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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김영주
관심
백두대간 종주에 들어가며
중앙일보가 1월 1일부터 약 50일간 백두대간 마루금(능선)을 걸으며, 10회에 걸쳐 종주기를 연재합니다. 히말라야 8000m 14개 봉우리를 완등한 김미곤(52) 대장과 김영주(50) ‘호모 트레커스’ 담당 기자가 강원도 고성 진부령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약 700㎞를 매일 걸으며, 생생한 현장을 전할 계획입니다. 여성 산악인 남난희(67)씨는 1984년 1월 1일 백두대간(부산 금정산~진부령)을 홀로 걸었습니다. 이후 연간 수만 명의 사람이 대간 종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간 백두대간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사람들은 왜 백두대간을 걷고 싶어 할까요? 백두대간 마루금의 겨울 모습과 거기에 기대 살고 있는 사람들, 보전해야 할 동식물 이야기 등을 담습니다.
글 싣는 순서
백두대간을 시작하며
①설악산 권역
②오대산 권역
③태백산 권역
④소백산 권역
⑤월악산 권역
⑥속리산 권역
⑦덕유산 권역
⑧지리산 권역
백두대간을 마치며
“저는 비탐방(출입금지 구역) 구간을 (진입해) 모두 걸었어요. 백두대간 종주를 하려는 목적이 마루금(능선)을 기록하고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 뼘도 건너뛸 수 없었습니다. 비탐방 구간을 걷지 않으면 완전한 종주라고 할 수도 없고요. 백두대간은 개발과 등산객의 샛길 이용으로 마루금의 원형이 변질되고 있어요.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 원형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금지 구간을 들어가 걸었습니다.” 조지종, 『두 발로 쓴 백두대간 종주 일기(2019)』 저자.
“요즘 등산객들은 100대 명산 인증하듯, 백두대간 종주도 경쟁하듯 하고 있어요. 탐방안전·자연보전을 위해 정해 놓은 출입금지 구간도 지키지 않으면서요. 아마 대부분의 종주자가 그렇게 걷고 있을 겁니다. 산을 정복하듯 자신의 체력을 뽐내고, 그리고 그걸 SNS 통해 자랑하고. 유튜버들은 백두대간에 들어가서 먹방 하듯 중계하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요? 이제는 등산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한반도 생태 자원의 보고인 백두대간 마루금에선 더 절실합니다.” 식물지리학자 공우석,『숲이 사라질 때(2021)』 저자.
백두대간 걷기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의 한 단면이다. 백두대간을 온전히 걷고 싶은 이들은 ‘비법정 탐방로’를 스스럼없이 넘는다. 그러나 법을 어기고 걷는 이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한반도의 큰 산줄기 백두대간. 백두산(2749m)에서 시작해 마루금을 따라 지리산(1915m)까지 이어지는 장장 1400㎞의 능선이다. 백두대간은 단순한 산줄기가 아닌 민족의 ‘영지(靈地)’다. 또 한반도 동식물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지난달 27일, 백두대간 종주를 앞둔 김미곤 대장(왼쪽)과 김영주 기자. 1월 1일부터 50여 일간 백두대간 700㎞ 걸으며. 현장에서 종주기를 연재한다. 우상조 기자
백두대간이라는 말은 1980년대에 등장해 90년대부터 일반에 알려졌다. 백두대간 산하(山河)가 레저의 영역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실제로 백두대간은 부지불식간에 마주한다. 강원도 고성 진부령(520m)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마루금은 찻길과 70여 차례 만난다. 진부령·미시령·한계령·성삼재 등이다. 한반도 국토를 여행하는 동안 수시로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셈이다. 또 백두대간이 지나는 8개 국립공원(설악·오대·태백·소백·월악·속리·덕유·지리)의 연간 이용객은 약 800만 명에 달한다.
정근영 디자이너
백두대간은 이렇게 가까워졌다. 최근엔 백두대간 남쪽(진부령~지리산) 구간 700㎞를 걷는 종주자가 크게 늘었다. 이전까지 대간 종주는 베테랑 산꾼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장거리 하이킹을 즐기는 MZ세대들이 가세하면서 더 늘었다. 특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스페인)이나 미국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등 해외 장거리 하이킹을 경험한 이들이 국내로 눈을 돌려 종주에 나선 경우가 많다. 한국산악학회에 따르면 종주를 했거나 종주에 나선 이들이 6만여 명이라고 한다.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가운데 오른쪽) 뒤로 펼쳐진 백두대간 능선. 중앙포토
백두대간 종주가 대중화되면서 부닥치는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백두대간 관리 주체인 환경부(국립공원공단) 등이 정한 ‘비법정 탐방로(비탐)’와 이를 걷고 싶어 하는 대간 종주자들 사이의 갈등이다. 국립공원공단은 자연공원법에 근거해 산림·동식물 보호와 탐방 안정성을 위해 일부 구간에 한해 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구간이 약 80㎞로 전체의 10분의 1이 넘다 보니 갈등을 유발한다. 걷는 자와 막는 자다. 특히 설악산국립공원의 경우 출입금지된 백두대간 능선 길이 29㎞로 허가 구간(18㎞)보다 길다. 여름 홍수와 봄·가을 산불 방지 기간, 겨울 폭설로 인해 통제하는 기간을 더하면 들어갈 수 있는 때가 많지 않다.
