나가 다운로드 되고 있다. 다운로드바가 빠르게 채워진다. 60 70 .... 100%
그 모니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민자. 승리를 했는데 어쩐지 우울한 얼굴. 기억 속의 소리.
남편소리 : (울음이 가득해서) 니가 엄마야?
#34. 병원 일각 (옛날식)
민자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앞에 벽에 기대 아예 바닥에 주저앉은 남편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민자를 본다.
남편 : 니가 어떻게 엄마야. 엄마면... 엄마라면.. 적어도 애가 죽을 땐. 그 옆에 있어줘야지.
#35. 경찰서 일각 비상계단?
인적이 드문 곳. 민자가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다.
그 옆에 상관으로 보이는 신사복
상관 : 자네들 고생한 건 아는데. 상부지시야. 덮어. 압수한 자료들은 깨끗하게 삭제하고. 내 말 듣고 있어?
민자 : (그저 그대로)
상관 : 한 글자도 남기는 거 있음 안 되는 거 알지?
#36. 민자 아지트
민자가 소주병을 들더니 모니터의 영재에게 건배를 하고 마신다. 크으.. 술이 쓰다.
#37. 정후 아지트
창 밖은 낮. 조용한 내부. 쓰레기도 보이지 않는 소파 쪽. 흩어져 있는 침대.
아직 정후는 보이지 않는다.
꺼져 있던 모니터들이 일제히 켜지며 민자의 캐리커처가 뜬다.
민자소리 : 니 사부. 진술 녹화 한 거. 빼왔다. 내가 먼저 봤는데. 이거... 아무래도 형사가 아니라 너한테 하는 진술 같어.
화면에 영재가 뜬다. 조사실에서 진술 장면을 찍은 화면이다.
영재가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는다.
// 운동실 쪽. 뒹굴고 있는 덤벨. 던져져 있는 라켓. 쓰러져 있는 뭔가..
그 위로 들리는 윤동원과 영재의 소리.
영재소리 : 출소하고 일년 뒤부터 힐러 일을 시작했어요. 힐러라는 이름은 학교 때 친구들하고 같이 만들었던 잡지 이름이었고.
폼나잖아. 힐러.
운동실 구석. 계단에 웅크려 앉아 있는 정후. 멍한 얼굴로 듣고 있다. 초췌한 얼굴. 흩어진 머리.
윤동원소리 : 가장 최근에 맡은 일이 뭐였죠?
영재소리 : 제일신문 사주. 김문식이라고 알지요? 그 놈 일을 했지요.
// 모니터에 보이는 영재. 윤형사를 향해 말하고 있다.
영재 : 내 일이란 게 그래요. 돈만 주면 뭐든지 해. 도덕? 정의? 그딴 거 생각 안 해. 아.. 좀 생각하고 살걸 그랬어.
그게 사실 안내판 같은 거잖아.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겠을 때 딱.. 안내판. 일루 가면 절벽. 여기는 공사 중.
여기서 돌아가시오.
정후가 어슬렁어슬렁 모니터 쪽으로 온다.
윤동원 : 고성철이라고 아실래나. 엘에이에서 온 놈인데.. 죽였어요? 의뢰 받고?
영재 : 그런 의뢰는 안 받아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사람이 아닌 거가 되는데. 어우. 아무리 그래도 사람으로 죽어야지.
그래야 다시 만나거든. 만나고 싶은 사람. 먼저 간 사람.
이제 모니터 앞에 선 정후, 보고 있다.
영재 : 한 가지 후회되는 건. 진작 그만둘걸. (카메라를 똑바로 본다. 정후를 똑바로 보듯)
그만두고. 좋아하는 여자랑 아이 둘.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 금붕어도 세 마리. 키우면서 살 걸. 그럴 걸. 응?
화면이 멈춘다.
정후가 언뜻 정신이 들며
정후 : 왜.
민자소리 : 그 뒤는 볼 거 없고.
정후 : 왜.
민자소리 : 들을 말 다 들었잖아. 니 사부의 유언. 좋아하는 여자. 애 둘. 개. 고양이. 붕어까지.
정후 : ...
민자소리 : 위장 신분 하나 더 만들어줄까. 아님 박봉수. 제대로 뿌리박게 해줘?
정후 : (좀 웃는다)
민자소리 : 퇴직금이라고 생각하고. 해줄게.
정후 : 늦었어.
민자소리 : 뭐가.
정후 : 그 애.. 다 알아. 내가 누군지.
스치는 기억.
영신소리 :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데..
#38. 회상 / 13회 #65. 까페
영신이 몸을 돌려 정후의 어깨를 스쳐 지나간다. 둘의 팔이 스친다.
정후가 뒤늦게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늦었다.
#39. 정후 스튜디오
민자 : 뭔 소리야. 채영신이 안다고? 뭘. 니가 힐러인 걸 알어? 다 아는데 가만있다고?
정후 : 아니다. 다 아는 건 아니지. 아마 그건 모를 거야. 내 옆에 있으면 아프다는 거. 심지어.. 죽기도 한다는 거.
민자소리 : 뭐래는 거야아.
