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난 주말 전남 함평, 해남, 강진, 경남 고성 일대에 깔려 있는 마을숲을 보고 왔습니다. 요사이 전통마을숲의 생태적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시골 마을 입구에 오래된 숲이 남아 있는 곳이 있으면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남아 있거나 있었던 곳의 주소를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갑니다. 나중에 남아 있는 곳의 사진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글이 길어 두 개로 나누었습니다.
제목: 미꾸라지 살지 않는 시골 도랑
시골 도랑이 눈에 뜨이게 바뀌고 있다. 정겹던 흙도랑이 사라지고 있다. 어느 새 하나둘 콘크리트 수로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분명히 귀중한 물을 아껴자는 좋은 명목에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콘크리트 수로는 땅 속으로 스며드는 물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임에 틀림없다.
한편 전국 방방곡곡에서 더 많은 지하수를 퍼올리고 있다. 땅 속으로 물이 스며드는 물은 막고 더 많은 양의 지하수는 퍼울리니 이상하지 않는가? 더 많은 물을 저수지에 가두어놓고 도랑에 콘크리트를 깔고도 지하수를 자꾸만 뽑아쓴다면 어디 감당해내겠는가? 먹이를 먹지 않은 거미줄 똥구멍에서 거미줄이 계속 나올 수 없는 법이다. 이제 우리 강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대수층(지하수가 채워지는 지하공간)은 먹이가 없는 거미꼴이 되었다.
나이 좀 든 사람들은 옛 기억을 되살려보라. 어릴 적 시골 동네 우물에 어디 오늘처럼 물이 없었던가? 바닥을 들어내고 있는 전국의 작은 하천들이 오늘과 같았는지? 지난날 대수층을 채웠던 지하수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림. 많은 동네 사람들에게 물을 제공하던 전남 장흥 관산읍 방촌리 우물은 말라 버렸다. 퍼올린 만큼 지하수가 채워지지 않은 탓이다. 전통이 말라가는 모습이다. 2003년 11월 16일 찍음.
흙으로 된 농수로가 이 땅에서 차츰 사라지고, 그곳에 몸을 기대어 살던 생물들도 사라져가고 있다. 고향 도랑에서 살던 참게도 퉁가리도 사라진 지 무척 오래되었다. 많은 다슬기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다슬기를 먹고살던 반딧불이도 이제는 내 고향 여름 풍경을 떠났다. 그 많던 잠자리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생명력이 끈질기던 미꾸라지도 살아갈 도랑이 없어지고 있다. 그래서 모기가 많아지는 지도 모르겠다. 2003년 10월 8일 KBS1방송의 환경스페셜에 미꾸라지는 극성스러운 모기를 잡는 데 큰 일을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모기 멸종을 연구하는 영국 임페리얼대학교에서 장구벌레를 잡아먹는 송사리와 미꾸라지의 하천 방류를 최선의 방법으로 제안했다.
고향땅에는 논도랑에서 한 번씩 물을 빼고 미꾸라지를 잡던 재미를 이제 더 기대할 수 없다. 미꾸라지 한 마리 살지 않는 도랑을 도랑이라 불러도 좋을지? 이렇게 도랑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세태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콘크리트 수로로 더 많은 물을 벼논에 공급하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낌이 지나치면 구두쇠가 된다. 물을 나누어가져야 할 생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은 이미 심한 구두쇠 위치에 올라앉았다. 콘크리트 수로 사업의 이면에는 물을 다른 생물들에게 주지 않고 사람이 독점하겠다는 메마른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사람의 마음과 산천은 서로 닮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