그러나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산악계에서도 나온다. 스스로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등산인, 산악인이라면 더 그렇다. 2021년 지리산에서부터 일시종주를 한 김채울(28)씨는 “내가 걷고 싶다고 해서 금지된 길을 걷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생각했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킬 건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PCT도 산불 방지 등의 이유로 때때로 일부 구간을 막기도 하지만, 이를 두고 불평하는 이들은 없다. 다만 미국은 내셔널 트레일의 경우 탐방로가 막힐 경우 우회로를 설정하고 트레커에게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2020년 겨울 백두대간을 종주한 이하늘씨. 사진 두두부부
외국의 유명 트레일과 백두대간을 두루 접해본 이들은 한국의 백두대간이 전 세계 어느 트레일과 견주어도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미국 3대 트레일(PCT·CDT·AT)을 모두 걸어본 양희종(39)씨는 “대간을 종주하면서 산 아래 운해를 수시로 접했다. 외국에만 있는 풍경인 줄 알았는데 백두대간에서 이런 광경을 마주하고 놀랐다”고 했다. 또 “해외 트레일을 걸으면서 만나는 이들이 ‘한국엔 어떤 장거리 트레일이 있는지’ 궁금해한다”며 “그때마다 백두대간을 알려주지만, 한국인도 찾기 어려운 우회 길을 외국인이 실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1984년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최근 미국 PCT를 완주한 남난희(67)씨는 “외국의 트레일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 데 반해 우리의 백두대간은 산 마루금을 잇는 천연의 길이자 수천 년 역사가 서린 길”이라며 “전 세계 트레커들에게 제대로만 알린다면 세계적인 트레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남한 구간뿐만 아니라 남북 백두대간을 잇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두대간 걷기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다. 길뿐만 아니라 백두대간 아래 사는 사람과 역사 등으로 콘텐트를 다양화해야 백두대간이 세계 속의 트레일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우선(66) 백두대간인문학연구소 소장은 “백두대간을 어느 정도 개방해야 할지, 어떻게 보전할지 등을 포함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지금은 길만 보고 걷는데, 백두대간이 우리 삶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오려면 인문학적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오랫동안 보전하고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두대간, 어떻게 걸을 것인가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는 김미곤 대장(왼쪽)과 김영주 기자
‘호모 트레커스’는 이달 1일부터 약 50일간 백두대간 마루금을 직접 걷고, 현장에서 생생한 종주기를 연재한다. 장장 700㎞(비탐 우회 구간 포함)에 이르는 길이다. 앞서 산악 전문지 등에서 40~50구간으로 나눠 구간종주를 연재한 적은 있지만, 현장에서 전하는 일시종주는 언론사 최초의 시도다.
취재팀은 2018년 히말라야 8000m 14개를 완등한 산악인 김미곤 대장과 김영주 호모 트레커스 담당 기자로 꾸려졌다. 김 대장은 14좌 완등 후 지난해 5월 네팔 히말라야 푸캉(6694m)을 세계 최초로 등정했으며, 지난해 네팔 푸캉(6694m)을 세계 초등했다. 기자는 엄홍길(64) 대장의 히말라야 16좌 마지막 프로젝트인 로체샤르 원정대를 포함해 다수의 원정에 동행한 경험이 있다.
겨울 일시종주는 백두대간 종주 중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마루금을 찾기도 힘들고, 폭설 등으로 인해 고립이나 조난 우려도 있다. 그래도 겨울을 택한 이유는 최대한 백두대간 생태계에 주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공우석 기후변화생태계연구소 소장은 “겨울에 걷는 게 동식물에게 부담을 덜 주고, 마루금 채굴 등 훼손이 덜하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화식(火食)을 피하고 알파미(밥에서 수분을 완전히 빼 말린 것) 등으로 끼니를 해결할 예정이며, 응고제와 봉투를 이용해 대변을 수거하는 등 최대한 LNT(Leave No Trace, 흔적 남기지 않기)를 실천할 계획이다. 식량은 1주일 단위로 스스로 조달하기로 했다. 알파미와 미숫가루 등으로 해결하고, 길을 가는 도중 대피소나 산장·휴게소 등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보충할 계획이다.