정후 : (후우 숨을 쉬고) 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네. 잠이나 자야겠다.
민자소리 : ..그래 쉬어라. 근데 채영신이가 진짜..
정후 : 아줌마.
민자소리 : 왜.
정후가 몸을 숙여 컴퓨터 전선들이 꼽힌 콘센트를 집어 든다.
정후 : ... 그냥 불러봤어.
하나씩 뽑아낸다. 영재의 웃는 얼굴이 정지되어 보이던 모니터도 꺼진다.
모니터 앞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집어 든다. 받지 않은 통화나 문자 기록이 주루루 떠 있다.
대부분 채영신. 사이사이 김문호.
잠깐 보다가 배터리를 뽑아 던져놓는다.
시계를 빼놓는다. 반지를 빼서 툭 던져 놓는다. 던져진 반지가 테이블 위에서 데구르르 구르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창문. 환하던 창문 밖 풍경에 어둠이 깃들고 밤이 된다.
#40. ABS 방송국 로비 / 낮
민재가 다른 남자 직원과 걸어오고 있다. 민재가 뭔가 지시를 했는지 남직원이 끄덕이며 듣는다.
그러다 민재의 시선이 문득 앞에 멎는다.
저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던 문호가 민재를 보고 있다. 잔뜩 미안하다는 얼굴로.
민재가 표정 없이 외면하며. 걷던 속도를 멈추지 않고
민재 : (직원에게) 10분 꼭지를 풀로 채울 거라서 인터뷰만 갖고 어림없어. 어떻게든 그림 거리를 찾아봐.
하면서 문호의 바로 앞을 지나쳐 간다.
함께 가던 직원이 문호를 보고 놀라서 웃으며 고개 숙여 보인다.
문호가 한 손을 들어 보인다.
민재는 여전히 못 본 척 가며 하던 말 계속.
민재 : 후원회의 밤이 언제라고 했지?
문호. 그냥 선 채 기다린다.
저만치 멀어지던 민재. 결국 멈추는가 싶더니 이쪽을 돌아본다.
문호가 가슴에 한 손을 얹고.. 후우.. 안심했다는 시늉.
#41. 방송국 회의실
긴 테이블이 있는 빈 회의실 끝에 민재가 앉아있다.
문호가 테이크아웃 커피 하나를 건네주고 건너편에 앉는다.
그런 문호를 빤히 보고 있는 민재.
문호 : (불쑥) 미안해.
민재 : 그래. 미안할 거야.
문호 : 시말서.. 썼어?
민재 : 썼어. 다행히 자리는 보전하고.
문호 : (너스레) 당연하지. 너만한 놈 없어. 이 방송국에.. (하다 보면)
민재 : (빤히 보며 미소)
문호 : (수그러들며) 미안해.
민재 : 미안하단 말만 하러 온 건 아닐 거고. 왜 왔어.
문호 : 진짠데. 사과하러 온 건데.
민재 : 괜찮아. 니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으니까. 내가 가끔 그걸 잊어서 문제지.
문호 : 나.. 그렇게 형편없나?
민재 : 왜 왔냐고.
문호 : 어렸을 때 친했던 형이 있는데. 얼마 전에 죽었어.
민재 : 그런데.
문호 : 아마 내가 아는 사람이 죽인 거 같아.
민재 : 너 지금 나한테 무슨 제보라도 하는 거야?
문호 : (미소로 보면서 계속) 또 어려서 나랑 친했던 애가 하나 있는데. 그 놈이 며칠째 연락이 안 돼. 오늘이면 사흘째지.
민재 : 김문호.
문호 :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여기 주소록에 보면 말이야. 그룹이 있잖아. 직장. 가족. 친구.
근데 그거 알어? 내 친구 그룹에는 이름이 하나 밖에 없다. 강민재. 너.
민재 :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문호 : 그래서 그 친구한테 얘기하러 왔어. 내가.. 얘기할 데가 없더라고. 좀 외롭고 불쌍해 보이지?
민재 : 니가 외롭다고 친구 찾는 종자는 아니고.
문호 : 심하네.
민재 : 무서운 거네. 사실은 너 겁이 많잖아.
문호 : ... 내가?
민재 : 남들은 너. 용감하다 그러는데. 아니. 넌 언제나 다치지 않을만큼만 싸워. 정말 무서운 상대를 만나면 미리 도망가지.
뭔가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문호 : (더 웃어지지 않는) 그랬나.
민재 : 그러니까 니가 오늘까지 살아남은 거지. 챙피해 할 건 없어. 우린 다 그러니까.
문호.. 대답을 못하고 본다.
#42. 어느 단독주택 동네 / 낮
영신이 집들의 주소를 확인하며 걷고 있다. 손에 든 종이를 다시 본다. 박봉수의 인사기록표를 복사한 것이다.
(인터뷰 등 일하는 와중이라 조금은 단정한 옷차림)
#43. 동네 부동산 외경
유리창으로 보이는 내부.
영신이 부동산 주인에게 인사기록표의 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44. 부동산 내부
주인이 고개를 젓는다.
