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 김동환이 맛본 시 한편-이성률의 ‘긴 꼬리 연애’
삼십 년 근속
이성률
아침 언덕에서 삼십 년간 버스를 탔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십 년간
반복하는 것은 기계가 하는 일입니다
월급을 타고 집을 마련하고 나이 드는 일이
돌아보니 기계적이었습니다
너는 말이 아니니 서울 가서 사람이 되렴
나를 유학 보내 아버지는
기계가 된 자식을 알아보지 못해 임종이 편안했습니다
사람 노릇을 할 수 없는 나는 기일에 불효자가 됩니다
살 맞대고 동거해 온 펑크 난 수절
이 땅의 노동은 도무지 정이 안 갑니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은 나를 가두는 일입니다
* 기계적으로 평생 살아서 한 경지를 이룬 인물을 우리는 장인이라 하던가.
한 직장에서 30년,40년 살아온 사람을 근면성실의 표상이라고 하나.
자주 접하는 퇴직한 공직자들과 소주를 마시다가 남은 안주는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 퇴임시 주는 황조근정훈장이다.
팔리지도 않는 훈장에 30년을 받쳐버린 일생은 과연 기계적인 삶이었나.
이 땅의 노동은 정이 안가기에 기계적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노동에도 기쁨이 있고 환희가 있으며 즐거움과 성취감이 있어야 할 텐데.
인구포화의 절정기를 지낸 50에서 60년생들은 다시 30년을 설계해야 한다.
우물 속에서도 달이 뜨고 낮밤이 있는데 한 우물보다 이리저리 보헤미안이 되어 자연으로 귀화하는 시간 연습을 해야 하나.
-지리산을 떠나 배를 탔다/데려간 미련이 없어/편안했다/서리가 노고단 상고대처럼 다녀가고/오래도록 멀미를 했다/가라앉을 만하면/다시 단풍이 드는/바다도 산이었다-<시‘오산’전문>
그렇게 오해하고 착각하고 오산하면서 속는 듯 속이는 듯 가물가물 살아왔고 살아가야 한다. 기계적으로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창백하게 시들어버린 굳어진 그 얼굴에 생기가 돋고 다시 물이 올라올 수 있을까. 내 몸을 텅텅 비워 버릴 시간이다.
(환경경영신문 www.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경영학박사,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