취재팀은 비법정 탐방로를 반드시 우회해 걷는다. 폭설로 인해 길이 막히면 하루 이틀 기다리고, 그 이상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기로 계획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그간 비탐 구간을 우회하는 길은 대간 종주자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마루금이 끊어진 길에서 다시 산 아래 민가로 내려와 길이 재개된 곳에서 다시 올라야 하는 우회로는 직진하는 것보다 힘들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케줄을 어떻게 짜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앞서 2021년 여름에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한 번에 종주한 김채울(28)씨는 “비탐 구간을 가는 날이면 일정과 루트를 서칭하는데 (다른 길보다) 두 배 이상 걸렸다. 우회 길을 찾다보면 트레일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어디서 야영을 해야 할지 모른 게 꼬이게 된다”며 “속리산 제수기재에서 장성봉 구간을 걸을 때는 마루금 800m를 걷기 위해 15㎞를 우회해 올라가야 했다”고 말했다.
백두대간 종주를 기획할 때 가장 요긴한 정보는 앞선 이들의 발자취다. 블로그 등 SNS엔 대간 종주기가 넘친다. 특히 40~50구간으로 나눠 종주에 나선 이들은 대부분 블로그 등에 기록을 남겼다. 책을 남긴 이도 여럿 있다. 취재팀도 이를 보고 걷기 스케줄을 짰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도 더러 있다. 특히 비법정 탐방로에 대한 정보가 들쭉날쭉하다. 호모 트레커스는 이번에 산림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을 통해 비탐 구간을 정확히 정리했다.
비탐 우회해 일시종주 김채울 "지킬 건 지켜야"
2021년 백두대간을 일시종주한 김채울. 사진 김채울
김채울(28)씨는 2021년 7월 지리산에서 시작해 진부령까지 일시종주했다. 당시 김씨는 지리산·설악산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는 산행 초보였지만, 44일 만에 백두대간을 마쳤다. 단, 사막마라톤과 트레일 러닝에서 인정받는 러너였다. 애초 계획은 한 달 이내에 끝마치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출입금지 구간을 들어가지 않았다. 이유는 “막아둔 길을 굳이 걷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론 온전한 트레일을 걷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킬 건 지키면서 걷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시 대간을 종주한다면 진부령에서 지리산으로 내려오는 남진(南進)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또 동계 종주와 북한의 대간 능선을 걷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 캐나다의 밴프 지역에서 암장과 암벽을 돌아다니며 온갖 바위를 섭렵하는 중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기획한 계기는
2020년에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과 세계 일주 계획으로 출국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한 달 만에 다시 귀국해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능한 재미있는 모험이 뭐가 있을까 찾다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계획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게 됐다. 하루 운행 스케줄 등은 앞서 종주를 마친 사람들의 종주 일기를 보고 짰다. 일시종주한 사람이 많지 않아 구간으로 나눠 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참고했다. 기본적으로 식량은 5~7일 정도의 양을 들고 다녔다. 배낭 무게는 15~17㎏이었다. 애초 한 달 이내에 끝내려고 했는데, 장마와 폭염 기간이라 일정이 늦춰졌다. 또 걷다가 발목 통증으로 애를 먹어 속도가 늦춰졌다.
출입금지 구간에 들어가지 않고 걸어야겠다고 한 이유는
대간 마루금을 온전히 걷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금지된 길을 가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앞섰다. 언젠가 비탐이 개방되면 그때 또다시 대간 길을 걷고 싶다.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 상당수가 출입금지 구간을 걷고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비탐 구간을) 꼭 지켜야 한다는 쪽이다. 이유 불문하고 어쨌든 금지한 곳이니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트레일 운영 방식이 잘못됐다고 본다. 이렇게 무작정 길을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처럼 ‘트레일 퍼밋(입산 허가)’ 제도를 도입하거나, 특정 시기에만 오픈하는 쪽으로 트레일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도 인간과 자연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본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비법정 탐방로를 어떻게 우회할 수 있는지 사전 조사를 하는 게 어려웠다. 비탐 구간을 가는 날이면 일정과 걸어야 할 길을 조사하는 데,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이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트레일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러면 또 야영지는 어디로 잡아야 될지 모든 게 꼬이게 된다. 제수리재~장성봉 구간을 걸을 때는 허용된 구간인 800m를 걷기 위해 15㎞를 우회해 가야 했다.
취재팀은 이번에 종주 스케줄을 짜며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에서 단목령까지 5.7㎞가 비법정 탐방로라는 점을 확인했다. 기존에 이 길은 ‘개방 구간’으로 알려져 있었다. 취재팀이 애초 국립공원공단에 출입금지 구간을 요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장을 관리하는 설악산국립공원 사무소는 이 구간이 ‘금지 구역’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단목령 초입엔 차단막과 함께 공단 직원이 입산 통제 중이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10여 년 전 점봉산 일부가 국립공원에 편입된 후 개방 구간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트레일) 조성의 어려움으로 아직 개방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는 국립공원공단마저도 비탐 구간인지 아닌지 헛갈릴 정도라는 점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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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