주인 : 그런 주소 없어요. 내가 여기서 부동산한지 십년이 넘는데?
#45. 골목길
저만치서 썸데이 차,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던 종수가 손을 흔들어댄다. 자기 시계를 가리키며 늦었다고.
걸어가던 영신이 그리로 뛰어간다. 조수석에 타고 출발하고.. 그 위로 ..
영신소리 : 우리 썸데이. 지금 김문식 특집 때문에 완전 총력전이거든. 사람이 부족해 죽겠다고.
그런데 봉수 너 뭐하냐고. 아프면 아프다고 전화하기 싫으면 싫다고. 전화 좀 하라고.
#46. 까페?
한 구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영신과 어떤 50대의 남자. (과거 제일신문사 재무부장)
그들을 촬영하고 있는 종수.
영신 : 97년 당시 제일신문 사정이 아주 안 좋았었죠?
부장 : 그 때 오너 쪽에선 신문사를 매각하려고 했죠. 근데 뭐 인수하겠다는 회사도 없고. 주식거래도 안 되고요.
그 인터뷰 내용과는 상관없이 계속되는 영신의 전화녹음. 앞의 녹음과는 다른 날 한 거라서 말하는 톤도 다르게.
영신소리 : 오늘이 4일째거든요. 박봉수씨? 이렇게 오래 제멋대로 무단결근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47. 까페 근처?
종수가 차에 카메라를 실으며 힐끔거리고 보는 곳.
영신이 저만치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화가 나서 이리저리 서성이며.
영신 : (저 혼자 열 받아서) 넌 이미 늦었어. 넌 벌써. 내 용서를 구할 마지막 타이밍을 놓쳤다고.
이제 날 찾아와서 죽자고 빌어봤자 완전 물 건너갔거든요? 끝이라고. 디앤드! 쫑!
#48. 썸데이 편집실
문호가 자신의 방에서 나오면서
문호 : 이번 주말. ABS에서 김문식의 대담이 있댑니다. 생방송으로요. 우리는 그거 받아서 시간차 공격 방송을 해볼까 하는데.
장부장. 여기자. 찬영. 선재. 종수 등이 일어서거나 문호가 있는 쪽으로 모여들거나 하며 어느새 익숙해진 편집실 회의모드.
장부장 : 시간차 공격 방송이요?
문호 : 대담을 하면서 김문식이 뭔가 대답할 거 아닙니까? 뭐 좋아하세요? 김치찌개 좋아합니다.
그럼 우린 십분 내에 그에 대한 방송을 하는 거죠. 과연 김문식은 김치찌개를 좋아하나? 그 말은 진실인가?
장부장 : 아니. 그럴려면 공중파 대담 중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갈지 미리 알아야 되는데요.
문호 : 알아내야죠. 한 가지 유리한 점은 그들은 자유대담을 안 할 거라는 점. 미리 짜여진 질문에 짜여진 대답만 할 거니까..
장부장 : 그니까 그걸 어떻게..
문호 : 종수야.
종수 : 예?
문호 : 너 이왕 스파이 하는 김에 이중스파이 안 할래?
종수 : 저기요. 선배. 저는 석 달 후면 제일신문에 차장급으로 특채가 될 몸이거든요.
문호 : 안할래?
종수 : 대담방송 대본 빼오면 되죠?
문호 : 그렇지. 그리고.. 채영신이 어디 갔지?
하며 둘러보는.
#49. 썸데이 스튜디오
불도 켜지지 않은 스튜디오 구석에 채영신이 아예 바닥에 앉아 전화를 하는 중. 기다리고 있다.
신호음이 계속과 함께 들리는 녹음소리.
소리 :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영신이 기다렸다가..
영신 : 나 채영신인데.. 오늘 오일 짼데.. 혹시..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기다리겠다고 해서. 못 오나?
기다리지 않는다고, 걱정말라고 했어야 했나? 그럼.. 취소할까?
더 할 말이 없다. 전화를 끊는다. 무릎을 안고 흔들흔들..
그러는데 문이 열리며 문호가 들어온다.
영신이 놀라서 일어나다가 넘어질 뻔.
문호 : 뭘 그렇게 정신 놓고 있어.
영신 : 정신 차렸습니다.
문호 : (방의 불을 켜고 벽에 기대 영신을 보는)
영신 : (불편해서) 죄송합니다. 회의.. 했어요?
문호 : 휴대폰 줘봐.
영신 : (이크..해서 휴대폰을 넘겨주며) 다음부터는 근무시간에 사적인 전화는 하지 않겠습니다. 진짜로..
문호가 휴대폰에 번호를 찍더니 돌려준다.
문호 : 그 번호. 저장해 놔라.
영신 : (얼른 휴대폰을 준비)
문호 : 이름은 (잠깐 멈칫했다가) 최명희. 김문식의 부인이야.
영신 : (좋아서 얼른 저장하며) 감사합니다.
문호 : 니가 직접 전화해서 인터뷰 허락 받아봐.
영신 : 알겠습니다. 근데요. 영 안 될 거 같으면 선배 이름 좀 팔아도 돼요?
문호 : ... 그래.
영신 : 아싸. 그럼 저 지금 바로 통화해보겠습니다.
문호 : 응.
영신, 좋다고 나간다.
문호 혼자 남은 채. 후우.. 참았던 듯한 긴 숨을 내쉰다.
#50. 썸데이 편집국 탕비실
영신이 휴대폰에 수첩과 볼펜까지 챙겨 들고 들어온다. 문을 닫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좋아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키려 부르는 노래.)
영신 : 시계소리 멈추고 커튼을 내려요. 화병 속에 밤을 넣어 새장에 봄날을..
커피를 한잔 따르고 테이블 앞에 앉는다. 아아.. 발성을 가다듬으며 휴대폰을 본다.
#51. 문식의 서재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명희. 서재에는 아무도 없다.
휠체어를 굴려 책상 쪽으로 똑바로 온다. 책상을 쓰다듬어 서랍을 열어보려 하지만 잠겨 있다. 모든 서랍이 다 잠겨 있다.
휠체어를 밀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다가 멈추고 돌아본다. 다가서 감춰져 있는(?) 스위치를 누른다.
서가의 한쪽 면이 열리며 그 안에 있던 모니터들이 드러난다.
그 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명희가 움찔 놀랐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든다. 받아서
명희 : 여보세요.
영신소리 : 안녕하십니까. 저는 썸데이뉴스의 채영신기자라고 합니다. 최명희 사모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명희 : 제가 최명흰데요.
#52. 탕비실
영신 : 안녕하세요. 이렇게 불쑥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명희소리 : 이 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영신 : (조심스레) 김문호 선배가 가르쳐주셨습니다. 저희 사장님이요.
이제 둘이 한 화면.
명희 : 우리 문호가 사장? 방송국 기자가 아니고?
영신 : 저희 썸데이뉴스로 오신지 좀 되셨습니다. 모르..셨습니까?
명희 : 몰랐어요..
영신 : 어.. (난처해서 웃는) 비밀이었나.. 어쩌지. .
명희 : 문호가 이 번호로 전화해보라고 한 거에요?
영신 : 제가 사모님하고 꼭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졸랐거든요.
명희 : (미소) 신기하네. 나, 사람 안 만나는 거 알면서.
영신 :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만나 뵙고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요.
명희 : 제 남편이 이번 시장후보로 나서는 일 때문이지요?
영신 : 서울 시장이 되실지 모르는 분이잖아요. 그거 엄청 중요한 자리거든요요. 천만 넘는 우리들의 살림. 생명..
이런 걸 맡겨야 되는데. 그래서 알고 싶었습니다. 김문식후보님을,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 계신 분께선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열을 내어 설명하는 영신의 말을 명희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어지며 듣다가.
명희 : 기자분 목소리가..
영신 : 예?
명희 : 듣기 좋네요.
영신 : 아... 저요? (에..헤헤 웃어서) 목소리보다 외모가 좀 더 낫다고 다들.. 농담이었습니다.
명희 : (웃고)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좀 줄래요?
영신 : 물론입니다.
명희 : 마음이 결정되면 이 번호로 연락하면 되죠.
영신 : 제 이름은 채영신이라고 하고요. 문자로 한번 더 넣어드리겠습니다.
명희 : 그래요. 연락할께요.
영신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영신 : 감사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명희가 먼저 전화를 끊는다. 휴대폰을 내려다본다. 어쩐지 남는 목소리.
영신이 전화를 끊고 예쓰. 기분이 좋아 커피를 마시다가 어쩐지.. 느낌이 남아 휴대폰을 다시 내려다본다.
#53. 민자 아지트
민자가 오락가락 서성서성.. 그러다 전화 왔다는 음이 들리자 후딱 가서 키보드를 친다.
민자 : 찾았어?
대용소리 : 찾았는데요.
#54. 창고 내부 / 밤
정후가 자기의 차를 세워두는 곳 중의 하나. 거기 세워져 있는 정후의 보조차. (평소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닌 다른차.)
운전석의 문이 열려 있고. 시동이 걸려져 있다. 그 안의 네비를 검색해보던 대용이.
대용 : 이 차는 한 달 넘게 사용 안 한 거 같아요.
차에서 몸을 빼내고 플래시를 켜며 옆으로 이동. 거기 오토바이가 한 대 세워져 있다.
플래시 불빛을 비추며 손가락으로 오토바이에 쌓인 먼지를 닦아보고
대용 : 오토바이도 사용한지 오래 됐고. 먼지가 장난 아니네. 여기 말고 또 없어요?
민자소리 : 그게 그 놈이 가진 마지막 차야. 그럼 이 놈 계속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건데.
대용 : 집에 있는 거네 계속. 그냥 형네 집을 가르쳐줘요. 내가 찾아가볼게.
#55. 민자 아지트
민자가 한숨을 쉰다.
민자 : 가도 너 못 찾아.
대용 : 아 왜요.
민자 : 가도.. 지가 열어주지 않으면 열고 들어갈 수가 없는데 있다고 그 놈이.
민자. 속이 상해서 의자를 발로 툭 찬다. 밀리는 의자. 에잇. 뻥 찬다.
#56. 치수네 가게 앞 / 아침
철민이 출근해서 오고 있다. 가게의 잠긴 문을 여는데.
막 들어서려는 철민의 어깨를 퍽 치면서 먼저 들어가는.. 민자다. 마나님 룩.
철민이 어이없어서..
#57. 치수 까페 내부
화려한 숄을 휘날리며 먼저 들어온 민자가 가게 안을 훑어본다.
뒤따라온 철민이
철민 : 저기요 손님. 아직 오픈을 안 했거든요. 30분 후에..
민자 : 하세요. 오픈. 지금 당장.
하고는 카운터 앞에 가서 초조하게 발을 까딱거린다.
철민이 참자..해서 바 안으로 들어가며
철민 : 뭐 드시겠습니까?
민자 : 여자 없어요?
철민 : 예?
민자 : 내가 남자한테는 주문을 안 해요.
철민이 어이가 없어서 화를 낼까말까 하는데.
이층에서 내려오는 영신. 출근복 차림으로 쿵쿵 내려오며 민자의 눈치를 보며
영신 : 아저씨. 나 우유 한잔만.. (하며 바 쪽으로 가는데)
민자 : 여기 있네. 여자. 아가씨.
영신 : 네?
민자 : 내 주문 좀 받아요.
하더니 테이블 쪽으로 간다.
영신이 어리둥절한데. 철민이 재빨리 영신을 잡으며
철민 : 가지마. 저 여자. 분명히 간밤에 지 남편 바람피는 걸 알게 돼서 어디 만만한 여자 하나 찾아서 갑질할라고 들어온..
민자 : (버럭) 아가씨! 주문.
철민 : 아 증말 아침 개시부터 재수없게.. (폭발하려는데)
영신 : (말리며) 주문만 받아오면 되죠?
// 시간경과
민자 앞에 놓이는 물잔. 영신이 물잔과 메뉴를 놓아주며
영신 : 뭐 드시겠습니까?
민자 : (빤히 영신을 본다)
영신 : 아침 드실 거면... (메뉴를 열어 보이며) 여기 블랙퍼스트 세트가 있구요. 아니면..
민자 : 앞에 앉아 봐요..
영신 : (이 여자 진짜 이상하다) 저어.. 제가 실은 여기 점원이 아니고요.
민자 : 앞에.
영신. 할 수 없이. 건너편에 앉는다.
민자 : 내 목소리 기억 못하겠어요?
영신 : (??)
민자 : (자기가 했던 말 반복) 채영신씨? 박봉수 아시죠?
영신이 놀라서 일어날 뻔 했다가 도로 앉으며
영신 : 봉수 어머님?
민자 : 내가 어머닌 절대 아니고. (가방에서 USB와 잭을 꺼낸다)
영신 : (애가 타서) 봉수가 며칠째 결근을 하고 있는데요. 연락도 안되고..
민자 : 휴대폰 줘봐요.
영신 : 내 휴대폰.. (하면서 건네주며) 근데 봉수 아파요? 아니면 어디 외국에 갔어요? 아니 외국에 가도 전화는...
근데 그거 뭐하세요?
민자 : (USB를 영신의 휴대폰에 연결하고 휴대폰을 조작하며) 갸가 지금 6일째 움직이질 않아요. 그 근처 슈퍼마켓. 배달 음식점,
다 뒤져봤는데. 그동안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 사간 게 없어. 내가 찾아가봤자 나는 들어가는 방법을 몰라요.
그럼 방법은 하나. 고래고래 불러서 지가 문 열고 나오게 해야 되는데. (영신을 보는)
영신 : (떨며 보고 있는)
민자 : 지금 내가 하는 말. 어디까지 이해돼요?
영신 : 그 사람. 괜찮은 거에요? ... 괜찮지 않아요? (하는데 저도 모르게 목이 메며 눈물이 맺힌다)
민자 : (보고만 있는)
영신이 울컥. 민자의 손목을 끌어 잡으며
영신 : 어디 있어요. 그 사람. 가르쳐줘요.
민자 : (보는)
영신 : (다급해서 버럭) 어디 있는데! 제발.. (눈물과 초조함이 가득한 눈)
민자 : (끄덕이더니) 그 눈을 봐야했어요. (하며 영신의 휴대폰을 건네준다)
#58. 길 가 / 낮
택시가 와서 선다.
배낭을 둘러멘 영신이 내린다. 사방을 둘러본다.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마음이 급해서 걸음이 빨라진다.
#59. 정후의 건물 앞
영신이 달리듯 오다가 걸음이 느려진다. 사방을 둘러본다. 광대한 건물. 끝없는 벽.
이하 디졸브되는 몽따쥬 느낌. (길지 않게)
// 커다란 철문을 힘들여 여는 영신.
//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영신. 사방. 황량한 시멘트 구조물이 이어져 있다.
영신이 휴대폰을 꺼내 본다. 화면에 보이는 위치추적 프로그램. CG. 건물 내부도면이 미로처럼 복잡하다.
도면 구석 공간에 붉은점이 깜박이고 있다. (그 붉은 점이 있는 곳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설정. 그 붉은 점이 정후의 아지트)
영신이 그 붉은 점이 자기 앞쪽으로 오도록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 다른 공간 영신이 걷는다. 둘러보지만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되는 비슷비슷한 공간들.
휴대폰 화면을 본다. 빨간 점이 왼쪽으로 기울고 있다. 영신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 다른 공간 계단 쪽 영신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잠시 후 영신이 계단을 다시 내려온다. 출구가 막혀 있는 듯.
// 아까와 비슷한 공간이 죽 이어지고 있다.
영신이 휴대폰을 보며 다시 방향을 잡아 걸어간다. (몇층인지 몰라서 각 층을 모두 뒤지고 있다는 설정)
이제 영신은 상당히 지쳐 있다.
// 화물 엘리베이터 앞 공간. 문을 가리고 있는 나무 구조물들.
영신이 지쳐서 그 앞을 지나가다가 돌아온다. 구조물들을 돌아와 보면 거기 엘리베이터 문이 보인다.
영신이 버튼을 눌러보지만. 버튼은 불이 꺼져 있다.
영신이 포기하지 않고 엘리베이터 문 근처를 손으로 더듬으며 뒤지다가 발견하는 것.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는 열쇠구멍.
영신이 백팩을 내려 백의 주머니에서 꺼내드는 만능열쇠꾸러미.
키의 열쇠 구멍을 살피고 적당한 것을 골라 넣고.. 조심스럽게 조작하고.
위잉... 전기가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버튼에 불이 들어온다.
//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안의 영신. 구석에 가서 벽에 딱 붙어 두려움을 참고 있다.
덜덜거리고 올라가던 화물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아래위로 문이 열린다.
얼른 넘어질 듯 빠져나오는 영신.
// 이제 지칠 대로 지쳐서 걸어오는 영신. 휴대폰을 보다가 멈춘다.
빨간 점이 거의 화면 중앙에 있다. 주위를 둘러본다.
#60 정후 집 입구 앞 공간
영신이 화면을 보며 들어온다. 영신이 보기에는 막혀 있는 공간이다.
휴대폰 화면에는 정중앙에 빨간 점이 박혀서 사방으로 물결무늬를 내고 있다. 바로 여기가 거기라는 듯.
영신이 사방을 둘러보지만 다 막혀 있다.
영신이 사방의 벽을 두들겨댄다. 그러다 소리 지른다.
영신 : 봉수야. 박봉수. ... 여보세요. 누구 있어요.
귀를 기울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영신, 결심한 듯. 벽마다 귀를 대고 두들겨대며 혹시나 벽 너머에 있을 공간을 찾는다.
//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혹시 바닥과 벽의 사이에 장치가 있는지 찾는다.
// 벽의 틈마다 손가락을 넣어 훑다가 뭔가 걸리는 것을 발견했다.
// 만능열쇠로 조심스레 조작한다. 절컥 뭔가 열리는 소리가 난다.
좋아서 벽을 밀어봤지만 여전히 꿈쩍도 않는다.
영신이 백팩을 거꾸로 뒤집어 털어낸다.
손가방이나 필통 물통 같은 것과 함께 청진기며 하키팩만한 둥근 자석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내린다.
#61. 정후의 건물 밖
낮에서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62. 정후 집 입구 앞 공간
이제 이곳도 어두워져가고 있다.
휴대폰의 플래시로 불을 밝히고 영신이 조심스럽게 작업 중.
청진기를 귀에 걸고 벽에 대고. 다른 손으로는 자석을 잡고 벽을 샅샅이 훑는 중.
늘 정후가 건드리고 들어가던 표지판 근처로 이동하는데.
문득 절컥 벽 너머의 쇠붙이가 자석에 움직인 소리가 들린다. 좀 더 이동했더니 다시 절컥.
영신이 몸을 떼고 본다. 거기 표지판이 비뚤게 걸려 있다.
영신이 조심스레 그것을 이쪽으로.. 그리고 반대쪽으로 움직여 본다.
잠시 후. 벽을 잠근 마지막 장치가 풀어지며 벽이 조금 움직인다.
영신이 벽을 민다. 열린다.
#63. 정후 스튜디오
백팩을 들고 조심스레 들어서는 영신. 입구 쪽은 어두워서 더듬거리며 들어오다가 거기 기대놓은 각목을 건드린다.
각목들이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가 난다.
숨죽이고 있는 영신.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다.
영신 : (소심하게 불러본다) 저기요. 누구.. 있어요?
대답이 없다. 좀 더 들어서자 창문으로 들어오는 노을빛 속에 내부가 보인다.
한쪽 벽면에 가득한 무인도 사진. 그리고. 그 빛 앞에 침대에 누군가 하얀 이불에 둘러싸여 있다.
영신이 들고 있던 백팩이 손에서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그리로 다가간다.
이제야 보이는 정후의 얼굴. 초췌하고 거뭇하게 수염자국이 보이고. 흩어진 머리칼. 잠이 든 듯.
(5일 넘게 거의 안 먹고 잠만 잔 상태)
영신이 떨리는 손으로 정후의 어깨를 흔든다.
영신 : 봉수야.
흔들리는 대로 반응이 없는 정후.
영신이 더럭 겁이 나며 침대에 올라앉아 정후의 머리칼을 쓸어 올려 눈을 보려고 애쓴다.
영신 : 무슨 잠을 이렇게 자. 눈 좀 떠봐.
그래도 움직임이 없는 정후.
영신이 겁에 질려 울음이 나오려고 한다.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며
영신 : 우리 병원에 가자. 내가 데리고 갈게. 같이 가자.
번호를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댔다가 정후 쪽을 보고는 멈췄다가.
영신 : (머뭇머뭇) 죄송합니다. 잘못.. 걸었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계속 보는 곳. 정후가 눈을 뜨고 영신을 보고 있다.
영신 : (고개를 정후에게 가까이 기울이고 속삭여) 봉수야. 나 왔어.
정후가 꿈을 꾸는 눈으로 보다가 힘없는 한 손을 들어 흩어져 내린 영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 얼굴을 잘 보려고 한다.
정후 : 와. 대박. (미소) 니 꿈을 꾸네.
영신이 힘없는 정후의 손을 잡아 자기 볼에 대고
영신 : 아파? 많이 아픈 거야? 너 손이 엄청 차가워.
정후 : ... 추워.
영신 : 알았어.
영신이 정후의 손을 놓더니 점퍼를 벗어 놓고 정후의 이불 속을 들어간다. 정후를 감싸 안고 옆에 눕는다.
정후에게 이불을 잘 덮어주고 여며준다. 어떻게든 감싸 안아주면서.
영신 : 좀 따뜻해?
정후가 꿈결처럼 영신의 품으로 파고든다. 그런 정후를 감싸 안고 영신이 정후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64. 시간경과 / 동장소
/ 창 밖은 밤이 되어있다.
잠들어 있던 정후가 눈을 뜬다. 돌아누우려다가 뭔가 이상하다. 다시 돌아눕는다. 눈부셔하며 눈을 뜬다.
(실내에 음식 만드는 냄새가 가득하다)
순간.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다가 비틀. 침대에서 내려가려는데.
영신 : 어어. 어딜 내려올라고.
정후가 믿어지지 않아서 본다.
거기 영신이 정후의 큼직한 셔츠와 트레이닝복 바지를 둘둘 말아 입은 차림으로
한 손에는 국자를 들고 후후 식히며 정후에게 오며.
영신 : 이거. 달걀죽.
정후. 얼굴을 쓸어내린다. 이건 꿈일 거야.
그런데 영신이 국자를 정후의 입에 가까이 하며
영신 : 맛 좀 봐봐.
정후 : (국자를 피하며 당혹스러워서) 무슨 꿈이 이러냐.
정후, 주위를 둘러본다. 내 집이 맞다.
영신의 손목을 탁 잡아. 저도 모르게 차가워지며
정후 :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누가 넣어줬는데. 언제.
영신 : (엄살) 아아..
정후 : (저도 모르게 손목을 놓아주면)
영신 : (국자를 기어이 정후의 입에 대주며) 맛 보시라고.
정후 : (어쩔 수 없이 입술에 죽이 묻는다.)
영신 : 회사에는 월차 냈고. 아버지한테도 말해놨고. 그래서 최소한 내일까지 난 여기 있을 거고.
넌 내가 해주는 죽과 밥을 먹을 거야. 그래서 맛은? 싱거워? 짜나?
정후.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죽을 닦아낸다. 기운이 없지만.
정후 : 채영신
영신 : 편한 옷이 필요해서 니 꺼 좀 빌려 입었어. 이해하시고. (돌아서 가려는데.)
정후 : (가라앉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는데.
영신 : (멈춘 채 돌아보지 않는)
정후 : 여기. 너 올 데 아니야. 그러니까.. 가.
영신 : (그대로 등을 보인 채)
정후 : 그리고 여긴 잊어주고. 다신 오지 마. ...가라.
영신 : (천천히 돌아서 정후를 본다)
정후 : 가는 길. 봐줘야 되나.
영신 : 그게.. 너야? 지금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진짜 너? 박봉수는 안 그러는데. 넌.. 좀 무섭네. (좀 웃어 보이는데)
정후 : (길게 말하는 게 힘들다) 왜.. 못 알아듣지?
영신 : 너한테 오려고 하루 종일 걸렸어. 그래서 지금은 밤이야. 깜깜해. 내일.. 해가 뜨고 밝아질 때까지만 있게 해줘.
그 때도 가라고 하면 갈게.
정후. 침대에서 내려서려고 하다가 멈춘다. 어지럼증. 침대를 짚었다가 숨을 고르고 다시 영신을 쳐다본다.
영신이 걱정스러워 보다가 불쑥 들고 있던 국자를 들어 자기가 맛을 보고.
영신 : 짜다. (휙 돌아서 부엌으로 가며) 물 넣어야지.
#65. 동장소 / 시간경과
정후가 소파에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앉아있는데.
영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정후의 무릎에 담요를 덮어준다. 베개를 양 옆에 끼워 넣는다.
무릎에도 쿠션을 놓아주더니 그 위에 쟁반을 조심스레 얹어 놓는다. 죽과 물김치.
영신이 옆에 앉더니 숟갈을 들어 죽을 뜬다. 후우.. 불어서 먹여주려고 한다.
정후가 입을 열 생각이 없어 그저 본다. 영신이 보며 계속 기다린다.
정후가 할 수 없이 숟갈을 받아 들어 자기 손으로 먹는다. 먹다가 보면.
영신이 소파 앞 쪽에 전열기를 끙끙 밀고 끌어오고 있다.
전원을 넣고. 정후 쪽으로 열이 가는지 방향을 맞춘다고 부산을 떨고.
정후 앞에 손을 내밀어 열이 정후에게 이르는지 체크해본다. 정후 쪽은 보지 않는다.
// 시간경과
/ 옷방
면도도 하고 말끔하게 샤워를 한 정후가 옷을 갈아입고 있다.
아직 어지럼증이 남아서 잠깐 벽에 기대었다가. 부엌 쪽으로 이동하다가 멈춰서 본다.
거기 영신이 새로 사온? 비닐봉지 안의 식품을 정리하며(과일이나 채소, 우유 등은 냉장고에 넣으며) 전화를 하고 있다.
영신 : 북어를 물에 불리는 건 알지. 근데 얼마나 오래 불려. (북어 봉지를 들어보며) 통짜 아니고 찢어진 건데?
..쌀뜨물? 엥? 다 버렸는데. 응.. .응.. (하면서 열심히 수첩에 적는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정후. 옆에서 점퍼?를 들어 입는다. 걸어서 영신의 옆을 지나간다.
전화를 하던 영신이 본다.
영신 : 어.. 아빠 나중에 다시 할게. 끊어.
정후가 컴퓨터 테이블 쪽으로 걸어온다. 거기 의자에 걸쳐 있던 영신의 겉옷을 들고 가방을 든다.
그러다 보면 옆의 테이블에 정후의 휴대폰이며 반지며 시계 등이 나란히 잘 놓여 있다.
휴대폰은 배터리도 잘 넣어져서.
정후 영신의 옷과 가방을 들고 영신에게 온다. 겉옷을 영신에게 내민다.
영신이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젓는다. 정후가 다가서니까 또 물러난다.
정후가 재빨리 영신의 팔을 잡아당긴다. 끌려오는 영신을 앞에 잘 세우고 겉옷을 입힌다. 가방을 등에 메 준다.
영신이 싫어서 꼬물거리는데 봐주는 거 없이 다 한다. 그러더니 영신의 등을 밀어 입구 쪽으로 간다.
영신이 갑자기 옆으로 도망치더니 책상 쪽으로 도망간다.
영신 : 지는 아무 때나 우리 집에 와서 자면서.
정후. 영신을 잡으러 간다. 영신이 도망가며 점퍼와 가방을 벗어 던지며 침대 뒤로 도망가서 침대?를 잡고 버틴다.
영신 : 나 하루 밤만 있겠다는데. 무슨 계산이 이래. 이러면 안 되지.
정후가 후우.. 숨을 쉬며 멈춘다. 몸 상태가 안 좋다.
몇 걸음 비틀비틀 걸어갔다가 멈춰서 돌아본다. 속상해서.
정후 : 왜 그렇게 겁대가리가 없냐.
영신 : 넌 겁 안나.
정후 :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내가 .. 너한테 얼마나 숨기는 게 많은지 짐작도 안 되지?
영신 : 상관없어.
정후 : 바보냐?
영신 : 보내지 마. 나 보내면 너.. 평생 울 거야.
정후 : 내가.. 널 다치게 할 거야.
영신 : 아니. 넌 나 다치게 안 해. 절대로.
정후. 어쩐지 숨이 차다. 후우후우.. 숨을 몰아쉰다. 그게 울고 싶은 거라는 걸 잘 모른다.
영신이 그런 정후가 걱정 돼서 본다.
정후가 한 걸음 한 걸음 영신에게 온다. 영신이 그런 정후를 본다.
정후가 영신의 팔을 잡았다. 잡아당겨 데려가려는데. 어쩐지 멈췄다.
정후가 망설이는 틈에 영신이 정후의 목을 끌어안아 버린다.
영신 : 보내지 마. 그러지 마.
정후가 결국 영신을 안는다. 놓치기 싫어서 그렇게 끌어안고 영신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눈가를 닦아본다. 눈물이 흐르고 있다. 한번 터진 눈물이 자꾸 흐른다.
영신이 고개를 떼어 정후를 보더니 두 손으로 정후의 눈물을 닦아준다.
정후. 우는 스스로에게 당황해서 영신을 본다.
영신이 까치발을 해서 키를 높여 그렇게 어쩔 줄 모르는 정후에게 입 맞춘다.
정후가 울며 그 입맞춤을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